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장. 재주는 야베가 부리고 돈은 고 서방이 번다.
주몽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컴퍼니 방에 들어섰다.
“어? 협상이 벌써 마무리되셨습니까?”
제이코를 비롯해 컴퍼니 직원들은 ‘영토 협상인데 벌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일본이 꼼수를 들고 와서 살짝 짜증 나게 하네.”
“꼼수라면 어떤.”
제이코의 질문에 주몽은 ‘설명은 나중에.’ 하더니 천기득 회장과 연결을 하라고 했다.
“네. 보스.”
호텔 방에 설치된 화상 스크린에 잠시 뒤, 천기득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 총 회장님. 늦은 시간에…… 아, 그쪽은 밝은 대낮이겠군요.
“미안해요. 자다 일어나셨나 봐요.”
― 하하. 그럴 리가요. 뉴욕 못지않게 이쪽도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대왕에 조선소 있죠.”
― 물론이죠.
“요즘 조선 쪽 경기가 엉망이라고 들었는데, 사정이 좀 어떤가요?”
― 그게. 세계적 추세라…… 대왕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인지라.
천기득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잘됐네요.”
― 네? 잘 됐다니요.
“대왕뿐 아니라 다른 계열…… 아니 그룹들도 조선업은 다들 어렵다는 거죠?”
주몽의 질문에 천기득이 고개를 끄덕였다.
― 네. 말씀드렸다시피 조선 쪽은 세계적으로 침체된 상태라.
“천 회장님. 대왕 외에 조선소 가진 그룹 회장들 모두 호출해 주세요.”
― 호출이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천기득은 무슨 일인데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거리 좀 주려고요.”
― 하하하. 굉장히 바쁘신 거로 알고 있는데, 그 와중에 배 수주까지 하신 겁니까?
천기득은 반가운 소식이라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10여 분 뒤, 다시 연결된 화면은 천기득 회장뿐 아니라 계열로 조선소를 가지고 있는 그룹 회장들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 나눠진 화면에 얼굴을 내민 회장들은 천기득 회장에게 조선소 일거리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다.
“지금부터 내가 질문 몇 가지를 할 겁니다. 가능성 유무를 답해 주세요.”
― 네. 총회장님.
“바다에 배가 아닌 섬을 띄우려고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 네? 배가 아니라 섬이요?
― 섬이라면 인공섬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인공섬이라고 하면 적당하겠군요.”
― 혹시 용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
“용도랄 것도 없습니다만. 일단 해상공항? 또는 요새라고 해 두죠. 기동성까지 바라진 않지만 느리더라도 이동은 가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첫째도 튼튼, 둘째도 튼튼해야겠죠.”
― 항공모함이군요.
“개념은 그렇습니다만, 항공모함처럼 기술집약적 선체는 아닙니다. 말 그대로 섬입니다. 바다에 둥둥 떠 있으면 되고, 크기는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을 것. 그리고 군함이 접안할 수 있는 항만과 부대시설이 포함될 것 등입니다.”
― 그냥 떠 있기만 하면 된다는 말입니까?
“네. 그게 핵심입니다.”
― LNG선처럼 기술집약선도 아니고 바다에 띄우기만 한다면 못할 것도 없죠.
“가능하다는 말이죠?”
― 네. 막말로 바다에 띄우기만 하는 거라면, 조선소가 아니라 건설사가 나서도 됩니다.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도 공기층만 설계하면 둥둥 떠다닙니다.
“철근 콘크리트로요?”
주몽은 그게 가능한 일이냐며 천기득 회장을 바라봤다.
― 가능합니다. 물에 띄운다는 개념은 생각보다 복잡한 게 아니니 말입니다. 단지, 얼마나 빠르게 안정적으로 이동을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아니요. 말했다시피. 기동성은 포기해도 좋습니다. 느리더라도 움직이기만 하면 되고, 튼튼하게 바다에 떠 있을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 물론 규모적 측면에서 보면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겠지만, 우리는 한국인입니다. 불가능은 없습니다! 사막에 도시를 만들고, 돛단배밖에 없던 나라에 조선소를 세워 세계 1위 먹은 나라가 한국 아닙니까.
“하하. 그건 그렇죠. 듣기만 해도 힘이 납니다.”
― 기간과 비용은 어떻게 됩니까?
“기간은 4년. 비용은 실비로 처리될 겁니다.”
― 자세한 사항은 전문가들을 데리고 계산을 해 봐야겠지만, 돈만 충분하다면 못 만들게 뭡니까. 인력은 전국에 있는 조선소와 건설사를 동원하면 됩니다. 건설 경기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라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막말로 그 돈 들여 인공섬을 만들겠다는 자들이 없어서 안 만들었을 뿐이지, 자본만 충분하다면 인공섬이 아니라 우주선도 띄울 수 있습니다!
회장단은 가슴을 쿵쿵 두들겨대며 맡겨만 달라고 했다.
다분히 오버하는 분위기가 섞여 있었지만 안될 일에 저렇게까지 자신감을 비치진 않을 것이다.
주몽의 제안은 조선 사업이 침체 일로에 빠져 돈만 까먹고 있던 그룹 회장들에겐 그야말로 감로수가 내려진 것과 진배없었다.
“좋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만들 수 있다’ 이거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준비되는 대로 보고해 주세요.”
― 네. 회장님.
주몽은 화상 통신을 마치자, 곧바로 협상장으로 돌아갔다.
