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84화 (185/224)

184장. 조작이다!

제이코는 긴장된 표정으로 대기실을 서성거렸다.

“제이코. 정신 사납게 그러지 말고 앉아 있어요.”

“후……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는군요.”

제이코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연신 숨을 들이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마쳤습니다. 그런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는다니까요.”

주몽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제이코는 여전히 몸을 주체하질 못했다.

“그렇게 걱정이 되면 로버트에게 가 있던가요.”

“그럴까요?”

로버트는 비밀리에 입국시킨 안태완과 함께 다른 대기실에 숨어 있는 중이다.

“네. 그렇게 하세요. 제이코 때문에 나까지 긴장이 돼서 안 되겠어요.”

“제가 곁에서 보좌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달달 떨면서 보좌를 했다간, 오히려 실수만 연발하겠습니다.”

“하하. 이거 못 볼 꼴을 보이네요.”

제이코는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대기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로버트가 있는 방으로 이동을 하려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유엔 직원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이쿠. 깜짝이야!”

제이코는 놀란 얼굴로 뒷걸음쳤다. 유엔 직원은 왜 그렇게 놀라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주몽에게 말을 건넸다.

“출발하실 시간입니다.”

“네. 안내 부탁합니다.”

로버트가 있는 방으로 이동하려던 제이코는 결국 주몽과 함께 본회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몽이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TV 화면에서나 보던 장소인데 이렇게 직접 방문을 하게 되네요.”

“저도 처음 와 봅니다.”

제이코 역시 주몽과 다를 바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배정된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건너편을 바라보니 야베와 일본 측 관계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마주친 야베가 빙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들이 이길 거라고 자신하는 표정이네요.”

“정보팀의 보고에 의하면 회원국 투표권자들에게 로비 자금을 무지막지하게 쏟아내고 있답니다.”

“그 정도야 이미 예상했던 일 아닙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제이코는 받아먹은 게 있으니 일본 쪽으로 마음이 가질 않겠냐는 말을 하려다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주몽이 어림도 없다는 듯한 마디 툭 던졌기 때문이다.

“그거야 결정을 내리기 애매할 때나 먹히는 거죠. 투표권은 저들이 가지고 있지만,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 세계가 함께 지켜봅니다. 뭘 받아먹었든 간에 감당 못 할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이거 서운한데요.”

“네? 뭐가 말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안된다고 해도 제이코는 날 믿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연히 보스를 믿습니다. 그냥 노파심이라고 생각해 주시죠.”

“뭐. 그렇다고 해 두죠.”

“그나저나 일본을 어디까지 몰아붙이실 생각입니까?”

“어디까지 몰아붙이다뇨?”

“협정 내용을 그대로 이행한다면…… 일본은 모라토리엄((moratorium)을 선언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이코의 말에 주몽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급유예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계획이 절반만 성공해도 일본은 IMF 총재와 면담을 해야 할 테니까요.”

주몽은 차가운 말투로 IMF를 입에 담았다.

“하긴, 배상금을 달러로 받겠다고 하면…….”

“환율 전쟁으로 일본의 보유 외환은 바닥을 치는 중입니다. 배상금을 내놓으려면 기둥뿌리까지 다 뽑아서 내다 팔아야겠죠.”

“보스도…….”

“네?”

“평소엔 무난한 성격이신 듯하지만, 뭔가 일을 벌이기만 하면 끝장을 보시는 것 같습니다.”

“설마요. 판돈을 올린 건 내가 아니라 일본입니다.”

“그렇게 유도한 것은 보스시지 않습니까.”

“유도한다고 다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저들 스스로 욕심이 하늘을 찌르니 이렇게 된 것뿐이죠.”

“하긴, 영토까지 걸고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기껏해야 배상금 크기를 높일 거로 생각했는데.”

“이야기는 이쯤 하죠. 일본 쪽 발표가 시작될 것 같으니.”

단상에 오른 사무국장이 오늘 안건에 관해 설명하더니, 일본 측 대표에게 먼저 발언권을 줬다.

“야베가 직접 단상에 오르네요.”

“승리를 장담하고 있지 않습니까. 역사적 장면으로 남게 될 텐데,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할 이유가 없죠.”

단상에 오른 야베는 발언 내내 한국과 주몽의 주장이 억지에 불과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발언 중 예로 든 두 가지 내용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는데, 나름 긍정적으로 평가가 됐는지 방송국마다 반복해서 그 주장을 내보냈다.

“한국인이 일본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죠. 그 한국인이 일본의 야쿠자처럼 폭력 단원이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한국 폭력 단원이 일본 유수 기업의 회장을 공격했다고 그렇게 예를 들어봅시다.”

◈ 총리님 말씀이 진리다.

◈ 한국놈들 툭하면 사과하라고 우기는 게 일이잖아.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놔야 해.

◈ 어쩌면 예를 들어도 저렇게 딱 들어맞게 이야기할까. 역시 일본 총리는 한국의 대통령과 비교 불가!

▶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 너 일본놈이지. 여기서 놀지 말고 2cl로 가라. 훠이~

▷ 맞는 말을 맞다고 했는데, 일본놈은 무슨. 딱 보니 진 게임이네.

▶ 제주도 사는 애들. 일본 사람 되는 건가?

▷ 제주 시민 폭동 예약 중.

▷ 돈 많다고 깝죽거릴 때부터 알아봤다. 고주몽 저 뜰딱새끼 때문에 한국 망했네.

야베는 주몽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라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파렴치한으로 몰고 간다면. 한국 정부는 어떻게 나왔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우리 일본 정부가 그랬듯이 이는 개인적 문제일 뿐, 정부나 국가 차원의 공격이나 문제가 아니라고 할 겁니다. 왜냐. 그게 정상적인 대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십시오. 가진 돈이 많다는 이유로 리벤지 파운데이션이란 말도 안 되는 재단을 만들고 또 사적 복수에 나서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어떤 말을 가져다 붙여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고 또 불법적 행위라 할 것입니다.”

