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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50화 (151/224)

150장. 습격 4

“엘리스요?”

“네. 사실은 입국하고 한 국장과 같이 만나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회식이 잡혔다고 해서.”

“아…….”

아마도 조카인 엘리스에게 한 국장을 소개하려 했던 모양이다.

“이런. 내가 날을 잘못 잡았네요.”

제이코에겐 엘리스가 유일한 가족이니 한 국장을 정식으로 소개하고 두 사람 사이를 공식화하려 했던 모양이다.

주몽이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제이코가 어색한 표정으로 웃음을 보였다.

“뭐, 오늘만 날이겠습니까.”

“그래도…… 미안하게 됐네요.”

“아닙니다. 아무튼, 어쩌다 보니 두 사람도 함께 오게 됐는데…….”

“같이 들어오라고 하세요.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래도 되겠습니까?”

주몽과 엘리스 사이에 있었던 어색한 감정을 알고 있는지라, 제이코는 조심스러운 태도다.

“괜찮아요.”

주몽이 흔쾌히 고개를 흔들자, 제이코는 안도하는 표정이 됐다.

잠시 뒤, 한 국장과 엘리스가 방으로 들어왔다.

엘리스는 방 분위기를 슬쩍 살피더니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셨어요.”

“어. 한국어를…….”

“한국에서 지내려면 한국말도 문화도 알아놔야 할 것 같아서.”

외국인의 어설픈 한국말이 아니다.

발음이 매끄러운 것이 한국에서 몇 년 살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주몽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짓자, 엘리스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서 지낸다고? 미국이 아니라?”

Go 컴퍼니를 나가고 에이스 로펌으로 돌아간 엘리스다.

제이코에게 로펌도 그만두고 한국에 남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긴 했지만, 그저 잠시 쉬어가는 정도라 생각했었다.

“앉아도 될까요?”

“어? 어. 그래.”

엘리스가 한국말을 하는 것도 신기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게 발음하는 건 더더욱 신기했다.

그래서일까. 영어로 대화할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예전의 엘리스는 어딘지 싸늘하고 차갑게 느껴졌다면, 지금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엘리스는 이름과 얼굴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엘리스는 다소곳한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엘리스는 조사팀 다국적 미녀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분들이군요.”

“응?”

“삼촌에게 들었어요. 공식적으로 유혹을 허락했다고.”

“그렇게 됐어.”

엘리스와 이렇다 할 감정을 나누는 사이도 아니었고 이런 문제로 변명하거나 설명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시원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한때 고백 비슷한 것을 했던 여자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도 그다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왜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은 것인지 물어봐도 되나?”

“그냥…… 궁금해서요.”

“궁금해? 뭐가?”

“문화적 차이?”

“별것이 다 궁금하네. 어차피 미국으로 돌아갈 거면서 그런 건 알아서 뭐하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보스에겐 불편한 것들이었으니까요.”

어색하다. 어색해.

한국말로 그것도 한국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데다, 미묘한 억양과 어감마저 한국 사람처럼 사용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눌 땐 절대 느낄 수 없는 말 속에 담긴 ‘감정’들이 그대로 전달이 됐다.

‘문화적 차이를 알고 싶다고 하더니. 이런 것까지 포함해서 이야기한 건가?’

“내가 불편하게 느낀 이유를 알고 싶었다는 그런 말인가?”

엘리스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어차피 우리는 함께 일할 사이도 아닌데.”

“그냥요.”

“그냥?”

“네.”

뭐라는 거야. 한국말을 공부하고 한국 문화를 공부하고 미국적 사고와 한국적 사고의 차이점까지 공부한 이유가 ‘그냥’이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네.

“그리고…….”

엘리스는 이번에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편하게 이야기해. 엘리스답지 않게 왜 그렇게 소심해졌어.”

“훗.”

내 말에 엘리스가 작게 웃음을 보였다.

“보스도 저를 모르긴 마찬가지잖아요.”

“……?”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엘리스를 바라봤다.

“저 원래 소심해요. 그저…… 나를 보호하려는 마음에 강한 척한 거죠.”

“어…… 그랬나?”

“네.”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치료도 받았어요.”

“치료?”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엘리스를 바라봤다.

“미국에선 클리닉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선 정신과라고 부르던데. 저도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거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걸 굳이 고치거나 바꿀 이유가 없었죠. 나를 보호하고 감추는 데 큰 도움이 됐으니까요.”

“…….”

“하지만 보스 말이 맞았어요. 그렇게 살아선 사람들을 상처 주고 할퀼 뿐이죠.”

그러니까. 왜 그런 말을 여기 와서. 나에게 하고 있냐고. 나 지금 불편한 표정 짓는 거 안보이냐?

내 속마음이 들리기라도 한 걸까. 엘리스는 슬쩍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어색한 표정이 됐다.

“미안해요. 보스를 불편하게 하려고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엘리스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나와 엘리스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는 옆자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이코는 물론이고 경호 때문에 자리에 끼지 않겠다던 로버트까지 바짝 붙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엘리스 이 녀석은 예전에도 그렇더니만, 오래간만에 나타나서도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재주는 여전하다.

“저기 엘리스.”

“네. 보스.”

“나. 네 보스 아니다. 그러니까 자꾸 보스라고 부르지 마라.”

우리 관계는 너 퇴사하면서 마무리됐다는 의미로 ‘호칭’에 주의를 시켰다.

“에?”

엘리스는 눈을 껌뻑이며 나를 바라보다가 ‘아…… 그렇지. 이젠 보스가 아니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오빠라고 불러도 되나요?”

“푸학! 쿨럭. 쿨럭. 켁.”

느닷없는 오빠 드립에 술 사레가 걸려버렸다.

‘그놈의 오빠 소리는. 들을 때마다 당혹스럽네.’

