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장. 세계 평화를 지키고 싶어서요.
― 표정이 왜들 그럽니까. 우리 편이 정권을 잡는다니까요.
“그러니까요. 우리가 북으로 올라간다는 말은 새롭게 정권을 잡은 이들과…… 어?”
합참의장은 말을 하다 말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북한이 아니라.”
― 네. 중국입니다. 금일 오후 18시. 북쪽에서 친중파와 김씨 일파의 대대적인 숙청이 일어날 겁니다.
“전시작전권을 회수한 이유가…….”
―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무릎 꿇리고 싶어 하지만, 중국과 전쟁을 치를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말인즉 전시작전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다면, 내가 세운 계획은 시작부터 태클이 걸리겠죠.
주몽이 세운 계획이 어디서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다면 중국과의 전쟁은 불가능할 것이다.
미국도 중국도 직접 총부리를 겨누는 것보단, 한국과 북한을 앞세워 한반도 내에서 불장난을 끝내고 싶을 테니까 말이다.
― 쉽게 말씀드리죠. 김성은 암살과 군부 장악까지는 시나리오가 같습니다. 대신 남침이 아니라 간도 수복전이 펼쳐질 겁니다.
주몽의 발언에 다시 한번 벙커 내부가 얼어붙었다. 느닷없이 간도 수복전이라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중국과 전쟁이라뇨. 이건…….”
― 내가 보내드린 자료에서 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미국에 넘겨준 자료에도 이 부분은 빠져있죠.
“북한의 쿠데타, 남침계획서 말입니까?”
― 네.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주몽은 김성은 암살 작전부터 남침계획까지 이 모든 걸 중국이 주도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 중국어 하시는 분이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들어보세요. 파일 보냈습니다.
국정원장이 빨리 재생해 보라며 손짓을 했고, 잠시 뒤. 친중파 정치국 위원, 왕수 부장과 심양군구 사령관이 나눈 대화가 벙커 내부에 울려 퍼졌다.
대화 내용의 해석본을 받아든 회의 참석자들은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자료는 어떻게…….”
국정원장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설마, 북한 내부 핵심에 첩자라도 박아 놓았단 말인가?
북한의 쿠데타 시도는 당일 결정이 됐고, 곧바로 시행 중이다. 그런데 주몽은 이런 핵심 증거를 거의 실시간으로 확보하고 있었다.
― 증거의 신빙성은 의심할 필요 없습니다. 똑같은 자료가 북한에도 보관되어 있으니까요. 중국은 내정간섭을 넘어 타국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그들을 앞세워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습니다. 이게 국제 사회에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세계의 적이 되겠군요.”
― 네. 중국이 벌인 짓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3차 대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그러니 다들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간도 수복에 대한 명분은 이미 우리에게 있습니다. 중국은 절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국정원장은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 다들 깜빡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어디 보자, 대략 5시간 정도 지나고 나면 우리도 핵보유국입니다.
“해…… 핵?”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그 핵 말입니까?”
― 네. 보시면 알겠지만, 간도 수복전은 핵 협박 전으로 시작합니다. 북쪽이 다른 건 몰라도 벼랑 끝 전술은 끝내주잖아요. 그러니 다들 걱정 붙들어 매시고 뒤를 잘 받쳐주세요.
* * *
“그게 무슨 소린가!”
존 오루크의 외침이 백악관 내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한국이 전시작전권 회수를 선택하다니!”
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전시작전권을 앞세운 것은 한국의 결정을 압박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정반대의 결과가 날아든 것이다.
“한국이 미친 것 같습니다.”
“선제 타격을 마다하다니.”
주몽이 넘겨준 북한의 쿠데타 정보는 백악관을 발칵 뒤집어놨다.
중국과 경제 전쟁을 치르는 중에 한반도에 전쟁이 터진다면 지금까지 들인 공이 단숨에 날아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긴급안보회의를 소집한 존 오루크는 선제 타격만이 방법이라는 펜타곤 제안에 따라 그에 맞춰 작전을 수립하고 있었는데, 한국이 제안을 거부해 버린 것이다.
“뭐? 고주몽 회장이?”
