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장. 불벼락
― 말했지 않습니까. 남쪽이 아니라 북쪽으로 올라갈 거라고.
“하…… 하지만. 북쪽의 위험이 사라졌는데 굳이…….”
― 이미 북진은 시작됐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구경만? 아니면 남북이 힘을 합쳐서 고토를 수복하겠습니까.
주몽의 질문에 합참의장을 비롯해 삼군 사령관, 군부 장성들이 이명환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 성공 가능성이 있기는 한 겁니까?”
― 북한의 쿠데타를 막아내고 혁명을 일으키는 건 성공 가능성이 있던 일입니까?
“그건 그렇지만…….”
― 말씀드렸다시피. 북진은 시작됐습니다. 한국이 참여하든 하지 않든.
합참의장이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이건 기회입니다.”
“기회요?”
“통일 아닙니까! 남북통일!”
합참의장의 외침에 이명환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통일.”
“네!”
“맞습니다. 이건 하늘이…… 아니, 고주몽 회장님이 내려주신 기회입니다. 북쪽으로 밀고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이걸 멍하니 지켜만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명환 대통령은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회장님. 통일을 염두에 두신 겁니까?”
― 불가능합니다.
“네?”
“회장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불가능하다뇨.”
― 다들 알고 있을 텐데요. 이대로 통일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
“…….”
― 남북이 같이 망하고 싶습니까?
도리도리.
북한의 상황은 누가 봐도 최악이다. 그런데 그런 북한과 통일이 됐다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혼란이 펼쳐질 것이다. 무엇보다 남쪽의 치안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명환 대통령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 지금 필요한 것은 남북 합작이지, 갑작스러운 통일이 아닙니다. 대통령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북으로 밀고 올라간다고 해서 북한군과 같이 힘을 합치거나 중국을 향해 총질할 수 있는가. 솔직히 회의적이다.
― 대중 압박용입니다. 남북은 하나가 되어 중국을 상대할 거라는. 그리고 실질적 무력투사는 북한군이 책임을 질 겁니다.
실질적으로 전쟁을 치르는 게 아니라, 대외적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행동해 달라는 뜻이다. 이명환은 내심 안도하는 표정이 됐다. 하지만, 군 장성들은 받아들이는 의미가 전혀 달랐다. 압박으로 시작하지만, 양측에 충돌이 난다면 결국 중국과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을 지지해놓고 뒤늦게 발을 뺀다면 그건 그것대로 웃기는 일이고, 자칫 북한을 중국에 빼앗기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명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 그래서 말인데, 북쪽에 최우선으로 지원을 해줘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 기름입니다. 북한군이 북진을 시작하고 이틀이면 기름이 떨어진다는군요. 간도까지는 올라갈 수 있지만, 그쯤에서 기동력을 상실한다고 하니 이것부터 해결 좀 부탁드립니다.
북한의 에너지 사정이 엉망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군부 기동력이 이틀이면 끝장난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벙커 내부에 헛웃음이 울려 퍼졌다.
* * *
압록강 이북엔 심양군구가 집단군을 전개하고 진격 준비를 마친 상태다.
친중파 쿠데타가 마무리되고 남침이 개시되는 순간, 그대로 밀고 내려가 평양을 장악할 생각인 것이다.
심양군구 총사령관 양체진은 작전지도를 내려다보며 히죽 웃음을 흘렸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청나라를 계승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네. 사령관님.”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우리 심양군구가 청나라의 정통 후계자임도 알고 있겠군.”
심양군구는 과거 홍타이지가 나라를 일으켰던 만주 일대를 장악한 군구다.
“과거의 재현이 되겠군. 조선에서는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한다던데.”
“삼배구고두례를 시켜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하하하.”
압록강 이북에 설치한 임시 주둔지 사령관실에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지금쯤 연락이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시간을 확인한 참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 * *
북한 군부를 장악하고 있던 늙은이들이 사라지자, 지휘관 나이가 급격하게 낮아졌다. 혁명군 총사령관부터가 사십 대 초반이니 그 밑에 자리 잡은 지휘관들은 그보다 더 낮거나 비슷한 나이로 교체가 된 것이다.
“심양군구에서 연락이 왔습네다.”
“쿠데타 결과가 궁금했나 보군.”
“말씀하신 대로 성공했다고 답을 주었습니다.”
“놈들이 곧 압록강을 넘겠지?”
“기럼 국경침략이 되는 거지요.”
“주군의 말씀대로 되어가는군.”
“김성은을 죽인 의사 아새끼는?”
“잘 잡아놨습니다.”
