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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46화 (147/224)

146장. 무서워서 그랬습니다!

“당연히…….”

“흠…….”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고 회장님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작업을 진행하려고 해도 뒷받침해줄 자금이 없다면 그저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일만 벌여놓고 결과는 얻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고…….”

“준비를 철저히 해서 진행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 개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먹구구식 마인드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이건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명환 대통령은 다급한 표정이 됐다.

거래가 무산되면 주몽이 말한 문제점은 둘째 치더라도 기자회견에서 뱉었던 말까지 모두 헛소리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아이고. 고 회장님.”

이명환 대통령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듯싶습니다. 제안서 내용만 해도 그렇습니다. 나에겐 있으나 마나 한. 아니죠. 아무 의미도 없는 물건을 구매해 달라고 해 놓고. 후속 대책은 전혀 없는 상황 아닙니까. 나중에 나 몰라라 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미사일로 밥 지어 먹고 전투기로 국 끓여 먹으면서 살까요? 60조가 장난입니까? 그 돈이면…… 어휴. 여기까지만 하죠.”

“이렇게는 못 보냅니다. 이게 다 고 회장님이 먼저 사고를 쳐서 이렇게 된 게 아닙니까!”

“내가 먼저 사고를 쳤단 말입니까?”

“그렇지않습니까. 나에겐 말도 없이 군 개혁 지지니 어쩌니 하면서 기자회견을 한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고 회장 아닙니까!”

“그렇군요. 내가 먼저 일을 벌였군요.”

나는 스산한 눈빛으로 이명환을 바라봤다.

이명환은 싸늘한 내 눈빛에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대통령님.”

“…….”

“그렇게 자신만만하시면 누가 먼저 건드렸는지. 누가 먼저 사고를 쳤는지 제대로 한 번 짚어볼까요? 검찰에 잡혀 있는 국방부 장관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고 하던데. 카메라 앞에 세워서 대통령님이 무슨 꼼수를 부렸는지…….”

“고…… 고 회장님.”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고. 지금 대통령님이 딱 그 모습입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발길을 돌리려는데, 이명환 대통령이 옷소매를 잡아챘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다그치지만 말고…… 그냥 방법을 알려…… 아니 지시를 내리세요.”

이명환 대통령은 항복 선언을 하며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크흠. 지시라니요. 말씀이 좀…….”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우리끼리는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대한민국에서 고 회장님 지시를 거부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재계는 물론이고 국회에 이젠 군까지 건드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네. 고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먼저 꼼수를 부렸죠. 그런데 왜 그랬겠습니까. 무서워서 그랬습니다. 무서워서!”

이명환 대통령이라고 귀가 없을까.

지금 고주몽 밑에 모인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잘 알고 있다.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대한민국 귀족들로 살던 자들이 하나 같이 고개를 숙이고 고주몽 밑에 무릎을 꿇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미 그들 손에 휘둘려 넝마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자신을 그렇게 만든 자들을 싹 다 갈아버리고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자들을 휘하에 아우른 고주몽이다.

고주몽 앞에선 대통령이고 뭐고 그저 평범한 공무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철밥통 공무원이 아니라 임기를 마침과 동시에 다음 정권의 타겟이 되는 그런 존재다.

그나마 신당으로 자리를 옮겨 퇴임 후 물어뜯기는 참사는 면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됐는진 모르겠지만, 고주몽 휘하에 들지 못하고 변두리에 내쳐지는 순간. 비극만 기다릴 뿐이다.

이명환은 이 모든 게 두렵고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물끄러미 이명환 대통령을 바라봤다.

“무서워요?”

“네! 고 회장님이 한 마디만 해 줬어도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고 회장님 사람이 되라고 그렇게 한마디만 하시면 될 일 아닙니까. 그런데 물건 가져다 쓰듯 사용만 해 놓고 따로 언질은 없으니…….”

이명환은 지친 표정으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나도 압니다. 죽을 날만 기다리며 숨만 쉬고 있었다는걸. 고 회장님이 아니었다면 계속 그렇게 휘둘리며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청와대를 떠났겠죠.”

그간 가슴앓이가 심했는지 이명환은 한없이 넋두리를 늘어놨다.

“사람 목숨을 살렸으면 끝까지 책임도 지는 겁니다. 이제 일 끝났으니 너 알아서 해라? 그거야말로 무책임한 행동 아니냔 말입니다.”

이명환 대통령의 절절한 외침에 비서실장은 물론이고 Go 컴퍼니 사람들 역시 당황스러운 표정이 됐다.

나는 걸음을 돌려 이명환 대통령 앞에 자리를 잡았다.

“대통령님.”

“네. 고 회장님.”

“아무래도 제가 오해를 했던 모양입니다.”

“…….”

“마음고생이 그렇게 심할지 미처 생각 못 했습니다.”

이명환 대통령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좋습니다. 대통령님이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는데. 나이도 어린 제가 계속 버릇없이 구는 것도 좀 그렇죠.”

“그 말씀은…….”

“우리 쪽에 정식으로 합류하시죠.”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나는 나이도 많고…… 은퇴를 하면…… 갈 곳도 마땅치 않고…….”

“노후 연금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내가 웃으며 말을 건네자 그제야 이명환 대통령도 얼굴이 살짝 풀어졌다.

“고 회장님.”

“네. 대통령님.”

“그럼 솔직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뭘 말입니까?”

