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장. 착한 아이가 될 때까지. 3
뉴욕에서 야베의 사과 장면이 송출되고 있을 무렵, 한국에선 부역자 체포 작전이 본격적으로 실행했다.
체포 영장과 수색 영장을 손에 쥔 검사와 수사관이 앞장을 서고 일명 닭장차라 불리는 전경 버스와 경찰 일개 소대가 이들을 보좌, 호송 임무를 담당했다.
법원에선 영장 발부와 별개로 이들의 출국 금지 및 유동, 부동 자산을 동결시켰다.
늦은 밤에 펼쳐진 작전이었기에 부역자 대다수가 집에서 체포됐지만, 일본의 패망과 과거사 반성 등의 사태에 되레 울분을 토하며 지랄을 하다 술집에서 체포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단순히 돈 때문에 나라를 판 게 아니라, 정신까지 썩어버린 놈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승리와 영광을 자신의 성공과 동일시 하니 그냥 ‘정신병자’나 다름없었다.
이번 체포 작전은 일본 부역자 외에도 미국과 중국에 정보를 팔아넘긴 자들도 포함돼 있었다.
일본 쪽 부역자들이 대다수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잔재였다면 미국과 중국에 정신을 팔아먹은 자들은 신(新) 부역자 또는 반역자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아? 어디서 감히!”
전직 국회의원 최재길이 검사와 수사관들에 삿대질했다.
“니들 상관이 누구야? 엉?”
“인천지검장님이십니다만.”
“인천지검장? 아. 장수철이. 장수철 맞지?”
“네. 우리 지검장님 성함 장수철 맞습니다.”
“내가 말이야! 니들 지검장이랑! 엉? 대학 동기야! 엉? 내가 국회의원 할 때 장수철이 지검장 만들어준 사람이라고! 엉?”
“아이쿠. 그러셨습니까?”
“그래! 그런데 이게 뭐 하는 짓들이야!”
최재길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게 뭐 하는 짓일까요.”
“뭐야? 너 이 새끼. 이름이 뭐야!”
“인천지검 검사 이하림입니다.”
“너 이 새끼. 내가 이름 기억해 놓는다. 지방으로 좌천되고 싶지 않으면…….”
“제가 좌천되는 것보다 최재길 씨가 감옥에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뭐? 최재~기일 씨? 장수철, 이 새끼. 부하들을 어찌 교육했기에.”
“우리 존경하는 장수철 지검장님을 왜 욕하고 그러실까요.”
이하림 검사는 영장을 꺼내 최재길 눈앞에 흔들어댔다.
“영장? 그래서 뭐? 나를 체포하겠다고?”
“아이쿠. 검사 출신이시라 영장은 곧바로 알아보시네요. 박 수사관 뭐하냐. 빨리 수갑 채워드리지 않고.”
“뭐…… 뭐야. 이거 안 놓아! 너 이 새끼!”
최재길이 몸을 흔들어대며 완력을 행사하자, 이하림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어쩌면 하나 같이 반응이 이렇게 똑같냐. 어디서 단체로 과외라도 받으신 건가?”
이하림은 수사관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수사관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최재길을 때려눕혔다.
“억! 폭력을 써? 니들 다 고소!”
“네네. 꼭 고소해 주십시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불리한 증언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왜 이러세요.”
“뭐?”
“왜 체포에 불응하시고 그러시냐고요. 아이쿠! 검사 잡네!”
“야. 내가 언제!”
이하림을 말을 하다 말고 자신의 이마를 벽에 들이받았다.
쿵!
“너……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최재길이 기함한 표정으로 소릴 질렀지만, 이하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번 머리를 박았다.
쿵쿵!
“저…… 저 미친놈. 검사라는 놈이 자해공갈을 하냐!”
쿵쿵쿵!
“아오. 아프기만 하고 피가 안 나네. 이러면 티가 안 나는데.”
“에헤이. 검사님 그래서 되겠습니까? 내가 도와드릴게요.”
수사관 한 명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장식용으로 세워진 도자기 하나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와장창!
수사관을 도자기 파편을 집어 들더니 ‘그런데 진짜 합니까?’ 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합니까. 최재길 씨가 체포에 불응해서 검사를 폭행하잖아요.”
“크흐흐. 하여간 우리 영감님 또라이라니까. 내가 흉 안 남게 잘해 드릴게.”
또라이 검사랑 짝짜꿍하는 또라이 수사관이 손에 들고 있던 도자기 조각으로 이하림 검사의 이마에 길게 생채기를 냈다. 표피만 긁은 정도지만 그래도 상처라고 피가 흘러내렸다.
이하림은 얼마 되지도 않는 피를 손에 묻히더니 얼굴 이곳저곳에 로션처럼 문질렀다.
이하림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재길을 바라보며 씩 웃음을 흘렸다.
“으아아아아아악! 피의자가 사람 잡는다!”
이하림이 죽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감싸자, 수사관들이 ‘이런 미친!’하면서 최재길에게 달려들었다.
