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장. 연락 넣으세요!
로버트의 입에서 북한이 있지 않냐는 말이 흘러나오자, 처음엔 ‘응?’하는 표정을 지었던 회의 참석자들이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흐음.”
“북한이라…….”
“될까요? 북한.”
주몽은 로버트에게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라고 했다.
“자세할 것도, 복잡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돈이 필요하고 우리는 핵이 필요하죠.”
로버트의 말에 제이코가 한숨을 내쉬었다.
“로버트.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꽉 막힌 나라라고. 거기다 UN 제재까지 받는 나라야. 자칫 발을 들였다간…….”
“물론 우리가 끼는 건 어렵지. 하지만 보스에겐 이명환 대통령이 있다. 남북 대화든 적십자 회담이든. 뭐든 좋다. 그들과 연결 고리만 만들 수 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것보단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이용해야 할 상황이다.”
로버트의 말에 참석자들 시선이 이명환에게 향했다.
“가능하겠습니까?”
주몽의 질문에 이명환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되더라도 되게 해야 할 상황입니다. 세상의 시선이 일본에 쏠려 있으니 비밀리에 접선을 해 보겠습니다.”
이명환 대통령이 어떻게든 북쪽과 대화를 나눠보겠다고 하자, 제이코가 한마디 덧붙였다.
“이명환 대통령님. 어디까지나 남북관계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보스나 Go 컴퍼니는 대외적으로 움직일 수…….”
“물론입니다. 적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데 동네방네 소문내면서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죠.”
이명환 대통령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양하석이 슬쩍 의견 하나를 덧붙였다.
“공식적인 접근은 정부가 움직이고 비공식적으로도 접근을 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비공식적?”
“네. 남쪽에 내려와 활동하는 간첩들과 접선을 하는 겁니다.”
“말 그대로 간첩인데 누가 누군지 알고 접선을 한다는 거죠?”
주몽이 궁금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게, 알아도 모른 척 관리만 하는 간첩들도 여럿 있습니다.”
양하석의 말에 이명환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알아도 모른 척 관리만 하고 있다니.”
“일종의 비선 계통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통령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간첩을…….”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들도 우리가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양하석의 말에 박산호가 한마디 거들었다.
“비둘기들이군요.”
“비둘기?”
“네. 국제 정세나 외부 시선 때문에 대화가 어려울 때 쪽지를 주고받는 라인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박산호의 말에 양하석이 신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박 부장님은 군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것도 아십니까?”
“아, 책에서 읽었습니다.”
“책이요?”
“첩보소설…… 보니까. 그런 식으로 간첩들끼리 접선도 하고 그러기에. 하하.”
박산호가 어색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이명환 대통령과 양하석이 ‘소설?’ 하면서 황당한 표정을 짓는데, 주몽이 그쯤하고 마무리 짓자는 듯 손을 들었다.
“좋습니다. 대처할 방안은 뭐가 됐든 다 찾아보고 시도합시다. 방구석에 앉아서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네. 그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안태완 말인데.”
“이 자료도 안태완이 내놓았다죠?”
이명환 대통령이 관심을 보였다.
“내놓은 건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흘린 건지는 아직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주몽의 말에 양하석이 한마디 덧붙였다.
“본래 계획은 대표님이 사망하고 쿠데타 세력에 의해 한국이 혼란에 휩싸이는 거였습니다. 거기에 맞춰 일본이 도발하거나 미국을 이용해 북한을 건드리는 형태로 계획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실패를 했지.”
제이코 말에 양하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까 제이코 고문께서 하신 말씀 중에 ‘맞서 싸우거나’ 또는 ‘자원을 나눠 주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랬지.”
“그걸 노린 거로 생각합니다.”
“버티면 전쟁이다. 그러니 눈치껏 내놓고 떡고물이나 받아먹어라?”
“안태완이 어느 정도 위치에서 움직이는진 모르겠습니다만, 저 정도로 세세한 자료를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었을 거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아마 이런 상황에 부닥쳤을 때 또는 계획이 어그러졌을 때를 대비해 협박용으로 준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자료도 아니고 사건의 ‘핵심’에 해당하는 정보다.
