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45화 (146/224)

145장. 관심이 있기는 한 겁니까?

청와대 기자회견 시간이 되자, 주몽은 TV 앞에 앉았다.

청와대가 들고나온 개혁안과 개편안 그리고 이명환 대통령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에게 거래를 걸어올지 보기 위해서다.

― 군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3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며…….

― 현재 복무 중인 군 장병들은 순차적으로 제대를 진행하며…….

― 모병에 있어 기존 군 생활 중인 장병들의 우선 지원을 받을 것이며…….

― 기존 징병제는 병역의무 대체로 남녀에 구분 없이 3개월 군사훈련을 마치는 것으로…….

― 훈련 프로그램은 특성화 병과에 맞춰 진행되며…….

화면 하단엔 이명환 대통령의 개혁안이 발표될 때마다 <속보 ― 모병제로 전환!> 등의 굵직한 자막이 프린트됐다.

― 그러나, 다음과 같은 개혁에 있어 난관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개혁, 개편안 발표를 마친 이명환 대통령은 기자회견 말미에 ‘그러나’를 가져다 붙였다.

― 이번 개혁에 있어 가장 큰 난관은 바로 자금입니다. 군 첨단화와 모병제 전환에 있어 초기 발생하는 비용이 막대한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속보― 군 개혁에 천문학적 자금 필요!>

― 이번 조치는 고주몽 회장과 재계의 지지가 없다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에 요청…….

<속보― 지지를 선언한 고주몽 회장과 재계의 협조 필수>

<속보― 고주몽 회장과 재계의 지원 없이는 추진에 어려움 많아>

― 오늘 발표를 여기서 마칩니다. 고주몽 회장과 정, 재계. 그리고 국민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기자회견은 질의 문답 없이 말 그대로 발표 방식으로 마무리가 됐다.

말로는 개혁이라고 했지만, 정작 주몽이 원했던 내용은 그다지 담겨 있지가 않았다.

그저 군 체계를 징병에서 모병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말이다.

“군 범죄 행위. 내부 비리. 군납 방산 비리 척결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질 않는군.”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박산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부적으론 대안이 세워져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짧아요.”

“네?”

“그런 내용을 모두 담기엔 기간이 너무 짧단 말입니다. 청와대에 군 개혁 전문가가 바글거리는 것도 아니고. 수십 년간 반복된 문제를 며칠 만에 해결해 낸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내 말에 박산호가 그것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뭔가를 하고는 싶기는 한데, 그걸 추진할 돈이 없으니 그것부터 해결하고 보겠다는 이런 생각이군요.”

“첫걸음을 떼기 위해서 방법을 전환한 거라면 모르겠지만, 만약 오늘 발표한 내용이 전부라면 실망감이 클 것 같습니다.”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박산호가 나를 바라봤다.

“군 시설과 무기 구입에 대한 내용은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는군요. 적당히 힌트라도 던질 줄 알았는데.”

“아무리 이명환이라고 해도 그걸 대놓고 이야기하기엔 부담스러울 겁니다. 자칫 구걸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보죠. 어디까지 준비를 해 놨는지 직접 들어보고 추가할 게 있다면 추가해서 거래를 마무리 짓도록 하죠. 마음 같아선…….”

군에서 빼돌릴 인원도 어느 정도 확보를 했겠다. 적당히 먹튀를 하는 것도 고려해 볼 생각이다.

“네?”

“아닙니다. 준비합시다.”

“네 대표님.”

군 개혁 지지 기자회견 이후, 호텔에 돌아와 있던 주몽은 직원들을 이끌고 다시 청와대로 출발했다.

기자회견 이후 초조한 심정으로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이명환은 고주몽이 청와대로 출발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지금 바로?”

“네. 기자회견이 끝나고 곧바로 출발한 듯 보입니다.”

“후우…… 그래. 다들 준비는 잘했지?”

“정부와 고 회장 간에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최대한 균형을 맞췄습니다.”

비서실장의 대답에 이명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고주몽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이 되질 않으니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주몽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비서실장은 주몽을 집무실로 안내했다.

