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장. 저게 여기서 왜 나와!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된 증거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주몽의 입에서 ‘증거’가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회원국들은 물론이고 기자들 역시 잠시 술렁이는 분위기가 됐다.
◈ 증거는 무슨. 또 이상한 거 들고나와서 헛소리나 하겠지.
◈ 조센징들 특기 있잖아. 무조건 우기기. 공자도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지?
▶ 증거 있단다!
▶ 정말 있을까? 그런 게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 같은데.
▷ 믿어보자. 믿는 자에게 복음이 있나니!!!
▷ 증거 내놔도 그걸 증명할 만한 내용이 없으면 주작 소리 들을 것 같은데.
▷ 나도 그게 불안함.
▶ 젠장, 유엔에서 주작이 날아오르는 걸 보게 되는 건가?
“회원국 여러분. 그리고 기자 여러분. 일본의 만행을 증명해 줄 증거와 증인을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증거뿐 아니라 증인까지 있다는 말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여러분의 눈과 귀로 직접 확인하시고 정의로움에 투표를 하시기 부탁드립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주몽이 손짓을 하자, 회의장 한쪽 문이 열리며 휠체어에 탄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순식간에 문 쪽으로 이동했다.
야베와 일본 관료들 역시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증인을 확인하는 순간 얼굴빛이 까맣게 죽어버렸다.
바다에서 상어 밥이 되었을 안태완이 버젓이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 누구지?
◈ 누군지는 모르겠고. 병신인 건 알겠다.
◈ 어디서 병신을 주워왔네. 저것도 증인이라고. 한국 수준은 여기서도 티가 나는구나. 한심하다. 한심해.
▶ 마이 갓! 안태완이잖아.
▷ 안태완 놓친 거 아니었어?
▷ 잡았으니까 저기 있겠지. 그런데 재 팔다리가 왜 저 모양이냐? 고문당한 걸까?
▶ 강요, 강압에 의한 증언은 증거로 채택되지 않음. 시작부터 망했음.
▷ 아이 씨! 왜 애를 병신으로 만들어서 데리고 나온 거야!!!
“총리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걱정들 하지 마. 어차피 말뿐인 증인이니까. 거기다 안태완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다. 내부인의 증언도 아니고 실효성이 없다.”
안태완의 등장이 의외이긴 해도 결정적 증거는 될 수 없다는 야베의 말에 관료들은 내심 안도하는 눈빛이 됐다.
야베의 말대로 말뿐인 증인은 ‘조작’된 것으로 몰아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몽은 증인을 소개했다.
“일본의 사주를 받아 한국에 내란을 일으키려 했던 안태완 전(前) 수석입니다.”
로버트가 휠체어를 밀어 안태완을 단상 앞으로 데리고 왔다.
안태완은 마이크를 건네받고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이 벌려왔던 일들에 대해 증언을 시작했다.
회원국들은 물론이고 기자들은 안태완의 증언을 애매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야베가 말했던 것처럼 확실한 물증이 없는 증언은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안태완의 증언이 마무리되자, 일본 측에서 곧바로 반론이 터져 나왔다.
“증인이라고 불러온 그 사람은 한국 정부의 고위 관료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물증도 없이 그저 말뿐인데. 그런 식의 증인이라면 우리 일본도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습니다.”
일본 측의 주장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물증 없는 증언은 그저 떠드는 소리에 불과하죠. 그래서 안태완 수석의 말을 증명해 줄 수 있는 물증도 준비했습니다.”
주몽이 재차 손짓하자, 본회의장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들으시는 목소리는 여기 안태완 씨와 야베 총리의 통화 내용입니다.”
◈ 틀림없다. 저건 조작이다!
▶ 안 봐도 비디오다. 저거 조작이라고 우길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저런 식의 녹음 파일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 백퍼 저렇게 나오지. 누가 저걸 인정하겠냐? 내가 야베라도 주작이 날아오른다고 외치겠네.
▶ 네티즌 과학 수사대 나와라. 오바. 저거 주작 아니라고 증명 좀 해봐.
▷ 이 미친놈아. 원본 데이터도 아니고 TV에서 나오는 소리를 무슨 수로 검증하냐?
