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장. 여기 서초역 2번 출구!
등에 가해진 충격 때문에 하마터면 뛰던 자세 그대로 뒹굴 뻔했다.
망치로 두들겨 맞는 느낌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그렇다고 달리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때 내 옆을 스친 눈먼 총알이 앞서 달려가는 행인들 몸에 박혀 들었다.
“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구는 행인에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미친놈들이!”
마음 같아선 뛰기를 멈추고 맞서 응사를 하고 싶었지만, 현실이 시궁창이라 선뜻 그러질 못했다.
퓻퓻퓻!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었는지, 놈들은 사격을 멈추질 않았다.
방탄 슈트 덕분에 총알이 박히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행운이 계속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몸이 아니라 머리에 총알이 박히는 순간. 그걸로 끝장이다. 뭔가 수를 내야만 했다.
그때 맞은편에서 경찰 두 명이 달려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앞서 도망친 사람들이 순찰 중인 경찰들에게 신고한 모양이다.
“머…… 멈춰라! 움직이면 쏜다!”
경찰 두 명은 테이저건을 뽑아 들고 나를 향해 겨눴다.
“환장하겠네…… 그냥 도망쳐!”
사거리라고 해 봤자, 달랑 몇 미터짜리 테이저건 두 개로 권총 세 자루를 어떻게 막아!
“일본 야쿠자들이야! 총을 가지고 있다고!”
나를 쫓는 놈들 정체는 모르겠지만, 일단 총 든 야쿠자라고 경고를 날렸다.
“뭐…… 뭐요?”
“야쿠자?”
경찰 두 명은 내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황스러움만 보일 뿐이다.
말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권총을 뽑아 들고 허공에 발사했다.
생각 같아선 뒤쫓는 놈들을 향해 쏘고 싶었지만, 놈들을 맞출 자신도 없고 자칫 다른 사람에게 총탄이 날아갈까 걱정돼 허공에 쏘는 수밖에 없었다.
탕!
“어엇!”
“진짜 총이다!”
멍청한 소리 하고 있네! 그럴 소리 할 시간 있으면 그냥 도망치라고.
경찰 두 명은 주몽의 바람과 달리 도주보다는 테이저건 발사를 선택했다.
두 발의 전극 바늘이 주몽을 향해 쭉 뻗어 나왔다.
“미쳐버리겠네!”
테이저건을 피해 몸을 움직였지만, 전극 바늘의 발사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턱턱!
전극 바늘이 슈트 상의에 부딪히며 애처롭게 튕겨 나갔다.
방탄, 방검 기능이 탑재된 슈트라더니 성능 하나는 끝내줬다.
허망하게 테이저건 바늘이 튕겨 나가자 경찰은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주몽은 두 사람 곁을 스쳐 지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 말고! 뒤에 놈들이 야쿠자라고!”
“에?”
“총 맞고 죽고 싶지 않으면 뛰어요!”
재차 소리를 지르자, 두 사람도 엉겁결에 함께 뛰기 시작했다.
“내 앞으로 뛰어요!”
“네?”
“방금 봤잖아. 이거 방탄이야!”
퓻퓻퓻!
어느새 거리를 좁힌 놈들이 재차 총을 발사했다.
나와 경찰들 주변에 총탄이 박혀 들며 바닥이 푹푹 패였고 파편이 튀어 올랐다.
그제야 경찰 두 명도 정신을 차렸는지 미친놈처럼 뛰기 시작했다.
“도망만 치지 말고! 약 먹은 야쿠자들이 거리에서 총을 쏘고 있다고 무전이라도 날려!”
경찰이 곧장 무전기를 들었다.
“총격전이다. 야쿠자가 총을 쏘고 있다!”
― 응? 김 순경.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거리에서 총을 쏘고 있다고요!”
― 뭐야. 장난치지 말고. 안 그래도 지금 헬기 추락한 것 때문에 정신없는데.
무전을 받은 상대는 김 순경이 헛소리한다고 생각했는지 되레 짜증을 냈다.