Go 컴퍼니 핵심 멤버들과 집무실에 들어선 주몽은 이명환 대통령의 환대에 활짝 웃는 얼굴이 됐다.

“고 회장님. 오셨습니까.”

“하하. 네. 대통령님. 밖에 마무리 지을 일이 많다 보니. 대통령님도 바쁘게 보내신 듯합니다.”

바쁘게 지내? 눈 밑이 시커멓게 죽은 거 안 보여? 고주몽 당신 때문에 다들 과로사할 판이라고!

이명환은 뜨거운 뭔가가 울컥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지만, 꾹 눌러내려고 반갑게 악수를 했다.

“자자, 앉읍시다.”

“네. 대통령님.”

주몽이 자리에 앉자, 차가 준비되고 잠시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명환 대통령은 어디서 어떻게 말을 꺼낼까 하는 표정으로 타이밍을 쟀다.

어찌 보면 무례하기도 하고 강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제안이기에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방송 잘 봤습니다.”

“하하. 그랬습니까.”

“네. 군 비리만 잡아내도 대단한 업적이 될 거로 생각했는데, 모병제로 전환을 하시겠다고요?”

정작 필요한 비리 척결은 소극적이고 대뜸 모병제를 들고나온 이명환 정부다.

오래전부터 논의된 사항이긴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어디서 어디까지 정리를 할 건지 궁금하기는 했다.

주몽의 목적은 군 개편을 통해 쏟아져 나온 인력을 수급해 PMC를 창설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양심선언과 부정부패에 강력히 대응하는 젊은 장교들의 모습을 세상에 공개하고 내부적으로나마 군이 깨끗해지기를 바랐다.

솔직히 군 개혁 운운했지만, 그걸 주몽에게 처리하라고 해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자기들만의 세상으로 반세기 넘게 살아온 군이다 보니 꼬이기가 보통 복잡하게 꼬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는 것이었는데, 무작정 돈을 빌려줄 수는 없으니 ‘군대’를 담보로 잡는 것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제안’을 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정부 측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는 마무리가 됐고. 이제 거래를 어느 수준으로 성사시킬지만 남았다.’

주몽은 단순히 돈이 많고 영향력을 펼치는 것 정도론 멀리 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한민국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 재벌들도 잡아넣으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자신이 직접 증명해 내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 이상의 힘. 또는 공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자신만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계획이 실행되기 위해선 ‘이명환’처럼 수세에 몰린 대통령을 필요로 했다.

멀쩡히 잘 돌아가는 나라와 지도자를 움켜잡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기존 기득권 세력이 히든카드가 된 셈이다. 물론, 그들이 자신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앞장서 나서는 일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주몽의 질문에 이명환 대통령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이명환은 찻잔을 내려놓고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고 회장님.”

“네. 대통령님.”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리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러시는지…….”

주몽은 살짝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정부에서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제안이요? 혹시, 방송에서 언급한 도움과 관련된 내용입니까?”

이명환 대통령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고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이번 개혁엔 초기에 엄청난 자금이 소요됩니다.”

“제 생각에도 그럴 것 같더군요. 군 자체를 완전히 새로 구축하는 작업이지 않습니까. 솔직히 이 정도까지 생각하시리라곤 예상치 못했습니다.”

주몽의 대답에 이명환은 ‘으음……’하고 숨을 골랐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괜히 감정적으로 접근했다간 차려진 밥상을 엎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일단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이명한 대통령이 손짓하자, 최정민 비서실장이 옆으로 다가왔다.

최정민은 민망한 표정으로 문건을 내놓았다.

“이게…… 뭔가요?”

“정부에서 만든 제안서입니다.”

“제안서요?”

“네. 한 번 살펴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이명환 대통령은 연이어 부탁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잠시, 읽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라고 만든 제안서니 말입니다.”

내가 서류를 손에 들고 내용을 살피기 시작하자, 집무실 내부는 말 그대로 침묵에 잠겼다. 주몽이 제안서를 확인하는 동안 어떤 방해도 하지 않겠다는 듯.

“흠…….”

내가 묘한 소리를 흘리자, 이명환 대통령의 울대가 한 차례 울렁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집어삼킨 것이다.

