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87화 (188/224)

187장. 그쪽 생각해줘서 이러는 건데. 불만이라고?

본회의장은 혼란의 도가니였지만, 사무국장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지 않았다.

주몽에게 돈을 받아먹었을 때는 이기지도 못할 싸움에 너무 열을 내는 것 같아 내심 찝찝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뒤집히니 내심 안도했다.

남들 몰래 짠물 들이켜면 물이 씌우는 법인데, 숨어서 물 들이켤 일 없이 떳떳하게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곧바로 투표 진행하겠습니다.”

사무국장의 지휘 아래 유엔 직원들은 발 빠르게 뛰어다녔고 투표는 곧바로 마무리되었다.

“대한민국과 고주몽 회장 윈(Win)!”

사무국장은 개운한 표정으로 망치를 두들겼고, 나라 영토까지 판돈에 올린 희대의 코미디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던 야베와 일본 관료들은 로버트와 경호팀에 제지를 당했다.

“뭡니까?”

“뒤처리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 주셔야겠습니다.”

“뭐요?”

관료 한 명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본 협정안 외에, 세부 협정안 작성을 마쳐야 한다고 하십니다.”

“세부 협정안?”

야베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로버트를 노려봤다.

“자세한 이야기는 Go 컴퍼니 협상단과 대한민국 정부 협상단을 만나 이야기하면 알게 될 겁니다.”

“…….”

“물론, 강제성은 없습니다. 나는 법적 구속권을 가지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가 어떻다는 것이요.”

“이대로 제안을 무시하고 뉴욕을 떠나버린다면 차후 협상에 차질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저…… 저저!”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말이요. 여기 회의장에 계속 앉아 있으라는 거요?”

“그럴 리가요. 근교에 훌륭한 호텔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숙소를 잡아 놨으니 협조해 주신다면 그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끙.”

야베가 앓는 소리를 냈다.

마음 같아선 다 무시해 버리고 당장 뉴욕을 떠나고 싶었지만, 주몽은 이런 상황마저 예견했는지 도망갈 구멍마저 단단히 틀어막아 버렸다.

“총리님. 어떻게…….”

차후 협상에 차질이 있을 거라는 말에 관료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안내하시오.”

야베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로버트에게 호텔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잘 생각했습니다.”

로버트는 빙긋 웃는 얼굴로 경호팀에게 손짓했다.

“VIP 고객들이다. 경호비를 아주 많이 지급해 주실 귀한 손님들이니 안전하게 호텔로 호송…… 아, 실수. 안내를 해 드려.”

“네. 팀장님.”

Go 컴퍼니 경호팀에 둘러싸여 야베 일행이 회의장을 떠나자, 근처에 있던 기자들이 로버트에게 달려들었다.

“Go 컴퍼니 소속으로 보이는데, 야베 총리가 왜 그쪽 직원들과 함께 움직이는 겁니까?”

“배상금이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데, 어떤 식으로 이걸 받아낼지 계획은 있으십니까?”

로버트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짧게 한마디 했다.

“내 임무는 debtor(채무자)가 의무 이행도 하지 않고 일본으로 떠나는 것을 막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규모가 클 뿐이지, 확실히 채권자와 채무자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기자들은 좋은 ‘단어’를 주워 챙겼다는 듯, 속보를 날리기 시작했다.

― debtor japan!

― 모라토리엄 선언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최악의 채무국 일본!

― 투표 후, 채권자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몰래 빠져나가려던 일본! 뒷덜미를 잡히다!

― 일본 국제적으로 망신! 의무 이행 없이 자국으로 돌아가려다 실패!

― 경제 전문가, 일본 모라토리엄 선언도 의미 없어. 파산 가능성 예고! 한국과 고주몽 회장의 강제 집행권 발동 시 일본이 소유한 모든 것들이 헐값에 팔릴 것.

― 한국의 IMF 사태에 벌어졌던 바겐세일. 이번엔 일본에서 시작될 것.

― 각국 경제부, 기업들. 일본이 흘릴 빵부스러기에 입맛을 다시며 GO 컴퍼니 채권 관리에 한 손 거들 듯.

연일 쏟아져 나오는 세계 뉴스는 하나 같이 일본의 공중분해를 예고했고 또 확신했다.

* * *

“빨리 움직여!”

“뭐든 상관없다. 일본과 관련된 게 하나라도 있는 부서는 모두 짐 싸서 뉴욕으로 날아가!”

“일본이 대응법을 마련하기 전에 최대한 유리하게 세부 협정안을 마무리 짓는다! 오케이?”

“옛설!”

대한민국 정부는 세부 협상단을 보내 달라는 주몽의 요청에 미친 놈처럼 뛰어다녔다.

주몽 소유 기업 중 하나인 한국 항공은 2,000명에 달하는 협상단을 실어 나르기 위해 10대가 넘는 대형 항공기를 내놓았다.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모여든 대한민국 협상단은 주몽이 전세 낸 호텔에 짐을 풀었다.

호텔 연회장은 곧바로 협상장으로 꾸려졌고 본격적으로 대(代) 일본 뜯어먹기 작전에 돌입했다.

