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장. 동무, 북경에서 연락 왔시오.
분리독립이니 뭐니 하면서 뒤통수를 쳐 버린 쒀분림은 당연히 응하지 않겠지만, 남은 6개 군구 중 달랑 2개만 소집에 응한 것이다.
“왕수!!!!!”
“네. 주석님.”
“나머지 네 개는?”
“긴급상황을 들어 자리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긴급상황? 그래. 긴급상황이 맞긴 하지. 그런데 그 긴급상황을 군구 사령관이 만든 거잖아!”
“…….”
“다시 연락해! 이번에도 소집에 불응하면 각오해야 할 거다.”
“네. 주석님.”
진핑 주석은 회의에 참석한 2개 군구 사령관과 함께 광저우 수복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두 개 군구가 움직이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광저우 군구는 괴멸, 심양군구와 베이징 군구도 큰 손실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 광저우 군구는 다른 군구와 달리 해군력이 월등해서 바다로 나가버리면 속수무책입니다. 항공모함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니 그렇다. 주변국에서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만들어 놓은 항모전단이 쒀분림 뱃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 것이다.
“끙.”
진핑 주석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제압이 가능하다면서도 피해 운운하는 것이 딱 봐도 ‘싸우고 싶지 않음’이다. 나라 곳간이 엉망진창이 되다 보니 다들 움켜쥐고 있는 걸 내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군대는 무기도 중요하지만, 먹고 입히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중앙 정부에서 군구의 재산까지 유용해 경제 전쟁에 밀어 넣는 순간, 수만에 이르는 군사들은 배를 곪아야 한다.
제 새끼 입에 풀칠을 해 주지 못하는 부모는 더 이상 부모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 것이고 이는 군구 사령관이라는 자신들 입지를 조악하게 만들 것이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던 중국 경제가 하나둘 망가지고 실업자가 늘어나자, 생필품까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대량으로 물품을 소비하는 군으로선 그야말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일이다.
소련이 무너졌을 때도, 가장 먼저 잇속을 챙긴 것은 각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군부였다. 중국이라고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때 베이징 군구 사령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석님.”
“말하게.”
“내전은 불가하지만, 인근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베이징 군구 사령관의 말에 진핑 주석은 눈을 반짝였다.
“그래. 고주몽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군. 북한이 있었어. 왕수 부장!”
“네. 주석님.”
“북한에 대한 공작은 어디까지 진행이 됐나?”
“명령만 내려 주시면 언제든 가능합니다.”
천명 작전에 포함된 일이었는데, 주몽의 선공에 얻어맞느라 미처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칫 일이 잘못되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인 데다, 심양군구가 남하하는 일이다 보니 챙겨야 할 부분이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젠 조심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게 됐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북한을 손에 넣은 뒤, 남쪽으로 밀고 내려가야만 중국이 사는 것이다.
“그럼 뭘 기다려. 지금 당장 시작해! 고주몽 그놈의 본진을 날려버려야 이 지긋지긋한 돈 장난이 끝날 것 아냐!”
“네!”
왕수 부장이 밖으로 달려나가자 진핑 주석은 베이징과 심양군구 사령과 두 명을 넌지시 바라봤다.
“북한에 쿠데타가 일어날 거야.”
“이런, 안타까운 일이군요.”
“아마도 남쪽으로 밀고 내려가지 않을까 싶어.”
“동맹국이 힘든 싸움을 한다는데…… 우리도 한쪽 팔을 거들어야겠군요.”
심양군구 사령관은 마치 이런 날만 기다려 왔다는 듯 섬뜩한 눈빛을 쏟아냈다.
* * *
북한은 주몽과 중국의 경제 전쟁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었다.
삭막한 대북제재 속에서도 그럭저럭 버텨내고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쪽에서 넘어오는 물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경제가 엉망이 되면서 그나마 유지되던 국경 쪽 유통마저 끊겨버린 것이다.
“후웁, 후웁. 이 보라오! 뭐라도 방법을 찾아야 할 게 아니오! 후웁.”
숨쉬기 거북할 정도로 살이 쪄버린 김성은이 허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
“공화국 전사들이 최선을 다해 외화벌이하는 중입네다.”
“누가 그걸 모르간! 후웁. 후웁. 외화를 벌면 뭐하네! 돈을 쓸 곳이 없어!”
돈을 들고 있어도 물건을 파는 사람이 없으니, 돈이 아니라, 말 그대로 종이 쪼가리다.
“그거이…… 중국이 경제 전쟁을 하고 있어서리.”
“후웁후웁! 기래서?”
“네?”
“멍청히 보고만 있겠다. 이 말이오? 후웁후웁. 훅훅.”
가파르게 숨이 차오르자 김성은의 얼굴이빨갛게 상기됐다.
“위원장 동무. 흥분을 가라 앉치시라요.”