야베는 회원국들을 쭉 둘러보며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들은 타국 국민이 자국 내에서 범죄 행위를 일으켰을 때, 그 국민이 속한 국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실 겁니까? 또는 그런 요청을 받았을 경우 상대국가에 고개를 숙이고 정부 차원에서 배상을 해 줄 것입니까?”

야베의 말에 회원국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베의 말대로 그런 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보십시오.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고주몽 회장에게 일어난 일은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나서서 사과하고 배상까지 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어느 나라든 범죄 행위를 해결하고 처리할 수 있는 사법체계가 구축돼 있습니다. 고주몽 회장은 일본이 아니라 자국법에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야베는 ‘상식과 상식’을 기반으로 주몽의 행동과 요청이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주장은 높은 확률로 회원국들과 취재에 나선 기자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뿐입니까?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야베는 주몽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증거가 없다는 증거를 가져오라더군요. 그야말로 억지고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증거가 없다는 것은 문제 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걸 증명할 증거를 내놓으라니. 이게 문법적으로 맞는 말인지나 모르겠습니다.”

▶ 울 고 회장님이 진짜 저런 말을 했었나?

▷ 그런 것 같음. 아무리 야베가 막 나가는 놈이라고 해도 유엔까지 가서 없는 말 하겠음?

▷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겠다.

▶ 도대체 뭐가 창피한데? 고주몽이 피습 받은 건 사실이잖아.

▷ 야베가 미안하다면서 야쿠자 다 쓸어버렸음.

▷ 바보냐? 미안하다고 야쿠자 쓸어 버린 게 아니라, 문제 생길까 봐 증거 인멸한 거다. 생각 좀 하면서 이야기해라.

▶ 야베 표정 봐라. 툭 건드리면 눈물 뚝뚝 흘릴 판이다.

야베는 억울해서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증거가 없다는 증거를 가져오라’라는 각국 자막과 함께 전 세계로 그 장면이 송출됐다.

현장에 있는 이들은 물론이고 방송을 보고 있던 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야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야베 입장이라고 해도 정말 답답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야베는 그 뒤로도 이런저런 문제를 제기하며 일본은 억울하다는 주장을 반복한 뒤 단상에서 내려왔다.

사무국장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보낸 뒤, 이번엔 주몽에게 발언권을 줬다.

주몽은 단상에 올라서자 ‘증거가 없다는 증거를 가져오라’라는 야베의 말을 걸고 넘어졌다.

“문법적으로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

주몽의 질문에 사람들은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증거가 없다는 증거를 가져오라는 말을 먼저 사용한 것은 제가 아니라 일본입니다.”

주몽의 발언에 일본 측 인사가 ‘헛소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무국장은 곧바로 자제를 부탁했고, 예의를 지켜 달라고 했다.

▶ 어? 고주몽이 먼저 한 말이 아니었다고?

▷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러니까 사람 말은 끝까지 듣고 열폭하라고!

▶ 너야말로 열폭하지 말고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라. 고주몽이 또 뭔 소리를 할지 알고.

“발끈한 모습을 보이셨는데, 제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일본은 2차대전 전범국입니다. 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하고 수많은 이들의 운명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전범국 말입니다.”

주몽이 이번 사태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 느닷없이 전범국 이야기를 꺼내 들자 일본 측 대표단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에 의해 피해를 보았던 수많은 국가가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하고 반성하라고. 그럴 때마다 일본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증거가 있냐고 하더군요. 자신들은 그런 적이 없다며,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댄다며 되레 화를 냈습니다. 그때 나온 말이 증거가 있다는 증거를 가져와라, 였습니다.”

▶ 옳소! 울 고 회장님이 맞는 소리 했네!

▷ 어. 나도 동감.

▶ 븅신들아. 저런 소리 해 봤자, 이기긴 글렀다. 분위기 개판이네.

▷ 내가 보기에도 그런다. 저런 이야기는 하등에 도움이 안 됨. 지금 필요한 건 뭐?

▷ 증거!!!

▷ 하지만, 없다는 점.

▶ 아 쫌! 독도에 마라도에 제주도까지 날아갈 판인데!!!

주몽은 스산한 눈빛으로 야베를 바라봤다.

“있는 증거도 수시로 인멸하고 없는 증거는 자신들 입맛대로 위조하던 이들이 문법 운운하는 모습에 잠시 발끈했습니다. 일본을 제외한 회원국 중에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셨다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주몽은 회원국들과 기자들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번 사안에 대해 일본에 문제를 제기하고 사과와 배상을 요청한 것은 모든 분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나의 이런 요청에 바로 전에 야베 총리가 발언한 것처럼 무시로 일관했다는 점도 말입니다.”

주몽은 정면에서 단상을 찍고 있는 카메라에 시선을 맞췄다.

“좀 전에 드린 말씀과 같은 말이 될 것 같습니다만, 일본은 오늘날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성을 내는 전법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일본이 저지른 짓이 분명함에도 ‘증거’ 운운하며 발뺌하기를 반복하죠.”

◈ 툭하면 사과하라는 한국 놈들이야말로 사과해라.

◈ 뫼비우스 띠도 아니고. 한국 놈들은 무한반복종(種) 임.

◈ 고주몽 할 말 없으니까. 옛날이야기만 반복하는 거 봐라. 게임 끝났다.

◈ 야베 만세!!!!

주몽의 발언에 일본 측 인사들의 얼굴에 짜증이 일었다.

기껏 나와서 한다는 소리가 그것뿐이라면 당장이라도 단상에서 내려오라는 그런 표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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