“이런 썅! 진짜 총 쏜다니까!”
― ……진짜?
“에이 미치겠네! 빨리 사람 좀 보내줘요.”
― 아…… 알았다. 일단, 테이저건이라도 쏴!
“테이저건은 무슨.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김 순경은 상대방의 대답에 울화가 치미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보는 내가 답답해 돌아가시겠다!’
“검찰청!”
“네?”
“검찰청이 어느 쪽이냐고!”
“저…… 저쪽.”
앞서 뛰고 있던 경찰 한 명이 우측을 가리켰다.
주몽은 곧바로 방향을 꺾어 검찰청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검찰청 방향에서 또 한 무리의 양복쟁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에서 쫓아오던 자들이 속도를 줄이며 앞을 가로막은 자들과 포위망을 짰다.
좌우로 도망칠 곳을 찾아봐도 외길 일방통행이라 빠져나갈 곳이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총소리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도망을 친 상태라 눈먼 총알이 애먼 사람 잡을 일이 없어졌다는 거?
주몽은 젠슨의 권총과 소음기 달린 권총을 양손에 들고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탕! 퓻퓻퓻!
쌍권총에서 연달아 총탄이 날아갔고, 앞을 막아섰던 놈들이 비명을 지르며 푹푹 쓰러졌다.
뒤에서 거리를 좁혀오던 세 놈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응사했다.
몸 곳곳에 총알이 박힐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지만, 방탄 슈트는 돈값을 충분히 해줬다.
주몽은 머리통에 총알이 박히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뒤쪽 놈들에게도 총알을 날렸다.
주몽과 달리 놈들이 입고 있는 옷은 방탄 따위완 아무 상관도 없는 평범한 옷이라 총알이 박히는 족족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탈칵. 탈칵.
주몽은 물론이고 뒤쫓던 놈들도 총알이 떨어졌는지 공이 치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조준하고 말고 할 틈도 없이 서로 간에 미친 듯이 쏴 재끼다 보니 금세 탄창이 빈 것이다.
다행히 여유 탄창은 없는 모양이다.
살아남은 두 놈이 총을 던져버리고 칼을 뽑아 들더니 우악스럽게 달려들었다.
“새끼들아, 나는 아직 하나 남았다!”
주몽은 급히 탄창을 갈아 끼우곤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눈앞에 총구가 드리워지자 두 놈은 급히 몸을 멈춰 세웠다.
표정을 보니 주몽이 추가 탄창을 가지고 있을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
“히익! 빠가야로!”
“크아아악! 코로시테야루!”
“닥쳐!”
대충 쏴도 맞출 수 있는 거리다.
성질 같아선 가슴팍에 총탄을 박아 주고 싶었지만, 뭐 하는 놈들인지 정체를 파악해야 했다.
주몽은 놈들의 다리를 조준하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악!”
“컥!”
두 놈은 다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주몽 역시 맥이 풀려 그 앞에 쪼그리고 앉는데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두 대의 순찰차가 멀찍이 멈춰서더니 경찰 세 명이 차에서 내렸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순찰차 문에 몸을 숨기고 총구를 겨눈 경찰들이 경고를 날렸다.
“무기를 버려라!”
주몽은 들고 있던 총을 한쪽으로 던져 놓고 양손을 들었다.
주춤주춤 거리를 좁히며 다가온 경찰들이 조심스럽게 주몽을 둘러쌌다.
“엎드려!”
“내가 아니라 이 자들을 잡아요.”
“닥치고 엎드려!”
경찰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 순간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두 사람이 서로의 목에 칼을 박아넣었다.
푹! 푸욱!
“컥!”
“꺽!”
“으아아악! 뭐야!”
총구를 겨누고 경계를 하고 있던 경찰들이 기겁한 표정으로 뒷걸음쳤다.
“이런!”
주몽도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정체를 밝힐 생각에 다리에 총상만 입혀 놨는데, 마치 결사대라도 된 양 포로는 되지 않겠다는 듯 서로를 찔러 죽인 것이다.
