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장. 가격은 잘 쳐줄게.
필립은 야베가 주저앉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다는 듯 주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간은 얼마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한국의 건설사와 조선소가 힘을 합쳐 4년. 미국과 한국 모두 인정할 만한 인공섬. 그러니까 구조물이 만들어진다면 이사를 하러 가면 되는 것이고. 실패한다면 지금처럼 오키나와에 머무르면 그만입니다.”
미국 측으로선 한 톨의 손해도 없는 모든 게 유리한 조건이다.
주몽이 말한 인공섬이 만들어지면 땡큐. 실패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인공섬 프로젝트’에 대한 실무 자료를 얻어 낼 수 있으니 그 역시 땡큐다.
무지막지한 제안이긴 해도 만약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세계는 땅을 벗어나 바다로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주몽의 말에 야베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다.
“실패할 수도 있는 일에 왜 우리 일본이 돈을 내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일본 측 주장에 주몽이 쐐기를 박았다.
“실패하면 돈 안 받습니다.”
“네?”
“제작 비용은 내가 댈 겁니다.”
“회장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한국 협상단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들고 일어났다.
“아아, 다들 흥분하지 마시고. 끝까지 들어봐요.”
“…….”
“방금 말했던 것처럼 인공섬 제작 비용은 내가 선(先)지급합니다. 만에 하나 실패하게 된다면…… 뭐, 돈도 날리고 오키나와 할양도 어렵게 되겠지만. 만에 하나 성공한다면.”
주몽은 야베를 바라봤다.
“제작된 섬을 미국에 전달하는 건 일본이 책임을 져야겠죠. 섬 가져갈 때 가격은 잘 쳐 드릴게.”
“야메로―――!”
일본은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일에 제작비를 댈 수 없다고 했지만, 이건 처음부터 예상한 부분이다.
주몽은 일본에 제작비만 물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제작비는 말 그대로 기업이 물건을 만드는 비용이다. 주몽은 완성된 물품을 비싼 값에 ‘어쩔 수 없이 구매해야 하는’ 일본에 떠넘길 계획이다.
일본이 제작 비용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1의 비용이 전부겠지만, 주몽은 최소 3은 받아 챙길 생각이니 말이다.
자신의 돈으로 자국 기업을 먹여 살리고(그 기업도 주몽의 소유다) 자신은 그 물건을 팔아 다시 재산을 불릴 생각인 것이다.
주몽의 말에 야베가 입을 열었다.
“성공하면 그 섬을 우리가 사들여야 한다는. 그런 말이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주비용은 일본이 책임을 져야 하니. 자, 내가 한발 양보했으니. 일본도 양보를 해야 할 타이밍 같은데. 뭐, 실패한다면 비용을 댈 이유도 없고, 오키나와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음…….”
야베와 일본 관료들은 부정적 견해를 연신 내놓았지만, 미국 측 관계자들이 주몽에 힘을 실어줬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그리고 책임감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주몽은 필립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대충 정리가 끝난 것 같은데. 미국은 어떻습니까.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와이 낫.”
필립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몽의 손을 맞잡았다.
주몽과 필립이 악수를 하고 ‘이주’와 관련된 내용에 합의하자, 한국 측 협상단은 손바닥이 부서지라고 손뼉을 쳤다.
일본은 주몽과 미국의 협의를 어떻게든 무마시키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주몽과 한국 측 협상단보다 미국 측 관계자들이 더 세게, 강력하게 요청을 하고 나섰다.
5년 뒤 타국에 할양될 영토에 기지를 유지하는 건 국제법상 여러모로 문제가 된다며 어깃장을 놓기 시작한 것이다.
야베가 계속 앙앙거리자, 필립이 짜증스럽게 한 마디 뱉었다.
“일본은 본인들이 맺은 협정도 지킬지 모르는 삼류 국가였습니까?”
“그. 그럴리가요.”
야베가 고개를 숙이고 협정 이행에 약속하자, 영토 할양에 관한 세부 사항이 빠르게 정리됐다.
대마도와 오키나와는 5년 뒤, 한국 영토가 된다.
일본은 거주민 이전에 관한 모든 비용을 책임진다. (거주민은 오키나와 미군 기지도 포함된다. ― (일본 측 주장에 입각함) )
거주민(미군 기지) 이전에 필요한 비용 ― 제작 완료된 인공섬 ― 을 일본이 책임진다.
영토 협상 부분이 마무리되고 과거사 문제, 역사 문제에 대한 부분이 남았다.
이 부분은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해결할 것이 아니라, 양국 역사학자와 해외 역사 연구자들을 한데 모아서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동북아 역사는 한일 양국만이 아니라 중국은 물론이고 2차 대전 당시 피해를 본 동남아시아 모든 국가가 엮여 있기 때문이다.
2차 협상이 끝나고 일본은 시체처럼 협상장을 떠났지만, 한국과 미국은 따로 기자들을 불러 협상 내용을 대대적으로 홍보, 자랑했다.
