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72화 (173/224)

172장. 정보나 내놔.

“일본이 보통국가였다면! 그 누가 일본을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야베의 외침에 여, 야 가릴 것 없이 의사당에 모인 이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주몽과의 싸움은 당파를 떠나 국가적 재난 사태에 다다랐다.

“일개 기업이! 그저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있지도 않은 누명을 씌워서!”

야베는 주먹 쥔 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이는 일본에 대한 모독입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세계 질서에 충실히 임해온 우리입니다.”

“옳소!”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자작극으로 누명을 씌운 고주몽에게 죽음을!”

의원들 사이에서 과격한 말까지 터져 나왔다.

“본 총리는 평화헌법 개정을 의회에 상정하고자 합니다. 맞아도 맞았다고 말 못 하고! 억울해도 그 억울함을 풀 수 없는 지금의 헌법은 평화를 위한 헌법이 아니라 일본을 망가트리는 헌법이기 때문입니다!”

“와!”

“야베 총리 만세!”

“헌법개정이다!”

“개정만이 일본의 미래를 지켜낼 수 있다!”

* * *

실시간으로 방영된 일본 의회의 모습은 아시아 국가들에 충격파를 몰고 왔다.

2차 대전 중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나라들은 물론이고 직접 피해를 보았던 한국 국민과 중국 인민들은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정부 관계자가 그나마 점잖은 수식어로 반응을 내놓은 것과 달리, 인터넷은 곧바로 전쟁터가 됐다.

<중국>

― 일본, 과거의 잘못은 까맣게 잊어버렸나!

― 군국주의의 부활! 그때도 그랬었다. 다, 거짓말이고 누명이라고. 731을 잊지 말자!

― 댜오위다오 침략 플랜!

― 세계인이 지켜봤다. 일본 야쿠자들의 범죄를! 뭐가 누명이냐!

<일본>

― 센카쿠 열도는 우리 것이다. 중국은 입 닥쳐라!

― 다케시마도 돌려받자!

― 중국이야말로 후안무치! 입으로는 대국이라면서 행동은 소국 중의 소국!

― 훔쳐 간 기술부터 내놓고 떠들어라! 저작권을 카피권으로 착각하는 무식한 놈들아.

― 공산당 법에 우리가 왈가왈부하면 좋냐? 그냥 너희끼리 살아! 일본은 우리에게 맡기고.

<한국>

― 와, 울 고 회장님이랑 돈으론 싸움이 안되니까. 총이랑 탱크 들고 싸우려는 것 봐라.

― 창피하다. 나라끼리 싸움도 아니고 국가가 개인에게 처맞았으면 창피해서 얼굴도 못 들겠네.

― 회장님! 이번 기회에 열도침몰을!

― 전쟁 가능 국가가 된다고 별수 있나? 미국 횽아들이 절대 용서 안 하지.

― 야베가 빡 돌아서 전쟁을 일으킨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 일본 해군 전력은 우리나라의 세 배를 넘습니다. 전쟁 나면 독도, 울릉도, 제주도 다 털립니다.

― 뭐래? 바보냐? 뭐하러 바다에서 싸워. 그냥 미사일로 조지면 되는데.

― 일본도 미사일 쏘면 서로 엿 되는 거 아닌가?

― 쯧쯧. 일본은 미사일 없다. 애들 평화헌법 개정하려는 게 미사일 때문이거든.

한·중·일 삼국은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을 두고 온갖 사설과 동북아 정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친놈들.”

비릿한 표정으로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주몽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이코. 안태완에게 연락하세요. 인터뷰 시간이라고.”

“네. 보스!”

“양 과장님. 안태완에게 받은 자료는 모두 확인이 끝났죠?”

“네. 대표님.”

“살살 약 올리듯 그렇게 진행하는 겁니다. 한 번에 털어버리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물론입니다. 일본이 제 무덤을 깊이 팔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주몽은 열흘 전 있었던 안태완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 * *

대왕 종합병원 VVIP 병동.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리고 주몽과 양하석 과장이 들어섰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중년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사내는 쩔뚝거리는 걸음으로 소파에 다가왔다.

전(前) 안보수석이며 조동일보의 사위 안태완.