주몽이 당황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살피려 하는데 경찰들의 총구가 주몽에게 집중이 됐다.
“움직이지 마!”
“손들어…… 아니 엎드려!”
“나 누군지 모르겠습니까?”
“헛소리 말고 엎드…….”
“나 고주몽입니다! Go 컴퍼니 대표! 고주몽!”
“……?”
주몽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경찰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고주몽 회장?”
“네!”
“죽었는데.”
“헬기가 터져서 죽었다고 했는데…….”
“네? 아! 안 죽었습니다. 헬기가 추락하기 전에 탈출했어요! 내 얼굴을 보세요!”
“진짜…… 고 회장님입니까?”
경찰들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네. 저 고주몽 맞습니다. 그리고 아직 안 죽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들 때문에 죽을 뻔은 했군요.”
주몽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추적자들을 가리켰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헬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는데, 이 자들이 나에게 총을 쐈습니다. 그러니까 부탁인데, 총구 좀 얼굴에서 치워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다 오발이라도 나면 나 진짜 죽습니다.”
주몽의 외침에 경찰들은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양복쟁이들이 추가로 모습을 나타냈다.
“어어! 뒤! 뒤!”
주몽이 깜짝 놀라 뒤쪽을 가리켰다.
“뭐야.”
“머…… 멈춰라!”
경찰은 양복쟁이들을 향해 경고를 날렸지만, 놈들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뭘 멍청하게 보고 있습니까! 쏴요!”
“하…… 하지만.”
“지금 여기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쏘라고!”
양복쟁이들 손에 칼이 들려있는 걸 뒤늦게 발견한 경찰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탕탕탕! 탕탕!
공포탄이 먼저 터지고 뒤늦게 실탄이 날아간 통에 놈들을 완벽히 제지하는 데 실패했다.
두 놈이 총탄을 맞고 쓰러졌지만, 남은 다섯은 그대로 달려들어 경찰들 몸에 칼을 박아넣었다.
“제기랄!”
주몽은 그대로 몸을 돌려 도망을 쳤다.
앞서 만났던 놈들과 달리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선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칼 든 놈들도 무섭긴 마찬가지다.
그냥 칼 든 놈들이 아니라 서슴없이 서로의 목에 칼을 찔러 넣는 미친놈들이다.
경찰들이 조금이라도 믿음직스러웠다면 어떻게든 함께 싸웠겠지만, 도무지 하는 짓들이 신뢰가 가지 않았다.
힐끔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총까지 들고서도 놈들을 막지 못해 하나둘 바닥에 쓰러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앞을 막아섰다가 총 맞고 쓰러진 놈들을 지나치면서 혹시 무기가 될만한 게 있나 살폈는데, 이들도 총이 아닌 칼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총은 처음 만났던 놈과 뒤쫓던 세 놈만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쉬운 대로 놈들이 떨어트린 칼 한 자루를 주워들고 다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어느새 경찰을 해치운 칼잡이들이 흉악한 얼굴을 하고 주몽을 뒤쫓기 시작했다.
“노가시차 이케나이!”
“하이! 이코오제!”
“한국말로 해 새끼들아.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욕을 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놈들의 목표는 앞서 만난 놈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주몽은 잡히면 죽는단 생각에 백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전력으로 질주를 했다.
* * *
― 횽아들. 무…… 무서워요.
뒤뚱뒤뚱 힘겹게 주몽의 뒤를 쫓았던 BJ 철수는 총 맞아 죽은 양복쟁이들과 칼 맞아 죽은 경찰들 시체를 바라보며 부들부들 몸을 떨어댔다.
▶ 씨발. 철수야. 안 되겠다. 여기까지만 하자.
▶ 어떻게 된 거야? 고주몽 회장 죽었다면서!!!
▷ 뭐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어어. 애들아. 내 옆에 방금 고주몽 지나갔다!
▶ 너 어딘데?
▷ 서초 편의점 앞에서 맥주 까고 있는데 방금 지나갔다. 그런데 고 회장 뒤에 칼 든 놈들이…… 막. 와우. 시발. 이거 뭐냐? 어어. 야, 칼 든 놈들 일본말 한다.
