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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2화 (2/529)

<-- 2 회: 1권 - 프롤로그. 가문의 삼남 + 1장 되돌아오다 -->

“잔말 말고 어서 준비하세요! 홀로서기의 첫걸음을 하는 날인데 말끔하게 단장하셔야지요.”

“어…… 응…….”

나는 베티 유모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붙잡혀 욕실로 질질 끌려갔다.

씻고, 말리고,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 말끔히 정돈하고, 밝은 아이보리색 계통의 예복을 차려입었다.

“그럼 행운을 빌게요!”

베티 유모는 기운차게 말하며 내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베티 유모와 작별하고, 옷가지가 잔뜩 들어있는 여행용 가방을 들고 가문을 나섰다.

그러면서도 나는 생각 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내가 왜 어린 시절로 되돌아온 거냐고. 누가 설명 좀 해줘!

그렇게 ‘어어’ 하면서 걷는 사이에 저택의 정문에 도착했다.

세상에나.

저택 정문에는 아버지와 맏형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버지 바스크 쿤트 남작.

맏형 아서 쿤트 대공자.

돌아가신지 오래 되어 얼굴도 가물가물하던 아버지와 역시나 나보다 30년이나 일찍 죽었던 아서 형님을 보자 멍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190센티미터는 족히 되는 장신에 기사가문의 수장다운 우람한 체격을 갖고 계셨다. 근엄한 얼굴에 잘 다듬은 턱수염. 강인하지만 자상한 눈동자를 보자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옆에는 아버지와 비슷한 체격에 비슷한 얼굴을 했지만 턱수염이 없고 대신 눈빛이 좀 더 날카로운 아서 형님이 서 있었다.

가문의 중추인 두 사람은 가문에 어떤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직접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나를 배웅해주기 위해서.

그래. 생각난다.

아버지는 엄격한 분이셨는데 서자인 내게도 두 형님과 똑같이 엄격히 가르쳐주셨다. 아서 형님 또한 날 서자라고 차별하지 않고 형제로 대우해주었다.

그런 두 사람을 다시 보자 가슴이 벅차왔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나는 참았다.

어쨌거나 지금은 떠나야 할 시간이다. 감상에 젖어 있는 건 나중으로 미루자.

“아버님, 큰형님, 오늘부터 가문을 떠나 독립하겠습니다.”

먼저 아서 형님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녀석, 벌써 이렇게 컸구나. 가문을 떠나더라도 너는 여전히 쿤트 가문의 핏줄이다. 어려운 일이 있거든 언제든지 찾아와.”

“예, 형님.”

이어서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걸 받아라.”

아버지는 내게 묵직한 돈 자루를 내밀었다.

얼레?

이거 설마?

돈 자루를 쳐다보는 내게 아버지가 말했다.

“1,500레디나다. 독립 밑천으로는 충분할 게다.”

1,500레디나라고?

“너는 기사도 마법사도 성직자도 되지 못하지만 어리석지는 않으니 상인이 된다면 굶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도 똑같잖아?

나의 지난 90년 인생이 꿈이라면, 그 꿈과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은 뭐지? 꿈과 똑같이 1,500레디나를 받았고, 꿈과 똑같은 말을 들은 것이다.

무럭무럭 치미는 의문을 억누른 채 나는 아버지와 아서 형님께 작별을 고하고 가문을 떠났다.

돈 자루와 여행용 가방을 양손에 든 채 덩그러니 거리에 서서 나는 넋을 놓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72년 전의 과거로 돌아온 건가?”

*   *   *

누구나 한 번씩은 상상해봤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옛날로 돌아가 다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말이다.

내가 지금 그 상황이다.

열여덟 살 때로 돌아왔다!

지난 90년 인생은 꿈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72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거야!

이게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

그 길고 험난한 인생을 또 다시 살 생각만 하면 막막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지난 생에서 겪었던 많은 실패와 착오를 고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이건 행운이야. 그렇게 생각하자.

특별해지고 싶었던 어리석은 집착, 욕심 부리다 당한 무수한 실패들, 잘못 만난 아내와 가정교육에 실패한 망나니 아들 등등…….

그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다!

그래, 이게 얼마나 큰 행운이냐.

이번에는 더 예쁘고 착한 마누라를 만날 테다!

아들은 이제 진절머리가 나! 귀여운 딸들만 잔뜩 낳아서 예쁘게 키우겠다!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이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ㅤㄹㅔㅆ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솔솔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이 나를 축복해주는 듯했다.

다 죽어가던 늙은이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생기와 활력이 내 몸과 마음을 밝게 만들었다.

그래, 산다는 건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거다.

“우선은 숙식부터 해결해야겠구나.”

나는 가방과 돈 자루를 짊어지고 걸음을 옮겼다.

회귀 전에 내가 독립하자마자 했던 일은 집을 사고 하녀를 셋이나 고용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실수였다.

집값과 세 하녀의 월급 등 아직 사업을 시작도 안 한 놈이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낭비했다.

“당장 집은 필요 없어.”

나는 근처에 있는 여관을 찾아갔다.

‘맥스의 쉬어가는 집’이라는 이 여관은 맥주와 식사가 맛있어서 회귀 전에도 즐겨 찾던 집이었다.