개혁을 위해 금전적 해결방안이라고 내놓은 것이 거의 강매나 다름없는 내용이다.

주몽이 벌컥 화를 내고 자리를 박차며 일어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주몽이 서류를 내려놓자, 긴장감은 더욱 극대화됐다.

“내용은 이해했습니다.”

“…….”

“그런데…….”

“네. 말씀하시지요.”

“개혁 방안은 없는 겁니까?”

“네? 그건 모병제 전환을 통해서…….”

“오늘 기자회견 내용도 그렇고. 군 개혁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볼만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 제안서도 결국엔 ‘돈’ 이야기가 핵심일 뿐. 개혁 방안이나 세부 사항은 하나도 적혀 있질 않네요.”

“그건…….”

“군 범죄 행위. 내부 비리. 군납 방산 비리 척결은 어떻게 진행이 되는 겁니까? 나랏돈을 쌈짓돈 빼 쓰듯 했던 자들입니다. 적을 이롭게 했으니 말 그대로 반역자라고 불러도 부족할 정도인데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한 줄도 들어 있지 않군요.”

“…….”

“개혁이라는 말을 담으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관리가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주몽의 질문에 이명환 대통령은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군 자산 강매 관련으로 불만을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군 개혁 문제를 들고나올 줄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무실 내부에 한동안 침묵이 맴돌았다.

질문을 한 사람도, 답변할 사람도 입을 다물고 있으니 아랫사람들은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있으나 마나 한 장성들은 어찌 처리할 생각이신지 알고 싶습니다만. 요 며칠 군의 양심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던데. 후속 보도는 전혀 볼 수가 없더군요.”

“군 자체 조사 위원회를 꾸려서…….”

“네? 뭘 꾸려요?”

주몽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통령을 바라봤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기자는 말이나 다를 바 없는 짓이다.

군대가 폐쇄적이고 자기들 기득권에 민감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안하무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렇게 행동할 줄은 몰랐다.

“군은 일반법이 아니라 군법에…….”

“지금 그 군법이 바로 개혁 대상 아닙니까. 그런데 개혁해야 할 대상에게 판결을 맡겨두자는 말입니까?”

“그래도 이번 사건과 관련된 자들은 모두 옷을 벗기고 있고…….”

나는 들고 있던 제안서를 툭 던져버렸다.

“그게 옷 벗는 정도로 끝날 일이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이명환 대통령은 크게 당황한 표정이 됐다.

“여기 보니까. 60조라고 적혀 있네요. 개혁을 앞세워 내게 강매를 하겠다는 건데. 내가 왜 그 말에 따라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

“대통령님.”

“네. 고 회장님.”

“군 개혁이 며칠 뚝딱 아이디어만 모으면 바로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간도 필요하고 또 개혁을 해나가자면 비용도 필요하고…….”

“그럼 물어볼게요.”

“네. 질문하시죠.”

“내가 60조를 지원해 줬다고 해 보죠.”

“네.”

“그럼 그 돈은 누가 집행하는 겁니까?”

“그야…… 당연히. 정부에서…….”

“정부에 군 관련 전문가가 있습니까? 그게 아니면 제대로 된 로드맵이라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

“표정을 보아하니 마땅한 책임자도 없이 일단 돈부터 받아내고 보자 뭐 이런 작전인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절대 그런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명환 대통령은 당황한 표정으로 연신 손사래를 쳤다.

“그럼 군 관계자가 자금 집행에 참여하겠네요.”

“아무래도…… 군에 해박한 사람이 참여를 하는 게 맞겠죠. 모병제로 전환을 한다고 해도 기존 장교들과 군 관계자들을 빼놓고는 진행이 어려운 일이니 말입니다. 병사들만 데리고 군을 운영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나는 제안서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계획도 없고, 기존 문제를 해결할 방안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고. 자금 집행도 따로 군 전문가를 섭외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사람은 구해 놓지도 않은 상태라는 말이죠?”

“…….”

이명환 대통령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뭐든 해 보자는 생각에 제안을 들고 나왔는데. 주몽의 말을 듣고 있다 보니 구멍이 숭숭 뚫린 허접한 생각에 불과했다.

“군 개혁에 관심이 있기는 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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