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장. 같이 망할 수는 없다!
주몽과 리벤지 파운데이션 회원들의 공격은 살을 주고 뼈를 깎는 전법이었다.
공격하는 쪽도 손해를 보지만, 공격받는 쪽은 더 큰 손해를 보는 형태다.
거기다, 주몽 쪽은 기업별, 나라별로 각각 피해가 분산됐지만, 홀로 모든 걸 감당하는 중국은 이 피해를 모조리 합산해서 감당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말 그대로 융단 폭격을 얻어맞은 꼴이다.
각 성에 자리 잡거나 진출해 있는 외국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기업들까지 하나둘 철수를 시작하자 지방 정부는 그야말로 초비상 상태가 됐다.
특히 외화 보유량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는데, 중앙 정부에서 지방 정부의 금고를 곶감 빼먹듯 사용했기 때문이다.
중앙 정부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지만, 정작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지방 정부 입장에선 현실을 고려치 않는 억지에 가까운 명령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업을 의도적 부도 상태로 몰고 가라는 명령은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게 한 달 넘는 전쟁이 계속되자, 중앙 정부는 물론이고 지방 정부까지 동시에 삐걱대기 시작했다.
“돈 없다고 해! 그냥 버텨!”
“그럼 부돕니다!”
“부도나도 괜찮아. 계속 버텨!”
“예???”
기업이 부도가 나면 지방 정부 관리하에 있는 인민들은 모조리 실업자가 된다.
그것뿐인가. 돈이 돌지 않으니 중간 계층을 떠받치고 있는 인민들이 하층민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는 지방 정부의 붕괴를 의미하며 재정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부도나도 버티라니.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시가 다 있단 말인가.
“부도나면 그냥 끝인데, 뭘 어떻게 버텨요!!!”
지방 정부는 공산당의 지시에 반발했다. 그러자, 이번엔 곧바로 협박이 날아들었다.
“잘리고 싶어? 너 아니어도 그 자리 맡을 사람 쌔고 샜어!”
“그럼 다른 사람 보내던가! 난 못해!”
지방 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관료들은 두손 두발 다 들어버렸다.
중앙 정부의 지시에 따랐다간 기업가들과 인민들에게 맞아 죽을 판이니 한마디로 태업을 선언해 버린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앙과 달리 지방 관료들은 기업가들과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보니 기업이 망하면 자신도 망하고 자신이 망하면 자신과 이어진 관치도 모조리 망하는 것이다.
어떤 미친놈이 자기 목에 칼을 밀어 넣겠는가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중앙 정부에 밉보일 정도로 막 나간 건 아니다.
자신들 능력으론 처리해 내기 어려우니 전문가를 보내 달라고 앙앙거렸다.
“멍청하고 무능한 놈! 너 일 끝나고 두고 보자!”
중앙 정부는 곧바로 전문가를 빙자한 임무 수행자를 내려보냈다. 전쟁을 하다 말고 멈출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전선을 유지는 시켜야 했다.
사실 중앙 정부도 빡치긴 마찬가지였다.
주몽과 리벤지 파운데이션 회원들이 벌이는 경제 전쟁은 피가 튀는 게 아니라 피를 말려버렸기 때문이다.
“고주몽 왕빠단 새끼!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건데! 왜 아직도!!!”
“일시불로 1조 달러랍니다.”
“일시불…….”
“할부로는 3조 달러까지 긁을 수 있다고 합니다.”
“미친 새끼. 그게 인간이냐? 혼자서 3조 달러라니!”
중국의 1년 국방비가 1조 2천억 위안(한화 200조가량)이다. 그런데 고주몽 혼자서 최하 다섯 배에서 최대 열다섯 배의 돈을 단숨에 굴릴 수 있다는 소리다.
자신들도 중앙과 지방 정부를 탈탈 털어 움직이면 그 정도 자금을 일시금으로 융통할 수는 있긴 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파산 선고도 준비해 둬야 한다.
실제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고주몽과 달리 자신들은 절대 불가능한 짓이라는 소리다.
“이 새끼는 돈을 벌자는 거야, 버리자는 거야? 도대체 왜 이러는데!!!”
그것뿐인가? 고주몽에 붙은 G20 국가들이 뒷구멍으로 계속 돈을 밀어 넣고 있다.
고주몽 한 명만 해도 지긋지긋한데, 거머리들이 떼로 붙은 모양새다.
