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장. 명령이 명령 같아야!
문을 닫아걸고 밖을 경계하고 있던 박산호는 부르르 진동하는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임 소령?”
박산호는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산호야!
“어. 무슨 일이야?”
― 제기랄. 일 났다. 저쪽에서 먼저 치고 나왔어!
“그게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설명을 해!”
― 쿠데타다!
“뭐!”
박산호는 눈을 껌뻑이며 재차 질문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놈의 쿠데타!”
― 내 말이!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있다. 이거 어떻게 하냐? 회장님에게…….
“빌어먹을. 그럼 이게…….”
― 뭐?
“이쪽도 공격받고 있다고!”
― …….
박산호의 외침에 임수길이 잠시 침묵을 보였다.
“야. 끊어졌냐? 뭐야? 왜 아무 소리도 안 해?”
― 회장님은? 괜찮은 거냐?
“그래.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
― 후우. 그나마 다행이네.
임수길은 불행 중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현(現) 정국은 고주몽이 모든 키를 손에 쥐고 있는 상태다.
만에 하나 고주몽에게 문제가 생기는 날엔, 지금까지 진행해 왔던 모든 일이 수포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군에서 움직이면…… 무슨 수로 막아?”
― 제기랄. 별수 있냐.
“무슨 소리야? 방법이 있다는 소리야. 없다는 소리야?”
― 우리도 이대로 있다간 싹 쓸려나갈 판이다. 일이 왜 이렇게 시궁창이 됐는진 모르겠지만, 반역자들에게 목이 날아갈 수는 없지. 알았으니까 끊어.
“야. 임 소령. 수길아! 임수길!”
박산호는 액정을 확인하더니 ‘시팔!’ 욕을 내뱉었다.
“박 부장. 방금 쿠데타라고 한 것 같은데.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
제이코가 심각한 표정으로 박산호를 바라봤다.
뒤늦게 자신이 생각 없이 소리를 질렀다는 걸 깨달은 박산호는 주변을 둘러봤다.
제이코뿐 아니라 컴퍼니 직원들 모두 바짝 얼어붙은 얼굴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그렇다고 합니다. 개혁 작업에서 밀려난 장성들이…… 아무래도 사고를 친 것 같습니다.”
제이코는 잠시 어이없는 표정이 됐다. 도대체 비리를 저지른 장성이 몇이나 되기에 이런 일을 서슴없이 벌이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박산호의 대답에 제이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룸을 나섰다.
“고문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박산호는 다급한 표정으로 뒤를 쫓았다.
보안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제이코는 로버트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제이코. 여긴 왜…….”
제이코는 로버트의 멱살을 잡아챘다.
“멍청하게 자리나 지키고 있을 때가 아니야!”
“무슨 소리야!”
“로비에 있는 것들. 미끼야! 미끼라고! 보스. 보스가…….”
“젠장. 눈치도 빠르네. 걱정하지마. 방금 상황 확인했으니까. 검찰청 쪽으로 이동 중이고 5분 뒤에 도착한다. 로비는 방금 로건이 도착해서 정리 중이라고 보고 받았다.”
“그래? 그건 다행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 쿠데타가 진행 중이라는데 그건 알고 있냐?”
“뭐!”
제이코의 손을 털어내던 로버트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쿠데타라니!”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 정보팀 꾸려서 운영한다는 놈이 여태껏 뭣하고 다닌 거야! 네 녀석의 안일한 대응이 보스의 목숨은 물론이고 Go 컴퍼니 전체가 공중분해 될 판이라고!”
“…….”
로버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박산호를 바라봤다.
“네. 방금 군에 있는 친구 녀석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로버트의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보스에게 연락해! 지금 당장 헬기를 돌리라고! 아니, 어디든 좋으니까. 고도 낮추고 바로 착륙하라고 해! 어서!”
낯빛이 시커멓게 죽어버린 로버트가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제이코가 로버트의 멱살을 다시 잡아챘다.
“군이 개입됐다면…… 보스가…… 위험해.”
로버트는 제이코의 손을 잡아누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디코이 작전인 건 나도 눈치챘다. 그래서 혹시나 헬기 쪽에 문제가 있지 않나 확인을 한 거고.”
“그런데?”
“헬기는 문제가 없어도 헬기 자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게 군이니까.”
“뻑! 뻑! 뻑!”
제이코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욕을 토했다.
* * *
―잠자리가 떴다. 잠자리가 떴다.
청와대와 검찰청 쪽 이동 루트에 자리를 잡고 있던 대공 방어팀에 무전이 날아들었다.
