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장. 모셔와야지 않갔어?
김기성과 하진건은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안문수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이 됐다.
“길티. 이젠 다들 알지 않소. 공산당과 사회주의는 실패했다는 것을.”
“웃기는 소리. 기래서 남조선 아들처럼 민주주의라도 하자는 거요?”
“남조선 정치가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오? 공화국은 일관성이라도 있지. 남조선 정치를 받아들였다가는 뭘 해 보기도 전에 발목이 잡힐 것이오.”
“길티. 나도 알지. 남조선 아들은 정치가 아니라 장사를 하디.”
안문수가 씩 웃는 얼굴이 됐다.
“답답하게 기러지 말고. 해결책을 가지고 있으면 그냥 말을 하기오!”
“조선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없소. 공산당도 사회주의도 모조리 날려버릴 것이오. 대신!”
“대신 뭐요?”
“킹덤 오브 조선.”
“뭐라는 기야. 남조선에서 구르더니만 우리말로…… 응? 지금 뭐라고 했소.”
“우리는 전제왕권으로 돌아가는 기요.”
김기성은 물론이고 하진건 역시 멍한 모습이 됐다.
지주들 다 때려잡고 세워진 나라가 공화국이다. 그런데 그걸 때려치우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고?
“미쳤소?”
“안 미쳤소.”
“미치지 않고서 어찌 그런 말을 하오!”
“쯧쯧쯧.”
안문수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이보라오. 동무들. 한 번 생각해보오. 따지고 보면 북조선은 공화국이 아니라 이미 김씨 왕국이야. 사회주의 노선이니 뭐니 하면서 혓바닥 노릴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우.”
“…….”
김씨파당에 속한 김기성은 김씨 왕국이라는 말에 움찔한 표정이 됐지만, 아니라고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이왕이면 뭣도 모르고 설치는 미친 왕보단 돈 많고 능력 넘치고 자기 사람 챙기기 좋아하는 그런 왕이 공화국을 통치하는 게 백배 낫지 않겠소. 아닌 말로 저 잘나가는 구라파 놈들도 버젓이 왕을 모시고 살고 있지 않네. 우리라고 못 할 게 뭐간? 내 말이 틀렸어?”
적당히 말을 맞춰주던 안문수의 말투가 처음과 달리 거칠어졌다.
다른 때 같으면 입조심 하라고 할 일이지만, 머리가 뒤죽박죽된 두 사람은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안문수는 은행거래장을 흔들었다.
“거기다 세계제일의 부자야. 그냥 부자도 아니고 세계제일의 부자! 화수분처럼 돈이 넘쳐나는!! 뚱보 머저리 같은 놈도 장군님, 장군님 하며 받들어 모시고 사는데, 뭐가 문제네?”
“……!”
“공화국의 새로운 지도자. 아아. 이거이 나도 습관이 돼서리. 공화국 닫고 새롭게 만들어질 나라의 왕으로 모실 만하지 않갔서?”
“지금 그러니까는…… 그 고주몽인가 하는 남조선 부자를…….”
“왕으로 추대하자는 말이요?”
“기렇지. 똑똑한 동무들이라서 기런지. 단방에 알아듣네.”
안문수는 활짝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기성과 하진건은 어이가 없는 눈으로 안문수를 바라봤다.
아무리 공화국이 궁지에 몰렸다지만, 킹덤 오브 조선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반응이 왜 이리 썰렁하네?”
“기럼. 그 말에 박수라도 칠 줄 알았소?”
“쯧쯧.”
안문수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남조선 기업들이 세계에서 얼마나 잘나가는지 알고는 있지?”
“기거야…… 뭐.”
“기럼 남조선 잘나가는 기업들이 전부 고주몽 회장 거라는 건 알고 있네?”
“뭐이 어드래?”
“남조선 기업들이 한 사람 거라고 했소?”
“길티. 날고 긴다는 기업들 전부 고주몽 회장 손에 들어갔지. 거기다 남조선에서 정치한다는 인간들도 모두 고주몽 회장 사람이고. 남조선 청와대 주인도 고주몽 회장 꼭두각시가 된 지 오래지비.”
“…….”
“생각들 해보라우. 기럼 남조선은 민주주의 국가야. 아니면 고주몽 왕국이야?”
“…….”
“지금 남조선이 고주몽 회장 덕분에 얼마나 신나게 사는지 알고는 있서? 우리 공화국은 곳곳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남조선은 날마다 잔치가 따로 없지비. 내래 그걸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갔서? 어디 동무들 말 좀 해 보라우.”
“…….”
“남조선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데, 우리 공화국은 하루하루 어제보다 더 못사는 나라가 되고 있어. 이건 아니지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비. 기래서 내래 공화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고주몽 회장을 찾아갔어.”
고주몽을 직접 찾아갔다는 말에 두 사람은 안문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야기했지. 우리도 좀 도와 달라고.”