협상단 단장은 각 부 협상 담당자들을 이끌고 주몽이 머무는 로열스위트룸에 모여들었다.

“회장님!”

단장직을 맡게 된 신당 대표 김덕영은 돌아가신 아버지라도 만난 것처럼 격하게 인사를 올렸다.

“축하드립니다! 역사에 남을 아니 고금에 다시 없을 승리였습니다!”

각부 장관과 책임자들 역시 하나 같이 주몽어천가를 외쳤다.

“존경합니다. 회장님.”

“회장님의 생각이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회장님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겠습니다!”

“제 손주 이름을 주몽이라고 지었습니다!”

“저는 아들 이름을 주몽으로 개명했습니다!”

뜬금없이 개명 드립을 치는 자들도 있었지만, 워낙 분위기가 들떠 있는지라 이걸 따지거나 문제 삼는 이들도 없었다.

“자, 다들 자리에 앉읍시다.”

“네! 회장님.”

김덕영과 협상단 대표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주몽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협상은 오늘 저녁에 바로 시작을 할 겁니다.”

“아, 저녁에 바로 말입니까?”

“아직 준비가 다 되지 않았는데…….”

협상단은 너무 급하게 진행되는 것 아니냐며 살짝 걱정 섞인 표정이 됐다.

주몽은 그런 그들을 보며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협상 대목은 제가 대표로 이야기할 겁니다. 여러분들은 그 협상안이 실행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만드는 데 집중해 주시면 됩니다.”

주몽의 말에 김덕영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회장님이 협상안을 내주시면 우리는 거기에 맞춰 세부안을 작성하고 실행을 하면 된다는 거지요?”

“네. 김덕영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정부 협상단이 대표로 나서는 것이 맞기는 합니다만, 제가 빠지면 그만큼 압력의 강도가 낮아질 겁니다. 피해 당사자인 제가 직접 나서서 저들의 기를 꺾어 놓을 테니. 여러분은 능력껏 과실을 챙겨 담으면 됩니다.”

“저희야 회장님이 나서 주시면 감지덕지죠.”

“그렇습니다. 회장님이 협상에 함께 해주신다니 말만 들어도 든든합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7시까지 호텔에서 제공해준 연회장으로 모이면 됩니다. 일본 측 협상단도 그곳에서 보기로 했으니, 그렇게 알고 움직이면 될 겁니다.”

“네! 회장님.”

시간을 빠르게 흘러갔다. 협상단은 밥은 먹는 둥 둥 마는 둥 하며 시계만 바라보다가 1차 협상 시간이 되자 곧바로 협상장으로 꾸민 호텔 연회장에 몰려들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야베는 희희낙락 웃는 얼굴로 들어서는 한국 협상단을 바라보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제이코의 진행 아래 곧바로 협상이 시작됐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당연히 주몽이다.

“야베 총리님.”

“네. 고주몽 회장님.”

“배상금 부분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대전제는 이미 정해진 상태다.

지금 이 자리는 그걸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인지 결정하는 자리일 뿐이다.

배상금을 깎거나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으니 최대한 자국 사정에 맞춰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협상단의 목적이다.

“환율 변동에 맞추겠습니까. 아니면 깔끔하게 환율 고정을 하겠습니까? 단위와 액수부터 결정하죠.”

환율에 맞춰 변동금리를 따르면 수시로 액수가 변하겠지만, 아예 각국 화폐 단위로 확정을 해 버리면 차후 이익, 손해와 관계없이 일을 진행하기가 편하다는 점이 있다.

주몽은 이 부분부터 확정하고 세부안에 들어가자고 했다.

야베는 관료들과 잠시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몽을 바라봤다.

“결정하셨습니까?”

“각국 단위에 맞춰 고정으로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 자 환율에 맞추겠습니다.”

주몽의 말에 야베와 관료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한국 재무부 소속 공무원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엔화 190조 엔의 오늘 환율은 한화 2천36조8천억입니다. 미화는 1조7천4백6십억 달러입니다.”

재무부 공무원의 말에 주몽이 한마디 거들었다.

“뒷자리는 빼고 이야기 한 거겠죠?”

“네. 억 단위로 끊었습니다.”

“좋습니다. 확정으로 가는 대신 숫자를 하나씩 올리도록 하죠. 반올림합시다.”

“반올림이라뇨.”

일본 측 관료가 정확히 하자는 듯 반대 의견을 냈다.

주몽은 일본 측 관료를 바라보며 “그래서 싫다고요?”라고 물었다.

“싫다는 게 아니라…… 금액을 정확히…….”

“뭐, 그럼 변동금리로 갑시다. 나야 비싸게 받아 낼 수 있을 때 가져오는 게 더 좋죠.”

주몽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다른 관료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반올림해봤자, 거기서 거기죠. 회장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말이 변동금리지, 주몽이 유리한 포지션을 취하려 들면 얼마든지 환율 조작이 가능한 상태다.