“확인 바란다. 채망(采網)을 작동하는가?”
― 채망 작동. 채망 작동.
“확인.”
무전을 마친 대위가 굳은 표정으로 부하들을 바라봤다.
“저기…… 진짜 할 겁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미사일이라뇨. 사령부가 미친 겁니다.”
대공미사일 부대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심각한 표정이 됐다.
서울의 하늘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미사일이 자국민이 탄 헬기를 박살 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왔다.
“우리는 군인이다. 군은 명령에 따를 뿐이다.”
“좃도! 명령이 명령 같아야 명령에 따르지!”
부대원 한 명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상대는 대한민국군을 붕괴시켜 적을 이롭게 하려는 자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도 해야 할 일이다.”
“어디서 약 처먹고 왔습니까? 군을 좀 먹는 건 고 회장이 아니라 사령부에 틀어박혀서 미사일 버튼을 만지작거리는 장성들입니다. 정신 좀 차려요!”
대위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명령 불복종은 즉결처형이다. 발사 준비해.”
“아 놔. 미쳐버리겠네.”
“어서!”
씩씩대며 약 먹었냐고 소리치던 부대원이 단말기 패널을 펼쳤다.
녹색 화면에 점들이 깜빡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저 점들 중 하나가 고주몽 회장이 탄 헬기일 것이다.
“표적 입력해!”
“합니다. 해요!”
옥상에서 미사일 발사 준비가 되는 사이, 옥상 벙커에 대기 중이던 한덕진 중위가 스마트 폰 액정화면을 확인했다.
― 수방사. 작전실. 비리군장성 쿠데타 모의. 현 시각!
― 동료에게 고함.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를!
“이게 무슨…….”
한 중위는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느닷없이 쿠데타라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을 해야만 했다.
메시지 만큼이나 당혹스러운 일이 지금 이곳에서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통화가 안 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도 전화를 받았다.
― 헉헉. 누구야? 뭐? 왜!
거친 숨소리와 함께 임수길 소령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공대 한덕진입니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립니까? 쿠데타라뇨.”
― 나중에. 나중에 이야기하자. 헉헉.
“자…… 잠깐 만요. 혹시 말입니다.”
― 뭐? 빨리 말해. 나 바쁘다니까!
“미사일 발사 명령 떨어졌는데 알고 계십니까?”
― 뭐어어어어어? 그건 무슨 소리야!
임수길 소령의 기겁한 목소리가 거칠게 터져 나왔다.
“방금. 사령부에서 헬기 한 대를 격추하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하는 말입니다.”
― 잠깐. 헬기?
임수길 소령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바로 입을 열었다.
― 고 회장이다. 고 회장이 타고 있어!
“네?”
― 막아. 무조건 막아. 고 회장이 당하면 우리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전체가 다시 군홧발에 밟힌다!
“명령권이 나에게 없단 말입니다. 곽지용 대위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 곽지용? 곽지용이면 수방사 곽 중장 둘째 아들? 그 새끼가 왜 거기 있어?
“저도 모르죠. 갑자기 명령서 가지고 와서. 지휘권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 아주 부자가 쌍으로 미쳤구나.
임수길 소령의 한탄 섞인 목소리에 한덕진도 한숨이 쏟아졌다.
“어쩌죠?”
― 뭘 어째? 당장 가서 막아! 말 안 들어 처먹으면 쏴버려! 서울 한복판에 미사일이라니. 미친 사이코 새끼도 아니고!
“진짜 쏩니까?”
― 이 새꺄! 서울 하늘에 미사일을 쏜다는데 그걸 그럼 지켜만 보냐! 당장 쏴버려!
“아오. 미치겠네.”
통화를 끝낸 한 중위는 몸을 일으켜 벙커 밖을 내다봤다.
“와. 저 새끼. 진짜 쏘려나 보네.”
권총까지 꺼내 들고 부하들을 위협하고 있는 곽지용의 모습에 한덕진은 어이없는 표정이 됐다.
슬금슬금 곽지용 뒤로 이동한 한덕진은 뒤통수에 총구를 겨눴다.
“스톱. 여기까지.”
곽지용은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댄 한덕진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너 이 새끼. 지금 누구 머리에…….”
“몰라서 묻냐? 미친놈 대갈통에 총 겨누고 있잖아. 다들 뭐해! 총 뺏어.”
패널을 만지작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던 부대원들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곽지용에게 달려들었다.
“이 새끼들이!”
곽지용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부대원에게 방아쇠를 당기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탕!
“악!”
“어엇! 저 미친놈이!”
