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장. 혁명을 완수 중이지 않소.
“흡흡흡.”
김성은의 거친 숨소리에 주치의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됐다.
“비서 동무. 위원장 동무를 병원으로 모셔야 할 것 같소.”
“지금 말입네까?”
“혈압도 높으시오. 그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요?”
주치의는 이래선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후웁. 훕훕. 많이 안 좋네?”
숨을 몰아쉬던 김성은이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서쪽에서 들어온 미세 먼지가 위원장 동무를 자극하는 것 같습네다. 산소 청정실로 가셔서 건강을 살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네다.”
중국에서 밀려온 미세 먼지 때문에 건강이 더 악화됐다는 말에 김성은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흐흡. 훕훕. 공화국 맑은 공기가 중국 때문에 엉망이 되었어. 학학.”
“바로 이동하시죠.”
“흡흡. 기래. 가자우.”
김성은의 허락이 떨어졌다.
여성으로 꾸려진 호위 무관에 둘러싸여 병실로 이동한 김성은은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공기를 조절하겠습니다.”
“흡흡. 기래.”
“한숨 푹 주무시고 일어나시면 편안하실겁네다.”
주치의는 속으로 ‘영원히 편안해지는 거지.’라고 중얼거리며 산소 밸브를 최대치로 열었다. 산소 포화도가 증가하자, 잠시 뒤 김성은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적정량의 산소는 머리를 맑게 하지만, 농도가 한계를 넘어서면 의식이 흐릿해질 정도로 몽롱한 상태가 된다.
‘빙두를 섞은 산소니까네. 고통은 없을 기야.’
준비된 산소통은 산소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증기로 만든 빙두 성분이 짙게 베여있었다.
산소중독에 빙두까지. 30분이면, 과다흡입으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갈 것이다.
“잠시 나갔다 오겠습네다. 비서 동무는 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 주시라요.”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느껴도 연락은커녕 몸을 가눌 수도 없게 될 것이다.
“네. 기렇게 하겠습네다.”
주치의는 자신까지 중독 상태가 될 수는 없었기에 곧바로 자리를 피했다.
주치의는 넉넉잡고 한 시간가량 시간을 보내다가, 방독면을 쓰고 병실에 들어갔다.
침대에 누운 김성은은 물론이고 병실에 함께 있던 비서와 호위들까지 모두 숨이 끊어졌다. 입가에 거품을 물고 있었지만, 고통보다는 쾌감에 몸부림치다 죽어갔을 것이다.
“동무들 억울해하지 말라우. 그동안 위원장 동무 옆에서 호의호식했으니까는.”
주치의는 한 사람씩 맥을 짚어가며 사망을 확인했다.
“다 죽었기만 기래.”
주치의는 마약산소 밸브를 잠그고 환기를 시키더니 손전화를 꺼내 곧바로 문자를 날렸다.
* * *
초조한 표정으로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친중파 수장은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무들. 공화국에 새로운 봄이 찾아왔서!”
“축하드립니다. 위원장 동무!”
“하하하. 기래. 기래. 계획대로 진행하라우. 공화국 무력을 접수할 시간이야.”
“네! 위원장 동무!”
공화국 위엄이며 지도자인 김성은 위원장이 공화국 미래를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는 연락이 내려졌다. 당일 5시까지 평양에 집합하라는 명령에 북한 전역에 흩어져 있던 군 지휘관, 고위 당직자들은 정신없이 전당회장으로 몰려들었다.
회의 중에 하품했다고 총살해버리는 김성은이다. 5시라는 시간까지 정해 놓았는데, 그 시간에 늦었다간 또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칼같이 달라오는구먼 기래.”
“김성은이가 나이는 어려도 성질이 지랄 같지 않았습네까. 꼬투리 잡혀서 수용소로 끌려가기 싫어서 저러는 겁네다.”
호위 책임자 리철선 소좌의 말에 친중파 수장은 물론이고 쿠데타 수뇌부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친중파 입장에선 김성은의 평소 신경질적인 태도에 큰 도움을 받은 셈이다. 어찌 보면 공포정치의 폐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좋구만 기래.”
스스로 공화국 위원장 자리에 오를 예정인 친중파 수장은 히죽히죽 웃음을 흘렸다.
“하진건에게 연락 하라우. 싹 쓸어버리고 공화국 무력을 장악하라고.”
“알겠습니다. 위원장 동무.”
리철선은 손전화기를 꺼내 하진건에게 연락을 넣었다.
“리철선입네다.”
― 기래. 어찌 됐어?