하진건과 리철선은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음을 흘렸다.
마음 같아선 먼저 압록강을 넘고 싶었지만, 절대 먼저 국경을 넘어선 안 된다는 주몽의 지시에 충실히 따랐다.
주몽은 국제 사회에서 명분이라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는 걸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다들 모였지?”
“네. 사령관님.”
“가지.”
하진건이 호위총국에 들어서자, 공화국 군대를 장악한 새로운 지휘관들이 부동자세를 취했다.
“동무들.”
“네! 사령관님.”
“되놈들이 공화국을 집어삼키고자 압록강을 넘었다.”
빠드드득!
여기저기서 이 가는 소리가 살벌하게 흘러나왔다.
“민족의 영웅이시며, 공화국을 광명으로 이끄실 우리들의 주군! 고주몽 회장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북벌이다! 전군 북진하라!”
“네! 사령관님!”
하진건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휴전선에 배치된 부대까지 모조리 북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상대가 상대니 만큼 전군 총력전이 펼쳐진 것이다.
“공화국의 미사일을 압록강에 쏟아부어! 놈들에게 불벼락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라우!”
“네. 사령관님!”
* * *
“심양군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북한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진핑 주석은 화색이 도는 표정으로 왕수를 바라봤다.
“결과는?”
“성공입니다. 김성은은 죽었고, 친중파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좋아!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낼 수 있겠군!”
“곧 남침이 시작될 겁니다.”
“양체진에게 전해. 벼락처럼 평양을 점령하라고!”
“네. 주석님!”
* * *
“북경에서 전문입니다. 뇌격 작전을 시작하라.”
통신병이 건네준 전문을 확인한 양체진은 집단군 사령관들을 둘러봤다.
“오늘 이후, 더 이상 조선은 없다.”
“네! 사령관님!”
“전군 출정!”
기갑집단군을 선두로 심양군구 집단군 전력이 하나둘, 압록강을 넘기 시작했다.
압록강을 넘어 북한에 들어선 집단군은 각각의 목표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사령관님!”
압록강 이남에 도착한 양체진을 참모가 다급하게 찾았다.
“뭔가?”
“조선이……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참모는 북한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는 태블릿을 내밀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늙은 여자가 방송에 나와 특유의 말투로 선전포고문을 읽고 있었다.
―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은 고한다! 공화국 내부에 간첩을 보내 쿠데타를 일으키고! 공화국 위엄이신 위원장 동무를 암살한 중국에 피의 복수를 천명한다! 타국 군대가 공화국의 허락도 받지 않고 압록강을 넘었다! 선전포고도 없이 공화국 땅을 침범한 악적들이여! 공화국이 내리는 불벼락을 맞으리라!
“이…… 이게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쿠데타는 성공했다지 않았나!”
“저도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그때 또 다른 참모 한 명이 사색이 된 채 달려왔다.
“당장 물러나야 합니다!”
“무슨 소리야! 어차피 이렇게 된 것, 확실히 밀고 내려가야지!”
“그게 아닙니다. 조선에서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뭐?”
평소에도 간덩이 부은 짓을 서슴지 않는 조선이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대뜸 미사일부터 쐈다고? 양체진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참모는 미친놈처럼 악다구니를 썼다.
“레이더 부대의 보고에 의하면 최소 삼천 발입니다!”
“!”
“본토로 날아든 미사일이 아니기 때문에, 요격할 방법도 대응할 방법도 없습니다. 당장…… 헉!”
후퇴를 종용하던 참모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양체진은 물론이고 압록강을 건너 진군 중이던 심양군구 집단군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미…… 미친!”
“안돼!”
“저게 뭐야?”
한눈에 봐도 수백이 넘는 불꽃이 자신들 있는 쪽으로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퇴! 후퇴 명령을…….”
쒜에에에에에액! 쿵! 콰콰콰꽝!
양체진이 명령을 끝맺기도 전에 마하의 속도로 날아든 미사일이 지상에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압록강 이남에서 시작된 불꽃은 도하 중인 집단군을 집어삼키고 북쪽에 대기 중인 집단군까지 집어 삼켜버렸다.
북한은 심양군구를 완전히 말살시켜버리겠다는 듯 끊임없이 미사일을 쏟아냈고, 그 중엔 잔인함 때문에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대량살상용 집속탄까지 포함이 됐다.
핵 만들지 말라고 해도 꿋꿋하게 만들어낸 북한이니 대량살상 집속탄 정도는 애교에 속했다.
평소처럼 북방 곳곳에 집단군 체제로 흩어져 있었다면 큰 효과를 보지 못했겠지만, 조선 점령을 염두에 두고 심양군구 전체가 압록강 인근에 모여든 상태다.
