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장. 주몽과 함께.
▶ 와, 뭐냐.
▷ 인근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달려 나온 것 같은데.
카메라에 찍힌 장면은 광화문 거리를 메우고 있는 시민들이었다.
▶ 이러면 차량 이동은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 어차피 광화문 앞에 장갑차 있어서 차로는 못 간다.
▷ 고 회장님 몸도 안 좋은데…… 청와대까지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고?
▷ 이동이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군인들이 막아설 거잖아.
“회장님 어떻게 하죠?”
성희주가 난감한 표정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내려야죠.”
“하지만 군인들이…….”
뒷말을 잇진 못했지만, ‘주몽을 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미사일까지 쏜 자들이 이제 와 물러서겠냐는 눈빛이다.
“설득해야죠. 장병들까지 모두 동조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들은 내가 죽었다는 소식에 곽준규 중장을 따라나선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정말 그렇다면 장갑차로 저렇게 막아서지 않아야죠.”
성희주는 너무 위험하다며 주몽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막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몽도 내심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대로 차 안에 숨어 있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우리가 돕겠습니다. 인간방패라도 하면 되죠!”
강북파 조폭들이 단호한 표정으로 방패를 자처했다.
이들의 말은 고맙지만, 주몽은 선뜻 그렇게 해달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몽의 머뭇거림을 느낀 것일까. 조폭 하나가 먼저 문을 열고 내렸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따라 내렸고 나름대로 장막을 펼쳤다.
“회장님. 가십시다.”
“고맙습니다.”
“고맙기는요. 막말로 우리가 고맙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술이나 처마시고 있었는데, 회장님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우리가 주먹으로 먹고살지만, 저 새끼들처럼 나라 말아먹자고 달려들지는 않습니다.”
“갑시다. 회장님.”
주몽이 차에서 내리자, 성희주가 옆에서 부축했고 캔맥주는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내보냈다.
그때 캔맥주의 방송을 보고 있던 시민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저기 있다! 고 회장님이 저기 있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주몽 일행을 발견한 시민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조폭들이 그런 것처럼 주몽을 보호하듯 에워쌌다.
“우리도 돕겠습니다!”
“함께 갑시다!”
“고 회장님 힘내십시오!”
너튜브 방송을 보고 있던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까지 주몽 쪽으로 이동을 했다.
주몽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곳곳에 배치돼 있던 저격병들은 스코프로 이 장면을 바라보다 ‘에이 시발!’하고 총을 내려놨다.
주몽을 저격할 수 없어서 화를 낸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하는 심정에 화가 난 것이다.
“가자.”
사수가 몸을 일으키자, 부사수 역시 ‘네!’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곽준규 중장의 명령에 따랐던 것은 고주몽 회장을 공격한 이들을 막아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그때 지휘관의 무전이 날아들었다.
―저격수! 뭐 하는 거야. 고주몽을 쏴!
사수는 무전기를 뽑아 들더니 송출 버튼을 눌렀다.
“닥쳐! 이 미친 새꺄!”
―뭐…… 뭐야?
“고주몽 회장의 복수를 한다며? 그런데 뭐? 고주몽 회장을 쏘라고? 네 대가리에 총알을 받아줄까?”
―…….
“이 사기꾼 새끼들! 나도 청와대로 간다. 어디 막을 수 있으면 막아봐!”
사수는 무전기를 던져버리더니 부사수와 함께 건물 밑으로 내려갔다.
반쯤 부서진 무전기에서 다른 저격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지금 너 잡으러 간다. 대가리 간수 잘하고 있어라.
―고 회장이 북괴냐? 왜 거기다 총을 쏘라는 거야?
―고 회장 죽었다며. 그럼 저 밑에 있는 고 회장은 유령이냐? 이 반역자 새끼들아! 고 회장 죽인 놈들 잡는다더니 고 회장을 쏘라고?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군 개혁과 고주몽의 복수를 하겠다던 곽준규의 외침은 모조리 헛소리임이 밝혀졌다. 이대로 있다간 자신들까지 뭉뚱그려서 반역자가 될 판이다.
이들의 무전 교신은 같은 주파수를 쓰고 있던 장병들에게도 그대로 전달이 됐다.
“이게 무슨 소리야. 고 회장이 살아있다니.”
“헬기추락으로 죽은 거 아니었어?”
그때 광화문 건물에 붙은 전광판에 긴급 속보가 쏟아졌다.