▷ 과학 수사대 할배가 와도 저건 검증 불가임.
“고주몽 회장은 억지에 억지를 덧붙이기 위해 또 다른 억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일본 측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네. 그 역시 인정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목소리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죠. 그래서 추가 증거를 제출합니다.”
이번엔 본회의장 대형 스크린에 영상이 뿌려졌다.
“엇! 저거 야베 총리 맞지?”
“그런 것 같은데.”
“저기 휠체어를 탄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야.”
스크린에 나타난 영상은 야베와 안태완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거리가 있어서 대화 내용까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음성 파일만 나왔을 때와는 달리 회의장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일본 측 인사들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 오오! 2번 증거. 생각보다 많이 쓸만함. 일본 애들 얼었음!
▷ 희망이 보이는 건가?
▶ 내가 미리 이야기해 줄게. 저것도 주작이다!
▷ 하긴, 뭔들 인정하겠냐. 나오는 족족 주작으로 밀어붙이겠지.
▶ 아무리 그래도 녹음 파일과 영상이 나왔는데, 저거 검증하면 되지 않을까?
▷ 하수구에서 쥐 잡다 나왔냐? 이거 끝나자마자 바로 투표다. 언제 검증하고 언제 반론을 펴냐?
▷ 쓰벌. 이러나저러나 망했네.
“영상도 조작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고주몽 회장은 궁지에 몰려서 해선 안 될 짓을 하고 있습니다!”
“네. 그것도 인정합니다. 음성이 됐든 영상이 됐든 조작을 하려면 충분히 할 수도 있죠. 그래서 3차 증거를 제출합니다.”
일본 측이 조작 운운하며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주몽은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일이라며 또 다른 증거를 제시하고 있었다.
세 번째로 제시된 증거는 음성과 영상이 모두 존재했다.
상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이 됐는지, 화면 떨림이 심한 그런 영상이었다.
― 끄아아아악!
본회의장 내부에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 우어! 뭐…. 뭐냐!
▷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깜짝 놀랐잖아!
“뭐야? 무슨 영상인데 저래?”
― 안태완. 지금이라도 자료를 내놓는다면 고통 없이 죽여주겠다.
“한국말인가?”
“아니야. 일본어야.”
“누구 일본어 하는 사람 없어?”
“스튜디오에 빨리 연락해. 대화 내용을 자막으로 입혀 달라고!”
기자들은 무전기와 스마트 폰을 들고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 일본어 능력자 빨리 출동해라!
▷ 안태완에게 뭔가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는데?
▷ 설마 울 고 회장님이 고문을……. 하는 건 아니겠지?
▷ 병신 대가리 총 맞았냐? 자기가 고문한 걸 증거라고 내놓겠냐? 자폭 성애자도 아니고.
▷ 그럼 뭐지? 뭐야. 으에에엑! 저…. 저게 무슨 짓이야!
주몽이 손짓을 하자, 잠시 영상이 멈췄다.
“지금 보시는 장면은 끔찍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자분들은 참고를 해 주십시오.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지금 이곳에 나온 안태완 씨임을 밝혀둡니다. 영상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영어로 자막을 입혀놨으니 그 역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주몽이 다시 손짓하자, 멈췄던 영상이 재생됐다.
― 끄으…….
안태완의 신음과 함께 그를 고문하고 있는 자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 빠가야로! 마지막 경고다. 자료를 내놔.
― 어…… 없다.
―흥! 손목이 잘리고도 버틸 수 있는지 한번 보자.
안태완을 협박하던 사내가 누군가에게 손짓하자, 톱을 든 남자 한 명이 영상에 등장했다.
“저…… 저런!”
▶ 젠장. 왜 한국어 자막은 없는 건데!!! 일본어나 영어나 다 못 알아 듣겠다고!
▷ 안태완 보고 빠가야로라고 했음.
▷ 미친 새끼. 나도 빼가야로는 알거든!
▶ 손모가지 날아간다고 협박하는 중.
▷ 그러니까. 왜 협박을 하냐고. 누가. 왜!!!!
회원국들은 물론이고 기자들 역시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들 예상이 됐기 때문이다.
― 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안태완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그 비명 사이로 톱질하는 소리가 섞여 나왔다.
