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장. 부지런한 야베
연일 반일 시위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야쿠자들의 공격이 실시간 전 세계로 송출된 이후, 일본에 대한 비난은 위험수위를 넘나들며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도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정치에 관심 없기로 소문난 일본이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소수 일부의 논리에 휘둘린 것일까.
죄 없는 일본을 죄인으로 만들어 공격한다며 반한시위가 일어났고 주몽과 야베의 설전이 계속될수록 이런 현상은 증가 추세를 보였다.
날카롭게 상대를 비난하면서 수위를 높이는 주몽의 선전포고가 이어졌고, 일본은 할 테면 해 보라는 듯 오히려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3개월.
주몽의 Go 컴퍼니와 일본 사이에 벌어진 쩐의 전쟁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의회 연설을 마치고 나온 야베는 거칠게 넥타이를 잡아 뜯으며 물을 들이켰다.
“한국의 아니, 고주몽의 반응은?”
“아직입니다.”
“이제부터 프레임을 바꾼다.”
야베는 내각 관료들을 소집했다.
“법무대신.”
“네. 총리 각하.”
“헌법개정이 통과되면 우리는 선전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각하.”
“방위대신. 자위함대를 동해와 남해 경계수역에 배치해서 압박을 들어간다.”
“하이! 한 치의 실수도 없게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야베와 각료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총무대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총리대신 각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뭐지?”
“정말 전쟁을…….”
“빠가야로!”
야베는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지금 우리 대일본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몰라? 고주몽 그놈과 그놈의 손을 잡은 국가들 때문에 나라 경제가 엉망진창이야!”
총무대신은 바로 그게 문제라며 따지고 싶었지만, 야베와 각료들의 분위기가 강성해서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안 그래도 엉망진창인데 이 와중에 군비까지 소모했다간 나라 경제가 순식간에 바닥까지 내려갈 수도 있는 것이다.
“…….”
“당한 만큼 돌려주지 못한다면 어찌 일본의 각료라 할 수 있는가 말이다!”
“각하. 그렇다고 해도 전쟁은…….”
“쯧쯧쯧. 어찌 저런 자를 총무대신에 앉혔을까. 조센징 놈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 족속이란 걸 왜 몰라.”
“각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조센징은 예로부터 목소리만 컸지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족속입니다. 지금이야 저렇게 떼로 모여 떠들고 있지만,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금세 돌아설 놈들입니다.”
외무대신 기시다가 재깍 야베 편을 들고나왔다.
“맞습니다. 조센징놈들 기질이 어디 가겠습니까? 몇 대 때려주고 손을 내밀면 도게자를 하며 납작 엎드릴 겁니다. 무엇보다 저들은 절대 전쟁에 응할 수가 없습니다.”
내각 관방장관도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하지. 북조선에서 구경만 하고 있지 않을 테니까. 북조선에 돈은 잘 전달됐겠지?”
“물론입니다. 한국에 소요사태가 일어나거나, 전쟁 위기가 닥치면 휴전선 부근에서 위기감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말이 통하는 놈이 있어서 다행이야.”
“북조선은 이미 친중파와 중립파, 김정은파와 과격파까지 분열이 심화된 상태가 아니겠습니까. 다들 자기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통에 우리가 파고들 틈이 생긴 거지요.”
“휴전선에서 문제를 일으키겠다고 한 장성은 친중파라고 했지?”
“네. 총리대신.”
“이번 기회에 중국이 아니라 우리 쪽으로 회유를 해 봐.”
“북조선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지원을 해주겠다고 따로 언질을 넣겠습니다. 김정은이 실각하면 알아서 내전에 들어갈 분위기니 우리를 반기면 반겼지, 싫어할 이유가 없습니다.”
“북조선의 정권을 잡게 된다면, 일, 조선 협정과 보상금 문제도 그쪽에 지불하겠다고 해.”
“아주 눈이 돌아가겠습니다. 저들 입장에선 엄청난 돈이 될 테니.”
“과거 한국의 독재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돈 몇 푼으로 과거 문제를 봉합해 버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되겠군요.”
“예나 지금이나, 조센징 놈들은 모이기만 하면 싸워. 한심한 족속들.”
“그러게나 말입니다. 하하하하.”