양하석의 분석에 일리가 있다는 듯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강요군.”
“네. 일본과 대표님의 싸움에 그들이 끼어들지 않고 지켜보는 것도 여러 변수를 가정해 두고 기다리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쯧. 짜증 나게.”
주몽이 미간을 콱 찌푸렸다.
마치 개미굴 앞에 설탕 가루를 뿌려 놓고 히죽거리는 모양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발로 으깨 버릴 수 있다는 듯 말이다.
“세부적 대응책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수립해 봅시다.”
“네. 보스.”
“무엇보다, 안태완 같은 부역자들이 활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보안에 주의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떠든 말들이 저쪽에 다 흘러 들어가면 하나 마나 한 짓이 되니까요. 나는 안태완을 좀 봐야겠습니다. 이 자식을 엿 먹일 방법이 하나 떠올랐거든요.”
“자료야 저들 계획에 따라 내놓았다고 해도 증인으로 나서는 것은 계속 거부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명환이 궁금한 표정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네. 그래서 사기를 좀 쳐볼까 합니다.”
“사기… 요?”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사기요?’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놓고 말할 겁니다. ‘너 일본 끄나풀인 줄 알았는데, 배경이 아주 빵빵하더라.’ 이렇게 말입니다.”
주몽의 말에 로버트가 ‘크큭’ 웃음을 흘렸다.
“안태완이 일본 쪽인지 아니면 로즈차일드나 다른 쪽 프락치인지를 확인해볼 생각이시군요.”
“네. 로즈차일드를 들먹이며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았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네요. 얻어걸리면 베리베리 땡큐고 아니면 마는 거죠.”
“저도 함께 들어가죠. 반응이 궁금하네요.”
로버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제이코의 전화기가 자잘하게 진동을 일으켰다.
“보스. 알렉스입니다.”
안태완이 있는 병실로 이동하려던 주몽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갯짓을 했다.
“받아보세요.”
제이코는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그래.”
― 영국 파산 정보는 어디에서 들은 겁니까?
알렉스는 대뜸 정보 출처를 확인하고자 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 후우.
알렉스가 답답한 듯 숨을 내쉬었다.
“신빙성 있는 정보였나 보군.”
― 파산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이대로 악화가 지속된다면…….
“파산인가?”
― 소로스의 재침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아!”
제이코의 반응에 다들 귀를 쫑긋거렸다.
“파산 상태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군.”
― 브렉시트 EU 탈퇴가 영국에 악수로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론 조만간 안정될 거라 선전하고 있지만, 상태가 좋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일단 알았네. 좀 더 확인을 부탁해.”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일본은 어떻게 마무리가 되는 겁니까? 야베 총리가 헌법개정까지 들고 나왔던데. 이러다…….
“전쟁?”
― 네. 정계에서 말이 많습니다. 가주님과 일본의 싸움 때문에 환율이 엉망이 돼버렸다고 말입니다.
“환율 걱정이 아니라, 자기들 주머니 사정에 민감한 거겠지.”
― 뭐가 됐든, 오래 끌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조만간 마무리될 테니까. 엉뚱한 소리가 나오지 않게 입단속 좀 부탁하지.”
― 최대한 달래보겠습니다.
제이코가 통화를 끝내자, 다들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파산 운운할 정도는 아니지만, 재정 상태가 연일 악화되고 있다는군요. 소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공격에 들어가면 허리가 휘청일 정도랍니다.”
“영국 파산이라는 말이…….”
“로즈차일드의 본가가 영국에 있습니다. 이들로선 절대 반갑지 않은 일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엉망으로 꼬여있는 것 같군.”
“보스. 이건 제 생각인데 말입니다.”
“네. 말하세요.”
“로즈차일드가 궁지에 몰린 것 같습니다.”
“네? 그 로즈차일드가 궁지에 몰려요?”
“속사정을 들여다보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저들이 무리수까지 둬가며 일을 저지를 때는 내부에 적잖은 구멍이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거 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로즈차일드와 관계가 좋지 않은 다른 가문들을 이 일에 끌어들여서…….”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주몽은 고개를 흔들었다.