폐촌 사건 때 흔적을 감췄다가 이번 쿠데타 사건을 계기로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곽준규를 심문한 결과 이번 일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긴 것 역시 안태완인 것으로 드러났다.

양하석 과장과 그의 팀원들이 부산 요트 선착장에 도착했을 땐, 안태완은 이미 저들의 손에 죽어가고 있었다.

양 과장과 팀원들이 사투를 벌인 끝에 그를 구출해 냈지만, 한쪽 손과 한쪽 발은 영원히 복구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일본 야쿠자 놈들 손에 잘려나갔기 때문이다.

헬기로 긴급 후송을 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붙여놨지만, 팔다리가 잘려나간 것을 제외하고도 이미 몸 곳곳에 칼자국이 가득했다.

보고를 받은 주몽은 안태완을 인조인간으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살려내라고 지시를 내렸다.

부산대 병원에서 대왕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안태완은 주몽의 보호와 감시 아래 회복 기간을 가졌다.

의식을 차리고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된 것은 보름이 넘었지만, 주몽이 직접 그를 찾아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주몽과 안태완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주몽은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뿌연 담배 연기가 병실 안에 흩어졌다.

병원, 그것도 VVIP 병실에서 담배가 웬 말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몽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먹이 먼저 날아갈 것 같았다.

물끄러미 주몽을 바라보고 있던 안태완이 입을 열었다.

“한 대 피워도 되겠소?”

주몽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담배와 라이터를 안태완 쪽으로 밀었다.

딸깍. 딸깍. 라이터 튀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일고 담배에 불이 붙었다.

“후우우…….”

깊게 들이킨 담배 연기를 느릿하게 흩날리던 안태완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젖혔다.

그렇게 한동안 담배만 피워대던 안태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살린 거요?”

“증인이잖아.”

“증인이라…….”

피식.

안태완은 ‘증인’이라서 살려줬다는 주몽의 말에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증거도 가지고 있을 테니까.”

“…….”

안태완은 묘한 눈빛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나는 증인이 될 생각도 없고, 증거 따위도 없소.”

“토사구팽을 당하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보네.”

“…….”

토사구팽이라는 말에 안태완은 말이 없어졌다.

“궁금하더라고.”

“뭐가 말이요.”

“일국의 안보수석이라는 자가 뭐가 부족해서 이런 짓을 하고 다닐까 하는.”

“그래서. 뭐가 나옵디까?”

“아니. 아무것도.”

주몽은 어깨를 으쓱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안태완이란 인물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동원했다.

컴퍼니 정보팀은 물론이고 청와대에 연락해 국정원 라인까지 돌렸음에도 안태완이란 인간은 ‘핵심’이랄 정보가 하나도 걸려들지를 않았다.

조동일보 사위라지만, 그저 명목상 관계일 뿐, 슬하에 자식도 없다.

청와대에 들어간 것은 조동일보 회장의 입김이 섞인 것이고 이명환 대통령은 그저 자리를 내주었을 뿐이다.

맡은 임무는 안보수석이지만 정작 안보와 관련된 일은 거의 하지 않았고 청와대와 외부 기득권 간의 메신저 역할만 충실했다.

‘메신저’

자기 주도적 행위가 아닌 각각의 의견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역할.

안태완과 얽힌 이들은 많았지만, 그 누구도 안태완이 어떤 식으로 일을 조율하고 마무리 지었는지는 아는 이가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요구가 적절히 반영되면 그걸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안태완 스스로 메신저라고 자처했기 때문에 안태완은 그저 ‘메신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하수인 정도로 취급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 돌아간 판을 들여다보면…… 메신저라기보단 컨트롤러라고 불러야 맞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였다.

안태완이 컨트롤러라면 그가 대한민국 암중의 지배자라는 소린데. 그게 말이 되냔 말이다.

어렸을 때 기록을 보면 더더욱 그랬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서울 지역 적당한 대학을 나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한민국 ‘평균’이 안태완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가 살아온 흔적 어디에도 대한민국 기득권과 부패 세력의 메신저 역할을 도맡아 할 정도의 연결 고리가 없었다.

전이된 기억에 의하면 안태완은 이번 사건으로 죽음을 맞는다.

