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장. 또 다른 신세계
곽준규 수뇌부가 이번 작전을 실행하면서 가장 중점에 둔 사항은 ‘고주몽 회장의 복수와 유지를 이어받아 개혁을 완수’하는 것이다.
과거와 같은 군부 쿠데타는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런 방식으론 어떤 지지도 얻을 수가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90% 이상의 대국민 지지도를 가지고 있는 이명환이 이에 동조하고 반개혁 세력과 고주몽 회장 암살 세력 추출 및 체포 작전을 위해 계엄령 선포가 이뤄진다면 쿠데타 부대가 아니라 개혁 상승군이 되어 정국을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일을 진행한 소수 수뇌부를 제외하곤 장교들과 사병들은 자신들이 대통령의 지시하에 계엄 개혁군이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군 내부의 반발을 억지하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었다.
과거 5% 지지도도 안되는 탄핵 직전의 대통령을 등에 업고도 이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쿠데타 작전도 실행 직전까지 갔던 경험이 있었다.
곽준규와 그의 세력은 자신이 있었다.
국민지지도 90%짜리 대통령의 계엄령과 고주몽 회장의 복수. 그리고 개혁 자금 70조 획득.
이는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작전이었고 숙청 대상이었던 군 장성들에겐 회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솔직히 성공 가능성을 떠나서라도 이대로 멍청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다간 자신들이 다 죽을 판이었으니 우격다짐, 억지라고 부려야 할 상황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과거처럼 군복을 벗고 야인으로 돌아가 방산 업체 임원이 되거나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코스가 아닌 국가 반역자로 재판을 받아야 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징벌적 배상이니 뭐니 하면서 말도 안 되는 법을 통과시킬 정도로 국회를 장악해 버린 고주몽이다.
자신들 역시 과거의 흐릿한 법이 아니라, 자신들 전용으로 새롭게 법을 만들어서라도 박살을 내려 할 것이 분명했다.
그에 대응하기 위해 수립된 작전 ‘신세계’
아이러니하게도 주몽과 Go 컴퍼니가 수립한 작전명과 같은 이름이다.
서로가 서로의 기득권을 두고 벌어진 승자독식 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군부가 수립한 신세계 작전의 시작과 끝 그리고 성공의 필수 조건은 ‘고주몽 죽음’이다.
고주몽이 죽어야 명분과 실리를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결집 세력을 일시에 무너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대통령 명령에 따른 계엄령 선포와 국회 해산 그리고 자신들 주도하게 치러질 국민 총선거.
착착 진행되어야 할 작전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신세계 작전의 시발점이자 끝이어야 할 ‘고주몽 죽음’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곽준규와 지휘부는 머리를 맞댔다.
“고주몽이 살아있다면 이 작전은 무조건 실패입니다.”
“미치겠네. 그놈은 날개라도 달렸답니까. 어떻게 미사일 맞은 헬기에서…….”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입니다. 물러서는 순간 우리는 다 죽습니다.”
“우리 모두 반역자가 될 겁니다.”
장성들의 불안한 음성에 곽준규가 콧방귀를 날렸다.
“흥! 그래서? 작전을 실행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애국자라도 됐을 거라는 소린가? 손가락만 빨고 있었어도 반역자 신세가 되긴 마찬가지였어!”
곽준규의 거친 음성에 장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평생을 군에 헌신하고 국가와 민족의 안전을 위해 살아왔는데. 고주몽과 이명환은 우릴 반역자로 몰았습니다.”
“놈이 죽든 우리가 죽든. 이젠 물러설 곳이 없다.”
“하지만,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받아내지 못했지 않습니까. 군을 움직일 방법이 없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계엄령이 이뤄졌어야 했다.
작전을 진행한 수뇌부를 제외하곤 휘하 장교들과 병사들은 자신들이 쿠데타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니 상황이었다고 해야 맞겠다.
이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쿠데타 세력이 되어버렸다는 걸 장병들도 곧 알게 될 것이고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 중엔 총부리를 반대로 돌리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다.
“수방사 병력은 둘째 치더라도 반대파 놈들이 움직일 명분이 생겼습니다.”
“음…….”
반대파가 명분을 손에 쥐었다는 말에 다들 침음성을 삼켰다.
