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장. 콜? No! 레이즈!
주몽은 황당한 표정으로 법무 대신과 야베를 바라봤다.
야베는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이미 수차례 이뤄졌고 그에 대한 보상금 역시 지급됐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본국을 괴롭히고 있지 않습니까.”
“어이가 없는 소리를…….”
“그래서 이번 승부에 ‘불가역적 과거사 언급 불가’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과거에도 이미 한 차례 있었던 ‘불가역적’이 언급됐다.
“아무리 신의가 없는 한국 정부라고 해도 세계 각국 앞에서 UN 본부에서 맺은 협의마저 무시하지는 못하겠죠.”
야베는 위안부 협상과 관련된 한국 정부의 파기 환송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내비쳤다.
“그런 헛소리를 우리가 받아들일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이런 식의 제안을 먼저 시작한 것은 우리 일본이 아닙니다. 바로 고주몽 회장이시죠.”
법무 대신 가미카와가 문제 있냐는 듯, 한마디 끼어들었다.
“…….”
“한국말로 뭐라더라. 아~. 쫄리면 뒈지시던가. 라고 한다지요?”
법무 대신은 주몽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며 ‘콜? or 다이?’를 외쳤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분한 표정을 짓던 주몽이 한국 관계자들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 회장님. 설마 저 말도 안 되는 소릴 들어주자는 건 아니시겠죠?”
“절대 안 됩니다. 이런 제안을 받아들였다간 한국에 들어가는 순간 돌 맞아 죽을 겁니다!”
“고주몽 회장님의 개인적인 일에 나랏일을 끼워 넣을 수는 없습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결사반대를 외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물러서면 우리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됩니다.”
“그게 무슨…….”
“협정문 2번 항목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네?”
정부 관계자들은 재빨리 협정문을 살펴봤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억지입니다!”
“억지고, 아니고를 떠나서. 일본이 내 제안에 응해 이곳에 온 만큼, 일본 측 제안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패배를 인정하고 912조를 저들 입에 처넣을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황망한 표정이 됐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고 회장님. 입장은 이해하지만, 만에 하나 승부에 지기라도 하는 날엔…….”
“…….”
주몽은 선뜻 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고주몽 회장님. 아직도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까?”
법무 대신 가미카와가 재촉하듯 말을 건넸다.
“전화 한 통만 하고 오겠습니다.”
관계자가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며 시간을 달라고 했다.
양측 관계를 조율하고 있는 사무국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따로 장소를 안내받아 한국에 이 소식을 전달했다.
“네? 고주몽 회장의 뜻대로 진행하라는 말입니까?”
―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시키는 건가. 고 회장님 뜻에 따르게.
“아니, 하지만 이건 과거사 문제입니다. 이번 일과는 무관한…….”
― 그러니까 당연히 응해야지.
“설마…….”
― 기대하게. 다시는 과거사 관련해서 헛소리를 못 하게 될 테니.
“제가 모르는 뭔가 진행이 되는 겁니까?”
― 알면 다치네. 그러니 병풍처럼 조용히 회장님 뒤만 지키게. 아, 참담한 표정 짓는 거 잊지 말고.
“참담한…… 일단 알겠습니다.”
―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 거지?
“네.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이길 거지만, 질 거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라. 이 말씀 아닙니까.”
― 알았으면 가서 일하게.
“네. 비서실장님.”
정부 관계자로 주몽을 따라왔던 법무부 정일표 사무관은 혼란스러움과 불안감을 내비치면서도 뭔가 기대하는 표정이 됐다.
“표정 관리하자. 표정 관리.”
얼굴을 쓱 문질러 기대감을 지워낸 정일표는 침통한 표정으로 회의실에 들어섰다.
주몽과 일본 측 협상자들의 시선이 정일표에게 쏠렸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는 주몽을 향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시!”
가미카와가 활짝 웃는 얼굴로 주먹을 쥐었고, 야베 역시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몽은 정일표 사무관의 어깨를 다독여주고는 협상 테이블로 돌아왔다.
“레이즈 받죠.”
“레이즈?”
“90조 엔에 과거사 불가역적 해결, 그거 받고 독도 자국 영토 망언 불가역적 해결을 원합니다.”
