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장. 혼돈과 꿍꿍이의 시간!
“으…….”
낙하 충격 때문에 잠시 기절했던 주몽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등 쪽이 저릿저릿했지만, 다행히 어디 부러진 곳이나 내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시간대의 자신과 중첩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더 튼튼해지고 단단해진 몸 덕분에 잘 이겨낸 모양이다.
하지만, 함께 뛰어내렸던 다른 경호원들은 그다지 운이 따르지 않은 듯 보였다.
“젠슨…….”
잠시 정신을 추스른 주몽은 자신과 함께 뛰어내렸던 경호원 젠슨의 상태를 확인했다.
맥을 살펴보니 다행히 숨이 끊어지진 않았다.
“젠슨. 젠슨! 정신 차려.”
“으…….”
젠슨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계속 앓는 소리만 흘렸다.
“보… 스.”
“그래. 젠슨. 정신이 들어?”
“어떻게…… 된. 끄으…….”
“다리가 부러졌어. 움직이지 마.”
“다리가…….”
“다른 곳은 어때? 숨쉬기 불편하거나…….”
몸을 일으키려던 젠슨은 ‘윽’소리를 내며 움직임을 멈췄다.
“큭. 갈빗대도 나갔나 봅니다. 가슴… 이 좀 답답하지만,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헬기는…….”
나는 주변을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젠슨은 옥상 곳곳에 헬기 파편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알렉스와 빈센트는…….”
“알렉스는 조종석에 있어서 내리지 못했고 빈센트는…… 착지에 실패한 것 같다.”
옥상 어느 곳에도 빈센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빈센트는 지상으로 바로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젠장.”
젠슨은 울먹이는 표정이 됐다.
알렉스와 빈센트는 경찰 생활을 할 때부터 오랜 세월 인연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보스가 왜 미안합니까.”
젠슨은 이를 악물더니 된소리를 냈다.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복수할 겁니다.”
“해야지. 당사자는 물론이고 사돈의 팔촌의 이웃사촌까지. 네 화가 풀릴 때까지 복수를 해 주마.”
주몽은 친우를 잃은 젠슨에게 복수를 함께 해 주겠다는 말 외엔 다른 위로의 말은 꺼낼 수가 없었다.
“보스.”
“그래. 젠슨.”
“일단 자리를 피하십시오. 미사일까지 쐈다는 말은 끝장을 보겠다는 의밉니다. 헬기가 추락을 했다고 해도 보스의 죽음을 확인하려 들 겁니다.”
“하지만…….”
주몽은 젠슨의 몸 상태를 바라보며 함부로 움직일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젠슨은 주몽의 어깨를 꾹 움켜쥐었다.
“보스! 움직이십시오. 이익현 차장이 기다리는 검찰청으로 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도 살 수 있습니다.”
“젠슨…….”
“어서요!”
주몽은 젠슨의 외침에 비틀 몸을 일으켰다.
젠슨은 자신이 차고 있던 권총과 탄창을 내밀었다.
“가지고 가세요.”
“기다려. 바로 사람을 보내 줄 테니까.”
“네. 보스. 그렇게 해 주세요.”
주몽은 옥상 난간을 잡고 건물 밑을 내려다봤다.
시커먼 연기와 여전히 불타고 있는 헬기 동체가 눈에 들어왔다.
지상은 추락한 헬기 때문에 엉망진창이었고 주변 건물들도 폭발로 인해 적잖은 피해를 당한 듯 보였다.
이동로를 확인하려고 주변을 살피는데, 차량 몇 대가 급하게 멈춰 서는 게 눈에 들어왔다.
혹시, 컴퍼니 쪽 사람인가 싶어 유심히 바라봤는데, 차에서 내린 이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았다.
사람을 구하기보단 주변을 살피기에 급급했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건물과 주변 골목을 가리키며 뭔가 지시를 내렸고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컴퍼니 쪽 사람들이라면 자신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라도 남겨서 뒷수습했을 것이다.
젠슨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려는 ‘적’들이다.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다급한 목소리로 미사일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전해졌지만, 누가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서 미사일을 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록 분단국가이고 전쟁 준비국이라 하지만, 사실 어느 나라보다 치안이 튼튼하고 외부의 도발이 없는 국가가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총기 사용도 힘든 나라에서 미사일이라니…….
잠시 군이 의심되기도 했지만,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그런 짓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라 믿고 싶었다.
“만약 군이 저지른 일이라면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겠군.”
급히 스마트 폰을 찾았지만, 헬기를 탈출하면서 어디로 빠져버린 모양이다.
“젠슨. 혹시 전화기 가지고 있나?”