“야! 흉기부터 뺏어! 검사님 목숨이 위험하잖아!”
수사관들은 있지도 않은 흉기를 언급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악! 뭐야. 야, 이 새끼들아 이게 뭐 하는 짓들이야! 니들 미쳤어?”
“그래 우리 다 미쳤다! 이 반역자 친일파 새꺄!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비명횡사하셨어!”
수사관들은 애초부터 멀쩡히 체포할 생각이 없다는 듯 최재길을 사정없이 밟아 버렸다.
밖으로 끌려 나온 최재길의 모습에 지원을 나와 있던 경찰이 한숨을 쏟아냈다.
“검사님. 똡니까?”
“에헤. 이거 보세요. 피의자가 체포 불응에 검사 폭행까지 했습니다. 여기 피 나는 거 보이시죠?”
“네네. 아주 잘 보입니다. 피가 철철 나서 수혈받아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요.”
“아 쫌!”
경찰은 또라이 짓 그만하고 평범하게 체포하면 안 되겠냐며 하소연했다.
“검사님이 체포한 피의자들 다 엉망이란 말입니다. 이러다 나중에 문제라도 제기하면…….”
“걱정 붙들어 매시고. 자, 다음은 누굽니까. 날 밝기 전에 다 잡아넣어야죠!”
“진짜. 이러다 검사님 목 날아간다니까요.”
“그거 반가운 소식이네요.”
“네?”
“사표를 내는 건 안 되지만, 근무 중에 목이 날아가는 건 괜찮거든요.”
이하림 검사의 말에 담당 경찰은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듯 눈을 껌뻑였다.
“회장님 말씀입니다.”
“회장님이라면…… 울 고 회장님?”
처음엔 인터넷에서 몇몇 네티즌이 사용하던 ‘울 고 회장님’이라는 표현이 이젠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보통 명사처럼 사용이 됐다.
“네. 울 고 회장님 말씀입니다.”
담당 경찰이 이하림에게 쓱 달라붙더니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즉에 말씀하시지.’
‘우리가 지금 잡으러 다니는 놈들이 어떤 놈들입니까?’
‘국가 반역자죠.’
‘우리 지청장님이 회장님 라인이지 않습니까.’
‘호오. 그렇습니까?’
‘지청장님 말씀이.’
‘네. 말씀이…….’
‘저 인간들 탈탈 턴 다음에 국적 박탈해서 나라 밖으로 쫓아낸답니다.’
‘감옥에 보내는 게 아니라 국적 박탈요?’
경찰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경위님도 아시겠지만, 국적 박탈되면 새로운 국적을 얻을 때까지 법적으로 보호를 받지도 못하고 어디 하소연도 못 합니다. 한 마디로 국제미아, 좀 더 고상한 말로 국제적 잉여가 돼버리는 거죠.’
‘하이고. 인생 웃기게 돼버리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조만간 존재 자체가 무시될 텐데 고소는 무슨 고솝니까? 증거는 이미 차고 넘치고 판결은 떼 놓은 당상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보니, 어떻게든 잘리려고 용쓰시는 중이셨네.’
‘히히. 뭐.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아무튼 요즘엔 검사하는 맛 납니다.’
‘에이 그런 일이 있었으면 빨리 좀 알려주시지.’
‘왜요? 경위님도 재들 패시려고?’
‘아니요. 우리 애들이 저것들 수발든다고 생고생 중이지 않습니까.’
귓속말을 끝낸 담당 경찰은 닭장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박 수경.”
“네. 소대장님.”
“고소니 뭐니 지랄 떨어도 그냥 무시해도 된다.”
“네? 그러다 문제 생기면 소대장님 진급에 치명타입니다. 저야 제대하면 그만이지만.”
“됐다. 내 진급을 니가 왜 걱정하냐.”
“에이. 같이 지낸 세월이 있는데.”
박 수경은 그러면 되겠냐며 오히려 소대장을 걱정했다.
“하이고. 마 됐다. 그 인간들 고소는커녕 고소장 구경도 못 할 끼다. 그러니까. 무시해삐라!”
“우리 소대장님 사투리 쓰는 거 보니까. 또 흥분하셨네. 진짜로 그렇게 합니다.”
“해삐라! 내가 다 책임진다!”
이하림은 두 사람의 모습에 히죽 웃음을 흘리더니 수사관들과 지휘 차량에 올라탔다.
“고고! 다음 놈 잡으러 갑시다!”
* * *
유엔 본회의장에서 벌어진 과거사 반성, 사과 발언에 2차 대전 피해국들이 모두 환호하는 가운데, 야베 정부를 규탄하고 협정 무효를 외치던 일본인들은 이런 모든 행위를 부정하며 조작된 방송이라고 했다.
