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장. 중국에서 방 뺍시다.
― 회장님. 비서실장 최정민입니다.
“네. 무슨 일입니까?”
― 중국이 시작했습니다.
앞뒤 설명 없이 중국이 시작했다는 말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히 전달됐다.
“그래요? 나도 준비하죠.”
― 대통령님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 진짜 괜찮을까요?
“안 괜찮으면요?”
― …….
“오키나와 포기할 겁니까?”
― 그건…….
“아니면 중국에 얻어맞고 고개 숙인 다음에 미국에 얻어맞고 질질 짤 겁니까?”
중국의 의도대로 따라간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런 짓을 벌였다간 곧바로 미국 쪽에서 압박이 날아들 것이다.
― 휴…….
최정민은 답답한 듯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에 맞춰도 결과는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끌려다니니 매번 같은 짓이 반복되는 겁니다. 한국은 패면 된다. 어르면 된다. 살살 긁어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 호…… 회장님.
“대응책이 매번 그따위니까 외교가에서 호구 소리 듣는 겁니다.”
― 면목 없습니다.
“중국에서 답변은 왔습니까?”
― 네. 무례하니 어쩌니 하면서. 대충 뻔한 내용이죠.
“비서실장님. 내 말 잘 들으세요.”
― 네. 회장님.
“이건 핑퐁 게임이기도 하지만, 치킨 게임이기도 합니다. 먼저 방향을 트는 쪽이 지는 겁니다. 그리고 영원히 겁쟁이 소리를 듣게 되겠죠. 이번에도 호구 잡히면 한국은 속국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됩니다.”
― 회장님 말씀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국민이 입을 피해는…….
“고개 숙이고 물러나면 피해가 없어집니까? 인공섬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조선소와 건설사를 다시 일으켜 세울 사업입니다. 그리고 일본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죠. 이걸 포기하는 순간. 한국은 호구 인증하고 전병국이 될 겁니다.”
― 전병국…… 이요?
최정민은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의아한 목소리가 됐다.
“전설적 병신 국가.”
― …….
“전장에 나간 장수에게 병권을 맡겼으면 지든 이기든 믿고 기다리는 법입니다. 어설프게 끼어들어서 사람 심란하게 만들지 마세요. 우리 손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대가로 80년 넘는 세월 부역자들에게 달달 볶였습니다. 이번엔 중국에 그렇게 볶여 나갈 겁니까?”
― …….
“중국에 답변 날리세요. 대국이면 대국답게 담대하게 행동하라고. 찌질하게 그러지 말라고.”
― …….
통화를 끝낸 주몽은 곧바로 회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20개 그룹 회장들은 물론이고 Go 컴퍼니 핵심 멤버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 회의 주제는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주몽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청와대 연락에 따르면 관광객을 시작으로 중국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됐답니다.”
주몽의 말에 천기득이 입을 열었다.
“다음 수순으론 소재 수출 제약이 들어가겠군요.”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은 중국산 부품이 안 들어가는 상품이 없다는 말이고 완제품 생간에 차질이 생기게 될 거란 의미다.
이곳에 모인 기업들은 물론이고 중소기업들까지 모두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그건 곧바로 생산력 약화에 처하게 된다.
“중국에서 가져오고 있는 부품이나 소재는 국내 업체로 대체하세요.”
“그게…… 국산 소재는 가격이…….”
대산그룹의 류 회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이 됐다.
“어차피 중국에서 부품 안 들어오면 못 만들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류 회장은 다른 방법이 없겠냐는 듯 주몽을 바라봤다.
“당장 해결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인공섬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것.”
“그것 안될 일입니다.”
“조선과 건설이 재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건설사와 조선사를 가지고 있는 회장들이 당장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압니다. 우리가 그걸 포기하는 순간, 미국 기업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죠. 내 돈으로 마음껏 장난질을 칠 수 있으니. 우리 기업들은 손가락만 빨아야 할 것이고. 그걸로 끝이겠습니까? 침체기 일로인 조선 사업은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가겠죠.”
“…….”
“여러분. 여기서 고개를 숙이면 중국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같은 방식으로 칼을 휘두를 겁니다. 그럴 때마다 허리를 숙이고 구걸을 할 겁니까?”
“…….”
“잘못된 고리는 기회가 있을 때 끊어버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중국에서 방 뺍시다.”
“총회장님. 그렇게 쉽게 결정할 부분이 아닙니다. 중국에 투자된…….”
“투자하면 뭐합니까. 기술 훔쳐다 자기들 기업 성장시키고, 됐다 싶으면 투자기업들 돌려 패기 바쁜데. 여기 있는 분 중에 중국에 투자한 돈 제대로 돌려받은 사람 있습니까? 말이 투자지 중국 땅에 거름 뿌려준 것밖에 더 됐습니까?”
