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69화 (170/224)

169장.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전(前) 일본 총리자 자평당 간사장 호시노 테츠히로는 한국의 방송을 지켜봤다.

리벤지 파운데이션 발촉과 일본에 대한 무제한 보복전을 펼치겠다는 주몽의 발표, 일본 기자와의 설전이 이어졌다.

“무제한 보복전이라…….”

호시노 테츠히로의 시선이 고노 스즈키에게 향했다.

“스즈키 군.”

“하이.”

“야쿠자가 개입된 게 사실인가?”

“솔직히 말씀드립니까?”

일본 쪽 주몽 관리팀 팀장에서 Go 컴퍼니 일본 지사장이 된 고노 스즈키는 복잡한 눈빛으로 호시노 간사장을 바라봤다.

“솔직히 이야기 한다라…… 스즈키 군의 생각을 말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증거가 있다는 건가?”

“증거에 관해선 저 역시 아는 게 없습니다. 하지만…….”

호시노 간사장은 더 듣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황상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겠지.”

“네. 그렇습니다.”

“이해가 되질 않아. 왜 하필이면 지금이어야 했냔 말이지.”

“저 역시 궁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주몽의 시민권?

100억 달러의 투자와 글로벌 복권 수익금을 받기 위한 거래의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막말로 고주몽이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특별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스즈키가 입을 열었다.

“간사장님.”

“말씀하시게.”

“어떻게든 야베 수상의 독주를 막으셔야 합니다. Go 컴퍼니를 여타 회사들처럼 생각했다간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네. 하지만 무슨 수로 그를 막는단 말인가. 내가 총리 자리에 있었음에도 내각 대신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네.”

“…….”

“내 입으로 말하기도 부끄럽네만, 고주몽 회장이 시민권을 박탈당했다는 것도 방송을 보고 알았네. 그나마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을 땐 나름대로 방어를 해냈지만 이젠 그것조차 힘들게 되었지 않나.”

호시노 간사장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고주몽 회장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나?”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최소 20조 엔에서 30조 엔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소유하고 휘두르기엔 틀을 벗어난 규모군.”

“이 돈이 투자를 목적으로 움직인다면 일본에 도움이 되겠지만, 공격을 목적으로 움직인다면 자국 자금 시장이 엉망으로 변해버릴 겁니다.”

“나라고 그걸 모르겠나.”

호시노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자신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처지라는 듯.

“그럼 이대로 지켜만 봐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고노 스즈키는 답답한 눈빛이 됐다.

Go 컴퍼니에 속하고 주몽의 가신이 되어 충성을 맹세했지만, 그렇다고 일본을 망가트리는 일에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마음은 아프지만, 주몽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복수가 됐든 뭐가 됐든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청히 있다면 그거야말로 어이없는 일이니.’

싫든 좋든, 자의든 타의든 고주몽은 반격에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힘도 충분히 지니고 있다.

‘가주의 뜻에 반할 수는 없지만……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해.’

“고주몽 회장은 어디까지 생각하던가?”

“야베 총리의…… 아니, 일본의 항복입니다.”

“음…….”

“어쩌면 이번 기회를 빌려 과거사 문제까지 들고나올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 때 조선의 황후 사건을 들먹인 것 때문에 그리 생각하나 보군.”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주몽 회장님이 분노하신 것은…… 전쟁입니다.”

“전쟁? 우리가 전쟁을 일으키려 했다고 그리 생각하는 건가?”

“짜인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저 역시 최종목적은 전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허허허. 미치겠군. 미치겠어.”

“베트남전과 한국전을 기반으로 무너진 일본을 일으켰듯이 다시 한번 같은 과정을 반복하려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경제 대국으로 알려진 일본이지만, 속은 썩어버린 호박처럼 진물이 줄줄 흘렀다.

단단해 보이지만 누군가 손가락으로 푹 찌르기만 해도 그간 감춰왔던 허세가 탄로 날 것이다.

일본은 국가 부채비율이 GDP 대비 250%를 넘어섰다.

국가 부채비율만 따진다면 세계 1위다.

내수시장은 얼어붙었고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기업들은 제 살 깎아 먹기를 반복하며 하나둘 붕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경제 보복이 이뤄진다면…… 과거 러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모라토리엄, 파산 선언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시지 않습니까. 국가부채가…….”

