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장. 활활 불타올라라!
주몽은 재차 말을 이었다.
“아, 비준 일자가 하루 이상 차이가 나면 패배하는 것도 추가하죠.”
“먼저 비준하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하자는 말이군.”
“네. 그렇게 조항을 추가하지 않으면 일 년이고 백 년이고 질질 끌 수도 있는 문제 아닙니까.”
주몽은 사무국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방금 내용으로 협정안으로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정말 이렇게 진행을 할 생각이오?”
“계속 지켜보셨으니 알고 계실 겁니다. 이건 일본 측에서 먼저 시작했습니다. 사무국장님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은 것도 일본입니다.”
사무국장은 야베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본 측도 지금 내용으로 협정서를 작성하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소.”
비준을 받는 과정이 험난하겠지만, 비준을 받지 못할 경우 생돈 90조 엔이 날아가게 된다.
의회도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진 않을 테니 자신의 뜻에 따라와 줄 것이다.
양측 제안이 하나로 정리되고 협정서가 마련되자, 주몽과 정부 관계자. 야베와 일본 측 관료들의 사인이 페이지를 가득 메웠다.
협정서 서약이 마무리되자, 주몽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야베 총리.”
“말씀하시오.”
“우리는 내일까지 비준을 받아오겠습니다.”
“뭐? 내일까지?”
“네. 그러니 90조엔 부탁드립니다.”
“흥! 말로야 무슨 소리를 못 할까.”
“과연 그럴까요?”
주몽은 씩 웃는 얼굴로 야베를 바라봤다.
“한국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신당은 내가 만든 당입니다. 하루요? 원한다면 한 시간 내에 받아오도록 하죠.”
“…….”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주몽이 컴퍼니 직원들과 정부 관계자를 데리고 회의장을 나가버리자, 야베와 일본 관료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뭣들 하고 있어! 당장 움직이지 않고!”
야베의 다급한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 * *
사무국장은 한국과 일본의 진검승부가 이뤄지기 열흘 전을 떠 올렸다.
처음 주몽이 이런 제안을 해 왔을 땐 장난하냐는 듯 반응했던 유엔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계 최고의 현금 부자라는 주몽이 직접 연락을 해 왔기에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통화를 했던 사무국장이다.
“사무국장님. 생각해보세요. 이대로 분위기가 흘러갔다간 한국과 일본은 전쟁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심각합니까?”
“양국 국민감정이 극에 달한 상태입니다.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할 상황이라는 말이죠.”
“하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던 일이라…….”
“이번 이슈는 세계적이고 모두의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그 말은 유엔 본부에서 벌어질 한국과 일본의 진검승부에 유수 방송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말도 되죠.”
“그 말은…….”
“방송권을 파세요. 피파나 올림픽 위원회만 전파 송출권을 판매하라는 법 있습니까?”
“호오…….”
“방송국당 100만 달러면 적당하겠군요.”
“나라당 백만이 아니라, 방송국당 백만이라는 말씀이죠?”
“독점권을 원하는 방송사가 있다면 천만 달러 정도는 내놓으라고 하세요. 욕심 많은 방송국은 액수가 얼마든 지불을 할 겁니다.”
“그런데 방송국들이 많이 참가하겠소?”
“총칼만 안 들었지, 전쟁에 준하는 대결입니다. CNN이 중동 전쟁을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얼마나 큰 돈을 벌었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장담하건대, 그 이상의 폭풍이 몰아칠 겁니다.”
“그런데, 정말 자신은 있는 겁니까? 자칫 승부에 지기라도 하는 날엔…….”
“사무국장님. 사무국장님은 저와 한국 정부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 듯싶군요.”
“전 세계인이 지켜봤습니다. 일본 폭력조직이 저를 공격하는 모습을.”
“고 회장님의 심정은 이해를 합니다만, 저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어느 편도 들어줄 수가 없군요.”
“이해합니다. 제가 원하는 것도 바로 그런 중립이니까요.”
“그래요?”
“네. 대신에 한 가지 해 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아, 유엔의 중립적 입장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어떤…….”
“협상 당일. 일본에서 무리한 요구를 들고나와도 그냥 지켜봐 주십시오.”
“일본에서 무리한 요구를 들고나올 거다?”
