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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206화 (207/224)

206장. 로열로드

경매가 끝나고도 홍콩에 머물고 있던 주몽은 뉴스를 확인하더니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필립이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축하드립니다. 3천 5백억 달러를 말 몇 마디로 벌어가시는군요.”

“미국이야말로 축하드립니다. 1조 달러짜리 불량 채권을 1조 3천 5백억에 치워버렸지 않습니까.”

청나라 불량 채권을 팔아치우는데 성공한다면, 채권 가치를 넘어선 추가 이득의 절반은 Go 컴퍼니가 받아 간다.

주몽이 채권 팔아넘기기 작전을 세웠을 때 미국에 요구한 사항이고 미국도 동의한 내용이다.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필립은 순수하게 '놀람'을 표현했다. 말이 3천 5백억 달러지. 보통 사람은 물론이고 국가 재무처도 함부로 언급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액수기 때문이다.

주몽은 씩 웃음을 보이더니 '악몽' 작전에 중계 기지 역할을 맡은 각국 지부장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 여러분. 본 게임을 시작해볼까요? 중국몽을 악몽으로 만들어봅시다.”

각국 Go 컴퍼니 지사장을 맡은 인물들은 주몽의 지시가 떨어지자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어, 나야. 시작해.”

“시작하시면 됩니다.”

“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마무리를 지어야지 않겠습니까.”

“저들의 불법적 행태와 자국 우선주의를 철저히 깨부술 시간입니다.”

“국제법과 특허 관련 사항을 하나도 빠짐없이!”

“진출해 있는 중국 기업들에 피해 보상 요구를 시작해! 의사당에서 밥만 축내고 있는 인간들에게도 전해. 앞으로 중국 기업은 49% 이상의 지분을 취득할 수 없다고.”

“중국 외화보유고에 대한 우려를 내보내! 기업들은 지금 당장 중국을 떠나라고!”

옵서버 겸 동맹국 참전관으로 자리에 참석한 필립은 미국 지사장 알렉스를 귀퉁이 쪽으로 데리고 갔다.

“지금 이곳에 모인 사람들 전부가…….”

“네. 회장님에게 충성을 맹세한 가신들입니다.”

“허허. 이거야 원. 제2의 로즈차일드인가?”

필립이 우려스러운 눈빛을 보이자, 알렉스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로즈차일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 범죄를 설계하고 저지른 자들입니다.”

“고주몽 회장은 다르다?”

“가주님은 그들과 달리 그런 일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건드리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Go 패밀리의 모토입니다.”

“그걸 어떻게 믿지?”

“그거야 국무장관님 자유의지겠죠. 그리고 믿든 믿지 않든. 이제 와 달라질 게 있습니까?”

알렉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흠…….”

필립이 선뜻 대답을 못 하고 답답한 목소리를 내자, 알렉스가 한마디 덧붙였다.

“정, 의심된다면 건드려 보시던가요.”

“장난으로라도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군.”

필립은 미친놈들처럼 전화기를 붙잡고 악다구니를 질러대는 고주몽의 ‘가신’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당장 눈에 띄는 몇몇 인사만 해도 얼마 전까지 미국 대사로 근무하던 자들이다.

웃긴 건 저들 사이에 중국 외교관도 포함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외교부는 국가 간 이익 관계에 첨예한 대립을 세우는 관료집단이다. 그런데 자국을 공격하는 일임에도 전혀 망설임이 없다.

저 중엔 영국 대표로 경매에 참가했던 윌리엄 G 스콧도 끼어있었다.

경매 작전을 짜며 호가를 최대한 높이겠다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윌리엄까지 고주몽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가주님은 필립 카네기 님을 친우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서로의 이득을 충실히 받쳐 주는 관계 말이군.”

필립의 말에 알렉스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

“사서 고생할 필요 있겠냐고.”

알렉스의 말에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호적 관계를 굳이 나서서 비틀 이유는 없겠지.”

“국가 간 경쟁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되리라 보십니까.”

“무슨 의미로 묻는 건가?”

“기업의 힘이. 개인의 힘이 국가를 압도하는 세상입니다.”

“흔해 빠진 이야기군. 기업 국가를 이야기하는 건가?”

“그 흔해 빠진 이야기가 현실이 된 세상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카네기 가문이 다른 가문들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난 이유를 잊지 마십시오.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알렉스의 말에 필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동북아에 Go 패밀리가 있다면, 아메리카엔 카네기가 있다. 어떻습니까.”

“말은 그럴듯하군.”

“최근 유럽의 분위기를 아시지 않습니까.”

“정치에 질린 국민이 왕가에 눈길을 주는 것 말인가?”

“말로는 국민과 국가를 운운하지만, 결국 그들은 아래가 아닌 위만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정치인이란 끊임없이 권력 쟁탈전에 목을 매는 종족들이죠.”

“그래서 국민이 있고 민주주의가 있고 선거제가 존재하는 거네.”

