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장. 사나운 새벽
당일 자정이 지나기도 전에, 대한민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서울 하늘에서 헬기가 폭발 추락하는 사고가 터지고 그와 동시에 고주몽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정규방송이 중지되고 방송사마다 속보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고주몽이 머무는 호텔이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과 습격을 피해 헬기로 이동하던 고주몽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드라마와 예능을 시청하던 국민들은 느닷없이 터져 나온 고주몽 사망 소식에 아연실색한 표정이 됐다.
국가 전복을 꿈꾸던 부패세력을 막아내고 국가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고주몽을 모르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지금…… 무슨 소리냐?”
“고주몽이 죽어?”
“아니 왜?”
“호텔이 습격을 받았다고?”
긴급 속보와 함께 KBB 방송에서 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 KBB에서 긴급입수한 영상입니다. 금일 고주몽 회장 피격 사건 모의자들을 공개합니다!
공영방송 KBB는 정규방송을 중지하고 긴급뉴스를 송출했다.
호텔 피습과 고주몽 죽음에 관련된 제보 영상이 전파를 타고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재벌 관련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호텔 습격과 고주몽 암살을 모의하는 장면이 공개된 것이다.
스마트 폰 카메라로 몰래 찍은 듯 보이는 이 영상은 누가 봐도 고주몽 사망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모의자들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지만, 대화 속에 등장하는 이름이나 기업명은 가감 없이 공개됐다.
화면은 고주몽 회장이 머무는 호텔과 서초구에 추락한 헬기를 번갈아 보여줬다.
앵커는 이들이 모의하는 내용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 너무도 닮았음을 지적하며 고주몽 피습, 사망 사건의 진범이 확실시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와 동시에 또다시 긴급뉴스가 떴다.
― 고주몽 회장 피습 사건과 관련해 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고지은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 수도방위사령부에 나와 있는 KBB 고지은 기자입니다.
― 네. 고지은 기자. 갑자기 군에서 발표를 한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지 확인된 게 있습니까?
― 아직 발표 전입니다만,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고주몽 회장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군의 입장표명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고주몽 회장은 이번 군 개혁 작업에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적잖은 파장과 영향이 있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고지은 기자의 말에 스튜디오 앵커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 그 말은 고 회장 사망으로 인해 군 개혁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말입니다.
― 네. 그렇습니다. 고주몽 회장은…… 아! 발표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고지은 기자가 발표회장으로 시선을 돌리자, 방송 화면이 사령부 입구를 찍기 시작했다.
스튜디오 역시 질문을 멈추고 전해지는 화면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준규입니다. 군은 이명환 대통령님과 고주몽 회장님의 지원을 받아 그동안 불합리하게 운영됐던 군 내부를 정리함과 동시에 선진화된 군으로 거듭날 예정이었습니다.”
곽준규의 발언에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발동하여 비리 척결을 진행하던 중. 국가 전복을 꿈꾸던 기득권 세력의 잔존자들이 군 내부 반역자들과 손을 잡고 고주몽 회장 암살에 나선 것을 파악하였습니다.”
현장에 나와 있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방송을 보고 있는 국민들까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
KBB에서 입수한 영상이라며 고주몽 회장 암살 모의 장면이 잠시 송출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방위사령부 사령관 입에서 그것이 사실임을 밝힌 것이다.
“이는, 우리 군이 선진화된 군으로 변모하는 것을 방해하고 나라를 위해 본인을 희생했던 고주몽 회장의 진심을 모독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 군은 이 모든 행위가 반역 범죄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송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곽준규 중장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이에, 우리 군은 고주몽 회장의 높은 의지와 개혁 정신을 이어받아, 이들을 반역자들을 추출, 척결할 것을 선언합니다! 우리 군은! 이명환 대통령님과 함께 이번 난관을 헤쳐나갈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곽준규 중장의 발언에 기자들은 급히 손을 들고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 *
“저…… 저게 어떻게!”
긴급 속보로 뜬 고주몽 사망 소식에 환호를 쏟아내고 몇 분 흐르기도 전에 이번 사건을 주도했던 모의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자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습격 사건을 계획하는 장면이 KBB 방송을 통해 그대로 송출이 됐기 때문이다.
“누…… 구야. 누가 배신을 한 거야!”
“배신이라니! 저게 나가면 죽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
“그럼 뭐야. 어떻게 우리가…… 방송에 나온 거냐고.”
장하성은 급히 전화기를 들었다.