젠슨은 더듬더듬 양복 상의에서 폰을 꺼내 건넸다. 그런데 액정이 잘게 부서진 것이 상태가 좋지를 않았다.
혹시 전원이 들어올까 싶어 버튼을 몇 차례 확인했지만, 조각난 액정처럼 감감무소식이다.
로버트에게 연락하려면 일단 이곳을 벗어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주몽은 옥상을 살피더니 젠슨을 부축해 냉각탑 틈에 밀어 넣었다.
“젠슨. 네 말대로 누군가 확인을 하러 온 것 같다.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역시 그렇습니까.”
“일단 이곳에 몸을 숨기고 있어. 로버트와 연락이 닿는 대로 사람을 보낼게.”
“네. 보스. 조심하십시오.”
주몽은 젠슨을 뒤로 하고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연구했다.
저들이 건물을 노리고 올라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엔 놈들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었기에 옆 건물로 넘어갈 수 있는지 확인을 했다.
뒤쪽 건물이 거의 맞닿듯 자리 잡고 있는걸 확인하고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마음 같아선 계속 건물 옥상을 건너뛰고 싶었지만, 더는 이어지는 건물이 없었다.
다행이라면 주몽이 건너온 건물 입구가 헬기가 떨어진 곳과 반대 방향이라는 점이다.
주몽은 조심스럽게 옥상 문을 열고 밑으로 내려갔다.
헬기가 추락한 위치에 도착한 이들은 주몽의 죽음을 확인하고자 연신 주변을 살폈지만, 헬기 조종석은 물론이고 밖으로 퉁겨져 추락한 것으로 보이는 이도 모두 외국인이었다.
“작은 뼛조각이라도 좋다. 고주몽의 사망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라면 뭐든 찾아내!”
상급자로 보이는 이의 지시에 검은 양복은 입은 자들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움직여라!”
“하이. 코지 조장.”
조장으로 불린 이는 부하들이 움직이는 걸 확인하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사이토 사마. 코지입니다.”
― 고주몽은?
“아직 시체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헬기가 산산조각이 난 걸 보면 죽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 하긴, 미사일까지 얻어맞았는데 살아 있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
“그래도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뼛조각이든 살 조각이든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조만간 정확한 결과를 알게 되실 겁니다.”
― 요시. 내가 건네준 영상을 방송국에 보내라. 제보 형태로 보내면 될 것이다. 고주몽의 죽음은 철저히 재벌가 꼬맹이들 짓으로 몰아가야 한다.
“하이!”
― 따로 보고할 일이 생기면 전화는 사용치 말고 문자로 보내라. 상황이 여의치 않아 통화가 어려울 수도 있으니.
“하이! 사이토 사마!”
* * *
*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실.
“서초구 일대에서 헬기가 추락했다는 보고입니다.”
“오케이. 고주몽이 잡혔다! 모두 움직여! 지금부터 시간 싸움이다.”
“네. 사령관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쥐새끼 같은 놈을 처리했군요.”
“그러게 건드릴 게 없어서 감히 군을 건드려!”
장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보탰다.
“이 장군은 Go 컴퍼니 제이코란 놈을 꼭 확보해.”
“물론입니다. 고주몽보다 더 중요한 놈이라고 들었습니다.”
“좋아. 박 장군은 국회로 가고. 최 장군은 청와대를 장악해. 정 장군은 전방 부대 단도리 잘하고 북쪽 애들 끼어들지 못하게 연락 넣어놔. 우리가 정권을 잡아야 제 놈들도 체제를 단단히 할 수 있을 테니까. 딱히 반대는 안 할 거야.”
“물론입니다. 남북이 어설프게 손을 내미는 것보단, 주적으로 마주하는 게 인민들 다루기 편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고주몽 그놈이 망쳐 놓은 나라를 모두 본래 자리로 돌려놓는다! 내일 날 밝기 전에 마무리 짓도록 하자!”
“네. 사령관님!”
곽준규 중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장성들이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갔다.
다른 때라면 국방부 장관은 물론이고 참모총장과 합참의장 그 외 대장급 장성을 억류하거나 회유를 해야 했겠지만, FX 사업과 방산 비리 관련으로 모조리 잡혀 들어가는 바람에 묻고 설득하고 할 일도 없어졌다.
지금 상황에선 계급으로 보나 위치로 보나 곽준규가 대장이나 다름없었고 그에게 동조하는 육해공 장성들 역시 과반수 이상이니 고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결정하고 밀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Go 컴퍼니 본사처럼 사용되고 있는 호텔을 장악하면 이번 거사는 단숨에 마무리될 것이다.
