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80화 (181/224)

180장. 콜?

주몽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대결은 순식간에 빠르게 체결, 진행됐다.

겉보기엔 주몽의 도발, 일본의 자존심이 뒤섞여 단숨에 진행된 것처럼 보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온갖 꼼수와 심리전, 정보전이 총동원됐다.

“증거 운운하지만, 우리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겁니다.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최대한 감추세요.”

“감추지만, 결국 들키라는 말씀이죠?”

“네. 그리고 한국 정부는 내가 제안을 함과 동시에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 말려야 합니다. 일본이 응하든 응하지 않든 이건 무조건입니다.”

“우리가 불리하다는 모션을 취하라는 말씀이죠?”

“리벤지 파운데이션 단기 회원들에게 전하세요. 심정은 이해하지만, 일방적으로 일본을 매도하고 범죄자 취급하는 건 문제가 많은 행동이라고. 나에 대해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고 그렇게 뻐꾸기를 날리라고 하세요.”

“보스와 동맹군 사이에 균열이 생긴 듯 보여야 한다는 말씀이죠?”

“우리에게 증거를 보여 달라고 공식, 비공식 따지지 말고 요청하라고 하세요. 하지만 우리는 증거를 내놓지 못할 겁니다. 그저 말로만 ‘증거’ 운운할 겁니다.”

“단기 회원들이 일본 쪽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라는 말씀이죠?”

“일본에 미안하다는 제스처도 취해주고 은근슬쩍 야베 편을 들라고 하세요.”

“일본과 손을 잡은 척 그렇게 행동하라는 말씀이죠?”

“현재까지 전쟁은 우리가 유리한 상황이지만, 그들이 등을 돌리면 지금의 상황은 반전됩니다. 일본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소나기처럼 반가운 일이 될 겁니다.”

“우리 뒤통수를 치는 척 그렇게 행동하라는 말씀이죠?”

“그렇다고 진짜 뒤통수를 쳤다간 돈 싸 들고 그 나라와 자폭한다는 말도 잊지 마시고요.”

“물론입니다. 보스.”

“스즈키는 어떻습니까?”

“처음엔 전전긍긍한 모습이었습니다만, 로즈차일드가 한·일 자원 영토를 강탈하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하더니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양국 사이에 지금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두 나라 모두 상처만 입을 뿐입니다.”

“그 부분에 있어선 스즈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야베 내각에 끈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진행이 됐답니까?”

“야베 내각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뭐, 어쩔 수 없죠.”

“야베는 물론이고 그의 손길이 닿은 인사들은 모두가 극우에 치우쳐있는 데다 대다수가 전범 후손들입니다. 틈만 나면 과거의 영광 운운하며 제국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담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죠. 협력이든 상호호혜든 말이 통해야 가능한 일이니. 안태완에 대해선 어떻게 판단을 내렸다고 합니까?”

“안태완은 확실히 사망한 것으로 판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스즈키가 내각조사실 출신이라 일을 조작하는 게 수월했습니다.”

“스즈키가 고생이 많네요. 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큰 상을 줘야겠어요.”

주몽이 증거를 감추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면, 야베는 주몽이 증거를 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한국 쪽 보고를 받을 때마다, 대두되는 내용은 ‘증거가 있다면 저렇게 우기고만 있을 리 없다’였다.

“증거를 손에 넣었다면 저렇게 무리해서 공격을 감행할 이유도 없습니다.”

“증거가 있다면, 진즉에 세상에 공표했을 겁니다.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데 저렇게 시간만 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안태완이 유일한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그가 죽고 없는 지금. 증거가 있어도 그걸 증명할 증인이 없으니. 조작이라고 우기면 그만입니다.”

“증거요? 있으면 뭐합니까. 우리가 인정을 안 하면 그만인데.”

“국제사회는 증거로 싸우는 게 아니라, 힘으로 싸우는 겁니다. 고주몽과 한국이요? 그들의 국제 외교 능력은…… 글쎄요. 그간 한국 외교부가 보여준 행태를 생각해보세요.”