김성은의 수행비서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뭐가 어찌 됐든 김성은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그나마 공화국이 돌아가는 체제라 그가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하는 날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후웁. 후웁. 남조선 고주몽인가 하는 인간이 문제라지?”
“네. 위원장 동무. 그자가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고 합네다.”
“기래? 후웁후웁. 기럼 남조선에 내려가 있는 혁명 전사들에게 지령을 내리라우. 훕훕.”
“암살하자는 말씀입네까?”
위원 중 한 명이 우려 섞인 표정이 됐다. 고주몽은 남조선 대통령보다 더 건드리기 어려운 존재기 때문이다.
“후웁. 후웁 우리 공화국이 중국의 골칫거리를 치워주면 고마워하지 않겠어? 훅훅.”
“그건 그렇지만…….”
“흐어억. 헉헉. 기럼 지금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아 낼 수 있지 않겠냔 말이지.”
“맞습네다. 혁명 전사들에게 바로 지령을 내리갔시오!”
친중파 위원이 김성은의 말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보라오! 고주몽이가 죽인다고 죽을 놈이네? 미국 대통령보다 더 호위가 촘촘한 놈이야!”
“기래서? 이대로 지켜보자는 거네? 중국이 무너지면 우리 공화국도 위험해진다는 걸 모르간?”
위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기 시작하자, 김성은은 짜증이 밀려들었다.
“하윽. 하윽. 풉풉.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우! 뭔 말이 그리 많네!”
김성은이 역정을 내자, 위원들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훅훅. 나가서 일들 보라우! 풉풉.”
김성은의 손짓에 당정치국위원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웁후웁. 크…… 으.”
급격하게 혈압이 치솟은 김성은이 얼굴을 찌푸리자, 수행비서는 주치의를 찾았다.
그러자, 회의실을 나가고 있던 친중파 위원들이 눈알을 번뜩였다.
밖으로 나온 친중파 위원은 급히 달려오는 주치의를 향해 급히 손짓했다.
“네.”
“동무. 위원장 동무를 병원으로 안내하시오. 몸 상태가 좋질 못한 것 같으니.”
위원의 말에 주치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입네까?”
“기래. 오늘이지.”
“알겠습네다.”
주치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친중파 위원들은 거사(巨事)에 동참한 사람들을 비밀리에 불러 모았다.
당연히 그 안에는 파당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하진건도 포함돼 있었다.
“하진건 대좌.”
“네. 위원님.”
“준비는 돼 있갔지?”
“물론입네다.”
“좋아. 오늘 거사를 치를 것임메.”
“오늘 말입니까?”
“기래. 더는 시간을 끌 이유도 없고. 북경에서도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라고 하질 않갔서.”
“김 씨 파당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들을 한곳에 모으려면 시간이 촉박한데 말입네다.”
“그건 나에게 맡기라우. 위원장 동무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으면 하루살이처럼 모여들 테니까는.”
“위원장 동무의 죽음을 공개하겠다는 말씀입네까?”
하진건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위원은 흐흐 웃음을 흘렸다.
“그럼 쓰갔어? 죽을 놈들만 귀띔을 해 줘야지.”
척결 대상만 따로 불러내 한 번에 쓸어버리겠다는 뜻이다.
“아, 그렇게 하면 쥐새끼들 잡으러 다닐 필요도 없이 한 번에 끝을 낼 수 있겠습네다.”
“길티. 일은 이렇게 하는기야. 하진건 대좌도 잘 배워두라우. 혁명이 성공하면 하진건 대좌도 앞으로 큰일을 해야지. 장군 소리는 들어봐야지 않갔어?”
“맡겨만 주시라요. 위원장 동무!”
하진건은 친중파 수장 정치국 위원을 위원장 동무라고 부르며 허리를 숙였다.
“하하.”
정치국 위원은 ‘길티! 길티! 혁명이 성공하면 내가 위원장 동무가 되는 기지!’ 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위원장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 위원이 혁명 후 진행될 상황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혁명이 성공하면 심양군구가 남진을 할 것임메.”
“심양군구가 말입네까?”
“기렇티. 혁명에 성공해도 머저리같이 반항하는 자들이 있지비. 놈들을 확실히 찍어 누르려면 중국의 도움이 필수야.”
“남쪽은 어떻게 되는 겁네까?”
“몰라서 묻네? 당연히 밀고 내려가야지.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데는 전쟁이 최고지.”
“그거이 그래도 전쟁 아니오.”
위원 한 명이 걱정스럽다는 듯 이야길 꺼냈다.
“길어야 일주일. 짧으면 삼일. 그 안에 끝날 전쟁이오.”
“하긴, 아무리 미국이라도 해도 핵 무력을 가진 공화국 전사들과 전면전은 못 하지. 거기다 중국까지 등에 업고 있는 우리니.”