하지만, 과거사 방송이 세계로 송출되고 나서 일본 내 작은 변화가 감지됐다.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든 관심이 없던 일본 청년층들이 중, 노년층 반대편에서 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시위 구호는 ‘할머니 죄송합니다.’와 ‘국제 협약 준수’ 그리고 ‘전쟁 반대’,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다.’였다.
의사당 앞에서 마주친 양측 시위대는 각각의 구호를 외쳐댔다.
“음모를 꾸민 한국과 고주몽을 처단하자!”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다.!”
“위안부는 없다. 그들은 돈을 받고 몸을 판 창녀들이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영토를 지키는 방법은 전쟁뿐이다!”
“전쟁 반대! 평화 수호!”
처음엔 각각 구호를 외치는 선에서 영역을 지켰지만, 지지자들이 모여들고 세력을 형성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특히 재일한국인 특혜 반대를 외치며 온갖 헛소리를 반복해온 재특회 인물들이 진영에 합류하자 시위 양상에 변화가 일었다.
재특회는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시민단체이며 정식 회원 수가 14,000명이 넘는 과격 단체였다.
온갖 막말과 극우 민족주의로 무장한 재특회 회장 마코토가 마이크를 잡고 단상에 올랐다.
“우리는 재일한국인의 특혜를 용납할 수 없다!”
“옳소! 더러운 한국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라!”
재특회 회원들이 마코토의 발언에 와! 하고 손뼉을 쳤다.
“재일한국인의 통명 사용을 금지해라!”
“일본에 살면서 한국 이름을 쓰는 건 무슨 추태냐!”
“한국말이 좋으면 한국으로 떠나라!”
“일본에선 일본말을 쓰고 일본 이름을 써라!”
“한국 이름을 쓰면서, 일본인인척하는 조센징들은 모두 이 땅을 떠나라!”
재특회 회원들과 마코토의 외침이 기세를 높이자, 전쟁 반대, 평화 수호를 외쳤던 신진 세력들은 곧바로 위축감을 느꼈다.
시위대 숫자도 그렇지만, 평소 재특회가 벌여온 시위 형태가 자신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반대, 평화 수호를 구호로 내걸었던 쪽은 충돌 사태가 나지 않기를 바라며 후퇴를 시작했다.
그런데 마코토 세력은 그걸 ‘승리’의 신호로 해석했고 ‘진격’의 순간으로 받아들였다.
“일본의 배신자들을 응징해라!”
“한국 편을 드는 배신자들이다!”
“용서할 수 없다!”
재특회 합류로 힘을 얻었던 세력은 시위 분위기가 갑자기 험악해지자, 불안한 눈빛이 됐다.
반대 시위를 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 이익이 침해를 당했기 때문에 그걸 알리고자 함이지, 같은 일본인을 공격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위기에 휩쓸린 몇몇 시위자들이 재특회 회원들과 함께 앞으로 나갔고 곧바로 문제가 터졌다.
“죽여라!”
“천황폐하 만세!”
“대 일본제국의 영광이 있기를!”
“와!”
손에 들고 있던 피켓이 몽둥이가 되었고, 거리에 있던 물건들은 투척물이 되었다.
수십에 불과했던 평화파 시위자들은 피를 흘리며 거리에 쓰러졌다.
야베의 욕심과 야욕으로 시작된 21세기 신(新)정한론은 일본 내부에 분열을 일으키며 새로운 양상을 만들어냈다.
야베가 바라마지않던 구호들이 하나둘 등장을 하더니 점차 세력을 키우며 열도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기 시작했다.
“영토를 빼앗기느니 전쟁을 하고 말겠다!”
“한국인들을 모두 죽여라!”
“야베 총리를 지지한다!”
“전투엔 졌지만, 아직 전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러시아도 물리치고, 미국과도 동수를 이뤘던 일본이다. 한국 따위 왼손으로도 물리칠 수 있다!”
“와! 천황폐하 만세!”
* * *
일본에서 기이한 열기가 피어올라 내부적 갈등이 심화하고 있을 무렵, 일본과 한국의 2차 협상이 시작됐다.
야베와 관료들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지만, 한국 측 협상단은 그야말로 기세등등했다.
오늘 협의 안건은 ‘불가역적 과거사 문제 해결’과 ‘영토 할양에 대한 방법’이다.
주몽이 모습을 드러내자, 양측 협상단은 자동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네. 제가 좀 늦었죠?”
“아이고 늦기는요. 회장님이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시는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럼요. 회장님이 기다리고 하면 몇 날 며칠이라도 기다려야죠.”
“하하. 농담들도 잘하십니다.”
“농담은요. 진심입니다. 진심.”
주몽이 자리에 앉자, 양측 협상단도 각각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국 측 협상단은 주몽이 오늘은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된다는 표정들이고 반대쪽 일본 협상단은 피죽도 못 먹은 사람들처럼 축 늘어진 모습을 보였다.
“그럼 2차 협상을 들어가 볼까요?”
“그 전에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일본 측에서 발언권을 요구했다.
“네. 얼마든지.”
주몽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 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