고주몽이 죽은 상태라면 불만이 가득해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오히려 반역자로 몰리거나 자칫 내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령관님.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고주몽을 저격하라고 명령을 내린 상태다.”
“고주몽이야 당연히 죽여야겠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인터넷에…….”
살아 돌아온 고주몽이 자신들의 행위를 ‘쿠데타’로 선언해버렸다.
고주몽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는 말에 지지를 얻었던 곽준규는 순식간에 반란군 수령이 되었고 속속 들어오는 소식에 따르면 국민들이 광화문 앞으로 모여들고 있다고 했다.
‘빌어먹을. 앙앙거리지만 말고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내놓으라는 말이다. 이 멍청한 놈들아.’
오리 새끼들도 아니고 자신만 바라보고 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무능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장성들의 태도에 속이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
“안태완 수석에게 연락을 해보죠. 이번 계획에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그가 아닙니까.”
“그렇지. 안 수석이 있었네. 사령관님 그자라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뒤에서 속닥거리기나 하는 그놈이 무슨 방법이 있겠냐마는. 그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니.’
곽준규는 곧바로 안태완에게 연락을 넣었다.
“안 수석. 나 곽준규요.”
―이거, 일이 골치 아프게 됐습니다.
전화를 받은 안태완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처럼 대답했다.
마치 성공하면 우리 편, 실패하면 남의 편이라는 듯 모호한 목소리다.
“상황을 뒤집을 방법이 없겠소?”
―저도 나름대로 고민을 해 봤습니다만, 되겠습니까?
“안 수석! 당신이 그렇게 말을 하면 안 되지!”
곽준규가 언성을 높이자, 안태완은 ‘쯧쯧’ 혀를 찼다.
―뒤통수 맞을 걸 구해 줬더니. 보따리라도 내놓으라는 겁니까?
“…….”
―일을 망친 건 그쪽입니다. 나에게 화를 낼 일이 아니죠.
“안 수석도 일이 이렇게 끝나는 걸 원하지는 않을 것 아니요. 내가 무너진다면 안 수석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저야 이미 지명수배자 신세 아닙니까. 이제 와 딱히 달라질 것도 없죠.
안태완은 일이 어그러져 그저 아쉬울 뿐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최후의 수단이라면…….
“방법이 있소?”
―과거 군부 쿠데타가 그랬듯이 방아쇠를 당기는 수밖에 없겠죠.
“미쳤군. 지금 나보고 국민들에게 발포 명령이라도 내리라는 거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명분과 지지를 모두 손에 넣을 방법을 알려드렸는데 그걸 수포로 만든 것은 곽 중장입니다. 이대로 시간만 보냈다가는…….
안태완의 말에 곽준규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아무리 썩어빠졌다고 해도 그건 안될 일이요. 설사 그런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부하들이 따를 리도 없고.”
―그럼 그렇게 있다 뒤지시던가.
“뭐라?”
곽준규의 눈꼬리가 사납게 휘어졌다.
―이만 끊죠. 딱히 서로 간에 도움이 될 것도 없는 것 같으니.
“이보시오! 안 수석! 안 수석…… 야! 이 새꺄!”
곽준규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자, 나름 기대하고 지켜보던 장성들이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안태완의 태도에 부들부들 손을 떨어대던 곽준규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사령관님.
“안태완이 그 자식 지켜보고 있지.”
―네.
“잡아.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곽준규는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디서 저만 쏙 빠져나가려고.”
“사령관님. 어차피 이대론 방법이 없습니다. 유혈사태를 맞이할지라도…….”
장성 하나가 무력으로 쿠데타를 진행하자는 말을 꺼내려는데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뭐야?”
장성 하나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곽준규 중장의 명령을 받아 밖으로 나갔던 대령이 창백한 표정으로 걸어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그게…….”
* * *
고주몽의 사망 소식은 여러 분야에 충격을 줬다.
특히 고주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이들에겐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고 말 그대로 멘붕이 왔다고 할 것이다.
“이런 멍청이들아! 112에 고 회장님이 살아있다는 신고가 그렇게 많이 들어왔는데, 그걸 다 무시했다고?”
집에서 사복 차림으로 뛰쳐나온 경찰청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헬기추락이 방송에 나왔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장난 전화가…….”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해? 니들 다 모가지야!”
“…….”
