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217화 (218/224)

217장. 오늘부터 우리는.

― 주군. 하진건입네다. 조만간 남쪽에 특사를 보낼까 합네다.

보스, 대표, 회장님까지는 그럭저럭 익숙해진 주몽이지만, 하진건의 주군이라는 단어는 들을 때마다 몸이 간질거렸다.

안문수에게 그런 간지러운 호칭 말고 평소대로 회장님이란 단어로 통일을 시켜 달라고 했는데, 북쪽 인사들은 꿈쩍도 하질 않았다. 마치 그 호칭에 자신들 목숨이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양보하지 않으니 결국 맘대로 하라며 호칭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한국 정부와 협의할 일이 있습니까?”

― 하하. 그간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살아왔지 않습네까. 이번 기회에 그런 부분도 정리하고…… 무엇보다 주군에게 전해 드릴 내용이 있습네다.

“이렇게 통화로 하면 될 일을 굳이 특사까지 만들어 보낼 일이 있습니까? 지금은 중국에 집중할 때 같은데.”

― 사실 그 때문이기도 합네다. 중국과의 협상을 마무리 지으려면 주군의 힘이 필요해서 말입네다. 총화단결로 버팅기고 있습네다만, 주군도 아시지 않습네까. 중국이 쉽사리 물러나지 않을 것을 말입네다. 솔직히 말해서리, 중국은 공화국 핵보다 주군의 한마디를 더 무서워하고 있습네다.

“뭘, 그렇게까지.”

― 아닙네다. 비록 북에 살고 있지만, 주군의 소식은 빠짐없이 챙겨 듣고 있습네다. 세계적 응징 조직의 수장이 주군 아니십네까.

하진건이 리벤지 파운데이션을 응징 조직으로 지칭해서 말하니 기분이 묘하다.

“일단 알겠습니다. 특사가 오면 직접 들어보도록 하죠.”

― 감사합네다. 주군!

* * *

“1시간 전에 판문점을 넘었다고 하니, 곧 청와대에 도착할 것입니다.”

하진건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던 주몽은 청와대 비서실장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건 그렇다 치죠. 서해 상황은 어떻습니까?”

주몽이 전황을 묻자, 해군 사령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장님께서 지원해 주신 항공모함에 힘입어 서해 영역은 우리 한국군이 모두 장악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항공모함 승무원들이 거의 미국인들이라 중국에서도 함부로 공격에 나서질 못하고 있습니다.”

중고 항공모함이라지만, 이걸 직접 운용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제대로 사용하려면 최소 2년 정도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단순히 운항만 하는 게 아니라, 유지, 보수와 관련된 사항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하얼빈과 지린, 장춘까지 진출을 했습니다. 현재는 푸순에 전선을 형성하고 중국과 으르렁거리는 중입니다.”

북한은 핵 버튼 전략을 아주 제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지상군 싸움은 얼마든지 받아주지만, 미사일 공격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를 날렸다.

중국에서 미사일이 날아오르는 순간, 그걸 핵 공격으로 간주하고 가차 없이 핵을 사용하겠다고 하니 중국으로선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항공전력이 전무하다시피한 북한은 중국에서 전투기나 폭격기를 띄우는 순간 그 역시 핵 투하로 간주하고 핵 버튼을 누르겠다고 했다.

다른 나라가 그런 소리를 했다면 어디 할 테면 해 보라며 미사일을 날려버렸겠지만, 문제는 상대가 북한이라는 것이다.

벼랑 끝에서 배 째 버리는 북한의 ‘핵 공멸 작전’은 중국을 외통수로 몰아넣었다.

[미사일 & 항공전 = 핵 발사 = 공멸]이라는 황당한 공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땅도 코딱지만 하고 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지만, 자존심 하나는 우주 제일에 미친 짓도 서슴지 않는 그야말로 악만 남은 놈들이 바로 북한이었다.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도 욕지거리를 주고받으며 얼마든지 맞짱을 뜨겠다던 놈들 아닌가 말이다. 말만 그럴싸한 게 아니라, 두말하지 않고 행동에 옮겨 버릴 수 있다는 점이 북한의 무서운 점이다.

결국, 북경은 핵 선제 타격은 고사하고 북쪽에서 먼저 핵을 날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상태가 됐고, 덕분에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20세기 말에 종적을 감춘, 오리지널 재래식 전쟁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또 웃긴 게, 북한군 전력이 거의 다 '특수부대'라는 것이다. 유격전은 물론이고 침투, 폭파에 저격까지 악! 소리가 날 정도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북경에 침투한 북한 특수전단은 쉼 없이 사고를 일으켰고 덕분에 북경 치안 상태는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북경도 이에 맞불 작전을 펼쳤지만, 북한 사회는 엄한 놈들이 총 들고 돌아다닐 정도로 만만한 동네가 아니었다. 막말로 동네 아줌마조차 '군' 경력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국가 총동원령이 내려진 북한은 그야말로 철옹성에 비견될 정도였다. 평소에도 서로를 감시하는 체제가 지독하리만큼 운영되는 북한이었기에 외부인의 등장은 곧바로 신고 또는 자체 격퇴로 이어진 것이다. 세계 제일의 폐쇄 국가답다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중국 침투조는 북한에 들어가는 족족 시체가 됐고 북한은 당연히 이 사실을 널리 알렸다. 성과를 기대하며 특수조를 밀어 넣었던 북경은 연이어 망신만 당한 꼴이 됐다.