“네. 중간쯤에 잠깐 끼어들어서 열기를 식혀 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 같은데.”
“일본의 무리한 요구에 문제를 제기하겠지만, 결국 말릴 수 없는 상황이어야 합니다. 무리해서 움직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쭉 이어질 수 있도록 적당히 양념만 쳐 주시면 됩니다.”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당일 보면 알 수 있겠죠. 그런데, 일본에서 이런 제안을 받아들여야 가능한 일이지 않습니까.”
“일본은 받아들일 겁니다. 응하지 않으면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될 테니까요.”
“그거야 지켜보면 알겠지만 말입니다.”
“네.”
“그러다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유엔은 들러리나 서다가 뒤로 물러나는 모양이 되어버립니다만. 총장님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고 말입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몽은 유엔 본회의장을 옥타곤으로 사용하는 대가로 천만 달러.
주몽을 대신해 나팔수가 되어주는 대가로 사무국장에게 개인적으로 지원금을 보내왔다.
아주 짭짤하게.
* * *
사무국장이 집무실로 돌아오자, 직원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떻게 됐습니까?”
“고주몽 회장이 말했던 대로 돌아가는 중이다.”
“호오, 정말입니까?”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무슨 소린가 싶었는데, 돌아가는 분위기가 잘 짜인 설계에 따라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느낌이군.”
“그 말은 일본이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일본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질 게임에 참가하진 않았을 테니. 지금까지 분위기만 본다면 아무래도 일본 측이 좋은 패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여. 판돈을 잔뜩 올리는 걸 보면. 아무튼, 본 회의장 대결은 잠시 미뤄졌다.”
“네? 방송국은 물론이고 기자들까지 잔뜩 기대하고 있을 텐데요.”
“본 게임은 잠시 뒤로 밀렸지만, 그에 못지않은 예비 게임이 시작됐지.”
“예비 게임이라면 어떤…….”
“가세. 내가 맡은 배역이 예비 게임을 널리 알려서 사람들의 관심을 최대한 집중시키는 것이니.”
주몽이 원했던 나팔수 역할에 나설 타임이다.
사무국장은 기자들과 방송 카메라가 모여 있는 회견장으로 이동을 했다.
플래시가 요란하게 폭발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오늘 양측의 발표와 투표가 진행되는 게 확실합니까?”
“고주몽 회장의 전 재산이 걸린 대결이라고 들었습니다. 이 부분엔 여전히 이견이 없는 겁니까?”
“궁금하신 점이 많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만, 오늘 본 회의장 발표는 잠정 중단됐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국과 일본의 대결이 중단됐다는 말에 기자들이 아우성을 쳤다.
기본 백만, 욕심 많은 방송사는 무려 천만 달러를 내고 좌석을 확보한 상태다.
그 많은 돈을 내고 기껏 취재한 내용이 ‘대결 중단’이라니. 기자들은 폭동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잔뜩 흥분했다.
“완전한 중단이 아니라, 잠정 중단입니다.”
“그거나 이거나. 중단은 중단 아닙니까!”
“물론 그렇습니다만, 대신 본 대결 못지않은 예비 대결이 성사됐습니다.”
“예비 대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먼저, 양국의 협정 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무국장은 품에서 잘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카메라 포커싱이 사무국장이 들고 있는 종이 한 장에 집중됐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번 대결은 고주몽 회장과 일본 측의 상반된 주장 때문에 벌어졌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협정 내용을 알려주세요!”
기자들은 사족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다시 질문을 쏟아냈다.
“크흠. 알겠습니다.”
사무국장은 종이를 펼쳐 들고 회의실에서 작성된 내용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한국 측이 이번 대결에 패했을 경우.”
파바바바박!
한국이 패했을 경우란 말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다음과 같은 사항을 일본 측에 내놓아야 합니다.”
1. 고주몽 회장의 전 재산 (약 9천억 달러)
2. 한일 간 과거사 문제 불가역적 해결(일본 측 요구에 맞춤)
3. 독도(일본명 : 다케시마), 마라도, 제주도를 일본에 할양.
4. 배상금 1조 달러
“이게 무슨. 미친 소리냐.”
“지금 자국 영토를 걸고 대결에 임하겠다는 말인가?”