“지금 인터넷에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 군 개혁 다음엔 경찰 개혁을 하자고 난리야! 난리!”
총장은 총장실이 떠내려갈 정도로 악을 써대다가 씩씩대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뭘 멍청히 서 있어! 당장 나가서 고 회장님을 보호해야 할 것 아냐!”
“네…… 네!”
“기동대가 됐든 뭐가 됐든 다 출동시켜! 시대가 어떤 시댄데 쿠데타야. 미친놈들 같으니라고.”
* * *
“옷 좀…….”
붕대와 구급상자를 챙겨 든 성희주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네. 부탁드립니다.”
주몽은 조심스럽게 슈트를 벗었다.
“으…….”
어깨와 옆구리에서 통증이 밀려들자 자연스럽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도와드릴까요?”
주몽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희주의 도움을 받아 넝마가 된 상의를 벗자, 피범벅이 된 와이셔츠가 드러났다.
“어떻게…….”
성희주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이 됐다.
캔맥주는 피투성이가 된 주몽을 바라보며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여러분. 고 회장님 상처가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 그걸 말이라고. 야쿠자 놈들과 그렇게 칼부림을 했는데…….
▷ 빨리 지혈부터 합시다. 검후 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와이셔츠를 벗기자 몸 곳곳에 상처가 드러났다. 어깨와 옆구리를 제하고도 수많은 자상이 눈에 들어왔다.
“삼촌 물! 수건!”
“여기 있습니다.”
수건에 물을 적신 성희주는 조심스럽게 피를 닦아내고 상처 부위에 과산화수소를 쏟아부었다.
“으…… 윽.”
상처 부위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하얀 거품을 생성했다.
핏물이 꿀꺽꿀꺽 흘러내리는 상처에 지혈용 분말 약품을 쏟아붓고는 붕대로 지압을 했다.
“죄송해요. 삼촌들이 가지고 다니는 게 이런 것뿐이라.”
“아닙니다.”
성희주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병원으로 가는 게 어떨까요? 임시방편으로 처치를 하기엔 상처가 너무 많은데…….”
“안됩니다. 청와대로 가야 합니다.”
주몽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만에 하나 곽준규가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간 엄청난 유혈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 와, 고 회장님 몸 봐라. 밥 먹고 운동만 했나? 뭔 놈의 근육이…….
▷ 야쿠자들과 맞짱 뜬 거 봐라. 평범한 몸으로 그게 가능했겠냐.
▶ 돈도 많아, 여자도 많아, 몸도 좋아…….
▷ 지금 그런 소리를 할 땝니까? 고 회장님 칼 맞은 게 벌써 두 번째입니다.
▷ 맞습니다. 이게 다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 큰 지지를 보냈어야 미친놈들이 난동을 못 하는 건데.
▶ 그저 민망할 따름입니다.
구독자들은 주몽의 몸에 난 상처와 발달한 근육을 확인하더니 다양한 감상을 쏟아냈다.
그때 캔맥주가 카메라를 자신 쪽으로 돌리더니 의견을 냈다.
“혹시, 이 방송을 보시는 분 중에 의사분이 계신다면. 도움을 바랍니다. 우리는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로 이동 중입니다. 지혈했다곤 하지만 임시방편이고 몸을 움직이면 출혈이 계속될 겁니다.”
캔맥주의 말에 연달아 채팅 글이 올라왔다. 개중엔 자신이 아는 의사에게 지금 전화를 하고 있다는 이들도 있었다.
▶ 캔맥주 님. 광화문 앞에 장갑차 등장했답니다.
▷ 미친…… 진짜 뭐 하자는 거야.
▶ 어쩌죠. 광화문 광장에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다는데. 이러다 유혈사태라도 생기는 날엔…….
캔맥주는 구독자들의 보내준 실시간 소식을 주몽에게 전해줬다.
“좀 더 속도를 높이죠.”
“삼촌! 더 빨리!”
“네! 아가씨.”
주몽을 태운 승합차는 비상등을 켜고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아가씨. 길이…….”
“왜요?”
성희주는 앞 좌석 쪽으로 고개를 내밀더니 밖을 확인했다. 캔맥주도 스마트 폰을 카메라를 밖으로 움직였다.
“어…….”
캔맥주가 살짝 놀란 표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