“알고 있네. 하지만, 그 부채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나눠서 지고 있지. 1억 내수시장을 가진 일본이네. 고주몽 회장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만에 하나 그런 짓을 했다간, 일본이 망하기 전에 고주몽 회장이 먼저 파산을 할 테니까. 고주몽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쪽을 건드렸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을 거네.”

호시노는 은연중 고주몽이 그쪽에 시선을 줬으면 좋겠다는 듯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호시노의 말에 스즈키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랏빚을 국민에게 짊어지게 한 것도 웃기는 일인데, 주몽과의 전쟁에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희생시키겠다는 말이다.

사고는 정부가 치고 책임은 국민에게 미룬다?

‘일국의 총리였던 사람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지 않은가!’

스즈키는 답답한 마음이 됐다.

이런 식이면 한국 때리기로 자국 기업을 희생시키고 표밭 다지기에 나섰던 야베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스즈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시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야베의 계획이 정말 그런 것이었다면…… 만에 하나 이번 일이 전쟁으로 발전을 했다면…… 일본은 오랜 불황을 단숨에 해결할 수도 있었을지도.”

호시노 간사장의 말에 스즈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 때문에 죽어 나갈 일본 국민은 눈에 들어오지 않으시는 겁니까?”

“아, 오해를 했나 보군.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네.”

호시노 간사장은 고개를 흔들더니 말을 덧붙였다.

“잠시간, 경제 활황이 올 수는 있겠지. 하지만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그 불꽃이 열도에 이르고 말 걸세. 북한의 미사일은 곧바로 열도를 향할 테니까.”

“맞습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 일본 역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설마.”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나 보군. 어쩌면 야베 총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쟁을 통한 경제 활황뿐 아니라 한반도 상륙을 생각한 모양이네.”

“…….”

스즈키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까지 2차 대전 직후로 모든 게 후퇴해 버릴 것이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전쟁은 미사일 초토화 작전이라고 부른다.

당장 이라크와 미국의 중동 전쟁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전후 이라크가 어디까지 추락했는지를 생각한다면 이건 동북아 국가들의 파멸 곡이라 할 것이다.

“야베 총리가 천황제 회귀 주의자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도 바보는 아닙니다. 자칫 일본까지 잿더미가 될 수도 있는 일을…….”

“그도 알고 있겠지.”

“그런데 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스즈키와 달리 호시노 간사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도 이 일을 추진했다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수를 더 가지고 있다는 뜻 아니겠나.”

“미국일까요?”

이 정도 일을 벌이려면 배후에 미국 정도는 있어야 가능한 일 아니냔 눈빛이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 문제로 정밀 외과 수술 운운했던 미국을 생각하면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생각하면…… 이보게. 스즈키 군.”

“하이.”

“누가 이런 일을 꾸몄는지는 우리도 계속 알아보겠네. 하지만 지금은 당장 코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을 하세.”

“리벤지 코퍼레이션 말씀입니까?”

“중재를 부탁하네. 지금 일본에서 고주몽 회장과 끈이 닿은 건 자네뿐이지 않나.”

“이건 제가 나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증거…… 증거가 있나?”

“증거 말입니까?”

“그래. 고주몽 회장을 공격했던 자들이 일본인 야쿠자라는 증거 말일세.”

“간사장님. 지금 회장님에게 증거를 내놓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책임을 묻는다면 야베도 한발 뒤로 물러나지 않을까 해서 말하는 걸세.”

“간사장님. 증거는 우리 쪽에서 내밀어야 합니다. 일본이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다는 증거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의심뿐이지 않나. 만에 하나 이게 자작극이거나 다른 이들이 일본을 노리고 벌인 일이라면?”

자작극?

스즈키는 속으로 혀를 찼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안태완이 끼어든 일이다.

폐촌 사건도 그가 끼어든 일이고 그때 직전 안태완과 통화를 하기도 했었다.

위험한 일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지만, 자신의 의견은 무시가 됐다.

그 말은 안태완과 고위층 사이에 이미 의견이 오갔고 협의도 끝났다는 말이다.

이번 일도 분명히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잠깐만. 그땐 야베 총리가 전면에 나서지 않았을 때다. 그때는…….’

스즈키는 묘한 눈빛으로 호시노 간사장을 바라봤다.