로버트가 재빨리 등을 두들기며 숨을 고를 수 있게 도움을 줬다.

“쿨럭. 어우. 젠장.”

“보스. 괜찮으십니까?”

“방에 좀 다녀와야겠네요. 옷이 다 젖어서.”

내가 자리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엘리스는 침울한 표정이 됐다.

호칭을 문제로 삼기에 한국적으로 ‘오빠’ 호칭을 물어봤던 것뿐인데, 주몽이 저렇게 격한 반응을 보일 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 로버트 팀장님. 잠시 보안실로 와 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인가?”

― 주변에 이상한 분위기가 잡혀서 말입니다.

“지금 가지.”

로버트는 엘리스의 어깨를 두들기며 힘내라는 표정을 짓더니 보안실로 자리를 옮겼다.

“보고해.”

“인근 CCTV 화면입니다. 보시죠.”

주몽이 머무는 호텔 주변은 Go 컴퍼니에서 사비를 들여 따로 보안망을 갖춰놓은 상태다.

경찰이 운영하는 CCTV나 호텔 측 보안 장비도 있지만, 직접 컨트롤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아예 보안망을 새로 설치한 것이다.

“흠…….”

로버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저 건물은 용도가 뭐지?”

“오피스입니다. 층마다 확인을 해 봤는데, 백 명이 넘는 인원이 이 시간에 움직일 이유는 찾지 못했습니다.”

로버트는 곧바로 양 과장에게 연락을 넣었다.

― 네. 팀장님.

“오피스 건물 하나를 알려줄 테니. 확인 좀 해 줄 수 있겠나?”

―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백 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들었는데, 이유를 알 수가 없군. 정상적인 움직임이라면 문제 될 게 없지만…….”

― 이해했습니다. 직원을 보내겠습니다.

양 과장이 사람을 보내겠다고 말을 하는 순간, 화면을 지켜보고 있던 보안팀이 목소리를 높였다.

“팀장님! 습격입니다! 호텔 쪽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로버트는 CCTV 화면을 확인하더니 된소리를 내뱉었다.

“젠장!”

사내들 손에 냉병기로 보이는 물건이 확인됐고, 이동 경로를 봤을 때 그들의 목표는 호텔이 분명했다.

혹시나 이런 사태에 대비해 기존 세력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구멍이 났는지 모르겠다.

로버트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더니 양 과장에게 곧바로 상황을 전달했다.

― 네에? 알겠습니다!

“호텔 진입로부터 차단하게!”

― 네. 팀장님.”

양 과장과 통신을 마친 로버트는 연이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보안팀 모두 호출해! 로건은?”

“경호팀과 함께 있습니다.”

“연락 넣어! 총기 사용도 허락한다고 해! 12층에 쥐새끼 한 마리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서라고 해!”

“네! 팀장님.”

로버트는 스마트 폰을 꺼내더니 이익현 차장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 * *

옷을 갈아입는단 핑계로 잠시 자리를 피하긴 했지만, 엘리스의 달라진 모습은 쉽사리 적응되지 않았다.

얼음공주라 불리던 차갑고 냉철하고 싹수없던 엘리스는 오간 데 없고 생판 처음 보는 엘리스가 등판했다.

“적응 안 되네.”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저런 설명을 가져다 붙일 필요도 없다. 엘리스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이해해 보겠다고 노력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대놓고 대시를 하겠다고 선전포고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걸 좋아해야 해. 아니면 조심해야 해?”

엘리스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면서 로버트가 달려 들어왔다.

“로버트?”

“보스. 습격입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재차 질문하려는데, 로버트는 곧바로 옷장을 열어젖혔다.

“입으시죠.”

방탄, 방검 기능이 있는 5만 달러짜리 기능성 슈트가 내 손에 들렸다.

“호텔 인근은 우리 쪽에서 꽉 잡고 있잖아요. 그런데 무슨 습격이요?”

“죄송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일이 마무리되고 파악해 보겠습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으시죠.”

“알았어요.”

나는 군소리 없이 슈트를 갈아입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정장이지만 권총탄과 칼날 정도는 충분히 막아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지금 다들…….”

다른 때와 달리 오늘은 술까지 마신 상태다.

어떤 놈들이 공격해 왔는진 모르겠지만 자칫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양 과장이 호텔 로비를 막으러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놈들 숫자가 많아서 오래 버티진 못할 겁니다.”

“네? 몇 명이나 몰려왔기에…….”

“최소 백 명. 도검을 소지한 것으로 확인됐고. 총기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보유 가능성이 큽니다.”

“젠장. 그 말은 로비에 내려간 사람들은 다 죽으라는 소리잖아요!”

“보스. 지금 당장이라도 보스가 자리를 피해주시는 것이 우리를 돕는 겁니다.”

“…….”

“빨리요!”

“알았어요. 가요.”

방 밖으로 나가자, Go 컴퍼니 직원들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기분 좋던 회식 자리가 순식간에 엉망이 됐다.

“직원들은…….”

“보스가 먼저입니다.”

로버트는 더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겠다는 듯 거칠게 나를 잡아끌었다.

호텔 옥상에 올라가자 헬기와 경호팀이 기다리고 있다.

“보스. 검찰청으로 바로 이동을 할 겁니다.”

“검찰 쪽으로요?”

“마음 같아선 청와대로 가고 싶지만, 그쪽은 비행이 금지돼 있어서 이익현 차장에게 부탁했습니다.”

경호팀이 헬기 문을 열자, 로버트는 나를 구겨 넣듯 집어넣었다.

“출발해!”

“네. 팀장님.”

경호팀은 조종석으로 올라가더니 곧바로 헬기를 출발시켰다.

바람이 일며 헬기가 공중으로 떠오르자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로버트는 곧바로 12층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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