“이번에 한국 정부를 갈아치우고 친일 인사들로 자리를 채워야 한다. 무슨 말인지 다들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협조자들과는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고주몽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일개 시민일 뿐입니다. 정부가 바뀌고 나면 꼼짝도 못 할 겁니다.”
내각조사실장은 모든 준비가 끝났다며 헌법개정과 동시에 한국을 뒤집어 버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고주몽 때문에 날아간 돈은 물론이고 망가진 산업도 이번 기회에 모두 복구한다. 경제산업 대신. 기업들 전환 작업은 어떻게 되고 있나?”
“미쓰비시가 물류를 책임지기로 했고 후지 전기와 미쓰이화학 데이코쿠는 개발 중인 미사일 생산에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다른 기업들 역시 헌법개정과 동시에 멈춰있던 공장이 재가동될 것이니 이는 경기 부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요시! 생산력과 경쟁력에서 밀려나 있던 기업들을 이번 기회에 모두 부상시킨다. 방위성 무기 개발부도 총력을 기울여!”
“하이! 총리대신!”
“방위 대신.”
“하이.”
“한국 해군은 다케시마를 미끼로 모두 끌어모아야 한다. 거기서 침몰시켜야 해.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총리대신. 우리 목표는 제주도가 아닙니까!”
다케시마를 자국 영토라 발표하며 꾸준히 도발해 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이런 날을 위해서다.
다케시마에 자위함대를 출동시키는 순간, 한껏 달아오른 한국은 곧바로 대응에 나설 것이다.
한국 정부도 한국민도 ‘독도’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정도로 민감한 곳이니 말이다.
다케시마에서 한국 해상 전력을 모두 수장시켜 버린다면, 저들은 육지에 갇혀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된다.
그때, 본 목표인 제주도를 손에 넣을 것이다.
“총리대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국 해군은 우리 대일본국 해군력의 삼분지 일도 되지 않습니다. 전투는 길어야 10분도 되지 않을 겁니다. 단숨에 박살을 내버리고 한국 근해를 장악해 버리겠습니다.”
“3개월 동안. 모두 잘 참았다. 그간 준비한 계획을 실행할 시간이 드디어 왔어!”
야베는 이를 악물고 각료들을 독려했다.
“총리대신 각하.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습니다.”
“걱정?”
외무대신 기시다의 말에 야베가 고개를 돌렸다.
“고주몽이 증거 운운했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당치도 않다. 고주몽이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면 3개월 내내 입으로만 떠들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저 핑계를 들어 우리 일본을 공격하고 돈을 벌어갈 생각이었던 거다.”
재무대신 아소가 분통 터지는 얼굴로 주몽을 성토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소. 이번 일은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진행되어야 하니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일은 조심해서 나쁠 게 없소.”
외무대신과 재무대신이 목소리를 높이자, 야베가 손을 들어 올렸다.
“외무대신.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총리대신. 만일의 사태라는 게 있는 법이니…….”
“재무대신 말대로다. 내각조사실과 한국 내 협조자들이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고주몽은 물론이고 청와대도 이렇다 할 증거를 찾아내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다는군.”
‘문제가 될 존재는 이미 바다에 수장해 버렸으니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지.’
로즈차일드와 손을 잡는데, 메신저 역할을 했던 한국의 안보수석 안태완.
세 달 전, 공해상에서 발견된 배에서 놈의 잘린 손과 발까지 확인을 마쳤다.
그 와중에도 살아보겠다고 야쿠자들과 상잔을 하고 바다로 뛰어든 모양이지만, 팔다리 잘린 병신이 무슨 수로 바다를 빠져나가겠는가.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든 상어들의 한 끼 식사가 되어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놈이 가지고 있던 한국놈들의 약점을 손에 넣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일단 문제가 될 소지는 사라진 상태니 증거 따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청와대도 말입니까?”
고주몽이야 그저 돈 많은 망나니니 그렇다 쳐도 한국 정부에서조차 내세울 증거가 없다면 이는 충분히 반격의 조건이 될 것이다.
“저들이 증거라고 내세우는 것은 결국 방송에 나온 야쿠자들 몇몇뿐이지 않은가.”
“맞습니다. 그런 논리로 따져 묻는다면, 한국인이 저지르는 범죄는 모조리 한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 그래서 준비한 게 있다. 내각조사실장.”
“하이. 총리대신.”
“각료들에게 설명을 해주게.”