“혁명의 방점을 찍으라고 명령을 내리셨습네다.”
― 알갔서. 리 소좌도 임무를 완수하라우.
“물론입네다.”
리철선이 통화를 끝내고 잠시 뒤, 전당회장에서 요란하게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오, 하진건이가 시작을 했구만 기래.”
수뇌부는 주먹까지 불끈 쥐어가며 ‘이제 우리 세상이구만!’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리철선은 한 발 뒤로 물러서더니 경계를 선 병사들에게 눈짓했다.
철컥. 철컥. 철컥!
킬킬대며 공화국 만세를 외치던 친중파 세력은 등 뒤에서 들려온 노리쇠 당기는 소리에 움찔 동작을 멈췄다.
“뭐이네!”
친중파 수장이 리철선을 바로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위원장 동무가 방금 명령을 내리지 않았소.”
“뭐야?”
“혁명을 완수하라고.”
“지금 그게 무슨…….”
“그런 표정 짓지 마시오. 동무들은 새로운 나라의 기운찬 거름이 되는 것이니까네.”
“설마…… 하진건이? 이런 종간나 새끼들이!”
친중파 수장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급히 권총을 꺼내 들었지만, 이미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는 리철선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리철선은 싸늘한 눈빛으로 거침없이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탕!
리철선을 시작으로 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병사들 역시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탕!
수십 자루의 총구가 미친 듯이 총알을 쏟아내자, 자칭 위원장 동무와 그 추종세력은 온몸을 비틀며 핏빛 춤을 줬다.
“으아악!”
“컥!”
“안돼!”
“간나새끼들! 크악!”
서른 발 들이 탄창이 텅 비어 버리는데 걸린 시간은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중국을 등에 업고 공화국을 자신들 입맛대로 움직이려던 반란 세력은 결국 5초 천하로 막을 내린 셈이다.
리철선이 혁명을 환수하고 있을 때쯤, 하진건은 메케한 화약 냄새로 가득한 전당회장을 둘러봤다.
“대장 동무. 끝났습네다.”
“확인 사살까지 마치라우.”
하진건은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냉정하게 확인 사살을 명령했다.
그때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에서 징징거리며 진동이 올라왔다. 리철선이다.
“어떻게 됐어?”
― 혁명을 완수했습네다.
“수고했어.”
― 아닙네다. 공화국을 되놈들에게 팔아먹은 민족의 반역자들 아닙네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네다.
“아직 끝이 아님메. 공화국을 피로 물들게 만든 되놈들에게 복수해야지.”
― 각 군부에 내려가 있는 동지들에게 연락을 넣겠습네다.
“호위총국에서 만나자우.”
― 네. 대장 동무.
하진건의 본래 계급은 대좌지만, 역쿠데타를 준비하면서부터는 너나 할 것 없이 대장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주몽이 북벌군 책임자로 하진건을 지명했기 때문이다.
“김기성이 나야.”
― 어케 됐습네까?
“내래 전화하는 것 보면 모르갔어? 공화국을 좀먹던 벌레들은 남김없이 슬어버렸지.”
― 이쪽도 끝이 났습네다. 공화국 내에서 김 씨 일족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기래. 신(新) 왕조가 들어서는데 폐족 따위가 설치면 안 되는 법이지.”
― 군 장악은 잘 돼 가는 겁네까? 이거 불안해서리.
윗대가리들을 싹 쓸어버렸다고 군부가 바로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걱정할 필요 없서. 대가리들이 평양으로 출발했을 때, 곁다리들은 바로 숙청이 들어갔을 테니까는.”
―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아야 합네다.
“호위총국에서 보지.”
― 네. 대장 동무.
한때 김씨 일파에 속해 있던 김기성이지만, 이젠 새로운 나라의 건국 공신이 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김기성이다.
예전 같으면 서로의 파당 때문에 계급 따위 무시하고 평대를 했던 관계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진건은 공식적으로 이번 혁명군의 적임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권력이 총구에서 나왔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군주의 신임이 권력으로 이어지는 세상이다. 과거에 얽매여 새로운 질서에 순응하지 못한다면 남는 것은 파멸뿐임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이런 사고방식조차도 한 세기 가까이 이어져 온 북한의 통치 방식에서 기인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막말로 북한은 민주주의를 입에 떠먹여 줘도 뱉어내 버릴 정도로 이들만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그간 북한이 요구하던 체제 유지라는 외침은 이 같은 환경적 요인도 크다고 할 것이다.
