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장. 습격 3
장하성은 안태완이 알려준 방법을 이용해 암살 조직 또는 프리랜서들에게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경호원에 둘러싸여 있는 주몽을 잡으려면 어설픈 칼잡이가 아니라 진짜 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락을 넣는 곳마다 문제가 발생했다.
“당신들은 대통령이라도 죽일 수가 있다고 들었소.”
― 대신 그 만큼 돈이 많이 들겠지.
“하우머치.”
― 개발도상국은 1천만 달러. 중진국은 1억 달러.
“G20 국가는 어느 정도지?”
―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무리한 작업을 원하는군.
“아, 오해가 있군. G20 국가수반을 죽여 달라는 게 아니요. 그 정도 인물을 죽이려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드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지.”
― 비용을 묻지 말고 대상을 이야기하는 게 좋겠군. G20 국가수반이라고 해도 돈만 맞는다면 고민해 볼 수 있는 문제니까.
“혹시, Go 컴퍼니를 알고 있소?”
― Go 컴퍼니? 아아. 슈퍼 럭키 가이.
“내가 원하는 자는 Go 컴퍼니 대표 고주몽과 그의 고문 변호사 제이코요.”
― …….
상대방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헬로우?”
― 마더 빡커! 유 크레이지?
“와…… 왓?”
느닷없이 날아든 욕 소리에 장하성은 당혹스러운 표정이 됐다.
상대방은 걸쭉한 욕과 함께 전화를 끊어버렸고 띠띠―거리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장하성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전화기를 바라보자, 함께 계획을 세우고 있던 이들이 ‘왜 그럽니까?’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크흠. 아니야.”
장하성은 신경 쓸 것 없다며 손을 흔들더니 다른 연락처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대상을 이야기하자 너나 할 것 없이 욕부터 날아들었다.
― 헤이. 죽고 싶으면 그냥 목구멍에 총구를 밀어 넣어.
― 셧더 마우스! 네 대가리부터 날려줄까?
― 홀리 쉣! 그냥 니네 나라 대통령을 죽여줄게. 그걸로 계약하자면 진지하게 생각해볼게.
― 유 크레이지? 마더 빡커.
“…….”
장하성은 황당한 표정이 됐다.
고주몽이 아니라 대통령을 죽이는 게 어떻겠냐고 역으로 제안을 하는 놈까지 있다.
“미치겠군.”
장하성은 얼굴을 비비며 마른세수를 했다.
“일이 잘 안되나 보죠?”
이연아가 궁금한 표정으로 장하성을 바라봤다.
“하나 같이 거부하는군요.”
장하성의 말에 이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도 복수 재단 때문에 다들 꺼리는 것 같습니다.”
“고주몽의 유언장이 문제가 된 모양이군요.”
“의뢰를 받아들이는 순간, 다른 조직의 목표가 될 거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장하성은 답답한 표정으로 숨을 쏟았다.
“결국, 우리 손으로 해치우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군요.”
이연아의 말에 장하성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되겠습니까? 프로들도 고개를 흔드는데.”
“그들은 뒷감당이 무서워서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대로 말라 죽을 거예요.”
“나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슨 수로 고주몽을 직접 공격한단 말입니까.”
장하성의 말에 CK 정혜선이 한 마디 덧붙였다.
“국정원과 검찰, 경찰까지 모두 고주몽 손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설프게 움직였다간 바로 발각이 될 겁니다.”
“누구도 주시하지 않을 사람들을 움직이면 어떨까요?”
“누구도 주시하지 않을 사람?”
이연아의 말에 다들 궁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보통 사람들을 이용하는 건 어떨까요.”
프로도 힘든 일에 보통 사람을 이용한다? 그게 되겠냐는 듯 다들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고주몽을 죽이기 위해선 그 일에 나선 이들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누가 그런 일에 동참하겠는가 말이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은 애초에 참여하지도 않겠죠.”
“보통 사람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 잘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장하성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라는 듯 이연아를 바라봤다.
“세상엔 죽음보다 남겨진 사람들을 더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어요.”