“로즈차일드가 발을 뺐다지만, 그들도 이번 일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만에 하나 그들이 이번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증거가 나왔다간 단숨에 궁지에 몰릴 테니 말입니다. 그 말은 우리 못지않게 주몽을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고 만에 하나 증거 비슷한 것이라도 발견이 됐다면 저렇게 구경만 하고 있을 놈들이 아니라는 거죠.”

“만에 하나, 만만의 하나. 고주몽이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진즉에 증거를 내놓았겠죠. 뭐하러 저렇게 힘들게 돈질을 하겠습니까. 그를 지지했던 세력도 하나둘 이탈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이대로 가다간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건 반가운 소식이로군.”

“내부적으로 명분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흘러나오고 있답니다. 무엇보다 이 일이 발생한 뒤, 본국과의 관계에 후폭풍을 맞게 될까 봐 태세를 전환하고 있다는 정보도 들어왔습니다.”

“각국 외교부에서 비밀리에 접속을 해왔습니다. 내용은 ‘일본의 결백함을 믿는다’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 움직여야지. 헌법 개정과 함께 조선을 두들겨 팰 시간이 다가오는군.”

야베가 헌법 개정을 들고나오자, 주몽은 기다렸다는 듯 ‘승부’를 제안했다.

야베는 그간 확인된 정보를 바탕으로 일단 승부에 응하긴 했는데, 내심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야베는 자신이 실수한 게 아닐까 싶어 다시 한번 점검에 들어갔다.

“내가 너무 성급했을까?”

“아닙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라도 제안에 응해야 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

“하나는 평화헌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고주몽을 응징할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야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주몽은 나라가 아닙니다. 그저 돈 많은 기업인에 불과합니다.”

“한국 정부를 때리면 되지 않나.”

“한국 정부는 이번 일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관전 중입니다. 기껏 ‘외교적 무례’ 정도가 그들이 한 전부입니다. 악을 쓰고 우리를 모함하고 경제 전쟁을 일으킨 것은 한국이 아니라 고주몽이라는 말입니다.”

부총리의 말에 법무 대신 가미카와도 한마디 보탰다.

“소로스가 영국을 공격했다고 해서 영국이 소로스에게 선전포고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고주몽의 환율, 주가 전쟁은 못 된 짓이라 성토할 수는 있을 수는 있어도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뜻입니다.”

“칙쇼.”

“다른 하나는 일본의 현재 상황입니다.”

“경제 말이군.”

“네. 고주몽의 자산을 우리 쪽으로 끌어 올 수 있다면, 이번에 입은 손해를 단숨에 만회하는 것은 물론이고 체질 개선에 나선 우리 기업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습니다. 고주몽이 가진 자산은 현금뿐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우리가 그토록 잡아 꿇리려 노력했던 한국 기업들이 고주몽 손에 들어가 있지.”

“현재 확인된 기업만 해도 한국 20위권 그룹 전부입니다. 우리가 그 기업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경제 식민지!”

“맞습니다. 한국을 경제적 식민지화 시킬 수 있게 됩니다. 총리대신이 수시로 말씀하셨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겠죠.”

부총리의 말에 야베는 물론이고 각료들 역시 ‘그래.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하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승부에 임하지 않게 되면 우리는 곧바로 명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나라들도 다시 고주몽에게 붙어 버릴 공산이 큽니다.”

“그렇겠지. 그래서 도발인 줄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

“거부한다는 것은 ‘고주몽의 발언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리니….”

“조사실장. 고주몽이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게 확실하지?”

“하이. 한국 정부 협력자가 직접 건넨 정보입니다. 겉으론 큰소리치고 있지만, 전전긍긍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고 합니다. 고주몽의 이번 제안은 발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겉으론 90조 엔을 내걸고 승리를 자신하는 모습이지만, 속으론 우리가 90조 엔짜리 내기를 부담스러워해 응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로즈차일드는?”

“처음엔 안태완 사망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됐다는 분위깁니다.”

“모든 정황이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입니다.”

“총리대신. 결정을 내리시죠.”

“요시! 고주몽은 물론이고 한국까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밟아버리겠다.”

