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44화 (145/224)

144장. 그걸 당신이 왜 막아.

“될까요?”

박산호가 모호한 표정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우리가 손해 볼 건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기는 한데…….”

“평범한 사람의 상상력은 말 그대로 몽상일 뿐이지만, 그걸 현실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의 상상력은 세상을 바꿉니다. 박 부장 말대로 미친 소리 취급받고 무시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찔러나 보자’란 생각이 들 수 있을 만큼 나에겐 ‘돈’이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거라는 말씀이군요. 대표님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얼마든지 추진이 가능한 일이니 말입니다.”

“기다려 봅시다. 지금쯤 똥줄이 타다 못해 죽을 지경일 겁니다. 개혁의 ‘개’지만 꺼내도 모조리 돈 들어갈 일만 있을 테니까요. 정부로선 답답함 그 자체일 겁니다. 분위기 봐서 국 편집장에게 눈치껏 끼어들라고 했으니. 뭐든 반응이 있겠죠.”

내 말에 로버트가 웃음을 흘렸다.

“현실성은 둘째 치더라도 아이디어만 놓고 보자면 기가 막힙니다.”

“하하.”

나는 짧게 웃어 보이고 로버트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는 일이긴 해요. 군대 자산을 매입해서 월세를 받아먹는다니.”

“만약 딜이 성사된다면 은행 이자보다 더 큰 수익이 들어오겠군요.”

“말 그대로 성사가 된다면 그렇게 되겠죠.”

“대표님. 만약에 말입니다.”

박산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말을 꺼냈다.

“대한민국군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전부 대표님 게 되는 거지 않습니까.”

“주인을 따진다면 그렇게 되겠죠.”

“만일입니다만…… 어느 날 갑자기 군대도 대신 운용해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PMC처럼 말인가요?”

“물론, 어디까지나 만약에 속합니다만,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군대가 대표님의 사병이 되는 거지 않습니까.”

“어쩌면?”

나는 장난스럽게 말을 받았다. 말 그대로 그건 만약 일 뿐이니까.

“기자들과 포섭된 장교들은 잘하고 있답니까?”

내 질문에 양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태한이라고 예전에 알고 지내던 기자가 있는데, 현재 청와대 출입 기자로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선 정부가 무슨 짓을 해도 개혁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바람잡이 중입니다. 대표님 계획대로 저쪽에서 미끼를 문다면 그에 맞춰 분위기를 띄울 겁니다.”

“오케이. 일단 준비한 수는 다 돌려보죠. 하나라도 걸려들면 계획대로 가는 겁니다.”

“네. 대표님.”

신세계 프로젝트는 모두 다섯 단계로 나눠 진행 중이다.

1단계는 재력―정계. 2단계는 권력―정치. 3단계는 무력―군대(PMC)를 손에 넣는 것이다.

3단계가 마무리되면 4단계와 5단계를 거쳐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것이고 그쯤 되면 고 씨 패밀리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활동 무대를 넓히게 될 것이다.

진행 중인 계획을 재점검하고 필요 요소들을 확인하고 있는데, 비서팀에서 연락이 왔다.

“무슨 일입니까?”

― 대표님.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는 말에 나는 물론이고 함께 회의를 진행 중이던 Go 컴퍼니 멤버들도 스피커에 시선을 집중했다.

“연결하세요.”

― 네. 대표님.

잠시 뒤 짤막하게 신호음이 울리고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흘러나왔다.

― 회장님. 저 최정민입니다.

“네. 비서실장님. 그런데 무슨 일로.”

― 그게. 이틀 뒤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할 겁니다.

“기자회견이요? 군 개혁 관련 인가요?”

― 네. 군 관련 맞습니다. 그런데 회장님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다들 눈을 반짝였다. 혹시 ‘그거?’ 하는 표정들이다.

― 저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만…….

“무슨 내용이기에 그렇게 어려워하실까요? 그냥 이야기하시죠. 이틀 뒤에 어차피 공개될 내용인데.”

― 그러니까. 그게. 회장님에게 군의 무기와 시설 등을 판매하고 그걸 재임대하는…… 크흠. 말하고 있는 저도 당황스러운데 회장님은 얼마나 황당하실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최정민 비서실장의 말에 나는 물론이고 통화를 듣고 있던 이들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처음 계획을 짤 땐 이게 먹힐까 했는데, 진짜 먹힌 것이다.

군 개혁이라는 외통수에 밀려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니 뭐가 됐든 가능성 있는 일이라면 타진이라도 해 볼 거라는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넌지시 물어보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보다 일을 크게 벌일 모양이다.

어쩌면 내가 이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생각인 것 같은데.

나야말로 일을 키우면 키울수록 땡큐 베리머치다.

“네? 뭘 어떻게 한다고요?”

― 그러니까. 하아…… 정말 면목 없습니다. 제 딴에는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아니 그걸 당신이 왜 막아. 내가 깔아놓은 떡밥인데. 그러면 안 되지!

―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아무쪼록 너무 기분 나빠하진 마시고. 거부하셔도 뭐라 할 사람 없으니…….

최정민은 나름 주몽을 생각한다고 이러는 것 같지만, 주몽으로선 하등 쓸모없는 짓이다.

