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장. 일본의 꼼수.
협의 전에 먼저 할 말이 있다고 했던, 일본 측은 편하게 말을 하라고 했음에도 주몽의 눈치를 봤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편하게 합시다. 이 자리는 협의를 위한 자리니 그쪽도 요구사항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야기할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주몽은 괘념치 말고 이야기하라고 다시 한번 말을 건넸다.
‘젠장, 편하긴 누가 편하단 말인가. 여기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가시방석이 따로 없는데.’
주몽과 한국 측은 받아 가는 입장이고 자신들 쪽은 탈탈 털어서 쌈짓돈까지 내놔야 할 처지다.
자리를 보고 누우랬다고 주몽을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간 금세 또 꼬투리를 잡힐 것이다.
“흠.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할 생각이 없는 듯하니…….”
“아닙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본 관료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누구……?”
“아, 저는 방위성 대신을 맡은…….”
“아아. 방위성.”
주몽은 이름까지는 필요 없다는 듯 이제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방위성 대신은 떨떠름한 표정이 됐다.
누구냐고 묻더니 소개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잘라버리다니. 이 무슨 경우 없는 짓이란 말인가.
“왜 그런 표정입니까?”
“크흠.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게…… 오키나와 문제입니다.”
“오키나와에 문제가 있습니까?”
“네. 할양과 관련해 적잖은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고 회장님이나 한국 측 대표단 역시 익히 아시겠지만.”
“익히 아는 바는 없으니 대충 둘러서 이야기하지 말고 정확히!”
“하이. 미군 부대 문제입니다.”
“오키나와에 미군 부대가 있었나요?”
주몽은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저저!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일본 측 협상단은 주몽의 태도에 속이 끓어 올랐지만, 최대한 몸을 낮추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도 주둔부대가 있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죠. 그래서요?”
“말씀드렸다시피. 오키나와엔 미군이 주둔하고 있어서 할양에 심각한 문제가…….”
“그게 문제가 되나요?”
“하이. 오키나와를 할양하게 되면 미국과 체결된 여러 사항이…….”
“그러니까. 오키나와를 우리에게 넘기고는 싶은데, 미국 때문에 걸리는 게 많다? 뭐 이런 이야기죠?”
‘넘기고 싶은 게 아니라! 넘기기 싫다는 말이라고!’
어영부영 자신들의 진의를 왜곡해 반문하는 주몽의 태도에 일본 측 관계자들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주몽은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있냐는 듯 한국 측 협상단을 바라봤다.
그런데, 미국과 주둔부대 이야기가 나오자 한국 협상단 쪽도 난감한 표정이 가득했다.
다른 문제라면 모르겠지만 한국도 주한미군과 함께 하는 처지이다 보니… 그 때문에 일본이 어떤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일부 이해가 됐다.
“김 대표님. 이게 문제가 되는 건가요?”
김덕영은 한국 협상단들과 눈빛을 나누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도 주한미군 문제는 풀어내기가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일본 측 의견도 일부 일리가 있습니다.”
김덕영의 대답에 주몽은 ‘그래요?’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번엔 일본 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국 문제만 해결되면 문제없는 거죠?”
‘미국 문제가 풀어낼 수 있는 문제면 우리가 꺼내 들지도 않았다!’
일본 측 관계자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하이. 그 때문에 미국 측에 문의를 해본 바…….”
“기지를 옮길 수 없다고 했구나.”
“하이. 하이.”
정확히는 그들이 옮길 수 없다고 버티는 게 아니라, 옮길 수 없는 처지다.
오키나와는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전략의 주요거점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절대 옮기지 말아 달라고 뇌물까지 뭉텅 먹여 놨다.
대마도나 오키나와나 관광이 주 수입원인 곳이지만, 대마도는 한일 경제 문제가 터지면서 연일 적자에 시달렸고 지금도 빚에서 허우적거리는 상태다.
하지만 오키나와는 한국과 거리도 멀뿐더러 주둔 미군이 소비 주체라 관광 외에도 수입이 상당했다.
관광 수입 때문에 이러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부수적 항목 중 하나일 뿐이다.
오키나와의 미군은 중국의 남하를 경계하고 적성국들의 위협 또는 공격에서 일본을 보호하는 ‘우산’ 역할을 해주고 있다.
거기다 한국은 일본만큼이나 미국에 저자세인 국가다.
미군이 오키나와에서 버티고 있는 그것만으로도 한국이 제멋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견제하고 일본 측 입장에 서서 스피커 역할을 해줄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오키나와 할양에 미국과 미군을 끌어들이면 한국 측도 억지를 부리기 어려울뿐더러 영토 할양 문제에 있어 협상에 난항을 만들 수도 있다.
일본은 이런 이점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담금 인상을 미국 측에 넌지시 알려놓은 상태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호의적 반응을 내놓았고, 오키나와 기지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한국이 오키나와를 가져가려면 미국을 넘어서야 하는데, 그건 누가 봐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에서 답을 받아 놨다. 고주몽 네 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번엔 쉽지 않을 거다.’
일본은 내부적으로 대마도는 포기하더라도 오키나와는 어떻게든 지켜낸다고 결의를 마친 상태다.
“내가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닌데. 이해가 안 되네.”
주몽은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협의안에 따르면, 영토 할양은 5년 뒤. 조건은 할양할 땅을 완전히 비우는 겁니다.”
“그건 거주민 문제 아니었나요?”
“거주민은 예시의 하나였습니다. 협의 항목 6항을 보면, 할양될 영토는 완벽히 비우고 땅만 넘긴다입니다.”