부하가 총을 맞고 쓰러지자, 한덕진도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몇 미터 떨어지지도 않은 거린데, 재수가 없으려니 총알이 빗나갔다.
한덕진은 재차 방아쇠를 당겼고 연달아 총탄이 쏟아졌다.
탕탕탕!
“뭘 보고만 있어! 빨리 잡아!”
“네!”
패널에 도착한 곽지용은 ‘윽!’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하지만, 숨이 넘어갈 정도는 아니었는지 기어이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눌러버렸다.
대원들이 재빨리 달려들었지만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삐삐삐삐―
발사 경고음과 함께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대공미사일 한 기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올랐다.
“이런 씨팔! 이 개새꺄!”
한덕진은 허탈한 표정으로 미사일 꽁무니를 바라봤다.
대원들은 총에 맞은 동료를 부축해 옮기고 곽지용을 끌고 왔다.
한덕진은 총 맞은 부하부터 살폈다.
“상처 심하냐?”
“아닙니다. 팔에 스쳤습니다.”
“새끼 운 좋네. 곽지용은?”
한 중위의 질문에 곽지용을 살피고 있던 대원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 이거 방탄복 입었는데요. 어쩐지 총 맞고도 버튼을 누르더라니.”
곽지용은 끙 소리를 내며 허리를 펴더니 히죽거리는 얼굴로 한덕진을 올려다봤다.
“이제 다 끝났어. 후회하지 말고 총 내려놔.”
“아오! 끝나긴 뭐가 끝나! 사이코 새꺄!”
한덕진의 군홧발이 곽지용의 면상에 그대로 내리꽂혔다.
* * *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헬기를 착륙시키라니요.”
헬기를 조정하고 있던 경호원이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 시키는 대로 해! 미사일이 날아들 수도 있다고!
“네에에에?”
― 빨리!
“네!”
경호원은 조종간을 움직여 헬기를 한쪽으로 기울이더니 곧바로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동석하고 있던 경호원들은 미사일이 날아들 수도 있다는 말에 기겁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봤다.
“어어!”
경호원 하나가 창밖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더니 ‘미사일! 미사일!’하고 고함을 질렀다.
멀리서 불꽃 하나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왓 더! 뻑!”
조종간을 잡고 있던 경호원이 괴성을 내지르며 급강하 운행을 시도했다.
헬기가 좌우로 흔들리며 요동을 치는데, 주몽은 물론이고 함께 타고 있던 경호원들 역시 낯빛이 까맣게 죽었다.
“더 빨리!”
“하고 있어!”
경호원은 이를 악물더니 거의 수직에 가깝게 헬기를 내리꽂았다.
헬기 동체가 급격히 기울자 추력이 떨어졌고 추락하다시피 고도가 낮아졌다.
계기판 바늘이 빙빙 돌면서 경고음을 쏟아내며 비명을 질렀지만, 민간 헬기가 기동만으로 미사일을 떨쳐 낼 수는 없었다.
“오…… 온다!”
조종을 맡은 경호원은 동료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뛰어내려!”
“뭐? 미쳤어?”
“그럼 미사일 맞고 죽을 거냐!”
“뻑!”
“저 건물! 저 옆으로 지나갈 거야!”
조종을 맡은 경호원이 맞은편 건물 옥상을 가리켰다.
“속도가 너무 빨라!”
“없는 브레이크라도 만들어서 밟아 줄 테니까! 보스 챙겨!”
수직 낙하하듯 하강하던 헬기가 우측으로 빙글 돌더니 옥상에 충돌할 듯 가까워졌다.
“지금!”
회전력을 이용해 속도를 줄인 헬기가 건물 옥상을 스쳐 지나는 순간, 경호원과 주몽이 밖으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아무리 속도를 줄었다고 해도 이동 중인 헬기에서 뛰어내린 것은 무모함에 가까웠다.
경호원 하나가 ‘으악!’ 소리를 지르며 옥상이 아니라 지상으로 추락했고 주몽과 다른 경호원 역시 몸이 부서질 듯 충격을 받으며 옥상 귀퉁이에 처박혔다.
우드드득!
착지에 실패한 경호원 몸에서 다리뼈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주몽은 다행히도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낙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주몽과 경호원들을 떨구느라 잠시 주춤하던 헬기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반쯤 뒤집혔고 그와 동시에 옆구리에 미사일이 박혀 들었다.
꽝!
굉음과 함께 헬기가 폭발을 일으켰고 사방으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헬기는 화염에 휩싸인 채 도심 한복판에 그대로 추락을 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