한국은 해상 플랜트 산업의 새로운 출사표를 던졌고, 미국은 신개념 해외기지를 선점했다며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향후 태평양 곳곳에 인공섬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겠다고 야료를 떨었다.
필립과 왓슨의 설레발에 주몽이 질문을 던졌다.
“생각보다 심하게 떠드시네요. 중국과 러시아가 민감하게 반응할 것 같은데.”
주몽의 말에 필립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들으라고 한 소리 맞습니다.”
“네?”
“우리야. 공짜로 그것도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까.”
“따라서 만들고 싶으면 만들어라?”
“네. 상대국 돈을 낭비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고. 회장님 말씀처럼 건조 기술력은 한국이 최고가 아닙니까. 중국과 러시아 버전의 인공섬 프로젝트가 실제로 진행이 된다고 해도…….”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말이군요. 러시아는 그 정도 건조 능력과 시설이 없으니까요.”
주몽의 말에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만들고자 한다면 그렇게 되겠죠.”
“안 만들면요?”
“그럼 남중국해에 미국의 해상 요새가 떡 하니 자리를 잡는 거고.”
“푸하하하.”
주몽이 웃음을 보이자, 필립은 거기에 한 마디 덧붙였다.
“멀쩡한 배도 구멍이 숭숭 나게 만드는 나라가 중국 아닙니까. 결과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뻔하지 않을까요?”
필립이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와, 이 흉악한 새끼들. 이런 식으로 상대국을 엿 먹이네.’
주몽은 필립과 왓슨. 아니 미국적 도발 방식에 혀를 내 둘렀지만, 정작 필립과 왓슨, 존 오루크의 신정부는 주몽의 악랄함에 치를 떠는 중이다.
주몽의 제안을 전달받은 미국 정부는 인공섬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대해 낙관적 결론을 내놨다.
그동안 한국이 보여준 조선 능력과 건설 능력이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 회장이 바보가 아닌 이상 실패할 작업에 개인 사재를 밀어 넣지는 않았을 테니, 인공섬이 완성됨과 동시에 그 섬을 구매해야 할 일본을 생각하면…… 끔찍하군.’
5년에 걸쳐 배상금을 갚음과 동시에 다시 한번 천문학적인 돈을 내놔야 할 테니 아무리 일본이라고 해도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파산이라도 하는 날엔, 일본 전역에 빨간 딱지가 붙을 것이고 주몽 결정하에 이리저리 뜯겨 조각조각 팔려나가거나 폐품 처리될 게 분명했다.
‘고 회장에게 돈 장난은 절대 치지 말라고 해야겠군. 투자보다 누군갈 엿 먹이는데, 돈 쓰는 걸 즐기는 성격이야.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리겠어.’
‘일본은 제풀에 지쳐 쓰러질 테니, 차후 동북아 최우선 국가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될 터.’
필립과 왓슨은 각각 자신들이 속한 가문과 그룹에 대(對)한국 전략을 우호적으로 접근하도록 의견서를 제출할 생각이다. 친일본정책은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오키나와 기지를 인공섬에 모두 밀어 넣는 건 불가능 하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기지는 섬 곳곳에 종류별로 넓게 퍼져있는 상태다. 말이 인공섬이지 이 규모로는 만들 수도 없고, 만든다고 해도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 넓은 면적 대부분이 빈 공간 또는 훈련장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땅 아니라고 마구잡이로 쓰는 중이라고나 할까.
“현실적으론 그렇다고 봐야죠. 공군기지와 일부 캠프는 이전이 가능하지만, 훈련장까지 모두 인공섬에 밀어 넣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 부분은 어떻게 처리를 할 생각이십니까?”
“오키나와가 한국 영토가 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면 될 일이죠. 문제 될 게 있습니까?”
“하하. 그렇긴 하죠. 영토 협정이 끝난 다음엔 일본이 끼어들 구석이 없죠.”
필립은 오키나와를 잃은 뒤,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는 듯 웃음을 보였다.
“나도 현실적으로 물어보죠.”
“네. 말씀하시죠.”
“말이 인공섬이지 사실 바다에 떠 있는 공격 무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래서요?”
“중국의 해상 진출에 억제력은 충분히 발휘할 수 있으니, 남의 땅에 훈련소니 뭐니 만들어서 오염시키지 말고 그런 건 미국 본토에서 했으면 하는데. 오키나와에서 신병 모집을 할 것도 아니고 병사는 본국에서 훈련시켜 데려오면 되지 않습니까.”
“…….”
“싫습니까?”
“크흠. 그건 논의가 필요한 문제같군요.”
“논의는 무슨. 해상 요새를 공으로 얻었으면, 양보할 부분은 양보해 주세요.”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미군들의 사건 사고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새로 얻은 영토에서마저 그런 꼴을 보고 싶진 않았다.
사고를 쳐도 확실하게 법적 처벌을 할 수 있으려면 오키나와 내부에 미국법이 적용되는 땅이 없어져야 했다.
