<-- 7 회: 1권 - 3장. 소녀와 오우거 -->
“허어…….”
“순식간에 집이 됐어!”
“과연 정령사!”
놀라움에 찬 딘 일행에게 내가 말했다.
“바람이 차니 취침은 이 안에서 해.”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딘 일행은 바람을 피할 수 있게 되자 기뻐하는 눈치였다.
-나 잘했어?
노움의 물음에 나는 웃었다.
“물론이지. 저렇게 예쁜 집은 처음 봤어. 우리 노움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노움은 천재야.”
-나 천재야?
“그럼.”
-헤헤헤.
노움은 쑥스러워서 몸을 배배 꼬며 좋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에구, 저 귀여운 것!
노움은 다시 돌려보냈다. 노움과 놀고 싶었지만 몬스터의 습격이 있을지 모르니 정령친화력을 아껴두어야 했다.
둥그런 흙집 안에 잠자리를 마련한 딘 용병단의 호평은 대단했다. 따듯하고 아늑해서 인생 최고로 편안한 야영이 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기뻐하는 그들을 보니 역시 정령술을 익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뿌듯했다.
딘 용병단에게 불침번을 맡기고 나와 한센은 잠을 청했다.
한센 녀석은 금방 골아 떨어졌지만, 나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책이나 볼까.
심심할 때 읽으려고 가져온 ‘정령술의 입문’을 꺼냈다.
그래, 언제 전투가 발생할지 모르니 노움을 이용한 전투 방법을 살펴봐야겠다.
나는 전투 부분을 뒤적거렸다. 아, 여기 있다.
「전투-노움 편
대지 계열은 다른 계통의 정령보다 전투 효율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물이나 바람의 정령은 칼날을 만들어 적을 벨 수 있지만, 대지의 정령으로 같은 일을 하면 정령친화력의 소모가 더 커진다.
특히 하급 정령사의 경우 얼마 없는 정령친화력을 최대한 아끼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하기 때문에 전투 시 필히 동료의 지원이 필요하다.
대지의 하급 정령 노움을 응용한 전투는 근접 전투에 특화된 동료를 지원하는 포지션을 택해야 옳다.
흙으로 손 모양을 만들어 적의 다리를 걸거나 붙잡는 전투법이 가장 효율적이다.
물론 흙으로 날카로운 창을 만들어 찌르는 방법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 다른 계통보다 정령친화력의 소모가 더 크다.
대신 블러드 스콜피온 같은 대형 몬스터를 만났을 경우, 깊은 구덩이를 파서 빠뜨린 후 생매장을 시켜버리는 방법이 유용하게 먹힌다.
경사가 가파른 산이나 절벽과 근접한 장소에서는 산사태를 일으키거나 낙석을 떨어뜨려서 적을 공격할 수 있으므로 대지의 정령사에게는 가장 유리한 지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구나.
역시 딘 용병단을 고용한 건 옳은 선택이었다. 대지의 정령과 계약한 하급 정령사는 혼자 전투를 치르기에 적합하지가 않았던 거야.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노움과의 계약을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우리 귀여운 노움을 놔두고 어떻게 한 눈을 팔 수 있겠어?
나는 눈을 감고 전투를 상상했다.
흙으로 손바닥을 만들어서 발목을 잡아챈다. 오, 그렇지. 땅을 파서 커다란 나무를 적을 향해 쓰러뜨릴 수도 있겠어.
지진을 일으킬 수 있으면 멋질 텐데, 아직 하급인 나로서는 무리겠지.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니 잠이 소록소록 밀려왔다. 나는 책을 덥고 잠을 청했다.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벼락이 치고 있었다.
콰르릉― 콰쾅―!
벼락은 대지를 미친 듯이 후려갈겨댔다. 나는 공포에 질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마침내 벼락의 빛줄기가 또 한 번 번쩍이더니 나를 후려갈겼다. 아, 안 돼!
나는 부르르 떨면서 잠에서 깼다. 깨어나 보니 아직 야심한 새벽이었다.
……한센 녀석의 코 고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내 저 놈을 그냥!
똑똑똑.
“카록 공자님. 딘입니다.”
밖에서 딘이 노크를 해왔다.
“무슨 일이야?”
“잠깐 나와 보십시오.”
나는 벗어둔 코트를 걸치고 마차에서 나왔다. 딘은 물론이고 렉스, 마크, 한스도 모두 깨어나 무기인 창을 들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대체 무슨 일이지?
딘은 서쪽의 숲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정말로 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번쩍― 콰릉― 콰지직― 끄아악―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소리와 무언가를 부수는 둔탁한 소음, 그리고 사람의 비명.
벼락 치는 꿈은 한센의 코골이가 아니라 저 소리 때문이었군.
“아무래도 저쪽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듯합니다.”
“저 번개 치는 듯한 소리는?”
“아마도 마법사겠지요. 혹시 모르니 우리도 대비해야 할 듯합니다.
나와 딘 용병단은 긴장한 얼굴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방향을 주시했다. 팔자 좋은 건 아직도 꿈나라에 빠져 있는 한센뿐이었다.
“렉스, 정찰이다.”
“예, 단장님.”
렉스가 창을 꼬나 쥐고 나섰다.
“다 같이 가자.”
딘이 날 쳐다봤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만약 사람들이 몬스터 떼의 습격을 당한 거면 도와줘야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딘 용병단이 앞장서고 나는 뒤따랐다.
우와, 이거 좀 떨리네.