전쟁을 지켜보고 있던 미국조차 북한의 게릴라 능력에 '헉'소리를 내뱉을 정도다.

평소 정밀 외과 수술이니 뭐니 하면서 얼마든지 북한을 조져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초토화 괴멸 작전을 펼치지 않는 이상 저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평가가 내려진 것이다.

저들 중 일개 중대라도 본토에 숨어드는 날엔 텔레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극심한 피해가 예상된 것이다.

펜타곤은 북한의 특수 전력을 다음과 같이 상향 조정했다.

[텔레반급 미치광이 + 특수전 능력 + 게릴라 특화 + 공멸작전 전문가 = 북한군 특수전단]

덕분에 인터넷에선 북한의 공멸 전략을 두고 ‘핵동살(핵으로 동반 자살)’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신무기는 물론이고 항공전까지 무효로 만들어버린 북한의 전략은 핵보유국 전쟁 전략에 수정을 가하게 만들 정도였다.

중국의 문제는 핵만이 아니었다. 압록강 인근에서 심양군구가 8할 이상 무너지는 바람에 간도는 물론이고 만주 일대의 방어 능력을 상실해 버렸고 북한의 전격적인 점령전을 막아낼 수 없게 된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다른 군구가 이동을 해서 북한군을 상대할 텐데, 각 군구 사령관이 기회를 틈타 군벌 국가로 독립을 해 버리면서 북경은 고립무원이 됐다. 경제 압박이 절정에 달하자,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해 버린 것이다.

주몽은 결별을 선언한 군구에 대해 리벤지 파운데이션의 압박 강세를 곧바로 낮춰줬다.

덕분에 댐이 터져버린 것처럼 미친 듯이 쓸려나가던 경제 상황이 잠시 안정이 됐다.

실질적으로 경제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리벤지 파운데이션의 공격이 줄어들자 시장 기대심리가 올라간 것이다.

한숨 돌린 군벌들에게 주몽은 경고 메시지를 아낌없이 날렸다.

‘이대로 꾸준히 협조를 한다면 경제 복구 지원까지 이어지겠지만, 혹시라도 딴 맘을 품거나 북경 지원에 나서려 든다면 언제든 다시 압박을 재개하겠다.’

메시지를 받아든 군벌들은 재빨리 답신을 보냈다.

‘네!’

경제 공격을 먼저 시작한 것도 중국이었고, 북한에 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중국, 국경을 넘어 군대를 밀어 넣은 것도 중국이 먼저였다.

벌어진 일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명분에서 밀리는데, 북한은 사생결단 핵 공멸까지 내세우며 핏대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머저리 같은 짓을 연이어 반복한 북경과 동반 몰락의 길을 간다? 혹, 그런 선택을 하고 싶어도 그 밑에 있는 권력 서열들이 그걸 두고 볼 리가 없다. 얼씨구나 하고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하고 주몽에게 더욱 바짝 붙어버릴 것이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주몽의 경고에 ‘아니오’를 선택할 바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독립을 선언한 군벌들의 당면 목표는 쒀분림이 그랬던 것처럼 주몽을 만나 독립을 인정받고 파운데이션 임시 회원국이 되는 것이다.

“우리 쪽 지원은 잘 전달되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북에서 요청한 기름과 전투식량을 최우선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엔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연합군 이야기는 마무리가 됐지만, 실질적으로 군사력을 투사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대중국 압박용으로 보입니다.”

“뭐 그거라도 어딥니까.”

주몽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북한 특사단이 광화문을 지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특사단부터 만나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네. 회장님.”

북한 특사단 방문은 실시간으로 전국에 방송이 되는 중이다. 모두 하나같이 ‘통일’을 떠올리며 잔뜩 기대에 부푼 상황이라고 할까. 특사단 차량이 광화문 인근을 지나치자, 환영 팻말을 든 국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일본을 넘어트리고 남방 영토를 확장한 한국이다. 거기다 해양 자원까지 확보한 상태. 이것만으로도 연일 축제를 열 판인데, 혁명을 일으킨 북한 신군부가 핵탄두를 끌어안고 중국과 박치기를 해 버렸다.

압록을 넘어 남침에 나섰던 심양군구가 순식간에 날아가고 북진이 이어지면서 고토 수복이 이어졌다.

남방 영토를 넓힌 한국과 북방 영토를 넓힌 북한이 하나로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강력한 국가로 재탄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청와대에 도착한 북한 특사단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기자회견을 요청했다.

“네? 도착하자마자 기자회견이라뇨?”

청와대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됐다.

“남측과의 회담은 우리 쪽 발표가 선행된 다음에 이뤄질 것이오.”