“남겨진 사람들을 더 걱정하는?”
“예를 들면…… 시한부 삶을 사는 환자들 말이죠.”
이연아의 말에 다들 ‘흐음’하는 반응을 보였다.
“보통 사람에 속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죽음을 통해 남겨진 사람들 또는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다면…….”
이연아 말대로 검경이나 고주몽 쪽 사람들이 전혀 주시하지 않는 부류의 인간들이다.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벼랑 끝에 선 자들이라면 입도 꽤 무거울 것 같은데.”
이연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를 섭외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고 그렇다고 국내 조직을 움직이기엔 고주몽의 감시망을 피해갈 방법이 없었다.
장하성과 이연아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안태완에게 향했다.
“안 수석 생각은 어떻습니까?”
안태완은 잠시 고심하는 표정을 짓더니,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만 충분하다면…… 해 볼 만할 것도 같군.”
이연아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들은 기존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작전이 꾸리기 시작했다.
그때 고주몽과 청와대가 군을 건드리는 무리수를 뒀다.
장하성 등이 불안한 눈빛으로 방송을 보는데, 안태완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 키득키득 웃음을 흘렸다.
자살부대를 꾸리는데, 일반인 말고도 추가할 병력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살부대라…… 나름 참신하긴 하다만. 뭐, 나야 틈만 만들어 낼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니까.’
안태완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성공 가능성을 타진하는 재벌 찌꺼기들을 보며 음흉하게 웃음을 흘렸다.
* * *
사내들의 팔뚝에 진통제를 주사한 김일균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에도 진통제를 주입했다.
“후우…….”
고통에 몸부림치던 몸이 차차 잦아들면서 평온함이 찾아왔다.
몇몇 이들은 진통제 효과에 눈이 풀리기도 했다.
저들이 준비한 진통제는 거의 마약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순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우. 이거 죽여주네.”
박용출은 ‘흐흐’ 웃음을 흘리며 상자 안에 든 앰풀을 바라봤다.
“더 맞고 싶습니까?”
김일균의 말에 박용출이 그래도 되냐는 듯 눈을 반짝였다.
“놔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연달아 맞으면 뇌가 녹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흐흐. 말이 진통제지. 이거 완전히 마약이구만.”
박용출의 말에 김일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가는 길에 작은 혜택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김일균은 상자를 정리하더니 박용출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담배 한 대 더 얻읍시다.”
“얼마든지.”
박용출은 이번에도 손수 불을 붙여줬다.
“그런데 우리가 죽여야 할 놈이 누구요?”
박용출의 질문에 몇몇 사람들이 김일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들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지. 그게 누군지는 들은 바가 없다.
“나도 모릅니다. 그저 12층에 투숙하고 있는 자들을 모두 죽이면 된다고 그렇게만 알고 있습니다.”
“12층에 투숙한 사람들을 전부?”
박용출은 살짝 놀란 눈빛이 됐다.
누구든 상관없으니 그 층에 있는 사람은 무작위로 죽여버리라는 소리지 않은가.
“다른 투숙객은 없을 겁니다. 한 층을 모두 빌려서 쓰고 있다고 하니.”
“하여간 부자 새끼들은…….”
비싼 호텔 방을 잡는 것도 부족해 층 하나를 모두 계약했다는 말에 박용출이 콧바람을 쏟아냈다.
“부자들에게 불만이 많은 모양입니다.”
“많지. 시벌놈들.”
김일균이 궁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조그맣게 회사를 하나 운영했거든. 회사 이름이야 그쪽 사람들 아니면 들어봐도 모르겠지만……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이었어.”
“빼앗겼나 보군요.”
“일감을 잔뜩 몰아줘서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했는데, 납품일 남겨놓고 계약을 파기해버리더라고. 완전히 우습게 된 거지.”
대기업들이 기술력 좋은 회사를 먹어 치울 때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김일균은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들 가진 것만 해도 배 터져 죽을 놈들이. 우리 같이 아등바등 사는 놈들 것까지 그렇게 뺏어야것어? 가진 놈들이 더 한다더니.”