“이걸 한국이 받아들였다고?”
기자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됐다.
사무국장은 기자들의 반응엔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엔 일본 쪽 배상내용을 읽어 내렸다.
1. 배상금 90조엔.
2. 일한 간 과거사 문제 불가역적 해결(한국 측 요구에 맞춤)
3. 대마도, 오키나와를 한국에 할양.
4. 배상금 100조엔.
“양국 다 완전히 미쳐버린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단순히 책임 소지를 가리거나 배상금을 내는 정도가 아니잖아.”
“전쟁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데, 이게 가능하기는 해? 양국 국민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은데.”
기자들의 웅성거림에 사무국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본 사항은 고주몽 회장과 야베 총리, 한국 관계자, 일본 관료들 모두 동의한 사항입니다.”
“아무래도 협상 중에 감정싸움이 격해진 모양이군.”
“이 정도면 이성을 잃고 협정문을 작성했다고 봐야겠지.”
“단! 이 협정문엔 사전 합의 사항이 하나 들어가 있습니다.”
“사전 합의 사용?”
“그게 뭡니까?”
기자들의 질문에 사무국장이 협정문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협상장에서 만들어진 이 협정문은 국제법적으로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그렇지. 저 정도 문건이면 그냥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고 봐야 하니까.”
“나라의 영토를 몇몇 사람들의 약속으로 할양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래서 사전 합의 사항이 뭡니까?”
“양국이 작성한 협정문의 사전 협의 사항은. 양국 정부 수반과 국회의 비준을 얻는 것입니다.”
“아…….”
“그래. 정부와 국회의 비준이 있게 된다면, 국제법적으로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지.”
“그런데 저게 되겠어? 저런 내용에 비준을 해 줬다간, 대통령이든 국회든 모조리 탄핵감인데?”
“뭐야. 소리만 요란했지, 알맹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협정문이잖아.”
기대에 미치지 못한 브리핑이었다며 기자들은 잔뜩 실망한 표정이 됐다.
당사국 입장에선 영토까지 걸고 걸이는 진검승부지만, 관람자 입장에선 실효성 없는 말장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무국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비준에 성공한 나라는 성공하지 못한 나라에 승리하는 것으로 합의가 됐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방금 협정 내용이…… 그러니까. 비준을 받아낸 국가가 승리하기로 그렇게 결정을 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런 식이라면 양국 정부 모두 일 초라도 더 빨리 비준을 받아내려고 할 텐데요.”
“그런 방식이면 대통령이든 국회든 비준을 안 할 이유가 없네.”
“와, 뭐냐. 스피드 퀴즈도 아니고. 나라 간 분쟁을 이런 식으로 풀어내다니.”
사무국장의 기자 브리핑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당사국인 한국과 일본 역시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내용에 비준해야 한다고?”
“응. 미친 짓이긴 한데, 더 웃긴 게 뭔지 알아?”
“……?”
“비준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패배 선언이 된다는군.”
“국회 뭐하냐! 빨리 일해라!”
“일본보다 일 분 아니 일 초라도 더 빨리!”
처음엔 황당한 표정을 짓던 한국 국민은 비준을 먼저 마친 쪽이 이긴다는 소식에 미친 듯이 국회로 몰려갔다.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면 의회 비준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던 일본 측 협상단은 그야말로 어리둥절 이다.
“총리대신. 의회에서 안건을 바로 상정했다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사무국장의, 기자 브리핑 때문입니다. 비준을 먼저 한 국가가 이긴다고 발표를 하는 바람에.”
“푸하하하하. 유엔도 우리 편이었네.”
“그러게 말입니다. 의회에 어떻게 말을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손도 안 대고 코 풀게 생겼습니다.”
사무국장은 주몽의 요청대로 ‘비준 일자는 하루를 기준으로 한다.’라는 내용과 ‘비준은 애초의 협상안. 90조 엔만 해당한다.’라는 내용을 쏙 빼버렸고, 그 결과 양국 국민을 활활 불타오르게 했다.
야베가 환호성을 지르며 '요시! 요시!' 외쳐대는 그 시각. 주몽과 Go 컴퍼니. 청와대와 프로젝트 관계자들도 아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양국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절로 웃음이 나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