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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223화 (224/224)

223장. 다 필요 없다!(완결)

* * *

전 세계로 송출된 고려 국왕 등극식에서 주몽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건드리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영국이 내각에 정권을 이양하면서 했던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역사책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처럼 주몽이 했던 말 역시 유명세를 떨쳤다.

리벤지 파운데이션이라는 강력한 조직을 휘하에 둔 주몽의 발언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파운데이션 회원국들은 이 말을 흡족한 표정으로 받아들였지만, 주몽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일본은 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열도를 완전히 거덜 내 버리겠다는 협박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각국 정상 및 사절들과의 면담을 마친 주몽은 마지막으로 이명환 대통령과 자리를 가졌다.

“얼굴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국왕 폐하. 저 좀 살려주십시오.”

“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대통령… 그만하면 안 되겠습니까?”

주몽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이명환을 바라봤다.

이명환은 그간 한국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문제를 늘어놓으며 이러다 관에 들어갈 때까지 청와대를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허허. 이거야 원. 대통령직이 그렇게 인기가 없어졌습니까?”

“인기는커녕. 총대 메는 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이러다 제명에 못 죽을 것 같습니다.”

“흠.”

주몽은 난감한 표정이 됐다.

“폐하께서는 연맹의 맹주시지 않습니까. 저 좀 살려주세요.”

“명목상 그렇긴 하지만, 실권을 쥔 고려와 달리 한국은 그냥 보여주기식이지 않습니까.”

연맹이니 뭐니 하면서 남북의 맹주로 추대가 되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치적 제스처 딱 그 정도였다. 국가 체제도 다르고 운영 방식도 다르고 헌법도 다르니 주몽이 함부로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주님! 쫌!”

이명환 대통령은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언성을 높였다.

“국회 그것들. 알고 보면 다 가주님 손발 아닙니까요. 그냥 한 마디만 해 주세요.”

“한 마디라면 어떤?”

“대통령제는 유명무실하니 내각제로 바꾸는 게 좋지 않겠냐고 그렇게만 해 주시면 됩니다.”

“대통령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주몽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덧붙였다.

“내 말 한마디에 국회가 움직인다면 거수기와 다를 게 뭐겠습니까.”

‘이미 거수기잖아요!’

“한국은 엄연히 독립국이고 또 고려와는 다른 법체계를 가진 나라입니다. 자구적으로 변화를 꾀하지 않는 이상 어렵습니다. 자칫 내정간섭이라는 말이라도 나오는 날엔, 지금보다 사태가 더 악화될 겁니다.”

“그러니까. 자생적으로 변화를 한다면 문제가 없다는 말씀이시죠?”

“그것까지 내가 뭐라 할 건 아니겠죠.”

주몽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명환은 결의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다시 뵙겠습니다.”

“국정 운영에 바쁠 텐데, 청와대를 그렇게 자주 비워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뚝딱 한 시간 거립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명환 대통령이 돌아가자, 제이코가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대통령이 속이 바짝 타들어 가는 모양입니다. 틈틈이 작위 이야기를 해가며 임기 이후에 대한 플랜을 늘어놓았는데 말입니다.”

왕정제 국가가 된 고려는 귀족제도 부활이 됐다. 물론 과거의 그것처럼 신분상의 격차를 두고 노예를 부리던 그런 귀족은 당연히 아니다. 영국이나 유럽 몇 개 나라가 그렇듯 국가 명예직 수준이었다.

초창기부터 주몽과 함께했던 제이코는 고려 귀족 명부 첫 줄에 이름이 올랐고, 수여된 작위는 후작이다.

주몽의 가신으로 오랫동안 함께 했던 이들과 혁명군으로 주몽 휘하에 들었던 북한 인사들이 작위를 수여 받았는데, 제이코는 그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귀족이 됐다.

계승되지 않는 단승 작위이고 품위 유지비 명목으로 매년 지원되는 금액과 주거 제한이 없다는 점 말고는 딱히 챙겨주는 것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족 작위를 수여 받는다는 것은 모두가 선망하는 일이다.

이명환 대통령은 그간 주몽을 도와 해 온 일들이 적지 않으니 내심 ‘백작’위 정도는 수여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고 했다.