군 내부에 반항하는 세력들은 청와대에서 정식으로 명령이 내려가면 쿠데타고 뭐가 간에 움직일 생각도 못 하고 그대로 자리만 지킬 놈들이니 딱히 신경 쓸 것도 없었다.
“정 대령.”
“네. 사령관님.”
“방송국에 연락 넣고 기자회견 준비해. 우리는 고주몽 회장을 피격한 암중 세력을 척결하고 혼란스러운 나라를 바로 잡는다는 명분을 세운다. 고주몽 그 녀석은 어긋난 기득권 세력과 싸우다 죽은 영웅으로 기록되겠지만, 영웅을 기리고 그의 복수를 단행한 우리 역시 정군(正軍)으로 기록될 것이다.”
“네. 사령관님!”
정 대령이 기자회견 준비를 위해 작전실을 나가자, 곽준규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크흐흐. 고주몽 그 녀석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정치인 삶을 살아보겠군.”
곽준규는 스마트 폰을 꺼내, 이번 작전을 성공시킨 자기 아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신호만 가고 연결이 되질 않았다.
“쯧. 전화기를 다른 곳에 둔 건가?”
크게 칭찬할 마음에 전화를 걸었던 곽준규는 아쉬운 눈빛으로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이번 일의 1등 공신이나 마찬가지니. 녀석도 진급은 떼놓은 당상이군. 앞길이 훤하겠어. 하하하하.”
* * *
히죽거리는 면상을 군홧발로 응징하고 있던 한덕진 중위는 벨 소리에 구타를 멈췄다.
어디서 울리는 벨 소린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부대원 한 명이 컨트롤 패널 근처에서 스마트 폰을 주워왔다.
발신자 표시에 ‘아빠’라고 뜬다.
“아빠?”
한덕진은 곤죽이 된 곽지용을 내려다보며 ‘허허’ 웃음을 흘렸다.
“이 새끼는 나이가 몇 갠데 아빠래?”
“하는 짓이 딱 파파보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미쳐도 그렇지. 아빠가 쏘란다고 민간 헬기에 미사일을 날린 놈입니다. 시팔.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곽지용에게 총을 맞았던 부대원이 입술을 실룩거렸다.
“너…… 이 새끼들…… 너희…… 다…… 죽었어.”
곽지용이 꿈지럭대며 협박성 멘트를 흘렸다.
한덕진은 곽지용의 스마트 폰을 바닥에 던지더니 군화 뒤꿈치로 콱 밟아 버렸다.
와지끈 소리를 내며 폰이 부서지자 벨 소리도 그에 맞춰 끊어졌다.
“이 새끼가. 아직도 똥오줌 못 가리네. 얌마. 쿠데타가 성공해도 넌 뒤지고. 실패하면 진짜 뒤지는 거야.”
“조…… 좆 까.”
“애들아. 이 자식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더 패라. 딱 죽지 않을 만큼.”
“네!”
“야…… 고만…… 때려.”
“그런 소릴 하려면 협박을 하지 말던가.”
부대원들은 소매를 걷어붙였다.
“에이 씨. 고만 때리라니까…….”
“너야말로 조까라 새꺄!”
* * *
한필도 중장의 연락을 받은 청와대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21세기 대한민국에 군부 쿠데타라니!
이명환 대통령은 잔뜩 굳은 얼굴로 한필도 중장과 통화를 이어갔다.
“수도방위사령부가 움직인다고 해도 다른 부대가 막아서면 될 것 아닙니까!”
― 저희도 급히 움직이고 있습니다만, 대통령님도 아시다시피 수방사는 서울을 방어하는 사단 아닙니까. 서울 외곽과 경기도에 있는 부대를 이동시킨다고 해도 시간상으로 너무 촉박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해결책을 내놓으세요. 해결책을!”
― 일단 자리를 피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통령님이 저들 손에 잡힌다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됩니다.
“다른 부대가 움직일 수 있도록 최대한 시간을 벌어달라는 거죠?”
― 네. 대통령님.
“일단 알았습니다. 핫라인은 계속 유지하고 변동 사항 있으면 보고해 주세요.”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이명환은 곧바로 고주몽에게 전화를 걸었다.
쿠데타 세력을 피해야 하는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호만 반복될 뿐, 도무지 연결되질 않았다.
“비서실장.”
“네. 대통령님.”
“고주몽 회장 쪽과 연락 좀 해 봐. 고 회장 직통전화는 연결이 되질 않아.”
“일단 이동부터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쿠데타 세력이 청와대에 들어오기 전에 자리를 피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끙. 어쩌다 이런 일이…….”
대통령이 된 뒤로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더니, 이젠 쿠데타까지 얻어맞게 생겼다.
“진짜 대통령 못해 먹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