주몽이 나라라면 환율조작국이라며 비난이라도 하겠지만, 그는 그저 돈 많은 개인일 뿐이다.

일전처럼 환율에 투자하겠다고 나서면 말릴 방법이 없는 것이다.

혹 떼려다 하나 더 붙이는 수가 벌어질 수 있으니 소소한 일은 그냥 넘어가는 게 좋았다.

“그렇죠? 나는 일본 쪽 처지를 생각해서 의견을 낸 건데, 그걸 불만스럽게 받아들이면 내 기분이 좋을 리 없잖아요. 막말로 내가 화가 나서 엔화를 미친 듯이 패버리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불만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고주몽 회장님의 의견에 백분 공감 아니, 따르겠습니다.”

반대 의견을 냈던 관료는 그제야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한국 측 협상단은 일본이 쩔쩔매는 모습만으로도 십 년 묶은 체증이 내려간 표정이 됐다. 재무부 공무원은 재깍 반올림한 금액을 발표했다.

“2천36조9천억입니다. 미화는 1조7천4백7십억 달러로 확정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주몽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무부 공무원을 바라봤다.

“네? 반올림해서 끝자리를 하나씩…….”

“쯧. 억 단위를 반올림해야죠.”

주몽이 계산이 틀렸다는 듯 타박하자, 김덕영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네. 맞습니다. 자잘한 금액은 깔끔하게 쳐내는 게 맞습니다. 2천37조! 억이 아니라 조 단위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역시 협상단 대표라 그런지 김 대표님이 판단력 좋으시네요.”

“하하. 뭐 이런 걸 가지고 칭찬을 다 하십니까.”

김덕영은 쑥스럽다는 듯 웃음을 보였지만, 일본 측 관계자들은 얼굴이 핼쑥해졌다.

이게 일이십 엔을 놓고 반올림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재무부 공무원도 이 협상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뒤늦게 깨달음을 얻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전설의 비비디바비비부(Bibbidi Bobbidi Boo)인가!’

이번엔 자신의 임무를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듯 재빨리 달러 확정금액을 발표했다.

“미화는 2조 달러입니다.”

“커억!”

“2조 달러라뇨!”

일본 측 관계자들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억 단위가 아니라 조 단위로 깔끔하게 정리를 하라는 회장님 말씀에 따랐을 뿐입니다.”

재무부 공무원은 문제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주몽 회장님 2조 달러라니요.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저희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소한의 라인은 잡아주십시오.”

“정말 그렇게 해 줘요?”

“네?”

“솔직히 나로선 억 단위는 그냥 껌값이라. 별로 와닿지를 않거든요. 그래서 기억하기 좋도록 정리를 한 건에.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

“아니, 제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아니요. 생각해보니. 다, 나 같지 않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좋습니다. 원하는 대로 해주죠. 달러는 1조 8천억에 맞추세요.”

주몽의 말에 재무부 공무원은 재깍 숫자를 바꿔 기재했다.

“이제 됐죠? 2천억 달러나 까줬는데. 또 문제 삼으면 나 화낼 겁니다.”

‘빠가야로! 3천억 달러나 높여놓고 거기서 2천억 빼준 거잖아!’

‘결국, 1천억 달러나 더 챙겨놓고는…… 뭐? 화를 낼 거라고?’

일본 측 협상단은 황당한 얼굴이 됐지만, 그렇다고 재차 문제로 삼지도 못했다.

괜히 입을 열어서 2천억 달러가 뻥튀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라면, 변동 환율을 적용해 환율 조작에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답답한 심정이지만 불리한 건 자신들 쪽이니 그저 끙끙 앓는 수밖에 없다.

“자, 배상금액은 확정이 됐고. 그럼 배상 방식과 기간을 정해 볼까요?”

“자…… 잠시만. 너무 빠르게 진행이 되는 것 같은데. 잠시 숨 좀 돌리고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요?”

“네. 부탁드립니다.”

“흠. 별것도 아닌 일에 시간 끄는 건 안 내키는데. 배상 완료 때까지 금리를 얼마나 할지도 아직 결정을 못 했고 말이야.”

배상금 부분을 별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주몽의 태도에 일본 측 협상단은 어이없는 표정이 됐다가 금리라는 말이 나오자 낯빛이 칙칙해졌다.

1조 8천억 달러의 이자?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쪽, 그러니까 우리 편에 속하는 한국 측 협상단은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회장님. 배포가 남다르셔.”

“맞네. 금리를 아직 확정 못 했네.”

“우…… 1조 8천억에 1%만 잡아도 180억 달러인가.”

“한화로 따지면 19조 아니, 거의 20조다.”

“고주몽 회장님이 2% 이자를 받고 있다고 하던데, 그거에 맞춰야 하는 거 아닌가?”

“2% 그거 정확해?”

“정확까지는 모르겠고. 그냥 들리는 소문에 그렇다는 거지.”

“소문이든 아니든 간에 2%면 40조?”

한국 측 협상단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일본 측 협상단은 현기증까지 느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자신들이 내놓아야 할 돈은 ‘국채’나 다름없으니 이자를 다는 것에 반대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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