한국이 그런 결정을 내리는데, 고주몽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존 오루크는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누구보다 큰 타격을 입을 사람이 고주몽이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정보가 더 있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고주몽 회장이 보내준 정보가 전부입니다.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시간상 김성은 암살은 이미 끝이 났을 겁니다. 성공했던 실패했던 말입니다.”
“쿠데타 실패 가능성은 얼마나 보고 있지?”
“솔직히 말씀드려서…… 90% 이상 성공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치의가 직접 손을 쓴다는 말은 최측근들까지 쿠데타에 가담했다는 뜻입니다.”
존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북한의 초토화 작전이 펼쳐지면 한국은…….”
“다른 곳은 몰라도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겁니다.”
“미치겠군.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도 선제 타격을 마다하다니. 설마, 선전포고니 뭐니 하면서 명분이라도 쌓을 생각인가?”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남침은 오늘 바로 시작됩니다. 명분을 쌓고 말고 할 시간도 없다는 말이죠.”
“하지만, 지금 한국이 보인, 아니 고주몽 회장이 보인 태도는 어딜 봐도 정상이 아니지 않나.”
존의 말에 다들 그 부분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에 하나 한국이 전쟁에 이긴다고 해도. 한국의 경제와 기간 시설은 단숨에 수십 년을 후퇴해 버릴 겁니다.”
“미치겠군.”
“저…….”
“뭔가?”
“고주몽 회장이 로렌스 사령관에게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고되지 않은 내용이 있단 말인가?”
“그게, 한국을 무기 시험장으로 쓸 생각은 하지 말라고.”
“CIA 국장!”
“네. 대통령님.”
“이게 무슨 소리야?”
존은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그게, 꼭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분쟁이 있는 곳에선…….”
꾸준히 반복해 왔던 일이란 뜻이다. 하지만, 그걸 콕 집어서 이야기했다는 건 어디선가 또는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받았다는 뜻이다.
백악관 참모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고주몽 회장 옆에 카네기 국무장관이 가 있습니다.”
“지금 미합중국 국무장관이 정보제공자라고 말하는 건가?”
존 오루크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대통령님. 고주몽 회장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
“대통령님?”
“연결해.”
“네.”
― 회의 중이신가 봅니다.
“한반도 문제가 워낙 위중하지 않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선제 타격을 거부한 거요?”
― 반대로 물어보죠. 5시간 이내에 북한의 핵미사일과 생화학 무기를 모두 제거할 수 있습니까?
“…….”
― 북한은 최악의 상황에 몰리지 않는 이상, 그 두 가지 무기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남과 북이 모두 공멸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선제 타격은 빌미를 줄 뿐입니다.
“하지만…….”
― 남북이 공멸하면 누가 가장 좋아할까요?
“후우…… 중국이겠지.”
― 네. 중국입니다. 거기에 일본도 빠트릴 수 없겠죠. 그뿐입니까? 저와 대통령님은 물론이고 파운데이션 회원국까지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겁니다. 그간 쏟아부은 돈은 물론이고 중국과 외교 관계도 궁지에 몰리겠죠. 모든 게 최악이 될 겁니다.
“나라고 그걸 모르겠소. 하지만, 북한이 남침을 일으키는 순간, 결과는 마찬가지가 될 것이오. 결과가 빤히 보이는데 손 놓고 있으라니.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오?”
― 중국은 미국과 한국의 선제 타격을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겁니다. 동맹국 입장을 들어 곧바로 참전을 선언하고 현재 진행 중인 경제 전쟁을 총칼이 오가는 진짜 전쟁으로 바꾸어버릴 테니까요.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빠진다는 말은, 중국과 러시아도 이 전쟁에 끼어들지 못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건 알고 계시겠죠?
“…….”
― 설마, 3차 대전이라도 일어나길 바라시는 겁니까?
“고 회장!”
― 공멸을 해도 남과 북. 한반도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외부세력이 이 싸움에 끼어드는 순간!
“3차…… 대전.”
― 네. 세계 대전으로 확전이 될 겁니다. 내가 선제 타격을 거부한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주몽의 설명에 백악관 내부는 잠시 침묵에 빠졌다.
“미치겠군. 고 회장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감당할 수 있겠소?”
― 전쟁은 한국이 책임을 지겠습니다. 대신 미국이 도와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말해 보시오.”
― 만에 하나 이번 사건에 다른 세력이 개입한 흔적이 발견된다면…….
“다른 세력이라면?”