“그 1조가…….”
“지금까지 뭐 들었네? 이 돈은 착수금에 불과하다니까는.”
안문수는 1조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뭔 소리를 들은 지 알간?”
김기성과 하진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것도 아닌 것에 왜 투자를 하냐고 기러더군.”
“그 말은…….”
“길티. 남조선은 고주몽 회장 거야. 기래서 수십조, 수백조를 팡팡 쳐 먹이면서 아낌없이 키우는 기고. 고주몽 회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남조선이 얼마나 달라진 지 함 뒤져보라우. 동무들도 깜짝 놀랄 테니까네.”
“공화국을 왕조 국가로 바꿔야 한다는 말은 그자를 아니 고주몽 회장을 우리 북조선에 데려오기 위한 방법이라는 소리군.”
“길티. 고주몽 회장이 미쳤다고 북조선에 올라와서 돈을 쓰갔어? 뭐라도 이유가 있어야 푼돈이라도 내줄 거 아니 갔네.”
“푼돈…….”
“내래 푼돈 운운하니 기게 작아 보이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간나새끼들. 귓구멍에 말뚝 박았네? 이보라우. 말이 천조지. 그게 얼마나 큰 돈인지 감이라도 잡히네? 고거이 이자만 받아먹어도 공화국 몇 년 치 예산이야. 그 돈만 공화국에 가져와도 인민들 배곪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비. 그러니까 헛소리 작작하고 정신들 차리라우! 인민 나고 공화국 났지 공화국 나고 인민 났서? 공화국이 어드래 만들어졌네. 이밥에 고깃국 먹겠다고 만들어졌어. 그런데 지금 보라우. 공화국 꼴이 이게 이밥에 고깃국 먹는 나라 맞긴 하네?”
“…….”
“내래 고난의 행군 때 형제자매 다 굶어 죽었서. 동무들은 겪어보지 못한 세월이지만 인세에 지옥이 공화국이었단 말이지. 그런데 또다시 그 지옥을…… 인민들에게 강요할 기야?”
“…….”
“핵 무력. 중요하지. 나도 알아. 핵이 없으면 안된다는 거. 그런데 그거 씹어 먹고 살끼야? 아니면 굶어 죽기 직전에 너 죽고 나 죽고 하자고 발사 버튼이라도 누를끼야? 진정 공화국을 걱정하고 인민을 걱정한다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라우.”
“…….”
“남과 북으로 갈려서 으르렁대고 있지만, 같은 민족 아님메. 그런데 남조선은 고주몽 회장 덕분에 떵떵거리고 살고. 우리는 위대한 수령 동지 덕분에 굶어 죽고 있어. 기껏 하는 짓이 거지새끼처럼 중국에 동냥질이야. 이걸 계속 지켜만 보자는 소리는 아니겠지? 혁명해서라도 민족의 영웅을 우리 쪽으로 모셔와야지 않겠냐 이 말이지.”
안문수는 킹덤 오브 조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처음엔 헛소리하지 말라며 눈살을 찌푸리던 두 사람은 안문수가 정리해 온 고주몽 활약상을 살펴보더니 눈빛이 바뀌기 시작했다.
공화국은 밥그릇 걱정이 여념 없는데, 남조선은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그것뿐인가. 민족의 원쑤 일본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고 사과는 물론 땅까지 받아냈다.
“정복군주기만.”
“길티. 공화국이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쪼개 팔아먹고, 간도 땅 내놓으라고 입도 뻥긋 못 하는데, 고주몽 회장은 영토를 넓히고 있지비.”
“이게 진짜. 한 사람이 해낸 일이라니…….”
“남조선 영웅이 아니라, 민족의 영웅이라는 내 말이 헛소리 같았서?”
두 사람은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그렇지. 그런 영웅을 남조선에 빼앗길 수는 없지!’ 하면서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남조선 시민으로 있는 것과 조선의 왕으로 있는 것. 동무들 같으면 어디에 더 많이 투자하고 어느 쪽 인민들을 더 살펴주갔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져서라도 우리 조선에 왕이 되어 달라고 엉겨 붙어야 할 상황임을 정말 모르겠어?”
“기래도 인공섬인가 뭔가 만들면 중국이 가만있겠소?”
“클클클.”
인공섬 이야기가 나오자, 안문수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왜 그리 웃는 것이오?”
“몰라서 묻네? 일본 아새끼들이 그래 깝죽거리다 다 죽어 나간 거 아니네. 중국이라도 다를 것 같네?”
“이보오. 중국은…….”
“아가리 닥치라우.”
안문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하진건을 노려봤다.
“우리 위대한 지도자 동지 고주몽 회장님께서는 중국을 날려버릴 계획을 오래전에 수립해 놓으셨서.”
“일본에 이어 중국을?”
“대마도 찾아왔으니 이제 간도를 찾아야지 안갔서?”