“화가 많이 나셨겠네요.”
“그러면 뭐해. 마누라랑 애새끼들 먹여 살리려면 뭐든 해야지. 그런데…… 시펄!”
박용출은 주르륵 눈물을 쏟았다.
“뒤질 때가 돼서 그런가. 요즘 눈물이 늘었어.”
박용출은 소매로 눈을 훔치더니 김일균을 바라봤다.
“그짝은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
“별거 있겠습니까. 사연이야 다 비슷하지.”
김일균은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120명의 사람은 통성명을 주고받기도 하고 자신들의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한탄을 늘어놓기도 했다.
지하 주차장의 시간은 ‘째깍째깍’ 그렇게 흘러갔고 약속한 22시가 다가왔다.
김일균이 두 번째 진통제를 준비하자, 사람들도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이걸 맞으면 고통도 두려움도 없어질 겁니다.”
김일균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목표는 하납니다. 12층에 살아 숨 쉬는 건 바퀴벌레 한 마리도 없게 할 것.”
“그 안엔 우리도 포함되는 거겠지?”
박용출의 말에 김일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을 위해서…… 우리는 오늘 다 죽어야 합니다.”
김일균의 말에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생겨났다.
“주사를 맞은 사람들은 여기 이분들을 따라 움직이면 됩니다.”
김일균은 권총을 챙겨갔던 무리를 가리켰다.
“약이나 놔 주쇼.”
“그럽시다. 약발 떨어지기 전에 움직이고 바로 끝내버리죠.”
김일균은 총잡이들을 앞으로 불러내더니 주사기를 나눠줬다.
“혼자서 주사하면 텀이 생기니…….”
“그럽시다.”
박용출 목에 칼을 들이댔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에 손짓했다.
총잡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더니 사람들을 스무 그룹으로 나누었고 그들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아 넣었다.
* * *
클럽 사건 이후 정신없이 달려왔던 고주몽과 Go 컴퍼니는 간만에 허리띠를 풀고 술과 음식을 즐겼다.
신세계 프로젝트를 발동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둬들인 점도 있지만, 파견 형태로 Go 컴퍼니에 합류한 미녀 군단을 환영하는 행사도 겸하는 자리였다.
그녀들의 1차 목표는 고주몽을 유혹하는 거지만, 막상 Go 컴퍼니에 들어와선 일에 치여 살다시피 했다.
“한 달 동안 고생들 많았습니다. 오늘은 골치 아픈 일은 다 잊어버리고 실컷 마시고 즐겨봅시다.”
주몽의 외침에 Go 컴퍼니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로버트도 오늘 같은 날은 같이 즐겨요.”
주몽의 외침에 로버트는 가볍게 웃음 지을 뿐, 자리에 끼어들지 않았다.
“에이. 그러지 말고.”
주몽은 재차 합석을 요청했지만, 로버트는 고개를 흔들었다.
“보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런 날일수록 경호팀은 더 긴장해야 합니다.”
“별일 있겠습니까? 정보팀도 그렇고 국정원과 검찰에서도 주시하고 있다면서요.”
“그렇다 해도 안 됩니다.”
로버트는 단호한 표정으로 재차 고개를 저었다.
그때 경호팀 쪽에서 무전이 하나 날아들었다.
“제이코가 호텔에 도착했다고 하네요. 저 대신 투입하겠습니다.”
주몽은 아쉬운 표정으로 로버트를 바라봤다.
함께한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술자리는 한 번도 함께 하지 않는 로버트다.
일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이럴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로버트의 말대로 잠시 뒤, 제이코가 모습을 나타냈다.
“보스.”
“딱 맞춰서 왔네요. 이쪽으로 앉아요.”
“네. 보스. 그런데…… 함께 온 사람이 있는데.”
“함께 온 사람?”
주몽이 궁금한 표정으로 제이코를 바라봤다.
“한 국장…….”
“한 국장이면 한 식구나 다름없잖아요. 뭘 내외하고 그럽니까.”
“엘리스도…….”
“에?”
제이코의 입에서 거의 잊고 지냈던 이름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