“하하하. 아실만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알렉스의 웃음에 필립의 미간이 더욱 좁아졌다.

“장관님. 미국의 선거제는 더 이상 신성하지 않습니다. 아니, 신성함을 잃어버렸다고 해야 정확하겠군요.”

“…….”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성장한다. 유명한 말입니다만…… 왜 피를 먹어야만 성장할 수 있는지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과거의 일이네. 아직은 민주주의가 미숙한 시설의…….”

“그럴 리가요.”

알렉스는 고개를 흔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민주주의는 영원히 미숙한 정치체계입니다. 그래서 매번 피를 부르는 거죠. 패거리 싸움을 고상하게 꾸민 것이 민주주의지 않습니까.”

“…….”

“다른 건 모르겠습니다만, 정치인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말이 최근 가장 크게 와닿더군요. 그런데 최근 이런 기조가 바뀐 나라가 있습니다.”

“……?”

“한국말입니다.”

“한국?”

“네. 최근 한국에서 통과된 법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어떤 법이기에 그런 표정을 짓는지 궁금하군.”

“정말 단순한 법입니다. 오랜 세월 국민이 바라왔지만, 어떤 정치인도 손을 들어주지 않았던.”

“정치인에게 책임을 묻는 법이라도 만들어졌나 보군.”

필립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을 던졌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런 법이 통과되었다고 생각했다기보다 대화 맥락상 그저 내던진 말이라고 봐야 했다.

“빙고. 바로 맞췄습니다.”

“뭐?”

필립이 놀란 표정을 짓자, 알렉스는 입술을 훔치며 ‘진짜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라고 했다.

“정치인들이…… 그런 법을 통과시켰다고?”

누구보다 권력을 바라지만, 누구보다 책임은 지기 싫어하는 자들이 정치인들이다.

그런데 스스로 자신들 목에 개 줄을 채우는 짓을 했다니. 필립은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정치인만이 아닙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공무원으로 살아가려면 조건 없이 지켜야 하는 법이 생겼습니다. 일명 정치인고용계약서, 공무원고용계약서라도 불리는 법인데. 누가 되었든 공무 중 범법 행위를 저지르게 되면 그야말로 인생 파탄 나는 그런 법입니다. 무엇보다 정치인들 처지에선 악법도 이런 악법이 없죠. 임기 중 벌어진 모든 일들에 대해 의무적으로 감사가 진행되고 그게 비록 합법일지라도 국가와 국민에게 피해를 줬다면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대신, 깔끔하게 임기를 마치거나 공무를 수행하면 그에 합당한 상도 함께 주어진다. 알렉스는 그 부분까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상'을 주는 주체가 바로 고주몽이기 때문이다.

“무자비하고 야만스러운 법이군. 합법일지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니.”

“아, 내 말을 이해 못 하신 것 같습니다.”

“…….”

“합법일지라도 그게 국가와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게 불법적인 일임을 밝히고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알면서도 법이 존재하니까 아무 문제 없다는 식의 발상은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거죠. 미국만 해도 말도 안 되는 법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걸 고치지 않고 놔두는 이유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죠. 물론 그 누군가에 일반적인 국민은 존재치 않고 말입니다.”

“고주몽 회장의 의지인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정치인이라면 이런 법을 넋 놓고 지켜보지 않았을 것이다.

“가주님은 기본을 벗어나지 않는 한 어떤 제제도 없는 분입니다. 좋게 말하면 자유방임주의자고 나쁘게 말하자면 결과우선주의자라고 해야겠군요.”

“…….”

“정치권에서 만들어진 정치인, 공무원 고용법은 가주님이 아니라, 이번 회기를 책임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믿기지 않는 소릴…….”

“확인해 보시면 금방 탄로 날 일은 내가 왜 거짓으로 늘어놓겠습니까.”

필립은 알렉스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캐치해 냈다.

은연중, 부패한 민주주의보다 선한 독재자가 낫다는 식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알렉스가 유럽 쪽 왕가를 들먹인 것도 같은 의미에서일 것이다.

“왕이라고 해서 밑에만 바라본다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야. 전제왕권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역사가 증명하고 있어. 다수에 의한 견제만이 권력의 부패를 막아낼 수 있네. 자네 위험한 생각을 담고 사는군.”

필립의 말에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역사가 증명을 하고 있죠.”

“그걸 아는 사람이…….”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차이점? 어떤 차이점을 이야기하는 거지?”

“그건 장관님이 직접 알아내 보시죠.”

알렉스는 자신도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홀로 남겨진 필립은 알렉스와의 대화를 털어버리려고 노력했지만,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알렉스는 과거와 지금의 차이점을 들먹였지만, 그 차이점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는 말하지 않고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차이점이라. 차이점.”

과거의 지금의 차이점이 뭘까. 필립은 시민혁명으로 시작된 현대 민주주의를 떠올렸다.

왕실과 귀족에 대한 혐오. 끝없는 착취와 하층민의 증가.