북측 특사는 특유의 딱딱함을 자랑하며 ‘기자회견 먼저 시켜줘!’를 반복했다.

“여긴 북한이 아니라 한국입니다. 우리 정부가 내용도 모르는 발표를 받아들일 거로 생각합니까?”

청와대는 곧바로 기 싸움에 나섰다.

“기럼 별수 없군. 기자회견을 할 곳이 청와대만 있는 건 아니니까네.”

북한 특사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도 돌아가 버렸다.

“뭐 이런…….”

“대통령님. 어떻게 합니까?”

비서실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명환을 바라봤다.

“어쩌기는 뭘 어째. 이대로 돌려보낼 거야?”

“그럼 기자회견부터…….”

“끙. 그래. 원하는 대로 해줘. 어차피 여기 아니어도 밖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하잖아. 막을 수 없다면 관리가 가능한 공간에서 일을 진행하는 게 낫겠지. 어떻게 된 게 북쪽은 변한 게 하나도 없냐.”

어찌 보면 과거보다 더 기세등등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상국 행세를 하던 중국을 말 그대로 박살 내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북한의 저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잘 알고 있는 이명환은 ‘우리도 핵을 만들어야 하는 건가’라며 중얼거릴 정도였다.

“회장님께 부탁을 드려 볼까요? 저들도 회장님이 나서면 저렇게 뻣뻣이 행동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이명환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 못 하고 회장님께 손을 내밀면 되겠나?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정부가 처리해야지. 그래도 상황은 알려드리게. 바쁘신 분인데 계속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

영빈관에서 특사단을 기다리고 있던 주몽도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슨 발표를 하려고 회담 전에 기자회견부터 하겠다는 걸까.

“알았습니다. 어차피 오늘은 시간을 내서 찾아왔으니 걱정하지 말고 일 보세요.”

“네. 회장님.”

“제이코. 뭐 짐작되는 거라도 없습니까?”

“북한의 대외전략은 워낙 기괴망측한 게 많아서 말입니다.”

제이코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 나름 짐작하는 부분이 있는 게 분명했다.

청와대 스태프가 한쪽에 마련된 TV를 틀자, 청와대 브리핑실이 보였다.

청와대 대변인이 먼저 나와서, 특사단 방문과 기자회견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기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질문을 퍼부었지만, 정작 일을 진행하고 있는 청와대도 내용을 모르긴 마찬가지다.

청와대 대변인이 자리를 비키고 북한의 특사단 대표가 단상이 올랐다.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빛을 토해냈고, 브리핑실 상황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송출됐다. 전쟁 당사국 특사가 중대 발표를 한다고 하니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80년 가까이 이어져 왔던 남북대치를 끝내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이 발표되자, 대한민국은 환호성을 질렀다. 잘만하면 이대로 통일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이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뒤이어 흘러나온 특사의 발언은 예측을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하여,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오늘을 기점으로 국가 기조와 국명을 다음과 같이 바꿀 것이다.”

기조와 국명을 바꾼다고? 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은 물론이고 방송을 보고 있던 한국인들과 세계인들까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전쟁이 한창인데 국가 기조와 국명을 바꾸겠다니. 이 무슨 엉뚱한 짓이란 말인가. 여기저기서 ‘역시 북한’, ‘저러니 북한이지’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새로운 국명은 ‘고려’다.”

조선이 됐던, 한국이 됐던. 남북 모두 외부에선 Korea다. 그래서 북쪽을 부를 땐 노우스 코리아. 남쪽을 부를 땐 사우스 코리아라는 표기를 사용해 왔다. 그런데 북한이 그런 전래를 깨고 아예 나라 이름을 코리아로 확정해 버린 것이다.

“새로운 나라 고려는 사회주의 또는 민주주의 체제를 따르지 않는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사회주의, 민주주의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겠다고? 그럼 뭘 어떻게 할 건데? 21세기에 왕정국가라도 만들겠다는 소리냐?

다들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특사는 정중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새로운 나라 고려의 국가 체제에 대해 발표를 했다.

“우리 고려 신민들은!”

신민? 잠깐. 인민도 아니고 국민도 아니고 신민?

“민족의 영웅이신 고주몽 회장님을 고려국의 초대국왕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부디 삼천만 고려 신민의 바람을 받아주시옵소서!”

기자들은 물론이고 방송을 보고 있던 국민들 한동안 ‘멍’한 표정이 됐다.

그러니까 지금, 북한을 왕조국가로 되돌리고 그 지도자로 고주몽 회장을 모셔가겠다는 말인가?

“안돼!”

방송을 보고 있던 국민들은 물론이고 청와대 역시 발칵 뒤집혔다. 대한민국이 목에 힘주고 어깨에 뽕이 들어간 이유가 무엇이던가. 이게 다 고주몽 회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고주몽 회장을 북으로 모셔가겠다고?

“특사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까, 당장 삼팔선 너머로 돌아가라고 해! 이것들이 어디서 개수작이야!”

이명환 대통령은 집무실이 떠내려갈 정도로 악다구니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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