야베의 지시에 조사실장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산에서 들어온 한국 폭력조직 단원을 검거, 체포할 예정입니다.”
“폭력 단원 체포야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군.”
“단순체포가 아닙니다. 도쿄 시부야 중심부에서 일본 시민에 칼을 휘두른 흉악한 범죄자를 체포하는 일입니다.”
“호오. 혹시 그 장면이 방송에도 나오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대신들도 아시다시피 시부야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곳입니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청년에 의해 우연히 그 장면이 포착될 것이고 이는 전 세계로 송출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당한 대로 돌려주겠다는 말이군.”
“고주몽은 이권이 걸린 일에 불협화음을 낼 수 있는 협잡꾼이지만, 시부야 거리의 일반 시민은 상황이 다릅니다. 한국 폭력배에 의해 일본 국민이 희생을 당하게 된다면 이는 고주몽 사건보다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겁니다.”
“예정일시는 언제인가?”
“헌법개정 3일 전입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이틀 뒤가 될 것입니다.”
“분위기를 띄우고 당위성을 확보하는 데는 최적의 타이밍이군.”
“그와 동시에 한국 내 협력자들도 움직일 것입니다. 고주몽 한 명 개인의 일로 나라 전체가 전쟁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고 우리 일본이 아니라 북쪽의 미사일 미치광이들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때라고 분위기를 조성할 것입니다. 한국의 주적은 일본이 아니라 북조선이니 말입니다.”
“하하하. 요시. 요시!”
각료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야베 총리가 손을 들어 올리자, 회의실은 안정을 되찾았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3개월 내내 고주몽과 놈의 부역자들에게 얻어맞으면서도 꾹 참았던 이유를 상기해라. 흩어진 명분을 되찾고 우리가 얼마나 억울한 처지에 놓였는지 세상에 알려야 한다.”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국에선 뭐라고 연락이 왔나.”
“미국은 중립을 선언했습니다.”
“흥. 언제나 그런 식이지. 더러운 유대인 놈들.”
이번 일을 획책하고 함께 움직이기로 해놓고 상황이 불리해지자 발을 빼버린 로즈차일드다.
놈들이 끝까지 협조만 해주었어도 고주몽 따위 단숨에 날려버렸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일단 고주몽이나 한국을 지원한다는 말은 없어서 다행입니다. 유럽과 미국이 모두 중립적 태도로 돌아선 것은 그들 역할이 컸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중국은 관망하는 태세이지만, 러시아는 협조적입니다. 대신 동아시아 에너지 포럼의 의장국 자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산유국들의 오일 커뮤니티 OPEC이 산출량과 가격을 조정하고 있듯, 향후 동아시아에서 뿜어져 나올 에너지 자원 역시 그와 비슷한 기구를 만들어 세계 시장을 장악할 계획이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영토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는 일본과 함께 아시아에너지포럼을 만들고 가스와 원유 생산량을 관리하기로 말이 오간 상태다.
한국을 쿠데타로 몰아넣고 전시 상황을 만든다는 1차 계획은 실패했지만, 이번에 진행되는 2차 계획은 좀 더 규모를 키워서 ‘동맹국’을 늘려가는 일본이다.
대외적으론 주몽의 공격에 정신없이 두들겨 맞는 모습만 보이고 있지만, 그런 와중에도 내부적으론 꼼꼼히 진행해 온 것이다.
이런 부분에 있어선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한국은 여전히 일본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슈를 선점하기보다는 벌어진 사건을 수습하거나 주변국 눈치를 보는데 익숙하기도 했고 주도적으로 국제질서 확립에 나선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못 줄 것도 없지. 우리 대신 욕받이를 해주겠다는데.”
야베는 그깟 의장국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 피식 웃어버렸다.
“러시아 쪽은 그렇게 진행을 하겠습니다. 문제는 중국입니다.”
“쯧. 중국 쪽에선 지금도 센카쿠를 이야기하고 있나?”
“하이. 불경스럽게도 그렇다고 합니다.”
“욕심 많은 돼지 같으니라고. 북조선 만으론 만족을 못 하는 건가.”
“북조선은 이미 자신들 성(城)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거래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분위깁니다.”
각료들 사이에 혀를 차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북조선을 차려진 밥상처럼 생각하는 중국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이든 북조선이든 본래 모두 일본 제국의 식민지 아니었던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