그 때문에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괴멸에 가까운 상황이 됐다.
이 한 번의 공격으로 공화국이 보유하고 있던 미사일 전력의 절반이 순식간에 날아갔지만, 덕분에 북방으로 밀고 올라가는 혁명군은 거칠 게 없었다.
* * *
“미…… 미사일이 발사됐습니다! 최소 천…… 아니 삼천 기가 넘는다고 합니다.”
북한의 남침 계획을 알고 있는 백악관이었기에 평소보다 더 촘촘하게 동원할 수 있는 위성은 모조리 동원해 한반도를 지켜보는 중이다. 당연히 미사일은 발사 즉시 곧바로 확인됐다.
“젠장! 기어이!”
존 오루크가 신경질적으로 집무실 책상을 내리쳤다. 그런데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보고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무슨 소린가?”
“그게…… 미사일이…… 북쪽으로 날아갑니다.”
“뭐? 아니 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고자를 바라보는데,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달려들어 온 사람은 CIA 동북아 정보 담당자다.
“대통령님! 북한이 중국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뭐어어어?”
“방금 북한 방송에 나온 내용입니다. 중국이 북한에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심양군구가 압록강을 넘었다고 합니다.”
존 오루크는 물론이고 백악관 참모들은 멍한 표정이 됐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잠깐! 지금 중국이 북한을 침공했다는 말인가?”
“네! 위성 판독결과 북한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무엇보다 김성은의 죽음이 중국의 사주였다는 내용이 반복해 나오고 있습니다.”
한동안 눈만 껌뻑이고 있던 존 오루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 회장…… 고 회장에게 연락을 넣어! 지금 당장!”
“네. 대통령님!”
“연락이 안 됩니다.”
“이런 젠장!”
존 오루크가 머리를 쥐어뜯는데, 주몽의 특사 알렉스가 얼굴을 내밀었다.
“알렉스! 지금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알렉스는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들고 온 문서를 눈앞에 내밀었다.
“이건…….”
“네. 미국과 대통령님이 회장님께 약속한 문서입니다.”
알렉스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반나절 전에 자신이 직접 사인까지 한 문서니 말이다.
“중국은 북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으로도 모자라, 선전포고도 없이 타국을 침략했습니다.”
“…….”
“경제 전쟁에서 궁지에 몰린 중국이 3차 대전을 일으키려 한 겁니다.”
알렉스는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북한에서 넘겨받은 녹음파일입니다. 중국어가 가능한 사람을 불러주십시오.”
“빌리! 중국어 통역!”
“네. 대통령님.”
허겁지겁 끌려오다시피 집무실에 도착한 중국어 통역관은 스마트 폰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을 실시간으로 번역했다.
“왕수 외교부장과 심양군구 총사령관이라고?”
“네. 군 명령권은 대통령님도 아시다시피 진핑 주석에게 있습니다. 왕수는 그저 전달자에 불과하죠.”
알렉스는 녹음파일이 담긴 스마트 폰을 통째로 넘겨줬다.
“한반도 전쟁 또는 3차 대전을 획책하려는 증거가 나온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약속. 지금 실행에 옮기실 시간입니다.”
“미치겠군. 고 회장은 도대체 어디까지…….”
설계했냐는 질문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존은 가까스로 질문을 내리눌렀다. 듣는 귀가 많은 곳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소리를 꺼낼 뻔했다.
알렉스는 가까이 다가가더니 존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주몽의 제안을 이야기했다.
“리벤지 파운데이션. 이사 자리를 약속하셨습니다. 기간제 회원이 아니라 정회원 그것도 지분을 가진 회원이 되실 겁니다.”
존 오루크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알렉스를 바라봤다.
“리벤지 파운데이션은 유명무실한 유엔이 아닙니다.”
“알고 있네. 리벤지 파운데이션은…… 새로운 질서지.”
존의 말에 알렉스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기자들 불러! 중국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전 세계에 알리겠다!”
“네. 대통령님!”
“국방부 장관.”
“네!”
“미국은 세계 평화의 수호잡니다.”
“물론입니다.”
“한국은 우리의 혈맹이기도 하죠.”
대통령 입에서 혈맹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국방부 장관은 눈치 빠르게 맞장구를 쳤다.
“피를 나눈 형제국가입니다!”
“네 맞습니다. 지금 당장 움직이세요!”
“네! 대통령님.”
국방부 장관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 중이던 펜타곤 장성들을 만나기 위해 옆방으로 달려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