회귀 전에도 상행을 다니다가 습격 받은 적은 있었지만 그땐 용병들이 알아서 처리해줬었지.
내가 직접 전투에 가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노움.”
-응, 주인님.
노움이 땅에서 불쑥 솟아나왔다.
“쉿. 목소리 낮춰.”
-응. 왜 그래?
“지금부터 싸우러 갈 건데 도와줄 거지?”
-응. 내가 지켜줄 거야.
“아이고, 우리 노움 든든하기도 하지.”
-헤헤. 나 든든해.
“그런데 노움은 잘 싸우니?”
-안 싸워봤어.
이런이런. 이거 괜찮을까?
아냐, 문제없어.
간밤에 책에서 봤던 대로만 하면 돼. 딘 용병단이 앞에서 싸우고 나는 뒤에서 지원이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응.
“쉿. 가까이 접근했습니다.”
딘이 경고했다.
정말로 싸우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그런데 더 이상 사람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전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진입했다. 우리는 나무나 수풀 뒤에 숨어서 살폈다.
“망할…….”
딘의 욕설이었다.
정말인지, 내 입에서도 씨발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리는 두려움에 질려버렸다.
4미터는 족히 될 법한 거대한 키. 강철 같은 근육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녹색 몸체. 강철 기둥처럼 우뚝 선 대형 몬스터.
사람들은 저것을 오우거라 부른다.
오우거의 주변에는 잔인하게 찢겨져 죽은 시신 여섯 구가 사방에 흩뿌려져 있다. 그리고…….
“하아…… 하아……!”
오우거와 마주선 145센티미터 가량의 작은 소녀가 나무 지팡이를 꼬옥 쥔 채 덜덜덜 떨고 있다. 금방이라도 실신할 것처럼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단장님, 글렸어요. 당장 튀어야…….”
렉스가 공포에 떨며 말했지만 딘은 고개를 저었다.
“바보 같은 소리 마라. 우리도 이미 달아나긴 글렸어.”
딘은 내게 말했다.
“카록 공자님, 목숨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들 역시 이미 오우거의 후각에 감지됐을 겁니다.”
“미안. 내가 괜히 다 같이 가보자고…….”
“아닙니다. 오우거의 눈빛을 보십시오.”
오우거의 눈빛은 녹색 빛깔로 충혈이 되어 있었다.
“저건 굶주린 오우거입니다. 굶주린 오우거의 후각은 평상시의 10배로 민감해져 10킬로미터 이내의 모든 사냥감을 감지합니다. 이리 오지 않았어도 결국 오우거의 습격을 받았을 겁니다.”
“그럼……?”
“다행히 마법사로 보이는 저 소녀가 아직 살아 있군요. 합류해서 싸우는 편이 그나마 승산이 있습니다.”
“그럼 더 망설일 필요가 없겠군.”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오우거.
저놈이 한 마리만 나타나도 영지가 발칵 뒤집힌다.
특히 굶주린 오우거가 인간을 상대로 닥치는 대로 포식을 시작하면 마을 몇 개가 예사로 전멸한다.
오우거는 한 번 식사를 하면 1년간 더는 먹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저 거대한 몸뚱이를, 인간보다 훨씬 밀도 높은 근육으로 꽉꽉 채워진 저 거체를 1년이나 유지할 정도의 식사를 한 번에 해치우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괴물과 맞닥뜨린 것이다.
“가자!”
딘의 외침에 단원들과 내가 뛰어나갔다.
“우리가 주의를 끌 테니 정령술로 놈의 발목을 붙잡아주십시오.”
딘도 대지의 정령사와 함께 싸우는 방법을 대강 아는 모양이었다.
“알았어.”
“저기 마법사! 우리가 어떻게든 붙들어 볼 테니 마법으로 결정타를 먹여라! 가장 잘 하는 공격마법은?”
딘의 물음에 마법사 소녀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썬더 체인…….”
“제길, 오우거의 피부는 전격과 화염 계열에 내성이 있는데!”
바로 그때,
“크르륵!”
오우거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온다! 산개! 견제!”
딘의 명령에 렉스, 마크, 한스가 좌우로 산개하여 창을 곧추세우고 오우거를 견제했다.
“크아아아아!”
포효하며 달려드는 오우거!
그 순간 내가 외쳤다.
“노움! 발을 걸어!”
-응!
노움이 삽으로 땅을 찍었다. 땅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더니 흙으로 만들어진 큼직한 손바닥이 오우거의 오른쪽 발목을 걸었다.
쿠우우웅!
“크어어!”
달리다 말고 벌렁 엎어진 오우거가 분노의 고함을 지르며 몸을 일으키려 한다.
“머리를 잡아 눌러!”
-응!
이윽고 흙의 손이 오우거의 뒷덜미를 꾸욱 눌렀다.
“아예 머리를 파묻어!”
시키는 대로 흙의 손이 오우거의 머리를 꾹꾹 눌러 땅속에 파묻었다.
딘 일행이 화색이 되었다.
“돼, 됐다! 저대로 오우거를 질식시키면……!”
“크아아아아아아!”
오우거의 괴력은 노움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오우거가 흙의 손을 뿌리치며 머리를 땅속에서 뽑으며 벌떡 일어났다.
“큭!”
순간 머리가 띵 하고 쑤셨다. 오우거의 힘에 대항하다가 정령친화력이 급감한 것이다. 제길, 실수다! 놈의 괴력에 정면으로 대항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성난 오우거는 정령을 부리는 게 나라는 걸 본능으로 알아챘는지 내게로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