“어디에 전화하려고?”
“안태완!”
“아! 그래. 빨리해 봐. 그 사람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장하성은 수화기를 들고 한참을 그대로 있더니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뭐야? 뭔데?”
“연결이 안 된다.”
“뭐?”
“귓구멍이 막혔어? 연결이 안 된다고!”
“…….”
장하성의 외침에 재차 질문하려던 이들이 움찔 입을 다물었다.
“모두 조용히 해요. 군에서 뭔가를 발표한다고 하니까.”
이연아의 목소리에 다들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건 또 뭔 소리야!”
군에서 자신들을 척결하겠다는 선언이 이어지자, 얼굴빛이 파리해졌다.
“설마…….”
장하성의 말에 이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우린 이용만 당한 것 같군요.”
“비…… 빌어먹을.”
“안태완, 이 개새끼가…….”
“일단, 자리를 피합시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장소도 이미…….”
롯세 양산균이 다급한 표정으로 도망치자는 말을 꺼내는데, 마치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거칠게 문이 부서졌다.
위장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무장한 군인들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오더니 총구를 겨눴다.
“체포에 불응하면 발포한다.”
싸늘한 경고에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때, 번쩍하는 빛과 함께 엄청난 화염이 내부를 휩쓸고 지나갔다.
체포를 위해 건물로 진입했던 군인들은 물론이고 이번 사건에 음모자로 참여했던 이들까지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갔다.
* * *
군의 쿠데타 소식에 급히 몸을 피하던 대통령은 곽준규 중장의 발표 장면을 확인했다.
“고 회장은 죽었으니 자신의 손을 잡으라는 제스춰인가.”
이명환 대통령의 말에 비서실장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쿠데타라고 해도 과거와 같은 방식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취한 것 같습니다.”
“허허. 이거야 원. 누가 머리를 굴렸는진 모르겠지만, 아주 제대로 당했군. 고주몽 회장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라. 분노한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명분을 던져 놓았어.”
“장갑차라도 몰고 청와대로 돌진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면 대응군을 움직이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곽준규 중장이 들고나온 내용은 어디에도 쿠데타와 관련된 흔적을 지적할 수가 없다.
고주몽 회장의 개혁 의지를 이어받겠다고까지 발언하며 복수를 천명한 상태다.
이는 분노한 국민 정서에 부응하는 형태였고 고주몽 회장의 파트너로 알려진 청와대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는 모양새가 됐다.
만에 하나 대응군이 움직였다간, 역으로 반란 세력으로 몰릴 수가 있었다.
이 분위기를 이어간다면, 곽준규는 고주몽 회장의 유지를 이어받은 일종의 ‘후계자’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청와대가 이를 부인하고 이들 세력을 두고 쿠데타 또는 군의 개입 등으로 발표했다간 순식간에 나라가 반 토막이 날 것이다. 그로 인해 곽준규 중장 세력과 그에 반하는 세력이 서울에서 맞붙게 된다면 이는 말 그대로 '내전'이 된다.
이건 정권을 잡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자칫 북과 중국, 일본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도 있었다. 곽준규도 그걸 알고 있어서 일을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리라.
“완전히 외통수에 걸렸어.”
이명환은 답답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비서실장의 질문에 이명환은 Go 컴퍼니 상황을 물었다.
“고 회장 쪽은?”
“그쪽도 정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긴 그렇겠지. 그런데 진짜 고 회장이 죽은 게 분명한가?”
“Go 컴퍼니가 당황하는 것도 그렇고…… 고 회장님이 타고 있던 헬기가 추락한 것도 사실이니…….”
이명환 대통령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다가 차를 돌리라고 지시했다.
“청와대 쪽에 곽준규 사람이 도착해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저렇게 기자회견을 했으니 함부로 행동하진 못할 거야. 곽준규 입장에선 청와대가 호응해 주기를 바랄 테고…….”
“일단 협상은 가능하겠군요.”
비서실장의 말에 이명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협상에 대한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인데…… 슬픈 일이지만 이번에도 들러리가 될 것 같군.”
이명환 대통령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주몽은 건물 계단을 통해 조심스럽게 밑으로 내려왔다.
누구든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 전화를 빌리려 했는데, 모두 퇴근해 버린 상태라 건물은 어둡고 조용하기만 했다.
주몽은 굳게 닫힌 사무실들을 바라보다가 소화전 쪽으로 달려갔다.
“있다.”