‘바다에서 죽는 거로 알았는데,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죽임을 당한 거였어. 내가 아니었다면…….’

안태완을 죽이는 것은 육지보다 바다 위가 확실히 안전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선착장에서 고문에 가까운 작업을 했을까.

컨트롤러든 메신저든. 오가는 수많은 정보를 직접 듣고 관리한 안태완이다.

그가 드러나지 않길 바라는 자라면 안태완의 목숨과 그가 가지고 있는 또는 숨기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자료를 파기해야 했을 것이다.

‘젠장. 기억 전이 때 정신을 잃지만 않았어도.’

기억 전이는 엄청난 고통이 따르지만, 고통이 이는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정보가 머리를 스쳐 간다.

그 때문에 전이가 일어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정신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다른 세상도 아니고 동일 선상의 타임라인이었다. 어느 때보다 정신을 바짝 차렸어야 할 전이였는데…….’

가깝게는 안태완의 죽음. 멀게는 한반도의 전쟁.

큼직큼직한 기억은 어렴풋이 남겨졌지만, 세세한 정보는 하나도 건져내질 못했다.

정신을 잃지 않고 전이를 받아냈다면, 안태완을 잡고 이렇게 씨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모르겠더라고. 도대체 왜. 뭘 바라서 그런 짓을 반복하는 걸까. 무슨 이득이 있어서 이러는 걸까.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것도 아니면 사회 부적응자인 데다 분노 조절에 실패한 사이코패스라서?”

주몽이 담배를 들고 양 과장을 바라보자, 종이컵에 물을 담아왔다.

치이익.

짧은 소음과 함께 담배가 젖어 들었다.

“더 파볼까 했는데, 시간 낭비인 것 같아서 그만두라고 했다.”

“생각보다 의지가 약하군. 누군가의 인생을 알아보는데 겨우 한두 달 투자를 하고 포기를 하다니.”

안태완은 히죽 웃음을 흘렸다.

“포기했다고 누가 그래?”

“?”

“당사자가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을 때야 답답한 마음에 여기저기 뒤적거렸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잖아.”

“나에게 직접 묻겠다?”

“답하는 거야 당신 마음이겠지.”

주몽은 소파에 몸을 뉘며 안태완을 바라봤다.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했는지 ‘답’을 해 주든 아니면 ‘침묵’을 하든. 이제부터 네 몫이라는 듯.

느긋하게 자세를 잡고, 답을 기다리는 주몽의 태도에 안태완의 미간에 작게 주름이 잡혔다.

안태완은 담배 한 대를 더 꺼내 물더니 연기를 내 뿜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안태완이 세 번째 담배를 입에 물었다.

“대가는?”

“정보의 가치에 맞춰주지.”

“정보의 가치는 누가 평가하지?”

“내 양심.”

주몽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양심이라. 거, 믿을 수 없는 평가로군.”

“안태완 당신이 내놓을 정보도 100퍼센트 믿을 수 있다고는 볼 수 없잖아.”

주몽의 말에 안태완이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뭐,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더한다면?”

“검증해보고 값을 매기면 되겠군.”

“후우우~.”

연기를 길게 내 뿜은 안태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건을 내세웠다.

“감옥은 사양하지. 안전보장도 해줘야겠고.”

“욕심도 많군.”

주몽은 웃기지 말라는 듯 입술을 비틀었다.

“거래를 하려면 서로 원하는 것이 맞물려야지 않을까?”

안태완은 지금 이대로도 아쉬울 것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제안을 하지.”

주몽이 역으로 제안을 하겠다고 하자, 안태완은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들어보고 판단하겠다는 듯.

“협조해라. 그럼 고문은 하지 않을게.”

“뭐?”

주몽의 입에서 고문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 안태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답이 쓸 만하다면 목숨은 살려줄게.”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고문 운운하는지 모르겠네. 인권을…….”

주몽은 안태완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나라 팔아먹은 부역자 새끼가 인권 운운하고 있네. 남은 팔다리도 깔끔하게 잘라 먹고 싶냐?”

“…….”

“그러니까. 엿 같은 소리 작작 하고 정보나 내놔. 머리털 다 쥐어 뜯어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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