“기건 기렇고. 남쪽 고주몽인가 하는 자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어쩌기는 당연히 쥑여야지. 남조선에 내려가 있는 혁명 전사들에게 연락을 넣으시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죽여 없애라고. 그자는 새로운 공화국에 위험분자가 될 소지가 크지 않소.”
위원의 말에 다들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겸사겸사 그자를 잡아 없애면 북경에서도 우릴 높이 쳐 줄 것 아니요. 근심거리를 대신 치워준 셈이니.”
“하하하. 길티. 길티.”
위원은 장밋빛 미래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다가 하진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진건 대좌. 동무가 맡은 임무는 오늘 혁명의 방점을 찍는 일임을 명심하라우.”
“물론입니다.”
“좋아. 가서 일 보라우.”
“네. 위원님.”
밖으로 나온 하진건은 곧바로 자신이 장악한 감청부대로 달려갔다.
“어디까지 확보됐어?”
“급하긴 급했나 봅네다. 평소와 달리 조심성이 없더란 말입네다.”
“잘했어. 앞으로 기대하라우.”
“민족의 영웅을 공화국으로 모시는 일 아닙네까. 목숨도 바칠 수 있으니 맡겨주시라요.”
“길티. 공화국이 살 방법은 민족의 영웅을 북으로 모셔오는 방법밖에 없지.”
감청 자료를 챙겨 든 하진건은 곧바로 김기성을 찾아갔다.
“표정이 왜 기렇소?”
“오늘이야.”
“!”
하루 이틀 여유도 없이 곧바로 오늘 일이 벌어진다는 소리에 김기성은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체하겠소. 뭔 일을 이리 급하게 하오?”
“중국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 민족의 영웅이신 고주몽 회장님이 대륙을 떨게 만드셨지비.”
“역시!”
고주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김기성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들리는 소식마다 뭐 하나 버릴 게 없다.
“기래서 오늘 어찌 진행되오?”
“위원장 동무의 사망 소식을 이용해 척결 대상을 끌어모을 것이야.”
“기렇구만. 덕분에 우리 일도 쉬워지겠소.”
“동지들에게 연락을 넣으시오. 오늘을 기점으로 공화국은 새로 태어날 것이니.”
“알았소. 맞춰서 준비하겠소.”
“아, 그리고 이거.”
하진건이 USB 하나를 내밀었다.
“이건 뭐요?”
“중국 쪽 녹취자료와 남침 작전서야. 안문수 동지에게 잘 전달하라우. 시간이 촉박하니까네. 바로!”
“크크. 길쿠만. 내래 알아서 잘하겠소.”
* * *
“아직 북한 쪽에선 소식이 없습니까?”
“네.”
“이상하군요. 예정대로라면 오래전에 작전이 실행됐어야 할 일인데.”
“대표님의 선공이 먹혀들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박산호는 오히려 잘된 일 아니겠냐고 했다.
“아니요. 북한 쪽 일은 중국이 아니더라도 결국 쿠데타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왕이면 외부세력의 공격을 막아내고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겠습니까.”
주몽의 말에 박산호는 물론이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북경에서 날아든 북한 점령과 한반도 남하 작전이 안문수를 통해 곧바로 주몽에게 전달됐다.
― 중국이 움직였습네다!
“일자는 확인 됐습니까?”
― 네. 확보했습네다. 하진건이가 일을 아주 제대로 하고 있습네다. 기런데, 그 일자가 오늘이라고 합네다.
“네? 오늘이요?”
― 중국이 급하긴 급했나 봅네다.
“증거 획득은 어디까지 됐다고 합니까?”
― 중국 쪽 책임자와 직접 통화, 녹음까지 마쳤다고 합네다. 거기다 쿠데타 이후, 한반도 진공 작전에 대한 세세한 내용까지 모두 확보했다고 합네다!
안문수는 흥분한 목소리로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
안문수 입장에서도 조마조마한 심정이었을 테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안문수가 자신을 찾아와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진짜 눈앞이 캄캄해졌을 일이다. 틈만 나면 일등 공신 운운하는 안문수지만, 이젠 그런 모습조차 귀엽게 느껴질 지경이다.
안문수가 전달한 정보는 곧바로 해독되어 주몽 앞에 놓였다.
“심양군구가 움직이는군요.”
“쿠데타가 성공하고 북한이 남침을 시작하면 그 뒤를 따르는 형식입니다. 직접 한국을 공격하진 않지만…….”
“간접적으론 온갖 공격을 다 퍼붓겠죠. 거기다 평양까지 밀고 내려와 북한 정부를 장악하려 들 겁니다.”
주몽은 싸움이 거의 막바지에 도달했다고 했다.
“작전명 역풍(逆風). 계획대로 진행합니다. 관련 증거는 미국에도 보내 놓으세요.”
“네. 대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