소화전 안에서 긴급 용으로 비치된 도끼를 꺼내 들더니 닫혀 있는 사무실 문을 힘껏 내리찍었다.
쿵! 쩌적!
세 차례 정도 내리찍으니 손잡이가 버티지 못하고 덜컹 부러졌다.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주몽은 곧바로 전화기를 찾았다.
로버트와 제이코에게 연달아 전화했지만, 연결이 되질 않았다.
“젠장.”
상황이 긴급하다 보니 다른 곳과 통화 중이라 연결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주몽은 다른 사람 번호를 떠올리려 노력했지만 선뜻 떠오르는 번호가 없다.
언제부턴가 스마트 폰에 의지하다 보니 번호를 외우지 않는 게 일상이 됐다. 다급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니 스마트 폰의 편리함이 발목은 잡은 꼴이다.
더듬더듬 기억을 되짚어가던 주몽은 번호 하나를 떠올리고는 다이얼을 꾹꾹 눌렀다.
“번호가 그대로이길 바랄 뿐이다.”
신호가 길게 이어지고 잠시 뒤, 연결음이 들렸다.
― 헬로우?
“엘리스?”
제이코, 로버트 다음으로 많은 통화를 했던 사람. 바로 엘리스다.
― 보…… 보스?
“아! 엘리스!”
주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살아 있었군요. 살아 있었어요!
엘리스는 흥분한 목소리로 연신 소리를 질렀다.
“엘리스. 옆에 로버트나 제이코 있어?”
― 잠시만요!
어디론가 급히 움직이는가 싶더니 ‘제이코’를 부르는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 뭐? 누구라고? 보스가 살아 있어요. 보스가! 전화기 이리 줘! 보스! 정말 보습니까?
엘리스와 제이코의 목소리가 뒤썩여 흘러들었다.
“네. 납니다.”
― 지저스!
제이코의 간절한 목소리에 맞장구를 쳐주고 싶었지만, 일분일초가 급했다.
“제이코.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된 게 있습니까?”
― 군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음…….”
설마 하는 심정과 혹시나 하는 심정이 공존했는데, 제이코의 입에서 군부 쿠데타라는 말이 흘러나오자 절로 침음성이 쏟아졌다.
“청와대로 밀고 들어간 겁니까?”
― 그게 좀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 쿠데타는 맞는데, 무력을 사용했다기보다…… 보스를 습격한 자들을 잡아들이고 개혁 의지를 이어받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서울 한복판에서 대놓고 미사일을 쏜 놈들이 자신의 유지를 이어받겠다고 선언했다니.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그들의 방법이 효과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목숨을 이용했다는 말이군요.”
― …….
“이명환 대통령에겐 연락이 왔습니까.”
― 비서실장과 통화를 했습니다. 보스가 사망했다는 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그쪽도 딱히 방법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그나저나, 어디십니까? 모시러 가겠습니다.
“헬기가 추락한 건물 옥상에 젠슨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사람을 보내주고. 아, 그리고 내 죽음을 확인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 추적자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일단 몸을 숨기긴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로버트에게 말해 경호팀을 급파하겠습니다.
“네. 부탁합니다.”
* * *
“로버트!”
제이코는 목이 터지라고 로버트를 불러 재꼈다.
“로버트! 보스가 살아 있다!”
“뭐?”
헬기 격추 소식에 침울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던 로버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야. 어디 있어?”
“헬기가 추락한 건물 옥상!”
제이코의 대답에 로버트는 당장 로건을 호출했다.
“로건! 헬기 추락한 곳에 사람 보내놨지?”
“네. 팀장님. 일단 수습팀을…….”
“애들 다 모아. 보스를 모시러 간다.”
“네? 보스…… 요?”
로버트의 말에 로건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시신이라도 모셔와야죠.”
“뭔 개소리야! 보스가 살아 있다고!”
“보스가…… 말입니까”
로버트의 말에 제이코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보스의 목숨을 노리는 추적자들도 그곳에 있고.”
제이코의 말에 로버트는 물론이고 로건 역시 눈을 부릅떴다.
“추적자?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초전박살을 내주지. 로건! 뭘 쳐다보고 있어? 지금 당장 움직여!”
“네. 팀장님!”
경호 실패를 넘어 자신들 보스가 적들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반쯤 패닉 상태가 됐던 경호팀은 주몽의 생존 소식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호텔을 나서기도 전에 장벽에 가로막혔다.
“뭐? 군이 호텔을 포위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