“…….”
“중국은 수렁입니다. 겉보기엔 탄탄해 보이지만, 발을 딛는 순간 끊임없이 끌려다녀야 하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몽은 회장들을 쭉 둘러봤다.
“중국에 외환위기가 닥칠 겁니다.”
“네?”
“외환위기라뇨. 중국은 외화보유고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미국 채권만 해도 엄청난 양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자신들이 흔들리는 순간 그걸로 미국을 압박할 겁니다.”
“네. 맞습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해도 중국이 가진 채권이 한 번에 풀리게 되면…… 달러 가치도 폭락할 겁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중국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적 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그 채권. 리벤지 파운데이션에서 수거할 겁니다.”
“네에?”
리벤지 파운데이션이 미국 국채를 사들일 거라는 말에 회장들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중국이 같이 죽자며 채권을 집어 던지면 당연히 가격은 내려갈 것이고 할인이 시작될 것이다. 그걸 내버려 두면 달러 충격이 들이닥치겠지만, 안정적으로 수거해 버린다면 오히려 중국이 위안화가 타격을 입을 것이다.
거기다 채권이 주몽과 리벤지 파운데이션 멤버들 손에 들어가면 Go 컴퍼니는 미국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달러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파워를 갖게 된다.
“우리뿐 아니라, 외국 기업들도 철수를 공표할 겁니다. 겁만 주는 게 아니라 실제로 방을 뺍니다. 그간 중국에 당했던 모든 나라가 참가를 할 겁니다.”
“그…… 그런…….”
“위안화 결재를 거부하고 달러를 요구하면, 강제로 환율 조정을 하고 있던 중국 정부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장 먼저 뭐가 타격을 받게 될까요?”
“부동산이겠군요.”
천기득은 앞으로 벌어질 일이 눈에 훤하다는 듯 곧바로 답을 내놓았다.
급격히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이지만, 그중 태반이 부동산 지가 상승이다.
일본도 한때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사버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미친 듯이 상승한 적이 있었다.
플라자 협약으로 거품이 꺼지면서 엄청난 폭락을 경험했고 그때 날아간 자산규모는 잃어버린 30년의 바탕이 됐다.
덕분에 한국은 호황을 맞이하면서 경제 성장을 이룩했었다.
일본이 주저앉은 지금. 주몽은 한국의 위치를 확고히 올려놓을 생각이다.
“거품을 터트린다면…….”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이지만, 실제로 중국을 일으킨 것은 부동산 경기입니다. 개발 붐이 일어나면서 이때 천문학적인 자산가들이 등장했죠. 중국의 미래라 불리는 상해만 해도 땅값과 부동산값이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주춧돌을 빼 버린다면.”
“대폭락이 일어나겠군요.”
“네. 그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이 청나라 때 채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십니까?”
주몽의 질문에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청나라 때의 채권으로 약 1조 달러, 한화로 약 1,100조 원가량 되죠.”
“1,100조 원…….”
주몽과 함께한 뒤론 돈에 대한 단위가 점점 의미를 잃는 느낌이 들었다.
툭하면 수십, 수백조, 이젠 천조 단위가 수시로 튀어나온다.
“듀크대 국제법 교수는 이것이 완전히 합법이며 중국 정부가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롤프가 이 돈을 받아내려고 물밑 작업 중이었죠. 그걸 존 오루크 대통령이 이어받을 겁니다.”
청나라는 1911년, 후베이에서 광둥을 연결하는 호수 넓이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의 서방 국가에 국채를 발행해 600만 파운드의 자금을 모았다.
이 채권 발행은 청나라의 경제적 붕괴를 더욱 초래해 신해혁명의 발단이 됐다.
미국 채권자는 지난 수십 년간 채무 상환을 요구해왔지만, 중국이 이걸 쉽게 받아들일 리 없었다.
1979년 채권자들은 중국 당국에 상환하도록 소송을 제기했고 미국 법원은 당시 중국 외무 장관을 증인으로 소환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정부는 중국 당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관심 있었기 때문에 법무부가 원고 측의 소송을 기각해 버렸다.
돈 받아먹는 데 재미 붙인 대통령 트롤프가 이걸 다시 걸고넘어졌고, 대 중국 압박용으로 사용했다.
공산주의란 체제를 유지할 땐, 안면박대 모르쇠 정책을 이어올 수 있었지만, 자유경제를 받아들이고 타국과 경제 협력이 이뤄지자 과거와 같은 방법은 더는 사용할 수가 없는 처지다.
실물 채권이 뻔히 존재하고 있는데 이걸 무시해 버린다면 자신들 역시 같은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받아낼 수 있는 겁니까?”
천기득은 힘들지 않겠냐며 고개를 흔들었다.