<고주몽 회장! 생존. 수도방위사령부 곽준규 중장. 고주몽 회장 암살 모의!>
<곽준규 중장. 청와대에서 계엄령 선포!>
<군부 쿠데타인가. 아니면 고주몽 회장의 유지를 이은 것인가! 대국민 사기극!>
광화문 앞을 틀어막고 있던 장갑차 부대는 멍한 표정으로 전광판을 올려다봤다.
“저게 지금 무슨 소리야. 우리가 쿠……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중대장님! 저게 지금 무슨 소립니까. 우리는…….”
부대원들의 외침에 중대장도 멍한 표정을 짓긴 마찬가지다.
“중대장님!”
“어? 어.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중대장은 전화기를 꺼내 속보 내용을 재차 확인하려는데, 수백 개가 넘는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재빨리 내용을 살핀 중대장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우리가 진짜 쿠데타군이라고?”
“중대장님 어떻게 합니까. 고주몽 회장과 시민들이 코앞까지 다다랐습니다.”
“어쩌긴 뭘 어째! 당장 고 회장님과 시민들을 보호한다!”
“역시 그렇죠?”
“빨리!”
“네! 중대장님.”
당혹감 가득했던 부대원들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야, 다들 들었지! 장갑차 치워! 이제부터 고 회장님과 시민들을 보호한다!”
“네!”
광화문 앞까지 도달했던 시민들은 장갑차가 움직이자 다들 움찔한 표정이 됐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달려 나오긴 했지만, 총구 앞에서 덤덤하기는 어려웠다.
“어? 장갑차가 물러난다.”
“만세! 장갑차가 물러난다!”
시민들이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시민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던 주몽도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곽준규와 수뇌부는 썩어빠졌을지라도 장병들까지 그들에 동조하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희주씨. 앞으로 나가야겠습니다.”
“네. 회장님. 삼촌들 길 좀 터요. 회장님 앞으로 이동하신데요!”
“네. 아가씨!”
조폭들이 양쪽으로 물러나며 길을 만들기 시작하자, 시민들도 이에 협조하기 시작했다.
주몽이 앞으로 이동을 하자, 주몽을 둘러싸고 이동하던 대형이 주몽을 뒤따르는 대형으로 변형됐다.
장갑차 부대 지휘관이 후다닥 달려오더니 주몽을 향해 경례를 붙였다.
군 상급자도 아닌 주몽에게 경례를 붙이는 게 웃기는 상황이었지만 누구도 웃는 사람이 없다.
마치 이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들이다.
“무사하셨군요.”
“죽다 살았습니다. 곽 중장은 청와대에 있습니까?”
“네. 회장님.”
“그쪽으로 이동을 해야 합니다.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지휘관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더니 곧바로 무전을 날렸다. 그리고 주몽 옆에서 함께 이동을 시작했다.
“회장님. 저희는…… 이런 상황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지휘관은 참담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대한민국 군대가 국민을 상대로 그럴 리가 없으니까요.”
“네!”
주몽이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하자, 딱딱하게 굳어 있던 지휘관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다른 곳에 있는 부대는 상황이 어떻습니까?”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지휘관은 무전기를 들어 다른 부대 상황을 파악했다.
“국회로 갔던 부대도 돌아오고 있습니다. 청와대 쪽은 무전이 끊어져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혹시 호텔 쪽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제 직원들이 포위를 당한 상태라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쪽은 곽 중장이 따로 움직인 부대라…… 이쪽에서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지휘관은 죄송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들도 회장님의 생환 소식을 들었을 겁니다. 정황이 파악되면 발길을 돌릴 겁니다.”
주몽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래도 확인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했다.
“그쪽으로 부하를 보내놓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컴퍼니는 자체 경호팀이 있어서 자칫 총격전이 벌어질 수도 있어서 말입니다.”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 쪽으로 방향을 잡는데,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동대는 물론이고 타격대까지 출동했는지 길 한쪽이 경찰 버스로 꽉 찰 정도다.
“회장님!!!”
지휘차에서 내린 경찰청장과 검찰총장, 이익현 차장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괘…… 괜찮으신 겁니까?”
땀범벅이 된 이익현 차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얼굴은 물론이고 몸 전체가 피투성이다.
붕대로 얼키설키 감아 놓기는 했지만, 낯빛이 창백한 것이 곧바로 응급처치하지 않으면 위험할 지경이다.