* * *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테이블 위에 놓인 전화기에서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핏발 선 눈으로 전화기만 노려보고 있던 주몽과 Go 컴퍼니 멤버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움찔 놀라는 표정이 됐다.
“보스. 받아 보시죠.”
고개를 끄덕인 주몽이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네.”
― 회장님. 안문숩네다.
들떠 있는 목소리다. 주몽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 공화국 혁명을 완수했습네다!
주몽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통화를 지켜보고 있던 Go 컴퍼니 멤버들은 소리 없는 환호를 질러댔다.
“군부는?”
― 반역자들과 동조한 세력은 하나도 남김없이 싹 쓸어버렸다고 합네다. 공화국 무력은 혁명군으로 거듭났고, 회장님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네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 아…… 아닙네다. 이 모든 게 회장님께서 지도를 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닙네까. 저는 그저 감개무량해서…….
안문수는 울음 섞인 목소리가 됐다. 애타는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린 것이 주몽뿐 이었겠는가. 북에 가족을 두고 있는 안문수 입장에선 누구보다 간절히 혁명 소식을 기다렸을 것이다.
“북진! 시작하세요.”
― 네. 회장님!
안문수는 고막이 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대답을 했다.
“보스!”
“대표님!”
“회장님!”
각각 다른 호칭이지만, 그 호칭 모두가 주몽을 부르는 목소리다.
“혁명이 성공했습니다. 오키나와에 있는 항공모함 서해로 이동시킵니다.”
미국에서 받아온 중고 항모. 한국에 바로 가져올 수가 없어서 오키나와 미국 기지에 임시 정박을 시켜놓았다. 이젠 더 이상 눈치 볼 필요도 없으니 본격적으로 데뷔를 시키려는 것이다.
“네!”
“박 부장은 진 대인에게 연락 넣으세요. 서해로 항모를 밀어 올리려면 쒀분림 총통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지금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제이코. 지부장들에게 전하세요. 중국을 전범국으로 만들 시간입니다.”
“네. 보스!”
“양 과장님은 청와대 연결하세요!”
“네. 회장님!”
안문수의 전화를 기다릴 때는 피곤에 찌든 눈빛들이었지만, 친중파 쿠데타를 물리치고 혁명군이 완성됐다는 말이 전해지자, 너나 할 없이 활력이 넘쳤다.
“청와대 연결됐습니다.”
* * *
피가 마른다는 느낌이 어떤 거냐고 묻는다면,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거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발 좀 떨지 마!”
이명환 대통령은 비서실장 서길우를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이해는 되는데, 그렇게 떨고 싶으면 저쪽으로 가서 떨어. 안 그래도 미치겠는데, 정신 사나워서 죽을 것 같다고.”
다리 떨기를 가까스로 멈춘 서길우는 이번엔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재수 없는 소리!”
“아우. 미치겠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라도 알면…….”
“대통령님. 고주몽 회장입니다!”
“연결해!”
이명환 회장은 물론이고 초조한 표정으로 벙커를 서성거리고 있던 이들까지 단숨에 스크린 앞으로 몰려들었다.
“연결됐습니다.”
스크린에 주몽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명환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 역시 표정이 굳어졌다.
다섯 시간 전에 봤던 주몽의 얼굴과 지금 화면에 비친 주몽의 얼굴은 다른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빨갛게 충혈된 눈과 움푹 꺼진 눈두덩. 얼굴에 음영까지 져서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였다.
“회…회장님.”
이명환은 불안한 눈빛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제발. 제발. 성공했다고 말해줘요!’
주몽의 얼굴만 봐선, 파산 선고라도 받은 듯 완전히 망가진 몰골이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고 싶진 않았다.
― 혁명은 성공했습니다.
“네? 아! 우와!”
잠시 멈칫하던 이명환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괴성을 토해냈다.
이명환만 그랬겠는가, 손톱을 비상식량이라도 된 듯 뜯어 먹고 있던 비서실장도 그랬고, 각 조직의 수장들과 합참의장 삼군 사령관들 역시 비명을 쏟아냈다.
“미사일이 날아오지 않는단 말씀이시죠?”
― 물론입니다.
“허으. 살았다. 살았어!”
이명환 대통령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남침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국민에게 알릴 수도 또 피신을 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몽은 이명환의 모습에 미소를 띠더니 재차 말을 이었다.
― 남쪽으로 조준됐던 미사일은 물론이고 북쪽에 배치됐던 미사일까지 모두 심양군구로 날아갈 겁니다.
주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요’하는 표정을 짓던 벙커 내부에 지금까지와 다른 의미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네에에에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