“여기서 답변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군요. 그 부분은 내부적으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겠다라. 영토 할양이 끝나고 나면 어영부영 달라붙겠다는 말이군.’
주몽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기어이 오키나와에 궁둥이를 붙이고 싶다면, 현재 한국이 맺고 있는 소파협정을 미국에 치우치지 않는 평등협정으로 바꿔야만 할 것이다.
소파가 개정되지 않는 한 군복 입은 미군은 한 명도 발을 들이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다.
말은 방 빼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은 주몽도 잘 알고 있다.
애초에 본토 운운하며 훈련소를 빼라고 이야기한 것도 소파를 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떡밥일 뿐이다.
“좋은 답변 기대하죠.”
“그래서 말인데, 인공섬 건조에 우리 미국도 한 발 걸치게 해 주십시오.”
“돈 한 푼 안 내면서 경험만 빼 먹겠다?”
“그럴 리가요. 한국에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예를 들면 실무검증이 끝난 원자력 엔진이라던가. 뭐 그런 거 말입니다.”
“흠.”
“거기다 섬을 무장하고 운영하는 쪽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지 않습니까. 세계 최고의 항모를 운영하는 미국입니다. 인공섬 운영에 대해서도 설계를 하는 데 도움 될 부분이 많을 겁니다. 무엇보다 비용 걱정 없이 뭐든 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거든요. 우리 쪽 계산에 따르면 최소 300억 최대 500억 달러는 소요가 될 거라 보던데.”
한화로 최소 30조. 최대 60조. 항모 한 척 건조 비용을 5조로 잡는다면 6척에서 12척을 동시에 건조하는 비용이다.
항모야 첨단 시설과 기술이 집약되지만, 인공섬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규모 적 측면에선 항모 수십 대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 될 것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말 그대로 바다에 떠 있는 엄청나게 크고 튼튼한 물통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 위에 건물을 짓든 공항을 만들던 그것도 아니라면 미사일을 처바르던. 그건 한국이 아니라, 일본과 미국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하하하. 그거 솔깃한 제안이군요. 오키나와에 군사 기지를 두지 않겠다고 답을 주신다면, 저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필립은 쓴 미소를 지어 보이곤 대화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일본은 필연적으로 파산 선고를 할 수밖에 없겠군요.”
필립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자신은 상대국을 도발시켜 비용 소모를 일으키는 정도지만 당신은 나라 하나를 통째로 말아 먹을 작정이지 않냐는 그런 눈빛이다.
주몽은 필립이 그랬던 것처럼 히죽 웃음을 흘릴 뿐, 일본의 미래에 대해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지켜보면 알겠죠. 한가지 명확한 점이 있다면, 향후 아시아 전략에 한국만 한 파트너는 없을 거라는 점입니다.”
“그 점에 대해선 이미 숙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고주몽 회장님.”
“나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실지도 모르는 분인데.”
“회장님이 도와주신다면 가능성이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카네기 가(家)는 고주몽 회장님과 깊은 우정을 나누고 싶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주몽과 필립은 서로 악수하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협상 내용이 발표되고, 인공섬 프로젝트가 널리 알려지자, 필립의 예상대로 중국과 러시아가 발끈하고 나섰다.
미국의 반응은 필립이 말한 것과 다를 바 없이 진행됐다.
― 너희들도 만들던지. 우린 안 말려. 오케이?
오키나와 할양을 위해 시작된 인공섬 프로젝트는 한때 무기 개발 경쟁을 일으켰던 것처럼 강대국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비좁은 땅이 아니라, 넓디넓은 해상에 영토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매력은 물론이고 새로운 형태의 토목(?) 공사를 통해 경기를 부양시킬 단초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침체 일로에 있던 조선 사업이 단숨에 부흥기에 접어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 이거 뭐냐? 그러니까. 미군 기지 핑계를 대며 영토 할양을 무마시키려 했다고?
▷ 어. 그런데 울 고 회장님께서 싸대기를 날려버리셨다.
▷ 쿠헤헤헤. 돈은 한국 기업이 벌고 명분은 고 회장님이 가져가셨네.
▷ 워워. 벌써 잊었냐? 그 기업들 다 회장님 꺼다.
▶ 쿠에에헤겍. 야베가 재주를 부리고 돈은 고 서방이 번 거잖아. 인공섬 그거 일본이 강제로 사야 한다면서?
▷ 이러니까 꼼수 부리면 안 된다니까. 결국엔 다 들통나잖아. 일본 캐 망함.
▷ 배상금에 인공섬 건조 비용까지. 아주 죽자고 달려든 셈이구만.
▶ 그런데, 인공섬 건조 실패하면 돈도 날리고 오키나와도 날아가는 것 아님?
▷ 하, 이 새끼가. 야, 재수 없는 소리는 2cl 가서 해! 정화수 떠 놓고 기도를 해도 모자랄 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