“그 말은 미군 기지도 비워야 할양할 수 있다?”
“협의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일본 측 답변에 주몽은 ‘허허’ 웃어버렸다.
뻔히 보이는 꼼수지만, 확실히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억지에 가까운 사항이지만, 양측 협의 사항을 따지고 들면 얼마든지 문제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영토에 관련된 사항이니 절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당시 협의 땐 원활한 영토 할양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꾸로 발목을 잡는 부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저렇게까지 이야기할 땐, 미군 기지 이전이 절대 불가능하게 사전 작업을 마쳤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흠. 미국이라…….”
“하이. 미국입니다.”
일본 측 관계자는 바로 그게 가장 큰 문제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도 난감한 입장이라는 듯.
“종합해 보자면, 오키나와를 넘겨주고 싶은데, 미군 기지가 그곳에 주둔하고 있어서 미국과의 관계가 1차 문제이고. 미국과 협의를 마친다고 해도 미군이 그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하니 2차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오키나와 할양이 어려울 것 같다?”
“하이. 이 부분은 우리 일본 측 의견 만으론 해결이 되지 않는 부분이라…… 그래서 오키나와 할양을 다른 형태로 대처하는 건 어떨지…….”
“저스트 모먼트.”
“에?”
주몽은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곧바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헬로우? 예스. 아이엠 고주몽.”
주몽이 통화를 시작하자. 일본, 한국 측 협상단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오키나와 미군 기지 때문에 일본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는군요. 네. 네. 물론 미국 상황도 이해를 합니다.”
분위길 보니, 이 문제에 대해 미국 측에 직접 문의를 하는 것 같았다.
“물론입니다. 한국은 미국의 혈맹 아닙니까. 당연히 이해합니다.”
주몽의 입에서 미국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일본 측 협상단은 미소를 한국 측 협상단은 ‘고 회장님도 미국엔 안 되는 건가……’ 하는 표정이 됐다.
“그래서 말인데, 사람 좀 보내주시죠. 아, 그렇습니까. 딱 적임자군요. 그럼 얼마나…… 아, 마침 근처에? 좋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주몽이 통화를 끝내자 양측 협상단은 궁금한 표정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회장님?”
김덕영이 대표로 ‘궁금증’을 표했다.
“일본 측 말이 맞습니다. 오키나와 미군 기지는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군요.”
“아…… 결국 그렇습니까.”
“아시아 태평양 전략의 주요거점이라는데, 그걸 무작정 옮기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습니까.”
“네. 이해합니다.”
김덕영과 한국 협상단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측 협상단은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듯 입 끝이 실룩거렸다.
“그렇다고 할양 문제를 어설프게 정리할 수는 없는 일인지라…… 일단 사람 좀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사람을요?”
“이번 정부에 국무장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라는데. 마침 유엔 본부에 일이 있어서 와 있다는군요.”
차기 정부 국무장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가 이곳에 온다는 말에 양측 협상단은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국무장관, 국방부 장관이면 미 행정부 최상위 서열이다.
물론 예정자에 불과하다지만 이미 내정까지 된 상태면 그들의 결정을 미국의 입장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방금 누구와 통화를 하신 겁니까?”
“존이요.”
“존이요?”
“존 몰라요?”
“그게…… 존이라는 이름은 생각보다 평범한 이름이라.”
“아, 김씨. 이씨 뭐 이런 느낌인가?”
“하하. 네. 비슷합니다.”
김덕영은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대통령 이름은 생각보다 흔한 이름이었구나. 성이 특이해서 유니크하다고 생각했는데.”
“누…… 누구요?”
“다음 달에 백악관 주인이 될 존 오루크 말입니다.”
“조…… 존이 그 존이었습니까?”
김덕영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본과 한국 측 협상단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그럼 다른 존도 있습니까? 국방부, 국무부 장관 내정자를 오라 가라 할 정도면 당연히 그 존이죠.”
“하하…… 하하하하.”
김덕영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일본 측이 뗑깡을 부리자 최종결정자인 차기 대통령과 직통으로 그것도 대기 시간, 중간 관리자 없이 바로 통화를 했다는 말 아닌가.
“표정이 왜 그럽니까?”
“노…… 놀라서 그렇습니다.”
“존과 통화한 게 그렇게 놀랄 일입니까?”
김덕영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 간 핫라인도 이런 식의 통화는 불가능하니까요.’
“그런데 존 오루크 당선자와는 언제…….”
“친굽니다.”
“아. 친구…… 네? 친구요?”
“뭘 그리 놀랍니까?”
주몽은 김덕영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한국 대통령은 내 가신이자 차기 집사장 자리를 내정 받았습니다. 미국 대통령 정도는 친구 먹어야 레벨이 맞지 않을까요?’
‘아아. 아아아. 아!’
김덕영은 말을 못 하고 연신 감탄사만 흘려댔다.
“회장님. 아시죠. 저 김덕영도…….”
“그럼, 당연히 알죠.”
주몽이 이를 말이냐며 고개를 끄덕이자, 김덕영은 뽕 맞은 표정이 됐다.
“뭐, 아무튼, 이 문제는 두 사람이 도착하면 다시 논의하기로 하죠.”
주몽이 휴식 시간을 갖자고 하자, 일본 측 협상단은 재빨리 자신들 구역으로 이동했다.
오키나와 할양에 대해 넘을 수 없는 벽을 가져다 놓았는데, 느닷없이 대통령 당선자 존 오루크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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