▶ 일본말?
▷ 젠장. 철수야. 니 계정 까라. 여기서부터 내가 찍을게. 나 스쿠터 있다. 이걸로 추적하면 돼!
― 에? 진짜요? 횽아가요?
▶ 빨리 까.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지.
― BJcs2001 비번은 한글자판 나는철수다2001
▶ 오케이! 철수 너 나가!
― 네네.
BJ 철수가 방송을 중지하자, 잠시 뒤 편의점 캔맥주 남이 영상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 * *
“고노야로!”
다섯 놈 중에 스프린터처럼 발 빠른 칼잡이 하나가 주몽의 등을 칼로 베었다. 하지만 칼날은 옷을 베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나니?”
주몽은 등을 긁고 지나가는 섬뜩한 느낌에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뒤로 휘둘렀다.
쓰악!
“악!”
주몽의 뒷덜미를 잡으려 손을 내밀었던 칼잡이는 주몽의 공격에 손가락이 후드득 잘려나갔다.
* * *
▶ 앗! 고 회장님 위험합니다!
▷ 안돼!
▷ 아악!
편의점 캔맥주 남이 찍어 올린 영상에 구독자들이 비명을 내 질렀다.
야쿠자로 의심되는 일본인 칼잡이가 주몽의 등에 칼질을 했기 때문이다.
▶ 어? 뭐냐? 옷이 방탄이냐?
▷ 방탄이 아니라 방검이겠지!
▶ 아놔. 방탄이든 방검이든 그런 기능을 가진 슈트가 세상에 어딨냐!
▷ 어우! 소…… 손가락!
▷ 우엑.
▶ 고 회장님 파이팅!
▶ 야, 이거 누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냐?
▷ 쓰바. 마음이야 당장 달려가고 싶지. 고블리스가 쪽빠리에게 칼 맞아 죽을 판인데!
▶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 쌍. 나 지금 제주도거든! 근처 사는 놈들 뭐라도 좀 해 봐.
▷ 경찰엔 연락했냐?
▷ 고주몽 회장이 야쿠자에게 쫓긴다고 했더니 장난하지 말란다! 고 회장 죽은 거 뉴스도 안 봤냐고 막 뭐라고 한다. 미치겠다!
▷ 븅신들아.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SNS라도 쳐올려!
▶ 나 거의 다 와 간다!
▶ 워우. KEF230tm 님 왜 말이 없나 싶었는데, 진짜 거기 간 거요?
▷ 도착! 택시에서 방금 내림. 어디로 가면 됨?
KEF230tm가 집 밖으로 나와 고주몽을 돕겠다고 서초구에 나타나자, 몇몇 구독자들이 채팅방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 나도 간다. KEF230tm 님 내가 갈 때까지 우리 고 회장님 목숨줄 좀 붙여놔.
▷ 나도 근처에 왔다. 어디로 가면 되냐?
― 여기 서초역 2번 출구!
편의점 캔맥주남이 기다렸다는 듯 좌표를 공지했다.
▶ 그런데 아무리 고 회장이 좋아도 그렇지. 그 위험한 데를 왜 간 거야?
▷ 바보냐? 고 회장님이 도움만 받고 입 닦으실 분이 아니잖아. 지금 상황이면 못해도 최하 1억은 주실 게 분명함. KEF230tm 님 방구석 백수 3년 차에 우울증 왔다고 했는데, 이번 기회에 한몫 잡으실 생각임.
▷ 백수가 뭔 돈이 있어서 방송 후원금에 택시비까지 턱턱 내냐?
▷ KEF230tm 님은 백순데, 부모님은 부자라고 들었음.
▶ 헐…… 요즘엔 백수도 숟가락 색이 중요하구나.
▷ 1억이라. 듣고 보니…… 훅 땡기네. 캔맥주 님. 서초역 몇 번 출구라고요?
▶ 2번!
▷ 오케이 나도 간다.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