‘설마…… 아닐 거야. 호시노 간사장은 나보다도 회장님에게 친화적 태도를 보였다고. 거기다 전쟁 위험에 대해서도 걱정 섞인 반응을 보였어.’

스즈키가 불쑥 고개를 쳐든 의심귀 하나를 잡아 누르는데, 그 와중에도 호시노의 말은 계속됐다.

“이건 명분 싸움이네.”

명분 싸움?

이미 명분은 고주몽 손에 넘어갔고 세계가 모든 상황을 지켜봤다. 그런데 인제 와서 무슨 명분을 이야기한단 말인가.

“야베의 생각이 과격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 역시 일본의 정치인이고 일본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이네. 잠시 작은 실수를 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이게 무슨…… 소린가.

‘작은 실수?’

스즈키는 어이없는 표정이 됐다.

“고주몽 회장의 일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증거도 없이 보복을 가하는 일은 없어야지 않겠나. 그건 야만인들이나 하는 짓일세.”

스즈키는 꾹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나름 일본을 걱정하는 정치인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어떻게든 호시노 간사장을 돕고 싶었다.

아무리 민자당과 야베가 득세를 했다고 해도 자평당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이다.

호시노와 자평당이 나서서 민자당의 독주를 막고 고주몽 회장의 편을 든다면 상황을 완화 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젠장, 여기서 증거를 내놓으라고? 야만인이나 하는 짓?’

스즈키는 황당한 심정이 됐다.

‘회장님의 화를 돋워서 끝장을 보자는 말과 뭐가 다르냔 말이다!’

“가서 내 말을 전해주게. 그래도 나는 시민권도 내주고 그랬지 않나. 고주몽 회장의 투자유치에도 적극적이었고.”

‘그거야 받은 게 있으니까 그런 거고.’

“부탁하네. 고주몽 회장도 말이 통하지 않는 야베보다는 자평당과 소통을 하는 게 좋지 않겠나.”

‘소통?’

스즈키는 호시노가 원하는 것이 정말 소통인지 의심스러워졌다. 정말 소통을 원한다면 증거, 명분 운운해선 안 될 일이다.

‘간사장이 직접 나서서 Go 컴퍼니 공격 정보를 획득하려는 것인가.’

의심귀가 머릿속을 파고들자, 호시노 간사장의 말이 모두 의심스럽게 들렸다.

“일단 알겠습니다. 호시노 간사장님도 지켜만 보지 마시고 야베 총리와 진지하게 대화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야베와 호시노 간사장. 반대편에 서서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뻔뻔하기는 마찬가지구나.’

증거 운운하고 국민의 희생을 당연시하며 야만인을 들먹일 게 아니라, 당장 한국으로 달려가 고개를 숙이고 일본이 공격당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사과 몇 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 건가…….’

호시노 간사장과 만남을 끝낸 스즈키는 자평당 당사를 나와 컴퍼니 지사로 이동을 했다.

“만에 하나 이번 일이 민자당과 자평당의 협잡이라면…….”

스즈키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상황이 급하다 보니 자신이 너무 부풀려 생각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과도한 억측이라 생각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수그러들질 않았다.

“만에 하나 그게 사실이라면, 저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전쟁인 건가.”

야베와 호시노의 공조. 일본 경제 불황 탈출. 한반도 상륙. 천황제로 회귀. 군국주의의 부활!

일본의 영광과 발전을 바라는 스즈키지만,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건 반갑지 않았다.

이는 일본의 영광을 빌미로 국민의 희생과 목숨을 담보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일본을 걱정하는 정치인이라면 절대 해선 안 될 짓이다.

스즈키는 문득 주몽의 시민권 박탈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호시노 총리의 허락 없이 외무대신이 시민권을 박탈했다. 아무리 야베 총리의 입김이 흘러들었다고 해도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일본 정계와 관료주의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거기다 주몽의 시민권 박탈은 단순히 서류에 줄 몇 개 긋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100억 달러의 투자금과 글로벌 복권 수익금이 단숨에 날아가는 일이다.

외무대신이 고주몽처럼 대담한 부자라도 된다면 모를까. 그간 투자된 자금이 빠져나가고 국부가 줄어드는 일을 무슨 수로 감당하고 책임진단 말인가.

외무대신보다 더 윗줄의 암묵적 허락이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온갖 것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젠장! 왜 이걸 이제야 깨달은 거야.”

스즈키는 마음이 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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