“군 개혁…… 이거 왜 터트리신 겁니까?”

이명환 대통령은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주몽이 군 문제를 들고나온 이유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단순히 돈 많은 부자의 흥밋거리? 아니면 자신의 꼼수를 벌하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대한민국 군을 개혁하고 싶어서?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안개 속을 걷는 듯 모호할 뿐이다.

“거꾸로 물어보죠.”

“네.”

“남은 임기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 있으십니까?”

“그야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물론, 회장님이 밀어주신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만.”

“저에게 언터쳐블이 되려는 거냐고 물어보신 거 기억나십니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이야기했었죠. 하지만, 이미 손댈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고 회장님이 부족하다고요? 뭐가 말입니까.”

“무력(武力)!”

“…….”

이명환 대통령은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그 말씀은…….”

“정계, 재계, 그리고 실질적 무력까지. 삼위일체가 되어야 제대로 된 언터쳐블이라고 할 수 있죠.”

이명환 대통령은 내심 ‘그것’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 적은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당사자에게 직접 듣게 되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지금…… 대한민국의 왕이 되겠다고 하시는 겁니까?”

“에이. 21세기에 전제주의로 회귀는 좀 그렇죠. 하지만, 그 비슷한 권위와 권력을 지닌 이들은 지금도 넘쳐나는 세상 아닙니까. 가깝게는 재벌들이 그랬고 대한민국 밖으로 나가면 지금도 귀족이나 왕족 못지않게 세를 과시하는 가문, 세력들이 넘쳐납니다. 그건 대통령님도 알고 계시죠?”

이명환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별 없는 평등을 이야기하는 시대라 해도 그게 다 공염불인 것은 어린애들도 아는 일이다.

놀이터에 모인 꼬맹이들이 아파트 평수로 서로를 비교하고 또 그걸 이용해 왕따를 조장하는 세상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라는 소리다.

이명환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을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어떻게 하다뇨.”

“회장님 말씀대로 그런 힘을 손에 넣게 된다면…… 아니 이미 손에 넣으신 거나 마찬가지군요.”

이명환 대통령의 말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대통령님.”

“네. 회장님.”

“대통령님은 대통령님의 재산에 누가 흠집을 내면 좋으세요?”

“…….”

“아니면 자신이 타고 다니는 차를 망치로 두들겨 패는 취미라도 있으십니까?”

“그 말씀은…….”

“네. 그런 겁니다. 나는 내 물건이 망가지거나 관리 소홀로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영지를 잘 가꾸고 발전시키고 싶다고 하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네.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내심 안심도 되는군요.”

대한민국을 개인의 소유물처럼 이야기하는 게 웃기긴 하지만, 자신의 소유물을 아끼는 마음이 우선이라니 그나마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하하하. 설마. 내가 폭군처럼 횡포라도 부릴 거라고 생각을 하신 건 아니죠?”

이명환은 ‘이미 그러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 이미지가 그렇게 거칠어졌습니까?”

“일반인들은 모르겠지만, 나름 힘 좀 쓴다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이명환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건 좋은 일이군요. 나를 두려워한다면 내가 싫어하는 일은 알아서 피해 갈 테니까요.”

나는 제안서를 집어 들었다.

“다시 이야기를 해 보죠.”

“네. 회장님.”

“이거 사인하면 오늘 발표 내용은 무리 없이 진행이 되는 겁니까?”

“고 회장님이 결심만 해 주신다면…… 네. 청와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매 대금에 대한 상환 방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10년 분할 상환이라고 하셨는데…….”

자금 납부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자, 이명환 대통령이 다시 긴장한 표정이 됐다.

“이율이 3.5%로 되어 있던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현재 은행권에서 받는 이자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이율이다.

물론 더 준다고 해서 반대할 일은 아니지만, 주몽이 목표했던 이율은 3%다.

그것만 해도 지금보다 더 이익이기 때문에 굳이 무리해서 이율을 높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손해를 감수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다.

장사꾼처럼 보이기보다 나라를 생각하는 올곧은 청년 코스프레를 위해 희생하는 비용이다.

제안서 내용과 투자금 내역은 비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 국민에게 알려질 것이고 이는 자칫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주몽은 0.5%를 낮추는 것으로 화기애애한 미담을 만들어 놓고 싶었다.

정부의 무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수해 내는 그런 이미지가 필요했다.

“재경부 공무원들이 날 밤새워가며 계산한 이율입니다.”

“나야 이자를 더 받으면 좋기는 합니다만. 낮추죠.”

대한민국은 존경받는 부자로 살기 쉽지 않다.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갖기 위해 부정을 저질러 온 역사가 국민들 기억에 DNA처럼 새겨졌기 때문이다.

나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나 반대급부가 일어나는 걸 원치 않았다.

‘이왕이면 존경받는 부자가 된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내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중이지만, 이왕이면 칭찬받으면서 돈을 버는 게 좋다.

“네?”

이자에 관한 이야기. 그것도 더 높이겠다는 게 아니라 너무 높지 않냐며 걱정하듯 이야기하는 주몽의 모습에 이명환 대통령은 얼떨떨한 표정이 됐다.

“펜과 종이 좀 부탁드립니다.”

최정민 비서실장이 재빨리 펜과 종이를 가지고 왔다.

“제 생각엔 말입니다.”

“네. 고 회장님.”

주몽이 백지 위에 뭔가를 적기 시작하자, 모두의 시선이 종이 위로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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