“중국은 그 돈을 내줄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은 청나라를 계승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영토 분쟁에 큰 역할을 하고 있죠.”
“그 말씀은…….”
“채권을 부정해 버리면, 청나라 계승도 무효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홍콩은 대만에 주던가 아니면 영국에 되돌려 줘야 합니다.”
“그 말씀은 미국이 청나라 채권을 휘두를 때, 영국이 끼어든다고 봐도 되는 겁니까?”
“영국도 리벤지 파운데이션 우량 고객입니다. 로즈차일드 건으로 나에게 큰 빚이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돈도 벌고 빚도 갚는 게 어떻냐고 했더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참여를 선언했습니다.”
“호…….”
“그런 일이.”
영국이 홍콩을 가져갈 때는 거래대상이 청나라였고, 반환 대상도 청나라였다.
중국이 청나라를 계승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홍콩을 반환받았는데, 채권을 무시하는 순간 모든 게 엉망이 돼버린다.
중국이 계승 명분을 잃어버린다면 남은 것은 대만뿐인데, 대만은 자유 진영에 속해있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나라다.
중국엔 당장 갚으라고 채권을 들이밀지라도 대만에 채권이 넘어가게 되면 부드럽게 대응을 할 것이다.
중국은 때리고 대만은 키우는 것이 미국의 기본 전략이다.
“채권을 받아들이면 단숨에 천문학적인 달러가 빠져나갈 것이고…….”
“그걸 거부한다면 홍콩을 뱉어내야 하죠. 여러분들이 중국이라면 뭘 선택하겠습니까?”
“이거야 원. 완전히 외통숩니다.”
“리벤지 파운데이션 우량 맴버가 바로 미국입니다. 보증금 아까워하지 말고 오늘 당장이라도 방 빼세요. 미적거리다가 폐품처리 되지 마시고.”
“공격은 언제부터…….”
주몽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씩 웃어 보였다.
“지금쯤 채권자가 도착했겠네요. 돈 갚으라고. 그리고 이 소식은 곧바로 해외토픽으로 뜰 겁니다.”
“비밀회담이 아니군요.”
“채권자가 눈치 볼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당당하게 돈 갚으라고 큰소리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소식이 알려지면 곧바로 대만에서 성명을 발표할 겁니다.”
“대만에서요?”
“그 채권 우리가 갚겠다고. 홍콩 반환 요청도 함께 할 겁니다.”
“하하하. 대만이 그렇게 나오면.”
“네. 중국은 무조건 돈을 토해내야 합니다. 이건 시간을 끌 수도, 끌어서도 안 되는 일이거든요. 5년 전 홍콩 사태 기억하시죠? 이 소식이 홍콩에 알려지고 시간이 지체되면 홍콩 시민들이 다시 들고일어날 겁니다. 겨우 봉합을 해 놨는데, 상처가 다시 찢어지면 이번엔 고름이 들어찰 겁니다.”
“중국으로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홍콩을 잃는 순간 영토는 둘째 치더라도 금융산업 절반이 송두리째 날아가게 될 테니까요.”
“1조 달러가 중국을 빠져나가는 순간, 각국 각 기업들은 달러 결제를 요구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외화보유고가….”
“빠르게 고갈되겠죠.”
“일본에 그랬던 것처럼 중국 위안화를…….”
“당연히 작살 내야죠. 위안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부동산 폭락은 가속화되고, 합자법인 49%만 인정하던 중국법을 바꾸는 순간, 우리는 물론이고 이번 작전에 참여한 각국 기업들이 중국 쇼핑에 들어갈 겁니다. 과거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판 IMF가 벌어지겠군요.”
“네. 존 오루크 대통령에게 이 방법은 제안했더니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더군요. 트롤프도 실패한 일을 임기 시작과 동시에 자신이 해결하게 생겼다고. 지지율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입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중국과 한국의 싸움이 아니라, 중국 대 세계의 싸움이 되겠군요.”
“대국이니 뭐니 하면서 있는 대로 자존심을 부리는 중국이지만, 이번엔 허리를 숙이는 게 아니라 무릎을 꿇어야 할 겁니다. 전쟁이 시작된 순간, 그간 중국이 벌였던 불공정 거래, 저작권 침해, 특허권 침해에 대해 본격적으로 소송이 시작될 겁니다. 나는 이번 기회에 중국이 다시는 대국 운운하는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확실히 망가트릴 생각입니다.”
주몽의 말에 제이코가 앞으로 나섰다.
“리벤지 파운데이션 회원국들에 컴퍼니 법무팀이 지원을 나가 있습니다. 늦어도 오늘 내로 중국의 불법적 행위에 피해를 본 국가들 모두가 소장을 제출할 겁니다. 회장님들도 그룹 법무팀을 총동원해 그간 당했던 불법 조치들을 모두 정리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