* * *
시간을 확인하던 한국 측 협상단이 초조한 눈빛으로 김덕영을 바라봤다.
“회장님이 늦으시는데요.”
“기다려봅시다.”
김덕영 역시 불안한 마음이지만, 협상단을 다독였다.
야베와 일본 측 협상단은 김덕영과 한국 협상단을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음을 흘렸다.
“기다리면 뭐하나. 방법이 없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습니다.”
쿵!
거칠게 문이 열리면서 휴정을 선언했던 주몽이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미안합니다.”
주몽은 한국과 일본, 미국 관계자들에게 사과하더니 곧바로 자리에 앉았다.
“다시 협상을 시작해 볼까요?”
주몽의 말에 야베가 입을 열었다.
“방법이 없는데, 협상에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거야 모를 일이죠.”
주몽은 미국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국분들 내가 제안을 하나 할까 하는데 말입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기지 이전은 어렵지만, 당선자께선 회장님이 서운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오키나와의 지리적 장점을 포기할 필요도 없고, 군사적으론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기지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네?”
필립 케네디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 그대로입니다. 오키나와의 지리적 이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좀 더 효율적으로 기지를 운영할 수 있다면 이전을 할 수 있겠냔 말입니다.”
“지리적 이점을 잃지 않고, 더 효율적 방법이라. 그런 방법이 있다면 충분히 고려할 수 있겠죠.”
필립 카네기는 못 할 것도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미국이 먼저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섬을 만들어 드리죠.”
“네? 뭘 만들어요?”
“인공섬을 만들어 해상 요새. 그것도 움직이는 요새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고주몽 회장!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오키나와 기지가 얼마나 큰지 알고는 하는 소립니까?”
기지를 이전할 수 있는 섬을 만들겠다는 말에 일본 측 관계자들과 야베가 곧바로 언성을 높였다.
필립 카네기 역시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눈을 껌뻑였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이런 일에 농담하겠습니까? 당연히 진심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아!”
“아니! 가능합니다. 방금 한국 기업들에 문의하고 오는 중입니다. 다들 아실 겁니다. 세계에서 배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주몽의 말에 국방부 장관 내정자 왓슨이 부정적 견해를 비췄다.
“고 회장님. 항공모함을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아니요. 항공모함이 아니라 섬입니다. 아일랜드!”
“허허.”
왓슨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좋습니다. 인공섬을 만들 수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기지가 이전하려면 그 크기가 얼마나 될지 가늠은 하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건 미국 쪽에서 고민할 부분이 아닐 텐데요. 튼튼하고 이동성 있는,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으며 군함이 접안할 수 있는. 그런 시설이 존재한다면 이전을 못 할 것도 없지 않을까요?”
“회장님 말씀대로 그런 섬이 존재한다면…… 못할 것도 없죠. 하지만 지금은 말뿐이지 않습니까.”
왓슨의 말에 야베가 한 손 거들었다.
“실물이 있지도 않고 증명된 적도 없는 그런 인공 구조물로 우릴 현혹하려 드는군요.”
“그거야 지켜보면 알 일이죠.”
“흥. 말로야 무슨 소릴 못해.”
야베는 필립 카네기에게 주몽이 하는 말은 헛소리에 불과하다며 귀담아듣지 말라고 했다.
“미스터 카네기. 야베 수상 말대로 지금 당장은 말뿐입니다만, 현실성 있는 실현 가능한 청사진을 가지고 오면 진지하게 임해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현실성 있는 실현 가능한 청사진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그래야죠. 이게 실현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장님 말씀대로 그런 해상 요새가 존재한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군요. 오키나와 기지 규모의 이동형 해상기지라니.”
필립이 처음과 달리 긍정적 반응을 보이자, 야베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청사진이 있다고 해도! 그런 섬을 만들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갈 것이요. 오키나와가 아무리 탐이 난다고 해도 한국 정부가 그런 일에 돈을 쓰려 들겠소?”
야베의 말에 주몽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 돈을 왜 한국 정부가 냅니까?”
“그럼 미국 측에 부담을 시키겠다는 말입니까?”
필립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미국은 이사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그럼 비용을 어떻게…… 설마, 고 회장님 사비로…….”
“에이. 내가 미쳤습니까? 내 섬도 아니고 미국이 이용할 설비에 사비를 들이다뇨.”
주몽의 말에 다들 아리송한 표정이 됐다. 그런 섬을 만들 수 있다고 쳐도 제작 비용이 없다면 말짱 꽝이지 않은가 말이다.
“자, 여기 협정문을 보시면. 대마도 오키나와 거주민 이주를 5년 안에 마친다. 그리고 이주에 들어가는 비용은 일본에 책임을 진다. 이렇게 쓰여있군요.”
주몽은 협정문을 펼쳐 들고 야베가 그랬던 것처럼 탁탁 신경질적으로 두들겼다.
“지금 그게 무슨!”
“협정 문구를 가지고 먼저 장난을 친 쪽은 일본입니다. 그게 억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진지하게 협상에 임했습니다. 미스터 카네기. 내 말이 틀렸습니까?”
필립은 야베와 일본 측 관계자들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주몽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회장님은 일본 측 요구를 충실히 받아들였고, 그에 맞춰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그…… 그런!”
“문구 하나로 오키나와를 지켜내려던 일본에 비하면…… 고 회장님이 집어 주신 항목은 그 자체만으로도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는 그런 내용이군요.”
“…….”
야베는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더듬 입술만 떨어대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초…… 총리대신!”
“정신 차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