“보스. 혼자 싸우기보다는…….”
“제이코.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려면 우리가 가진 정보도 공개해야 합니다. 호랑이를 쫓아내려다 늑대무리에 둘러싸일 수도 있어요.”
“그 정도 위험은…….”
“네. 그 정도 위험을 감수하려면 우리도 사냥총 정도는 들고 움직여야죠. 맨몸으로 그들을 맞이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주몽의 말에 로버트가 거들고 나섰다.
“그건 보스의 말에 맞아. 제이코 너는 유력 가문 이야기만 나오면 너무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자제할 필요가 있겠어.”
“후우. 나는…… 그래. 알았다.”
로버트에게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제이코는 입을 다물었다.
“제이코. 이건 문뜩 떠오른 생각인데요.”
“네. 보스.”
“제이코는 로즈차일드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거죠?”
“네?”
“그러니까. 내 말은. 로즈차일드에 구멍이 생긴 게 아니라, 영국의 파산을 유도하고 있는 게 로즈차일드라면 어떻게 되냐는 말입니다.”
“…….”
제이코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한반도 상황과 자원 데이터, 영국 파산 등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로즈차일드가 ‘급하게’ 움직인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급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뭔가에 쫓기고 있다는 말이고 그건 당연히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영국 재정 악화 때문에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오히려 재정 악화를 만들어내고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이코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모르죠. 그래서 물어본 거고.”
“…….”
“한쪽으로만 보지 말고 양방향으로 생각해 보자는 말입니다. 로버트 말대로 제이코는 해외 가문들 이야기를 할 때면 사고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아는 만큼 걱정도 늘어난다고 합니다만, Go 컴퍼니 역량이 그렇게 무시될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막말로 내가 배 째라고 나오면 저들이 어쩔건데요?”
“배를 째요?”
“같이 죽자고 막 나가면 아무리 로즈차일드라고 해도 멀쩡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보스. 로즈차일드 가문의 재산은…….”
“아 쫌! 그놈들이 세계 최고의 부자이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래서 나보다 현금이 많다던가요? 나처럼 한 방에 수백 조씩 불쏘시개로 태워버릴 수 있는 겁니까?”
주몽이 뿔 딱지 난 표정으로 언성을 높이자, 제이코는 ‘어. 그게 그러니까……’ 하면서 어정쩡한 표정이 됐다.
“나는 일 년 전만 해도 연봉 삼만 달러짜리였어요. 까짓것 은퇴자금으로 Go 컴퍼니 식구들에게 일억 달러씩 나눠주고 남은 돈으로 개싸움을 벌이겠다고 나서면 어쩔건데요? 은퇴자금 그거 끽해봐야 100억 달러도 안 되네. 그러고도 수천억 달러가 남는데 그거 한 방에 때려 넣어서 자폭해 버리면 지들이라고 멀쩡할 것 같아요?”
“…….”
“잃어도 잃을 것 없는 놈과 싸우면 싸울수록 손해가 늘어나는 로즈차일드! 누가 더 손햅니까?”
주몽이 재차 언성을 높였다.
“제이코 말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했으니 결국엔 내가 죽거나 망하겠죠. 하지만 내가 망한 만큼 로즈차일드 놈들도 물어뜯기는 겁니다. 화교 자본이 됐든, 경쟁 가문이 됐든. 구경만 하고 있겠습니까? 이때다 싶어 같이 물어뜯겠죠. 아닌가요?”
“마…… 맞습니다.”
“연락 넣으세요.”
“네? 어디에 말입니까?”
“로즈차일드인지 뭔지 하는 놈한테 연락 넣으라고요!”
“보스. 너무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일단 진정을 하시고…….”
“아 몰라! 연락 당장 연락 넣어요. 그리고 말하세요. 날 계속 건드리면 팔 한쪽을 떼먹고 죽는다고! 어디 할 테면 해 보라고!”
“보… 보스.”
“아우. 씨발. 생각할수록 개빡치네. 지들이 뭔데 남의 집 자원에 감내라 배 내라 지랄이야. 겉으론 세계 최고니 뭐니 하면서 하는 짓은 양아치나 다름없는 새끼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