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장. 다구리냐!
철수는 자신의 너튜브 채널 실시간 구독자 수를 확인하더니 깜짝 놀란 표정이 됐다.
“17,530명?”
눈 한 번 감았다 뜰 때마다 수십 수백 명씩 계속해서 접속자가 늘어났다.
외출 방송을 할 때 최대 기록이 2천 명 수준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였다.
‘가로수 권총남 추적방송’으로 타이틀을 바꾼 뒤, 몇백 명 수준이었던 접속자가 순식간에 1만 7천 명이 늘어난 것이다.
“대박!”
자신의 채널을 보며 철수가 감탄사를 쏟아내는데, 방송을 이어 받은 캔맥주가 다급한 소리를 냈다.
― 엇! 쪽빠리 칼잡이가 더 늘어났습니다. 보이십니까?
▶ 바퀴벌레도 아니고 어디서 저렇게 계속 튀어나오냐?
▶ 미치겠네. KEF230tm님은 아직인가?
▷ KEF230tm님이 도착을 해도 이건 안될 것 같은데. 저놈들 다 칼 들고 있다고!
▶ 어어! 위험해!
▷ 경찰 병신 새끼들! 고 회장님 살아있다고!!!!!
▶ 야! 다 전화기 잡아! 112든 119든 다 전화 때려!
* * *
골목을 지나 대로변으로 나오자, 전철역이 눈에 들어왔다.
“서초역!”
늦은 밤 건물 사이를 헤매고 다닐 때는 미칠 것 같았는데, 눈에 익은 지명이 들어오자 지쳤던 몸과 마음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건너편이 대법원이고 이대로 10분 정도만 올라가면 목적지 검찰청이다.
주몽은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속도를 높였다.
“토마레!”
“타다데와 오카나이조!”
“테쿠비오 킷테야로오!!!”
야쿠자들의 욕 소리와 내뱉는 숨결이 귀밑까지 쫓아왔다.
놀란 마음에 더 속도를 높이는데, 오히려 엇박자가 나면서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우당탕탕!
바닥을 뒹굴며 전철역 입구에 설치된 생활정보지 배포대를 들이받았다.
“크윽!”
이마가 찢겼는지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며 시야를 흩트렸다.
눈을 닦아낼 여유도 없이 곧바로 몸을 일으켰지만, 어느새 놈들이 주변을 둘러쌌다.
“헉헉. 고노야로!”
“하악. 하악.”
놈들도 지치긴 마찬가지였는지 허리를 숙이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왜 이러는 거냐. 이유라도 알자.”
주몽은 눈가를 닦아내며 놈들에게 말을 건넸다.
주몽과 야쿠자들 뒤를 쫓아왔던 편의점 캔맥주는 스쿠터를 한쪽에 세워놓고 건물 모퉁이에 몸을 숨겼다.
플래시 불빛이 새어 나갈까 조심스럽게 촬영을 하는데 딱히 도울 방법이 없으니 그저 애만 탔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나가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꿀꺽.”
그저 마른침만 집어삼켰다.
지금이라도 경찰이든 뭐든 도움을 주러 달려오기만 바랄 뿐이다.
“미치겠네. 여러분 좀 도와줘요. 이러다 고 회장님 칼 맞아 죽겠습니다.”
▶ 나도 미치겠다. 어쩌면 좋냐?
▷ 지금 지하도 관통하는 중!
▷ KEF230tm님 다 왔다고 하지 않았나?
▶ 오, 노! 팔목을 잘라버린단다. 손가락 복수인가?
▷ 일본어 능력자 등판!! 통역 부탁합니다~~~~~!
▶ 이유라도 알고 죽자고 한다. 그런데 쪽빠리 새끼들 숨차서 아직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음.
채팅창을 바라보던 캔맥주가 ‘어! 누가 온 것 같습니다’라고 속삭였다.
▶ KEF230tm님?
▷ KEF230tm님 말고도 거기 간다고 한 사람 여럿이잖아.
캔맥주가 들키지 않으려 몸을 숙이자 화면이 시커멓게 변했다.
▶ 캔맥주님. 카메라 각도 좀!!!!
▷ 재촉 좀 하지 마라. 캔맥주님 지금 목숨 걸고 찍는 거 안보이냐?
▷ 시발. 답답해 미치겠네.
▶ 경찰, 이 머저리들! 사람 말을 개똥으로 안다고!!!
▶ 그런데 누가 왔다는건지 이야기는 해 줄 수 있잖아.
“여러분 생각대로 아까 이쪽으로 온다고 했던 사람들 같은데…… 다들 저처럼 숨어 있습니다.”
▶ 멍청이들. 뭐하러 갔데?
▷ 총 있다잖아요. 당연히 함부로 못 움직이죠.
접속자들은 고구마 백 개를 한입에 먹은 것 같다며 아우성을 쳤다.
“이유?”
