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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6화 (6/529)

<-- 6 회: 1권 - 3장. 소녀와 오우거 -->

다음날, 나는 한센과 함께 용병길드로 갔다. 

마법길드, 대장장이길드, 목공길드, 도둑길드 등 전문 직업군은 각 지역마다 길드가 존재한다. 

이러한 길드는 같은 직업 종사자간의 협력과 발전을 위해 활동한다. 타지에서 온 전문 직업 종사자의 경우 이 길드에 가입해서 허가를 얻지 못하면 생산 활동을 할 수 없다. 

용병 또한 마찬가지다. 각 지역마다 존재하는 용병길드는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의뢰인과 용병들을 연결시켜주는 알선 조직이다. 

용병들은 용병길드의 허가 없이 활동할 경우 제제를 당하며, 심지어 살해당하기도 했다. 의뢰인들 또한 용병길드에게 밉보이면 용병을 고용할 수 없어진다.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용병길드가 의뢰비를 떼먹거나 뇌물을 요구하는 등의 횡포를 부릴 정도로 막강했다.

용병길드의 낡은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일거리를 찾는 용병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한센을 발견하자 눈알을 번뜩이며 몰려왔다.

“날 고용해주시오!”

“실력이라면 날 따를 자가 없습니다!”

“용병 경력 15년간 백 명이 넘는 놈을 골로 보낸 몸이다!”

“블러드 소드라고 들어봤소? 바로 나를 지칭하는 별명이오!”

일주일 굶은 거지 꼬마들이 졸부를 발견한 것처럼 아우성을 쳐댔다. 

최근 수년간 별다른 전쟁이 없어서 용병들의 일거리가 대폭 줄어든 상태였다. 용병들이 저렇게 애타게 의뢰를 잡으려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한센아.”

“으윽, 네.”

“길 뚫어.”

“크흑.”

울상이 되었지만 한센은 몰려드는 용병들을 좌우로 밀치며 길을 뚫었다.

“비켜주세요! 좀 지나갈게요! 비켜요!”

“뭐야 이 새낀!”

“누굴 밀어, 이 멀대같은 새끼가!”

“한 판 해보자는 거냐?”

“날 고용하지 않으면 네놈의 긴 다리를 반 토막으로 만들어주겠다!”

용병들이 살벌하게 욕설을 퍼붓자 한센은 겁에 질려 울상이 되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길을 뚫는 걸 보니 내가 직원 하나는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생 끝에 간신히 용병길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고, 이게 웬 고생이람.

사실 후디니 자작령은 가까운 이웃영지였다. 게다가 이 몸은 무려 정령사이시다! 용병 같은 거 고용 안 해도 별로 문제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안전에는 신중을 기해야 하는 법.

코볼트 같은 잡다한 몬스터라면 모를까, 집단전에 능한 오크 떼를 만날 수도 있고 트롤 같은 대형 몬스터와 맞닥뜨릴 수도 있다. 

만에 하나의 확률일 뿐이라고 방심하다간 그 만에 하나로 골로 간다.

“어서 오십시오. 어떤 의뢰를 맡기러 오셨습니까?”

용병길드의 직원인 중년 사내는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이다. 볼록한 똥배만 봐도 용병업계 관련 종사자로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관리직은 전문 인력을 따로 채용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쿤트 남작가의 삼남이자, 카록 곡물 상회의 단주인 카록 쿤트다. 후디니 자작령까지 우리를 호위해줄 작은 용병단을 찾는다.”

“특별히 지명하고 싶으신 용병단이 있으신지요?”

“딘 용병단을 한 번 만나보고 싶군.”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중년 사내는 어디론가 달려갔다.

어제 한센이 가져다준 리스트에 ‘딘 용병단’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았다. 4인밖에 안 되는 작은 용병단이지만, 모두들 용병경력 7년차에 실력이 뛰어나고 신용이 있다고 쓰여 있었다.

잠시 후, 중년 사내가 네 사람의 용병과 함께 돌아왔다. 네 용병이 딘 용병단이리라.

용병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딘 용병단의 단장 딘입니다. 쿤트 가의 카록 공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법 귀족을 대하는 예절도 아는군.

딘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사내였다. 짧은 금발의 머리와 구릿빛 피부, 굵은 턱 선과 강직한 눈빛을 한 무뚝뚝한 사내였다.

“저는 렉스입니다.”

“마크라고 합니다.”

“한스입니다.”

다른 세 사람도 짧게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딘에게 물었다.

“네 사람 다 용병 경력이 7년차라고 하던데 실력은 자신이 있나?”

“용병 생활을 하기 전에는 혼트 제국군 소속이었습니다. 저는 십인장으로서 10년간 복무했고, 나머지 세 사람은 일반병사로 5년간 복무했습니다. 보직은 넷 다 장창병이었습니다.”

“혼트 제국군?”

나는 꽤 놀랐다.

혼트 제국은 우리 레던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군사 강국이다. 혼트 제국의 군대는 군기와 훈련이 혹독하기로 유명했다. 혼트 제국군 출신이라면 일단 실력은 보증된 셈이었다. 

“그렇다면 실력은 확인해볼 필요도 없겠군. 후디니 자작령까지 왕복으로 경호하는데 얼마를 지불하면 되겠나?”

“30레디나입니다.”

“마차를 타고 갈 것이다. 마차로는 일주일씩 총 14일밖에 안 걸리는 거리다.”

“25레디나입니다.”

딘은 의뢰비를 줄여서 불렀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는 하급 정령사다.”

딘 용병단은 다들 놀란 얼굴이 되었다.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나?”