“시민혁명은…… 사회주의 역시 태동시켰지.”

시민혁명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계만 탄생시킨 게 아니다.

부의 분배와 노동의 평등성을 이야기하는 사회주의 역시 그날의 사건으로 뿌리를 내렸다. 결과론만 따지고 본다면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민주주의는…….

“정확히는 자유경제 체제가 살아남은 거로군.”

따지고 보면 사회주의가 종말을 맞은 것도 아니다.

사회주의를 기반에 둔 나라들이 자유경제 체제로 변화를 모색하고 또 그렇게 진화하고 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했기 때문이다.

“차이점이라…….”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녔지만, 필립은 알렉스가 말하고자 한 ‘차이점’이 어떤 걸 의미하는진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필립에게 화두를 던져놓고 사라진 알렉스는 제이코와 따로 만남을 가졌다.

“반응은 어떻던가?”

“당연히 부정적입니다.”

“하긴, 뭐.”

제이코는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라고 하신 겁니까?”

민주주의니 뭐니 하면서 자극적인 말을 늘어놓긴 했지만, 알렉스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이미 고착화돼버린 국가체계를 말 몇 마디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자칫 국가 반역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순식간에 쓸려나갈 수도 있는 위험한 논제였다.

“어쩌면 말이지.”

“네.”

“조만간 우리가 그런 체제를 맞닥트릴 수도 있을 것 같거든.”

“네에?”

알렉스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무래도…… 우리 보스께서 왕좌에 오르실 것 같단 말이지.”

“설마 대한민국을…….”

“아니. 아니지. 한국은 불가능해.”

“그러니까 말입니다. 혹시 동남아 쪽에 섬이라도 하나…….”

알렉스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그럴듯한 내용을 꺼내 들었다.

“섬은 무슨.”

제이코는 코웃음을 쳤다.

“답답하게 그러지 마시고 그냥 이야기해 주시죠.”

“노우스 코리아.”

“노우스 코리아? 북쪽의 독재국가 말입니까?”

“그래. 그쪽에서 입질이 왔어.”

“21세기 국가 중에 가장 폐쇄적이고 대를 이어 독재를 이어온 나라지 않습니까. 거기다 한국과는…….”

알렉스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는 듯 연신 머리를 갸웃거렸다.

“잠깐만요. 그럼 필립 장관에게 그런 말을 던진 게…… 미국이나 다른 나라 때문이 아니라.”

“그래. 보스의 위치가 지금과 다른 일국의 왕이 된다면.”

“지지 선언입니까?”

“그와 동시에 첫 번째 외교 관계를 수립할 국가를 구하는 중이기도 하지.”

제이코는 히죽거리는 얼굴로 알렉스를 바라봤다.

“노우스 코리아가 킹덤 오브 코리아로 새롭게 태어난다면. 알렉스 자네는 자연스럽게 주미대사로 신분이 승격될 거야.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필립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놓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

제이코의 말 속엔 킹덤 오브 코리아가 예상 또는 상상 속의 나라가 아니라 실체화될 거란 확고한 믿음을 담고 있었다.

“제이코 고문님의 말씀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믿음? 나를 믿으면 안 되지.”

“네?”

“보스를 믿게.”

“…….”

“중국이 정신없이 두들겨 맞고 그로기 상태가 될 때쯤. 노우스 코리아에서 사절단이 찾아올 거야. 그러니 그에 맞춰서 준비를 해나가자고.”

“다른 지부장들도 알고 있습니까?”

“아니. 이 문제는 알렉스 자네에게 처음 해 주는 이야기야.”

“왜…….”

왜 자신이냐는 물음이 튀어나오려는데, 제이코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필립 카네기. 그를 우리 쪽 사람으로 만들어봐. 보스의 말처럼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친구 사이도 나쁘지 않지만…… 나는 그보다 더 친밀한 그리고 격조 높은 관계가 되었으면 하거든.”

“정략까지 생각하시는 겁니까?”

“노.”

알렉스 입에서 정략결혼에 대한 말이 흘러나오자 제이코는 재빨리 고개를 흔들었다.

“정략은 보스가 아니라, 지부장들 몫이 될 거야. 신생왕조가 탄생하는데 시작부터 외부의 피를 가져다 섞을 이유는 없으니까.”

“아…….”

“그래. 이제 눈치를 챘나 보군. 정략결혼이 됐든 이득을 주고받는 친구가 됐든, 보스의 서열과 맞먹는 가문은 없어야지. 외부 세력의 힘은 딱 우리 서열까지만 인정할 거야. 누가 됐든 보스와 동렬에 서는 일은 없을 거란 말이지. 막말로 미국 대통령이면 뭐하나. 기본 4년 길어야 8년이면 뒷방 늙은이 신세인데. 보스의 재력에 ‘킹’이 덧붙여지면. 로즈차일드 따위는 올려다보기도 어려운 진짜가 되는 거야. 로열로드가 열리는 거지.”

“로열……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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