안문수는 고주몽이 벌이고 있는 대중국 전선을 조심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김기성과 하진건은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표정이 굳어졌다.
“그거이…… 가능하긴 합네까?”
“동무들. 이거는 말이야.”
“……?”
“실패하든 성공하든 우린 손해 볼 게 없는 장사야. 기렇지 안네?”
“길기는 하지만…….”
“머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하고 살라우. 우리가 혁명하려면 김씨 일파는 물론이고 중국도 쳐내야 하지 않네.”
“기렇티요.”
“기래. 김씨 일파야 공화국 내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중국은 어떠네? 우리가 건드릴 수나 있긴 하네?”
“…….”
“고주몽 회장님의 계획이 성공하면 우린 그때 움직이면 되는 기지.”
“아…….”
“그 말은 실패했을 땐 혁명을…….”
“병신같은 소리 작작하라우. 혁명은 무조건 해야디!”
“하지만, 중국과의 싸움이 실패하면.”
“기걸 왜 실패하니? 미제 놈들은 물론이고 구라파 놈들까지 고주몽 회장 편인데. 중국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움이 되갔어?”
“그건 기런데…….”
“만에 하나 중국이 버텨낸다고 해도 그거이 정상이갔네?”
“하긴. 그건 길티요. 집구석 단속하느라 밖으로 눈 돌릴 새도 없을기니.”
“기렇티. 성공해도 실패해도 혁명은 철마처럼 달려가는 기지. 그 말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공화국은 영원히 살아날 방법이 없다는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갔네?”
“내래 이해했소.”
하진건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문수가 김기성을 바라봤다.
“나도 이해했소.”
“상황이 이렇게 뻔한데도, 아직도 혁명 못 하겠다는 말이 나오오?”
“안 동무 말이 맞소. 지금 아니면 공화국은 기회가 없다는 말 공감하오!”
“내가 잘못 생각했소. 우리 민족에 이런 영웅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니. 뭣도 모르고 떠들어댄 내 입을 찢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요. 우리 위대한 영웅 고주몽 회장께서 이렇게 착수금까지 내려 주셨는데!”
“이런 혁명이라면 백번이라도 해야지! 안 동무 말대로 고주몽 회장이 가진 재산의 이자만 받아먹어도 공화국이 굶어 죽을 일은 없겠소.”
“길티.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지비. 기래서 내가 파당이고 뭐고 무시하고 두 사람을 이리 불러낸기야.”
안문수는 이제야 말이 통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쪽은 오래전부터 혁명을 준비하고 있어서 문제가 없지만, 김 씨 파당과 친중 파당이 버티고 있어서 움직임이 쉽질 않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안문수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 쳐낼 것이오?”
“어디까지는 무슨. 썩은 대가리는 다 쳐내야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 않갔어? 국왕이 되어주십사 모셔왔는데, 개대가리들이 침을 질질 흘리고 있으면 고거이 일이 되갔어. 안되갔어?”
“좋소. 어차피 이대로 주저앉아 있다간 인민들은 물론이고 우리 역시 고사당할 것이오. 혁명? 그 까짓것 해 봅시다.”
“이건 시간을 끈다고 잘 되는 일이 아니야. 눈 깜짝할 새. 놈들이 눈치채기 전에 해치워야 할 일이라는걸 명심하라우.”
“우릴 바보로 아는기요? 그 정도는 알고 있으니. 동무는 혁명 날짜나 잘 챙기시오.”
“좋소. 기럼 충성맹세부터 하시오.”
“충성 맹…세?”
“기래야지 않겠소. 우리가 혁명하고 고주몽 회장님을 북쪽으로 모셔오려면 그걸 증명할 연판장 정도는 있어야지.”
“하긴, 고주몽 회장님도 뭔가 믿을 구석이 있어야겠지.”
“이제 보니 안 동무는 이미 충성맹세를 했구만 기래.”
“동무들. 혁명으로 나라가 세워지면 가장 먼저 하는 게 뭔지 아오?”
“가장 먼저 하는 일?”
“공신록!”
김기성 입에서 공신이라는 말이 흘러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리던 하진건이 눈을 반짝였다.
“길티.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지면 공신이 탄생하는 법이지비. 충성 연판장은 바로 그 공신록 초안이 되어줄 것이오.”
“안 동무가 일등공신이겠구먼 기래.”
“동무들도 각 파당의 허리를 움켜쥐고 있지 않네. 연판장 최상부에 이름이 들어갈 것이니. 동무들도 나와 같이 일등공신이야.”
“혈서라도 쓰면 되는기요?”
“혈서는 무슨.”
안문수는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동영상이라는 좋은 기술이 있는데 뭐하러 피를 짜네.”
각 파당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김기성과 하진건이 충성맹세를 하고 본격적으로 계획에 동참하자, 조선 인민민주주의 공화국 말살 작전이 스멀스멀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