“……20레디나입니다.”

아마 10레디나만 있어도 저 바깥에 거지 떼처럼 우글대는 용병들 중 여섯 명은 충분히 고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일거리가 없을 땐 용병들의 몸값도 폭락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딘의 태도에는 자신들은 싸구려가 아니라는 자존심이 엿보였다. 

좋아, 왠지 마음에 드는데.

“흥정을 하면 더 깎을 수도 있겠지만, 자네들도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보이니 그걸 깎아내리는 짓은 관두겠다. 20레디나를 지불하지.”

“감사합니다.”

내가 존중을 해주자 딘도 내심 기뻤는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내일 출발할 테니 그때까지 무장을 하고 준비하도록.”

“예, 카록 공자님.”

계약이 체결되자 20레디나를 용병길드 직원에게 주었다. 

의뢰비는 용병들이 떼먹고 달아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용병길드에서 보관하며, 의뢰가 완료되면 수수료 5%를 제외한 남은 대금을 지급하는 시스템이었다.

교통수단은 가문으로부터 쌍두마차를 빌렸다. 마차를 빌리면서 넌 뭐가 이렇게 바라는 게 많으냐고 아서 형님께 핀잔을 듣고 말았다. 

쳇, 어쩔 수 없잖아.

거래상대가 후디니 자작가인데 쿤트 남작가의 삼남인 내가 격식 떨어지게 짐마차나 타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적어도 쌍두마차는 타고 나타나줘야 체면이 사는 것이다.

딘 용병단은 레더 아머와 장창으로 무장한 채 나타났다. 

나와 한센은 마차 안에 타고, 마부석에는 마크와 한스가 탔다. 단장 딘과 렉스는 마차 천장 위에 올라탔다. 

“그냥 안에 같이 타지?”

“아닙니다. 어떻게 의뢰인과 동석을 하겠습니까? 게다가 여기가 사방을 경계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뭐, 편할 대로 해.”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아아.”

이윽고 마부석의 마크가 채찍을 휘둘렀다. 두 필의 말이 마차를 끌고 힘차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후디니 자작령이었다.

딘 용병단은 말수가 적었다. 군기가 빡센 혼트 제국군 출신답게 일하는 중에 잡담은 별로 즐기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저런 부류와 금방 친해지는 법을 안다. 90년 인생은 그냥 산 게 아니거든.

“혼트 제국군 출신이라고?”

마차 위에 있는 딘에게 묻자, 딘이 대답했다.

“예. 14군단 소속이었습니다.”

“혼트 제국군은 정예로 유명하던데 군복무는 어땠는지 궁금하군.”

군인 출신자에게 군대 얘길 물어보면 말문은 금방 트인다.

“우리 14군단의 주요 작전은 몬스터 토벌이었습니다. 오우거와 싸울 땐 정말 위험했지요.”

“맙소사, 오우거?”

“예. 그것도 하필이면 모두 잠든 새벽에 습격을 받아서 하마터면 군단장까지 골로 갈 뻔했습니다. 날도 어두웠고, 군단장도 지휘경력이 일천한 대귀족 출신이라 제대로 대응을 못해서 천여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낳았지요.”

조금씩 딘의 말문이 열리더니, 이윽고 렉스, 마크, 한스도 이야기에 끼어들어 군복무 추억을 꽃피웠다.

“맞아요, 맞아. 그때 저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뵐 뻔했죠.”

“그 병신 군단장의 명령이 대박이었죠.”

“아하하, 나도 알아. ‘어떻게든 해보란 말야!’였지?”

“크하하!”

나와 한센은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딘이 야영할 장소를 물색하더니, 개울가에서 가까운 곳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나와 한센이야 마차 안에서 자면 그만이었지만, 딘 용병단 일행은 밖에서 노숙을 해야 했기 때문에 불을 피우고 잠자리를 마련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휘이잉!

늦가을이라 그런지 바람이 꽤나 쌀쌀했다. 내가 딘에게 물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데 노숙에는 문제가 없겠어?”

“춥기야 하겠습니다만 겨울에도 야영을 해봤으니 걱정 마십시오.”

딘은 강직하게 말했다. 흐음, 그래도 좀 안쓰럽긴 한데. 

아! 노움이 있었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나는 즉시 노움을 소환했다.

-불렀구나?

“응. 우리 노움이 보고 싶었으니까.”

-나도.

노움과 나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저게 정령이군.”

“실제로 본 건 처음이야.”

딘 용병단 일행은 정령을 처음 봐서인지 노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흙으로 집을 지어줄래?”

-집?

“응. 세 사람이 안에서 잘 수 있는 크기에. 바람만 막으면 되니 단단하게 지을 필요는 없어.”

-모양은?

“그건 우리 노움의 솜씨에 맡겨야지.”

-알았어. 재밌겠다.

노움은 흙장난을 하려는 어린아이처럼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윽고 노움이 삽을 들고 열심히 흙을 파기 시작했다. 

삽이 그야말로 질풍처럼 움직였다.

퍽퍽퍽―

기이한 일이었다. 삽을 한 번 푸는데 흙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순식간에 집체만한 크기로 흙산이 쌓였다.

이게 바로 정령의 힘이구나.

한센과 딘 용병단은 물론이고 나 또한 노움이 하는 일에 눈을 떼지 못했다.

-얍!

노움이 귀여운 기합과 함께 삽을 한 번 휘두르자 흙산이 동그란 원 모양으로 반듯하게 깎였다. 계속해서 노움은 삽으로 속 파서 동그란 흙집을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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