“나니?”
“도구토? 다케시마 말입니까?”
“판돈이 늘었으니, 나도 균형을 맞춰야 할 것 아닙니까.”
“다케시마는 우리 일본의 고유 영토…….”
“쫄리면 뒈지시던가!”
주몽의 레이즈 발언에 이번엔 일본 측 관계자들이 바빠졌다.
“총리대신.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나? 여기서 고주몽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역으로 우리가 당하질 않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다케시마는 자원 부국의…….”
“아니, 이왕 이렇게 된 것 판돈을 더 올리는 게 좋겠군.”
“네?”
“콜이 아니라 우리도 레이즈를 가자는 말이네.”
“조건을 더 붙여서 말입니까?”
“어차피 우리가 이긴 게임이야. 여기서 물러설 이유가 없지 않나. 고주몽 저놈은 어떻게든 판을 깨려고 억지를 부리는 거잖아.”
“알겠습니다. 그럼 어떤 조건을 추가할까요?”
“다케시마를 내놓으라고 했으면 한국은 마라도를 포기해야지.”
야베가 눈을 번뜩이며 ‘마라도’를 입에 담았다.
“다케시마와 마라도를 모두 손에 넣게 되면…….”
“한국 따위 어찌 되든 알 바 아니지. 크크 흐흐흐.”
법무 대신 가미카와는 다케시마 레이즈에 마라도로 맞받아졌다.
“90조 엔에 과거사 불가역적, 다케시마 받고 마라도!”
느닷없이 마라도가 튀어나오자, 한국 관계자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 회장님. 이건 아닙니다. 나라 영토가 포커판 칩도 아니고. 이게 무슨!”
“그럼, 여기서 죽어요? 여기서 다이하면 90조 엔은 물론이고 과거사 문제와 독도까지 몽땅 날아가는데?”
“…….”
관계자들은 주몽의 말에 넋 나간 표정이 됐다.
“여러분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여기서 밀리면 우린 다 죽는 겁니다. 마라도 받고! 대마도 콜?”
“대…대마도?”
“네. 대마도를 판에 올리는 겁니다.”
“받을까요?”
“받으면 콜이고 안 받으면 다 무효로 돌려야죠. 지금이야 감정이 앞서서 이것저것 마구 던지고 올리고 있지만, 판돈이 커질수록 부담이 높아질 겁니다.”
“아. 아예 판을 엎으려는 거군요.”
“그것도 나쁘지 않겠죠. 위험부담을 없앨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유엔 연설은…….”
“그냥 자기주장만 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겠죠.”
진짜 독도, 마라도를 판에 올리는 게 아니라, 일본 쪽에서 부담을 느껴 물러서는 게 목적이라고 하자 관계자들도 일부 공조하는 분위기가 됐다.
“지금 여기서 물러서면 돈과 역사, 독도까지 한 방에 날아갑니다.”
“회장님. 부탁드립니다. 꼭 판을 깨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닙니다.”
“그럼 맡겨 주시는 겁니다.”
이제 와 어쩌겠냐는 듯 정부 관계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어 능력자 비서를 통해 주몽과 한국 관계자들의 대화를 훔쳐 듣고 있던 가미카와는 야베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콜을 할지 아니면 레이즈를 할지 결정을 내려 달라는 눈빛이다.
야베는 뻔한 걸 물어본다는 듯 씩 웃어 보였다.
“한국 정부에 배상금 100조 엔을 내놓으라고 해! 우리도 끝까지 간다.”
“하이.”
가미카와는 주몽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대…… 대마도 받고! 한국 정부 배상금 100조엔!”
100조 엔이면 한국의 2년 치 정부 예산이다. 한화로 1000조가 넘는 금액이 판돈에 올라오자, 심약한 정부 관계자 몇 명은 까무룩 기절해 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1000…조?”
“미쳤군.”
“끝장을 보자는 건가?”
유엔 사무국장은 분위기가 너무 과열되자, 양측을 진정시켰다.
“고주몽 회장님도 그렇고 야베 총리님도 진정하시죠. 이건 감정적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무국장님. 이건 시작부터 감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제안을 시작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국은 틈만 나면 우리 일본을 물어뜯고 욕하는데,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 놓고 말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상식을 벗어난 일은 파국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처럼 끝없이 주고받다간 한국과 일본이 통째로 테이블에 올라올 겁니다. 그걸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
“…….”