주몽을 둘러싸고 한동안 숨을 고르던 야쿠자(?) 하나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래. 이유나 알고 죽자. 도대체 너희들 뭐야?”
“우리는…….”
“다마레!”
반문했던 야쿠자 놈이 입을 열려고 하는데, 뒤늦게 도착한 또 다른 야쿠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하… 하이!”
▶ 저놈이 대장인갑다. 입 닥치라고 하니까. 깨갱한다.
▷ 몇 놈이나 모인 거냐? 아까 다섯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 화면 좀…… 어떻게 해 봐요. 안 보인다니까.
캔맥주는 ‘미안합니다. 저놈들이 주변을 자꾸 두리번거려서…… 플래시 불빛 때문에 스마트 폰을 내밀 수가 없습니다.’ 하더니 ‘지금 세 놈이 더 추가됐습니다. 그런데…… 초…… 총이…….’
캔맥주는 긴장된 목소리로 ‘총’의 등장을 알렸다.
주몽은 ‘다마레’라고 외친 놈에게 시선을 돌렸다.
“니가 대장이냐?”
“…….”
놈은 주몽의 질문에 묵묵부답 총을 꺼내 들었다.
“제기랄. 근처에 무기상이라도 있나. 툭하면 총이 튀어나오냐.”
슈트 방어력이 여러 차례 검증을 받은 상태였기에 난전이 벌어져도 어떻게든 도망을 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중이다. 그런데 또 총이라니….
주몽은 낙담한 표정으로 칼을 내렸다.
‘거리라도 멀면 운이라도 바라겠는데.’
주몽은 겨눠진 총부리를 바라보며 ‘푸후―’하고 좌절 섞인 소리를 쏟아냈다.
“코지 조장은?”
“죄송합니다. 놈에게 총을 맞고…….”
“젠장.”
신타로는 조장이 죽었다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놈을 죽이고 뜬다. 퇴각 정보를 가진 조장이 없으니. 각각 흩어진 뒤, 부산에서 다시 모인다.”
“하이.”
신타로는 주몽의 가슴을 향해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푸슝!
“컥!”
주몽은 단말마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 코지란 놈이 조장인갑다. 지금 총 든 놈은 부조장쯤 되고.
▷ 그래서? 울 고 회장을 죽이려는 이유가 뭐랍니까?
▶ 그런 말은 없네. 그냥…… 죽이고 부산으로 뜬다고…….
“히익. 쏴…… 쐈습니다. 고 회장이 총에 맞았어요…….”
캔맥주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주몽의 죽음을 알렸다.
▶ 아오! 아오오오!
▷ 서초역 갔다는 놈들은 어디 숨은겨? 도와준다며!
▷ 멍청아. 근처에 있어도 지금 튀어 나가면 총 맞아 죽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방아쇠를 당겼던 놈이 총을 수거했다.
“야마타. 목을 그어서 확실히 마무리 지어.”
신타로의 지시에 야마타가 주몽에게 다가갔다.
가슴에 총을 맞고 죽은 척하고 있던 주몽은 칼 든 놈이 다가오자 속으로 ‘시팔! 시팔!’을 반복했다.
‘총 쐈으면 그냥 갈 것이지!’
가슴이 욱신거리긴 했지만, 방탄 슈트 덕분에 아직 무사한 주몽이다. 하지만 목에 칼이 꽂히는 날엔 그냥 그걸로 끝장이었다.
놈이 다가와 주몽의 머리칼을 잡아 올렸다. 감춰져 있던 목이 훤히 드러나자 놈은 망설임 없이 칼을 가져다 댔다.
‘내 목을 따시겠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주몽은 느슨하게 잡고 있던 칼자루를 꾹! 움켜쥐곤 횡으로 쭉 그어버렸다.
쓰악!
움켜쥔 칼자루에 소름 끼치는 저항감이 느껴졌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사람 살 베는 느낌이 손끝을 타고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어?”
주몽의 멱을 따려던 야쿠자 놈은 ‘뭐지?’ 하는 눈빛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으아아악!”
놈은 자신의 눈을 손으로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주몽이 휘두른 칼이 놈의 얼굴과 눈을 길게 찢어버린 것이다.
츄악! 핏물이 튀며 주몽의 얼굴에 점점이 박혀 들었다.
“씨발! 기분 엿 같네!”
주몽은 머리를 잡고 있던 놈의 복부에 칼을 깊숙이 박아넣었다.
푹!
“커억!”
푹푹푹!
“컥! 어어억!”
연달아 내지른 칼질에 답답한 신음을 흘리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나니!”
“난다요!”
“치쿠쇼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주몽의 반격에 야쿠자 놈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주몽의 가슴에 직접 총알을 박아 넣었던 코지로는 “보오단후쿠(防弾服)!”라고 외치며 재빨리 총을 꺼내 들었다.