― 궁지에 몰린 누군가겠죠.
“중국이 끼어들 수도 있다는 말이군.”
― 끼어들지, 아니면 이미 끼어든 것인지는 알아볼 일이겠죠.
“약속하지. 그런 증거가 발견된다면. 그게 누가 됐든 미국은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오.”
― 감사합니다. 방금 그쪽으로 서류 한 장을 보냈습니다.
“서류?”
― 네. 지금쯤 백악관에 거의 도착을 했겠군요.
“방금 내가 한 말을 문서로 남겨 달라는 그런 의미요?”
― 이번 일로 인해서 한반도가 백 년 전으로 후퇴한다고 해도, 누군가 이 일에 영향을 미쳤다면 책임을 져야지 않겠습니까.
“음…….”
― 부탁드립니다. 나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는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걸 절대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고 회장과 한국 정부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사를 표합니다.”
존 오루크는 주몽의 선택과 결정에 대해 감사 인사를 끝으로 통화를 끝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본 백악관 참모들 모두 한동안 침묵에 휩싸였다. 그저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만 흘러나올 뿐이다.
선제 타격 불가를 외친 이유가, 3차 대전을 막기 위해서였다니. 자신이 죽을지 알면서도 스스로 화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꼴 아닌가 말이다.
세계 평화의 첨병임을 자신하고 있던 미국으로선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다.
“국방부 장관.”
“네. 대통령님.”
“만에 하나, 이번 사건에 중국 또는 러시아가 개입되어 있다면.”
“…….”
“미합중국은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미국은 세계 평화의 수호자다. 문제가 빤히 보이는데, 그걸 모른 척하고 뒷짐만 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한반도를 지켜만 볼 수는 없으니…… 태평양 함대를 일본으로 이동시킵시다. 고 회장 말대로 불길이 밖으로 넘치지 않도록 방어는 해야 할 것 같으니.”
“네. 대통령님. 지금 바로 지시를 전달하겠습니다.”
“자국민 대피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게. 너무 시간이 촉박한지라…….”
“미치겠군.”
“대통령님. 고주몽 회장의 특사가 도착했습니다.”
“특사? 그래 특사라고 불러야 맞겠군. 누군가? 한국 정부 사람인가?”
“알렉스입니다.”
“그 친구. 이젠 미국 사람이 아니라, 고 회장 사람이 다 됐군. 들어오라고 하게.”
* * *
통화를 끝낸 주몽은 후욱! 숨을 내뱉었다.
3차 대전과 세계 평화까지 끼워 팔고서야 겨우 대화가 끝이 났다.
“진실을 알고 나면 살짝 삐지긴 하겠지만.”
“살짝이 아니라, 많이 삐질 것 같습니다만.”
제이코의 말에 주몽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다고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앉게 할 수는 없는 일이죠.”
“뭐,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이번 전쟁에 미국이 끼어들 여지를 없애고, 차후 중국을 압박할 정식 문서까지 손에 들어왔다.
알렉스가 받아낸 문서는 북한의 간도 진공에 있어서 단단한 지렛대가 돼 줄 것이다.
중국의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순간, 미국은 물론이고 UN 회원국들까지 중국에 등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아니라, 중국 할애비가 달려 나온다 해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치를 수는 없는 일이니 중국은 양보에 양보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일만 계획대로 진행이 된다면 지금까지 진행해 왔던 모든 계획이 대단원에 도달하게 된다.
주몽은 깍지낀 손을 이마에 얹더니 지친 표정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Go 컴퍼니 핵심 멤버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일본과 싸움을 시작으로 중국을 거쳐 북한까지. 쉼 없이 달려온 주몽이다. 아무리 젊은 나이라 해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런 표정들입니까?”
“요 며칠 한숨도 못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조마조마합니다.”
“하하하. 그건가요? 하긴 좀 지치긴 합니다.”
“잠깐이라도 눈 좀 붙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길어야 다섯 시간입니다.”
“다섯 시간 뒤엔 또다시 전력 질주를 하셔야지 않습니까.”
북한의 역쿠데타가 성공을 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중국과 맞서 싸워야 한다.
“견뎌 봅시다. 솔직히 쉬고 싶어도 그게 맘대로 안되네요.”
주몽은 테이블 위에 놓인 전화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