“무엇보다, 그런 협상이 맺어졌다고 해도 자국민들이 이걸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사무국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현실적인. 실행 가능한 선에서 마무리 지으시길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주고받았다간 결국 전쟁을 불러오게 됩니다.”
사무국장의 말에 한국 관계자들과 Go 컴퍼니는 수긍한 눈빛이 됐지만, 야베와 일본 관료들은 오히려 눈을 번뜩였다.
‘판돈은 올릴 대로 올린다. 이기면 좋고. 지면 전쟁이라…… 나쁘지 않잖아.’
야베는 단호한 표정으로 사무국장을 바라봤다.
“유엔은 협정문 공인, 투표만 관리해 주면 됩니다. 그 이상은 월권임을 말씀드립니다.”
“아…….”
사무국장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한발 물러났다. 당사자가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 데 조언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야베는 주몽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주몽 회장.”
“네. 총리님.”
“어떻게. 이쯤에서 물러나겠소?”
쫄리면 뒈지라는 말은 부드럽게 풀어서 건네는 야베다.
“나는 사무국장님의 말에 공감합니다만, 야베 총리와 일본은 그게 아닌 것 같군요.”
“우리는 이번 기회에 모든 걸 마무리 짓고 싶소.”
“어디까지 원하는 겁니까?”
“제주도.”
야베의 심중에 있는 욕망의 종착역. 제주도가 판떼기에 올라왔다.
“제주도라. 일본 측에선 제주도 대신 뭘 올리시렵니까?”
“센카쿠 열도를 내주겠소.”
“장난은 사절입니다.”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 대신 중국과 치고받으란 말 아닌가.
“이렇게 하죠.”
“?”
“우리가 지게 되면 내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90조 엔과 과거사 불가역적 해결. 독도와 마라도, 한국 측 배상금 1000조와 제주도를 포기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 대통령과 국회의 비준을 받아내겠습니다.”
“호…… 대통령과 국회의 비준을?”
주몽은 사무국장을 한 차례 바라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무국장님이 말씀하셨듯이. 말로야 뭘 못하겠습니까? 이게 현실적으로 적용이 되려면 당연히 그 정도는 해결이 되어야지 않겠습니까.”
“가능하겠소?”
“가능하게 만드는 건 내 일입니다.”
“그 말은 우리 일본도 한국처럼 비준을 받아내라는 말이군.”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총리께서 한 입으로 두말하시진 않겠지만, 정치인이란 존재는 언제든 말을 바꿀 수 있는 그런 부류니까요.”
야베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 됐다.
주몽이 무슨 자신감으로 대통령과 국회의 비준을 얻어내겠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렇게만 되면 다시는 뒷말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일본도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일본이 패배했을 경우. 내놓을 목록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일단 들어보겠소.”
“90조 엔은 90조 엔으로 과거사 불가역적 해결은 우리 쪽이 주장하는 내용에 맞춰 불가역적으로 해결. 독도와 마라도는 대마도로 맞추고 한국의 배상금 1000조는 100조 엔으로 맞추겠습니다.”
“제주도는?”
“제주도는 오키나와 정도로 맞추면 될 듯싶습니다만.”
“오키나와라…….”
“어떻게. 진행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총리님의 서명과 일본 측 의회 비준은 필수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기는 쪽은 대승의 기운이 밀려들 것이고 지는 쪽은 말 그대로 폭삭 망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좋소. 나도 비준을 받아내지. 단!”
“네. 말씀하시죠.”
“금액적인 부분은 1년 안에 해결. 영토와 관련된 부분은 5년 뒤 넘기는 것으로 합시다.”
“인정합니다. 배상은 1년 안에. 영토는 5년 안에. 거주민 문제도 있을 것이니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하겠죠.”
“만약 비준을 받아내지 못하면…….”
“비준을 받은 국가가 자동으로 승리하겠죠. 물론, 조건은 90조 엔에서 마무리될 것이고.”
처음 조건을 제외하곤 모두 무효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몽의 말에 다들 그게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