“아쉽군요. 외국인에겐 작위 수여가 되지 않는 걸 몰랐나 봅니다.”

“그럴 리가요. 은퇴할 날만 기다리던 사람인데. 퇴임하면 가족들과 함께 고려로 이주하려고 했습니다.”

“이민법 때문에 이젠 그것도 안 될 텐데요.”

“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볼멘소리를 한 참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폐하의 가신인데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간 해 온 일이 있는데 마냥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일이니. 예외 조항을 한 번 만들어보죠.”

“네. 폐하. 그나저나, 만에 하나 남쪽에서도 고려와 같은 체제로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설마요. 절대 안 될 겁니다.”

주몽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고개를 흔들어버렸다. 그리고 주몽의 예견대로 한국은 대통령제가 쭉 이어지는 본래 형태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명환 대통령이 노환으로 사망하거나 지쳐서 쓰러져서 더는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될 때쯤이 되면 그때야 다시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폐하. 박산호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상왕부에서 급히 찾으십니다.”

“상왕부에서요?”

상왕부는 주몽의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머무는 곳이다. 그곳에서 자신을 급히 찾는다는 것은 뭔가 변고가 발생했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어서 갑시다.”

“네. 폐하.”

상왕부에 발을 들이던 주몽은 움찔 걸음을 멈춰 세웠다.

“폐하?”

박산호가 왜 그러냐는 듯 주몽을 바라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드는군요.”

“네?”

처음엔 할아버지나 부모님 건강에 문제가 생겼나 싶었다. 그런데 그런 문제였다면 상왕부가 아니라 왕실의료원에서 연락이 왔을 것이다.

“공기가 좀. 스산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박산호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들어가 봐야지 않겠습니까? 어르신들이 찾으셨는데.”

박산호의 말에 주몽이 미간을 찡그렸다.

“어르신들?”

주몽의 반문에 박산호가 움찔한 표정이 됐다. 뭔가 이상하다 싶은 주몽이 발길을 돌리려는데, 박산호가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폐하…….”

“이거 안 놔?”

“이대로 돌아가시면 저 죽습니다.”

박산호와 실랑이하고 있는데, 늙수레한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왔으면 들어오지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게냐?”

“할아버님.”

“어여 들어와.”

올해로 일흔아홉이 된 주몽의 할아버지. 고조다 옹께서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주몽을 노려봤다.

“네…….”

일국의 왕이고 뭐고 할아버지 앞에선 그냥 손주일 뿐이다. 주몽은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왕부에 들어서자,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한천면 동네 어르신들까지 와글와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작위를 받은 왕국 귀족들 역시 주르륵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앉거라.”

“네. 할아버지.”

주몽이 자리를 잡고 앉자, 어머니 정숙자 여사께서 왕부 집사장에게 눈짓했다. 한쪽 문이 열리고 새로운 얼굴들이 주르륵 들어오는데, 모두 여인들이다.

엘리스를 비롯해 Go 컴퍼니 미녀 군단과 주몽의 목숨을 구해줬던 성희주까지, 무려 서른 명 가까운 숫자다.

고조다 옹께서 대표로 입을 열었다.

“주몽아.”

“네. 할아버지.”

“왕 그까짓 거 다 필요 없다.”

“네?”

“고씨 가문의 대를 끊어 놓을 셈인 거냐!”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장가를 안 가?”

고조다 옹은 여인들을 가리키며 언성을 높였다.

“결정해라.”

“지…… 지금 말입니까?”

“그래! 네 녀석 때문에 저 처자들이 노처녀로 늙어 죽을 판이야! 책임지지 않을 거면 놔주기라도 해야 저들도 짝을 찾을 거 아니냐. 언제까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옆에 두기만 할 거야!”

고조다 옹께서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르신 말씀이 맞습니다. 폐하, 일대(一代)로 나라를 접으실 게 아니라면, 후계를 얻어야지 않겠습니까.”

제이코를 비롯한 귀족원 역시 고조다 옹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그때 고조다 옹의 죽마고우 왕건호 옹께서 한 마디 툭 던졌다.