― 말해. 자료를 어디에 두었어!
― 흐으…… 어. 없다니까.
― 칙쇼! 팔목을 잘라버려!
― 하이!
― 아아아악! 끄아아악!
영상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충격적인 장면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비위 약한 몇몇은 급히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달려나가기까지 했다.
일본 측 인사들 역시 얼굴이 창백해지긴 마찬가지. 지금 나오는 영상이, 내용이 뭘 의미하는지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오, 하드코어 좋습니다! 눈이 피카피카 합니다.
◈ 증거랍시고 어디서 고어 한편 가져왔네.
◈ 야. 이거 좀 이상하다. 조용히들 좀 해 봐.
◈ 뭐가?
◈ 빠가! 팔잘린 한국 병신이 일본말 쓰는 사람에게 고문당하는 영상이잖아. 생각 좀 하면서 봐라!
▶ 으왁! 라면 먹다 뱉었다!
▷ 미… 미친.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 안태완이 병신 된 게 저렇게 해서 된 거구나.
▶ 그런데 안태완이 뭔가 중요한 걸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뭐지? 뭐길래 손모가지를 날려버린 거야?
― 흐으…… 야베가…… 시켰나?
안태완의 입에서 야베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본 측 대표단으로 향했다.
― 왜 억울해?
― 신의라곤 쥐뿔만큼도 없군.
― 쓰임이 다했지 않나.
― 야베에게 전해라.
― 유언 정도는 들어주지.
― 후회하게 될 거라고.
― 훗. 후회?
▶ 후회 나왔다! 후회! 야베 보고 있냐? 너 지금 엄청나게 후회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 안태완. 역대급 예언! 야베 후회한다!
▷ 일본 애들 갑자기 조용해 졌음. 분위기 반전된 거 맞지?
▶ 딱 보면 모르겠음? 지금 일본 난리 났음.
▷ 독도에 마라도, 제주도까지 날아가는지 알았는데. 이렇게 되면 대마도에 오키나와 당첨인가?
▶ 역시. 울 회장님. 저는 믿었습니다!!!
▷ 야, 니 아이뒤 밑에 딱 찍혀있다. 욕 존나게 하던 놈이 이제 와서 무슨. 너 고소!
안태완의 팔을 자르라고 명령했던 사내는 비릿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 지금이라도 자료를 내놓는다면 고통을 끝내주지.
― 자료 같은 건 없다니까 그러네.
― 팔 한쪽으론 만족을 못 하는가 보군. 이봐! 다리도 잘라!
― 하이!
안태완의 팔에 톱질했던 사내가 재차 안태완의 발목을 자르기 시작했다.
― 아아아아악!
또다시 울려 퍼지는 비명.
본회의장은 물론이고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전 세계 시청자들은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다.
영상은 일본의 야욕과 배신당한 안태완의 비참한 모습을 끝으로 마무리가 됐다.
주몽은 야베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원한다면 4차 증거도 보여드릴 수 있는데.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주몽의 질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야베에게 집중됐다.
담담한 표정으로 휠체어에 타고 있던 안태완은 ‘4차? 증거가 또 있다고?’ 하는 표정이 됐다.
자신이 주몽에게 넘긴 자료는 이 세 가지가 전부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저것도 조작이 됐을지.”
야베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한동안 몸을 떨어대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조…… 조작이다.”
사람들은 야베의 말에 너나 할 것 없이 얼굴을 찌푸렸다.
▶ 와, 이것도 조작이라고 우길 정도면, 우기기 챔피언십 챔피언 밸트 줘야 하는 거 아니냐?
▷ 야베 표정 봐라. 입으론 조작이라고 하면서 얼굴은 울 것 같다.
▷ 조작이라는 걸 증명해놓고 조작 운운해라!
▶ 많이 우겼다 아이가. 고만 우겨라.
▷ 많이 잘라다 아이가. 고만 잘라라.
▷ 아우. 하여간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든지 해야지. 초딩들 좀 어떻게 안 되냐?
▶ 횽아들. 나는 암말도 안 했음.
▷ 진짜 초딩이 있긴 하네. 그런데 저거 19금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애들 놔둬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