“어이쿠, 어서 오십시오, 카록 공자님.”

은퇴한 용병 출신인 맥스가 공손히 인사했다. 왼뺨에 난 길쭉한 흉터가 험상궂었지만 외모와 달리 친절한 사람이었다.

“장기 숙박을 하고 싶어.”

나는 맥스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서 가격을 결정했다. 

1개월에 2레디나씩 내기로 했다. 식사는 아침저녁으로, 사흘에 한 번씩 목욕물도 제공받는 조건이었다. 

원래는 3레디나였지만 흥정을 걸어서 깎은 가격이었다. 뭐, 머리 나빠 슬픈 은퇴 용병 어르고 달래기는 땅 짚고 헤엄치기이니까.

“정말 너무하십니다. 2레디나면 저는 뭘 먹고 살라고.”

울상을 짓는 맥스에게 내가 말했다.

“어허, 내가 장기 숙식을 하면 자네에게는 무조건 이익이라니까? 내가 살면서 맥주 한 잔 안 하겠어? 가끔 다른 손님들 데려와 술 한 잔 하면 자네 여관에 이득이 얼마야?”

“술은 무조건 저희 여관에서 마시기입니다.”

“물론이지. 이 집 맥주가 제일 맛있어.”

그렇게 숙식 문제를 해결 보고서 나는 내 객실로 들어갔다.

나무틀에 짚을 엮어 만든 침대와 작은 옷장 하나. 작고 초라하지만 청소는 잘 해놨는지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귀족의 처소로는 어울리지 않지만 아무렴 어떠냐.

여행용 가방에 든 짐을 풀어 놓고 옷가지를 옷장에 넣어두었다.

침대에 걸터앉아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들도 제각각의 인생이 따로 있을 것이다.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어떤 삶을 살든 그 진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인생은 정말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의미란 무엇일까?

이미 한 번 죽음을 겪어봤고,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느껴보았다.

새 삶의 시작은 흥분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막막한 것이었다.

“하하하.”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니 뚫린 것처럼 쓸쓸해졌다.

삶의 의미?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오랫동안 명상을 한 성인이나 그 답을 알겠지.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렇게 숨을 쉬고 있으니 살아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자, 그럼 이제 뭘 한다?”

나는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시간은 많았다. 나는 아직 열여덟 살이니까.

*   *   *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조금 바보 같았다.

일단은 돈을 벌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은가? 90년 평생 해온 게 그 짓인걸.

베이지색 하프 코트를 걸쳐 입고 객실을 나섰다. 그대로 ‘맥스의 쉬어가는 집’에서 나왔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여관 건너편의 레스토랑이 이때쯤에 팔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인이자 주방장인 양반이 요리 솜씨는 좋았는데 너무 불친절하고 다혈질이라 손님들과 자주 싸웠지. 덕분에 손님이 뚝 끊겨서 망했는데, 뭐 자업자득이다.

“역시!”

레스토랑의 문 앞에 건물을 판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레스토랑은 텅텅 비어 있었다. 

“어서 옵쇼.”

레스토랑 주인인 대머리 중년인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반겼다. 마치 왜 왔냐는 듯한 뚱한 어투다. 나 참, 이러니 레스토랑이 텅텅 비었지.

“나는 쿤트 남작가의 삼남 카록이다.”

내 말에 주인장은 흠칫 놀랐다.

“공자님. 여, 여긴 어쩐 일로…….”

저런 거친 성격의 소유자에게는 권위를 보여줘서 기선제압을 하는 편이 협상하기 쉽다.

“밥 먹으러 온 게 당연하잖아. 자신 있는 요리로 내와 봐.”

“예…….”

주인장은 주방에 들어가더니 프라이팬과 여러 가지 도구를 꺼내 덜그럭거리며 요리를 시작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한 치 불필요한 동작 없이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솜씨는 있구나 싶었다. 

“버섯과 양파를 곁들인 안심 스테이크입니다.”

나는 포크와 나이프로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고기가 씹히는 감촉이 적당하고 기분 좋았다. 확실히 요리는 잘 하는군.

“요리 솜씨가 좋군.”

“감사합니다.”

“그런데 손님이 이렇게 없는 걸 보니 위치가 별로 안 좋았나보네?”

“…….”

“내가 이 건물을 인수할 생각이 있는데 팔 마음이 있나?”

“이 건물을 사고 싶다고요?”

주인장은 돈이 궁했는지 반색을 했다. 

얼굴에 ‘나 돈 급함’이라고 쓰여 있는 사람을 구워삶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90레디나는 줘야 살 수 있는 레스토랑 건물을 50레디나까지 후려쳤다.

“좋습니다. 50레디나에 팔죠.”

주인장은 한숨을 쉬며 승복했다.

계약을 채결해 레스토랑 건물을 인수했다. 참고로 테이블과 의자들은 공짜로 받았다.

레스토랑으로 쓰던 건물이라 넓고 쾌적했다. 창문도 많고 커서 햇볕이 잘 들고 통풍도 좋다.

따로 고치고 할 것 없이 그냥 이대로 쓰면 되겠군. 주방도 있으니 요리도 해먹고, 손님이 와도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목수를 불러서 간판만 하나 만들어 문 앞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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