“한 명만 고르기가 어려워서 그런 거라면 다 데리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왕건 대왕께서도 나라를 건국하시고 부인을 여럿 두셨거든.”

왕건호는 스스로 왕건의 후예를 자처하던 것처럼 주몽에게 일부다처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정숙자 여사께서 발끈하고 나섰다.

“어르신. 지금 저보고 고부갈등을 수십 배로 겪으라고 고사 지내세요? 세상이 바뀌어서 며느리 눈치 보고 살아야 한다는데. 저 애들이 전부 며느리가 되면. 아이구야.”

정숙자 여사가 죽는소리를 냈다. 동네 어르신들(할머니들)이 가자미눈을 하고 왕건호를 노려봤다.

“어? 아니.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왕건호 옹은 당황한 눈빛으로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하나든 둘이든 일단 장가부터 보내는 게 좋지 않겠냐는 그런 뜻이었을 뿐이라고. 그때 엄한 표정으로 주몽을 노려보고 있던 고조다 옹께서 찬동을 하고 나섰다.

“내 생각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 아버님.”

“끝까지 들어보고 이야기하거라. 네 의견도 충분히 받아들일 테니.”

“네. 아버님.”

“주몽아.”

“네. 할아버지.”

“장가는 갈 거지?”

“당연히 그래야죠.”

“여기 있는 처자들 말고 따로 감춰둔 여자라도 있는 거면 지금 말을 하고.”

“당연히 없죠.”

“그래. 그럼 누구와 결혼을 할 테냐? 어디 자신 있게 골라봐라.”

“그게…….”

아무리 주몽이 왕이라고 해도 멀쩡한 처녀들을 모아두고 ‘너 마누라 해!’라고 어떻게 이야기한단 말인가. 거기다 지금 이곳에 모인 여인들은 하나 같이 미모에 능력까지 갖춘 인재들이고 또 자신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함께한 동지들이다.

“못하겠지?”

“…….”

“어멈아.”

“네. 아버님.”

“그럼 네가 선택해봐.”

“네? 주몽이 색시를 왜 제가…….”

정숙자는 당황한 눈빛이 됐다. 물론 독한 마음을 먹고 아들놈 장가보내자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처자들 모습에 선뜻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거기다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도 아니다. 다들 어찌나 예쁘게 구는지 정숙자 본인도 이들과 쌓인 정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이 중에 한 명을 선택해서 며느리로 삼고 나머지는 쫓아낸다?

그제야 아들놈이 왜 결정장애에 걸렸는지 이해가 됐다. 누굴 선택하든, 문제임을 깨달은 것이다.

“못 하겄지?”

“…….”

“그럼 이번엔 처자들에게 물어보지.”

“네. 어르신.”

“주몽이 색시 되기 싫은 처자는 뒤쪽으로 빠지게나. 저 멍청한 놈이 직접 나서길 기다렸다간 다들 처녀 귀신으로 늙어 죽을 판이니 이제라도 좋은 짝을 찾아봐야지 않겠나.”

고조다 옹의 말에 다들 궁금한 눈빛으로 처자들을 바라봤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주몽을 포기하거나 정이 떨어져서라도 물러날 사람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한 것이다.

“없는가?”

“네. 어르신.”

“허허. 이거야 원.”

고조다 옹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자신의 며느리 정숙자 여사를 바라봤다.

“어멈아.”

“네. 아버님.”

“고부갈등인가 뭔가 하는 거. 그냥 겪어야 할랑까 싶다.”

고조다 옹이 ‘다 데리고 살어’라고 선언해 버리자, 다들 ‘뭐 이럴 것 같더라니’ 하면서 수긍하는 표정이 됐다. 하지만 당사자인 주몽으로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하…… 할아버지. 무슨 마누라를 서른 명이나 둬요!”

“아, 그럼 한 명만 고르던가!”

“어. 그건…….”

“에이. 뭐 저런 놈이 왕이라고. 그냥 다 데리고 살어!”

주몽이 어버버거리는데, 엘리스를 비롯한 서른 명의 처자들이 고조다 옹과 조선지, 정숙자를 향해 냉큼 큰절을 올려버렸다.

“며느리들이 인사 올립니다.”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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