“보다시피. 상태가 그리 좋지는 못하네요.”
“의사를 데리고 왔습니다. 일단 상처부터 다스리고 움직이시죠.”
뒤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경찰청장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게 좋겠습니다.”
경찰과 함께 달려온 응급차 한 대가 주몽 쪽으로 후진을 했다.
응급요원들과 젊은 의사 한 명이 달려 나오더니 주몽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런…….”
의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나.”
경찰청장이 긴장된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봤다.
“바로 꿰매야겠습니다. 상처가…… 어유. 버티고 서계시는 것만으로도 놀라울 정돕니다.”
“그럼 어서 치료해!”
경찰청장이 안달 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는 주몽의 상체에 세척액을 쏟아부었다.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상처가 더욱 자세히 드러났다.
▶ 으읏. 저게 몇 개냐.
▷ 아까는 차 안이라 자세히 안 보였는데…… 장난이 아니네.
▶ 젠장. 저게 다 칼자국이라니…….
▷ 저러고 계속 이동을 했다고? 과다 출혈로 죽는 거 아냐?
방송을 보고 있던 구독자들은 물론이고 주몽을 에워싸고 있는 시민들 역시 ‘으윽’하는 신음을 쏟아냈다.
마치 맨몸으로 가시덤불을 뒹군 것처럼 수십 개가 넘는 상처로 뒤덮여 있었다.
의자는 바늘로 꿰매기엔 시간이 촉박하다고 생각했는지, 스테이플러를 꺼내 호치키스 박듯 상처를 집었다.
“으으윽!”
주몽이 이 악문 소리를 내자, 성희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마취는 하고 박는 겁니까?”
“네? 아. 이런…….”
의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응급요원을 바라봤다.
“마…… 마취약 좀.”
성희주는 물론이고 시민들 모두 싸늘한 눈빛으로 의사를 노려봤다.
“지혈이 급해서 그런 겁니다. 그렇죠. 의사 선생님?”
“네…… 네. 그렇습니다. 지혈이 급해서. 일단 큰 것은 막아놨으니 마취를 하고 작은 것들도 마무리하겠습니다.”
주몽이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감사의 눈빛을 날렸다.
경찰청장은 ‘112가…… 119가…… 장난 전화가……’ 하면서 연신 눈치를 봤는데, 그런 소리 할 시간 있으면 자신을 공격했던 야쿠자들의 시신과 그들이 지닌 물품을 수거해 증거 획득에 노력해 달라고 했다.
응급조치를 끝낸 주몽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회장님. 몸이 버틸 수 있으시겠습니까. 이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는 날엔…… 그냥 차에 타시죠.”
“네. 회장님. 그게 좋겠습니다.”
검찰총장과 이익현 차장이 자신들 차량에 타고 이동을 하자고 했지만, 주몽은 고개를 저었다.
세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이곳까지 왔다.
인터넷 방송 덕분에 이 모든 상황이 생중계되고 있었고, 자신이 하는 행동 말 한마디가 전 국민에게 알려졌다.
시민들은 물론이고 검찰과 경찰, 군까지 하나가 되어 자신을 지지하고 함께하는 이 상황을 왜 내팽개치고 차에 탄단 말인가.
이런 장면은 수백조를 쏟아부어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그야말로 역사의 한 장면이고 절호의 기회였다.
주몽이 비틀거릴 때마다 안타까운 소리가 쏟아졌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힘내서 걸을 때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응급요원들과 의사는 주몽의 팔에 수액과 혈액 팩을 연결했다. 이동하는 동안 주몽이 버틸 수 있도록 조처한 것이다.
성희주는 그런 주몽을 부축해 이동했고, 캔맥주는 흥분된 표정으로 현장 상황을 중계했다.
주몽과 시민들이 청와대 앞에 도착하자, 경비를 서고 있던 군인들이 경례를 붙였다.
“충성!”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군인들은 청와대 정문을 활짝 열어 제쳤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있을지 모른다는 소식에 청와대에 몰려와 있던 취재진은 주몽과 시민들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안쪽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수도방위사령관과 쿠데타 세력은 101경비단과 방위사령부 장병들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대통령님은 무사하십니까?”
“네. 회장님. 안에서 회장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개를 끄덕인 주몽이 시민들을 바라봤다.
“여러분.”
“네! 회장님!”
“함께 가시죠.”
“와!”
시민들의 함성과 함께 주몽이 청와대 안으로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