채권을 처리하느라 허리가 휘청했는데, 남은 돈마저 줄줄 새 버리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우리 기업에 고발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게. 특허침해와 저작권 위반으로…….”
“평소대로 무시해 버려! 어차피 법정에 가도 우리가 이겨!”
“그게 말입니다. 고발이 우리 법원이 아니라, 자기들 나라와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접수를 했습니다.”
“…….”
“어떻게…….”
“어쩌기는 뭘 어째! 계속 무시해! 그런 것까지 상대할 때야?”
“그게 계속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해외에 있는 본국 자산들이 압류 조치되고 있단 말입니다.”
“썅!”
“위안화 가치가 계속 떨어집니다. 환율이…… 환율이!”
“젠장 돈을 더 찍어내!”
“네? 그러다가 인플레이션이라도 발생하는 날엔 베네수엘라 꼴이 날 수도 있습니다! 일본이 그러다가 고꾸라졌지 않습니까!”
“그럼 뭐 어쩌라고!!”
악다구니가 오가는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지방으로 내려보낸 행동대원들이 다급히 파발을 날려왔다.
“밑에 애들이 말을 안 들어요!”
“아니 왜!”
“어쩔까요?”
“젠장! 전장에서 명령 불복종은 즉결처분이야! 총살해!”
궁지에 몰린 중앙 정부는 전형적인 공산당식 압박정치를 시작했다.
안 들리는 척하며 고집불통인 하위 관료를 총살장으로 보냈는데, 재차 문제가 터져 나왔다.
지방 사회라는 게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얼굴들인데 되지도 않는 일을 시켜놓고는 그걸 못했다고 총살을 시킨다고 하니 스멀스멀 불만이 새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으악! 애들이 다 그만둔다고 나가버렸습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일할 사람이 없어요!”
“멍청아!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네가 직접 움직이면 되잖아!”
“에에에에?”
“왜 못하겠냐?”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 명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걸 혼자서 처리하라고? 못한다고 하면 자신도 총살형이라 일단 알았다고는 했는데 역시나 방법이 없다.
결국, 파견된 관료들조차 어영부영 눈치를 보며 시간 끌기에 들어갔다.
그렇게 지방 정부 곳곳에서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
일단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에 문젯거리를 다른 쪽으로 떠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화교 자본은? 왜 안 움직이는 거야!”
“그… 그게.”
“그게 뭐?”
“지시에 따르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개 같은 소리야!”
“…….”
“너지.”
“네?”
“화교 자본을 이용하자고 고의 부도를 내자는 의견을 낸거 너 잖아!”
“그… 그렇…….”
“너 총살!”
“살려주십시오!”
“닥쳐! 너 때문에 지방 정부가 개판이 되버렸다고!”
그때 대륙을 강타하는 충격적인 소식이 터져 나왔다.
“뭐… 뭐야야야! 독립이라니! 독립이라니! 어떤 새끼야!”
“광저우 군구 사령관이…….”
“당장 잡아 와!”
“…….”
“뭘 멍하나 보고만 있어? 당장 잡아 오라고!”
“그게… 군구 사령관입니다. 독립선언을 해 버렸는데, 무슨 수로 잡아 옵니까.”
“다른 군구에 명령해!”
“에에에? 그럼 내전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난린데, 내전까지 벌어졌다간 우리 망한다고요! 무엇보다도 광저우는 남방(南方) 강군인 데다 산업체가 밀집된 곳입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공장에 폭탄을 깔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
* * *
“중앙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더는 참지 못하겠다. 대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공명정대한 정치를 하지 못하고, 인민의 희생만 부추기는 중앙 정부와 결별을 선언한다!”
광저우 군구 사령관 쒀분림(徐粉林)은 휘하 병력을 움직여 벼락처럼 지방 정부를 점령해 버렸다.
속된말로 군부 쿠데타인데 이게 중국 전체를 상대로 한 게 아니라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성도만 뚝 떼어서 집어삼킨 것이다.
쒀분림은 중앙 정부와 결별을 선언하고 각 성의 권력을 장악하자 곧바로 폭탄선언을 날렸다.
“광둥성(廣東省), 하이난성(海南省), 후난성(湖南省), 후베이성(湖北省)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분리독립을 할 것이며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겠다.”