주몽이 방탄복을 입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코지로는 주몽의 얼굴에 총구를 조준했다.
퓨슝! 슈퓽!
주몽은 자신 앞에 고꾸라진 야쿠자 놈을 방패 삼아 몸을 일으켰고, 코지로의 총탄은 주몽이 아니라 칼 맞고 죽어버린 야쿠자 놈의 등판에 박혀 들었다.
“난시테루다! 야츠오 코로세!”
코지로는 부하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 하이!”
“코로세!”
코지로의 명령에 칼잡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래. 와라! 혼자는 안 죽는다!”
주몽은 쓰러진 야쿠자가 들고 있던 칼까지 양손에 칼을 잡았다.
‘목만 피하면 맞고 찔러도 내가 이긴다! 즉사(卽死)만 피하자!’
주몽은 이를 악물고 놈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코로세!”
“치쿠쇼!”
“비겁한 새끼들아! 다구리치니까 좋냐!”
칼날이 오가고 곧바로 피가 튀었다.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칼은 최대한 피했고, 여유가 없을 땐 팔뚝으로 방어를 했다.
연달아 맞은 총알 때문에 몸 곳곳이 삐걱거렸다.
코지로 놈이 쏜 총알에 가슴뼈에 금이 갔는지, 팔을 움직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엄청난 긴장감에 귀에서 삐― 하는 이명소리가 울려퍼진다.
‘멈추면 죽는다!’
순식간에 수십 합의 칼질이 오가자 슈트의 내구도가 뚝뚝 떨어졌다.
놈들의 칼을 적절히 막아주던 슈트가 점점 찢겨 나가더니 결국엔 구멍이 났다.
“아악!”
옆구리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칼끝에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 그래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몸 근육이 뒤틀리는 느낌이다.
“죽어!”
“빠가야로!”
“좇까 시발놈아!”
“야메로!”
“아악!”
“아직도 200조나 남았어! 그걸 두고는 못 죽어!”
“카악!”
주몽은 자신을 둘러싸고 미친 듯이 칼질을 해대는 야쿠자 놈들에게 역시 미친놈처럼 칼을 휘둘렀다.
서로 간에 욕설이 오가며 핏물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총을 든 코지로는 몇 번이고 방아쇠를 당기려다 결국 포기하고 칼을 꺼내 들었다.
“빠가야~로!”
부하들이 주몽을 감싸고 있어서 자칫 팀킬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 * *
― 아아아! 고 회장 아직 안 죽었습니다. 안 죽었어요!
▶ 혼자만 보지 말고 우리도 좀 보여주라고!
▷ 답답해 미치겠네!
▶ 봐. 내 말이 맞지? 방탄 슈트라니까!!!
― 어엇!
▶ 또 왜!
― 고 회장님 다구리 맞습니다! 이쩌면 좋습니까…….
▶ 카메라 좀…… 네? 제발!
― 네. 지금 보여드립니다.
캔맥주는 야쿠자들의 시선이 주몽에게 집중되자, 플래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고 스마트 폰을 내밀었다.
▶ 보인다! 와우. 씨발!
▷ 줌 좀 해 봐. 줌!!!!
캔맥주는 재빨리 디지털 줌 기능을 작동시켰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야쿠자와 뒤엉킨 주몽의 모습이 크게 확대됐다.
대낮처럼 밝진 않았지만 스마트 폰 카메라 성능이 뛰어나서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신세계다!
▷ 미친 새끼야! 지금 그런 소리가 나오냐?
▶ 존나 살 떨린다. 저거 완전 ‘드루와!’잖아!
▷ 사람 죽어가는데 한다는 소리가 영화 대사냐?
― 피…… 피가 엄청나게 튑니다. 와. 씨…… 아우.
캔맥주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덜덜 떨렸다.
▶ 손 떨림 방지요!
▷ 핸드헬드 토할 것 같다.
▶ 와 씨발! 고 회장님 완존 잘 싸운다! 저거 지금 몇 놈이랑 칼 주고 받는거냐? 고 회장님 특수부대 나왔냐?
▷ 철수야. 니 채널 공중파에 떴다! JTB 방송에 떴다고!
▶ 그래? 그럼 경찰도 이젠 믿겠다. 경찰, 이 새끼들. 방송까지 떴는데 이래도 또 쌩깠다가는 고 회장님이 경찰을 통으로 까버릴 거다.
▶ 군대 찍고 경찰 개혁 가즈아~!
― 어? 왔습니다! 아군 등장!
▶ 뭐? 어디?
▷ 아, 진짜. 캔커피 님 손 좀 떨리 마라고.
▷ 캔커피가 아니라 캔맥주!
▶ 미친놈들 지금 그게 중요해?
▶ 저…… 저…… 저 여자 뭐냐?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역사 계단을 타고 올라온 여자 한 명이 ‘끼요오오옷!’ 기합을 지르며 야쿠자들을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