고주몽이 불리한 입장에 몰리자, 증거 운운하며 뻥카를 날렸다고 판단을 내린 야베는 90조엔 짜리 역대급 대결에 판돈을 더 늘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틀 뒤, 뉴욕.

유엔본부 소회의실에 한국 정부 관계자와 Go 컴퍼니, 야베 일행이 얼굴을 마주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하게 된 유엔사무국은 양측이 내세운 대결 방식과 승복(承服)에 대해 합의문을 작성했다.

이런저런 말들이 수식어처럼 들어갔지만, 핵심만 놓고 본다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양측은 각각 1시간 동안,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 소지가 누구에게 있는지 설명, 주장할 수 있다.

2. 양측은 각각의 입장에 맞는 제안을 할 수 있으며, 상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시, 패배한 것으로 간주한다.

3. 배심원 역할을 맡은 유엔회원국은 각 1표씩 행사를 할 수 있으며, 투표를 통해 결과를 도출한다.

4. 양측은 결과에 승복하고 각각 제안한 내용을 충실히 따른다. (제안 내용은 유엔회원국 및 이사국들이 공증하고 국제법에 따라 이행된다. 이를 따르지 않을 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수정할 부분이 있습니까?”

법무 대신 가미카와가 주몽 측에 질문했다.

“2번 항목은 뭡니까?”

제이코가 의아한 표정으로 가미카와를 바라봤다.

“그쪽이 먼저 한 말이지 않습니까.”

“우리가요?”

“네. 고주몽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 일본이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하겠다고 그렇게 들었습니다만.”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 때문에 우리가 유엔까지 와서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겁니다. 이걸 부정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항목엔 문제가 없다는 말이시죠?”

“네. 없습니다.”

법무 대리인을 맡은 제이코가 고개를 젓자, 사무국장은 양측에 협정문을 전달했다.

“협정문에 사인하면 이 대결은 공식적으로 인정됩니다.”

사무국장의 말에 야베는 망설임 없이 사인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머뭇거리는 모습 따위 보일 이유가 없다.

주몽이 사인을 마치자, 야베가 불쑥 입을 열었다.

“고주몽 회장.”

“네.”

“이번엔 내가 제안을 하나 하고 싶소만.”

“제안이요?”

주몽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몽의 갸웃거림 속에 불안감이 섞여 있음을 확인한 야베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곤 ‘제안’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판돈을 더 늘리자는 말입니까?”

“그렇소.”

“일본 돈으로 90조 엔입니다. 이걸로 부족하다는 말입니까?”

주몽은 내키지 않는 듯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90조 엔이든 900조 엔이든. 승자독식이요.”

“나는 더 내놓을 게 없습니다. 이미 밝혔다시피 내 전 재산이니 말입니다.”

“추가 제안은 고주몽 회장이 아니라, 한국 정부에 하고 싶소.”

야베의 발언에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해 있던 정부 관계자들이 ‘에?’ 하는 표정이 됐다.

“우리 일본에선 이번 일을 고주몽 회장의 개인적 일탈로 보지 않고 있소.”

“그 말은 한국 정부가 뒤에서 돕기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아니라고 말하지 않길 바랍니다. 누가 봐도 당연한 일이니 말입니다.”

법무 대신 가미카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서요?”

“이번 승부를 통해 고주몽 회장과의 관계도 정리하고 한국과도 밀린 숙제를 했으면 합니다.”

“밀린 숙제요?”

주몽은 그게 뭐냐는 듯 법무 대신을 바라봤다.

“일, 한 간에 이어져 왔던 과거사를 불가역적(不可逆的) 형태로 매듭을 짓고자 합니다. 세계 만국을 증인으로 두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확실하게 말입니다.”

“허! 이보세요. 여기서 그 이야기 왜 나옵니까?”

주몽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법무 대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번 사태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된 ‘사죄와 배상’ 이 문제입니다. 우리 일본은 그걸 한국적 고질병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잘못했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된다는지 모르겠군요.”

“당연히 ‘잘못’을 했다면 그게 맞겠죠. 하지만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 사과와 배상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몽은 물론이고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일본의 뻔뻔한 행태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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