분리독립을 선언한 쒀분림은 국명을 ‘오(吳)’로 공표하고 중앙 정부와 관계를 끊어버렸다.
쒀분림의 갑작스러운 독립선언은 진핑 주석과 중앙당에 제대로 뒤통수를 날려줬다.
쒀분림이 중앙 정부와 결별을 선언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지방 정부 파산 임박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돈을 가져가 버리니 재정적 압박을 넘어 빈털터리가 될 판이었기 때문이다.
중앙 정부에서 내려보낸 관료들은 모조리 체포됐고, 중앙 정부와 전쟁 중인 고주몽과 리벤지 파운데이션에 특사가 파견됐다.
쒀분림이 리벤지 파운데이션에 특사를 파견한 부분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독립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유엔 또는 미국이 아니라 주몽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 아니, 왜?
➘ 나도 둥절.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판이냐. 누가 설명 좀!!
➘ 쯧쯧. 이렇게 세상 보는 눈이 어두워서야. 딱 보면 모르겠냐?
➘ 그래. 나 눈뜬장님이다. 그러니까. 설명 좀.
➘ 울 주몽 회장님의 리벤지 파운데이션이 중국을 패고 있잖냐.
➘ 그래서 뭐?
➘ 하, 이 답답한 놈들. 쒀분림이 분리독립을 선언한 이유가 뭐냐? 파산 직전이라잖아.
➙ 내가 정리해 줌. → 유엔의 새로운 이름이 리벤지 파운데이션임.
➘ 아…….
제주도에 도착한 특사는 쒀분림의 친서를 전달했다. 친서를 받아든 주몽은 특사와 공개, 비공개 회담을 진행했고 이는 인터넷에 생중계됐다.
➙ 모양새가…… 꼭 책봉을 받으러 온 타국 사신 분위기다. 이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냐?
➘ 아니. 나도 그렇게 느끼는 중.
➘ 푸하하하학. 책봉이란다. 미쳤냐? 시대가 어떤 시댄데.
➘ 지금은 울 고주몽 회장님 시대잖아. 막말로 신생국 특사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개인을 찾아가 친서를 전달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듣고 보니… 그렇네.
회담을 끝낸 쒀분림의 특사는 곧바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오국은 지금, 이 시각 부로 리벤지 파운데이션 회원국이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제부터 우린 중국과 관계없음. 파운데이션이 원한다면 같은 회원국으로서 책무를 다해 중국 때릴 것임.
짧고 굵게. 진핑 주석 박 터지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진 특사는 활짝 웃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특사가 다녀간 뒤, 쒀분림이 장악한 지역은 주몽의 공격에서 제외가 됐고 빠져나갔던 투자도 하나둘 정상적으로 복구가 되자, 분리독립에 불안해하던 인민들이 쒀분림 지지자로 돌아섰다.
뭐니 뭐니 해도 지도자 하면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을 해 줘야 제대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걸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장족 자치구가 우리도 광저우 군구 소속인데 왜 자신들은 빼냐면서 오국에 후다닥 달라붙어 버렸다.
인민들마저 쒀분림 쪽으로 돌아서자, 진핑 주석과 공산당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중국 정부는 쒀분림의 분리독립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필요하다면 무력도 불사하겠다는 의견을 내보냈다. 그러자, 리벤지 파운데이션 관계자가 중국 정부를 향해 공식 브리핑을 했다.
― 네. 그러시던가요.
“응? 그게 다야?”
― 네. 답니다.
“진짜로?”
― 왜요. 아쉬우면 욕이라도 해 줘요?
“…….”
― 내전? 하고 싶으면 해요. 우리가 망하나. 중국이 망하지. 그런데 지금 그거 신경 쓸 때가 아니시지 않나? 외화가 말라붙어서 기업들 부도가 줄줄이 사탕이던데. 푸흣.
리벤지 파운데이션의 깔끔하고 살벌한 반응에 중국 정부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성질 같아선 쒀분림을 잡아다 갈가리 찢어버리고 고주몽을 잡아다 목을 매달아 버리고 싶었지만, 리벤지 파운데이션 대변인의 말처럼 그런 짓을 했다간 중국은 영원히 후진국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쒀분림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진핑 주석은 다급히 군사위원회를 소집했다. 다른 군구가 쒀분림 따라 하기를 못 하도록 단속에 들어간 것이다.
“뭐야. 왜 이것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