“일단 알았습니다. 방송 보고 다시 통화하기로 하죠.”

― 네. 회장님.

최정민과 통화를 끝낸 나는 Go 컴퍼니 식구들을 쓱 둘러봤다.

“말도 안 되는 짓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진짜 됐네요. 푸하하하하!”

“군에서도 분위기를 잡으라고 연락을 해 놔야겠습니다.”

양 과장도 박 부장만큼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청와대에서 기자회견 하기 전에 폭탄 좀 터트리세요. 모병제로 전환을 하기 전에 썩은 가지는 다 쳐내야죠. 겸사겸사 청와대의 개혁 방안에 힘도 실어줄 겸.”

“물론입니다.”

“폭탄 던지고 옷 벗고 나오는 친구들은 새롭게 만들어질 PMC의 창설 멤버로 영입하면 될 겁니다.”

내 말에 로버트가 크크 웃음을 흘렸다.

“로건이 한동안 정신없이 뛰어다니겠군요. 사람 모으기 힘들다고 징징거렸는데 이제 그런 소리는 쏙 들어가겠습니다.”

* * *

“대통령님. 장교들의 양심선언과 군 장성에 대한 고발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대응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양심선언을 한 장교들은 일단 보호조치를 하고 있습니다만…… 고발 조처된 장성들은 군 자체적으로 조사를…….”

“웃기는 소리. 도둑놈이 도둑놈을 잡겠다는 소리 아닙니까.”

이명환 대통령의 말에 행안부 장관이 머쓱한 표정이 됐다.

“군 특성상…… 검찰이 움직이기가 어렵습니다.”

“증인이 있는데도 말입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증인만으론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후우. 군에서 하는 짓들을 보면 진짜 개혁을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썩어 빠졌기에…….”

“국민의 원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군에선 꿈쩍도 하질 않고 있습니다. 정부 청사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 앞에서 시위라도 했겠지만, 군대는 아무래도 접근도 어렵고.”

“그래도 용감한 장교들 덕분에 정부의 개혁 의지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군 내부에서도 이번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호 아니겠습니까.”

“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군 자체 조사단이라…….”

쯧쯧 혀를 차던 이명환 대통령은 신당 대표 김영덕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대표. 나 이명환입니다.”

― 네. 대통령님.

“총리가 이미 말을 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부탁을 하려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 국회도 이번 일을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의원들과 힘을 합쳐 대통령님의 개혁 의지에 지지성명을 발표할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 네. 말씀하시지요.

“검찰이 개입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힘을 좀 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여론을 만들어 달라는 말씀이군요.

“증언과 증인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그걸 증명하려면 검찰에서 직접 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군에선 군법이 우선이라고 버티기에 들어가니.”

― 알겠습니다. 국회도 최선을 다해서 돕도록 하겠습니다. 힘을 내십시오.

“고맙습니다.”

통화를 끝낸 이명환 대통령은 연설문과 제안서를 다시 한번 검토했다.

“우리 군 자산이…… 60조밖에 안 된다니.”

매년 들어가는 군 유지비는 50조에 이르는데, 군이 가진 재산은 땅까지 싹 긁어모았는데도 60조가 전부였다.

그 많은 돈이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명환이 아쉬운 눈빛으로 금액을 바라보는데, 재경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그것도 최대한 뻥튀기를 한 겁니다.”

“뻥튀기를 해서 60조라.”

그동안 군에 쏟아부은 돈이 얼마였던가. 내심 허탈한 심정이 들었다.

대통령의 반응에 비서실장이 변명하듯 이야기했다.

“아시다시피 무기는 소모품 아니겠습니까. 거기다 다 중고나 마찬가지라.”

공장에서 막 뽑아낸 물건이라면 모를까. 최신 무기도 10년 안짝이고 나머지는 그 이상 된 무기도 태반이었다.

목록을 뽑아 놓고 보니 생각보다 보잘것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름 동북아 군사 강국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평범한 무기 전시장 수준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지스함 같은 일선 무기들까지 깎아내리는 건 아니지만 해군, 공군과 비교하면 육군이 너무 비대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숫자는 많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하다고 할까.

“이건 FX 사업 관련 제안서입니다.”

이명환은 보유 무기 목록을 내려놓고 새롭게 살 무기 항목을 들여다봤다.

“25조라…….”

“정부 예산으로 잡아 뒀던 금액입니다. 5년에 걸쳐 사용할 비용이죠.”

“고 회장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이 사업도 일시금 현찰 거래가 되는 건가.”

“네.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그렇습니다.”

“보유 항목과 구매 항목을 모두 합쳐서 75조. 대한민국 예산 6분의 1이군.”

“이걸 개인이 부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고주몽 회장의 현금 재산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돕니다.”

“일단 추진해 봅시다. 고 회장이 거부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겠지만.”

이명환 대통령이 일어나자, 장관들과 수석들이 그 뒤를 따랐다.

보통 기자회견은 실내에서 하지만 이번만큼은 청와대 본관 앞으로 장소를 잡았다.

기자회견실은 장관들과 수석들까지 모두 올라설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님 오십니다.”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 도착을 알렸다.

기자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본관 입구를 바라봤다.

고주몽 회장의 지지 선언이 있고 나서,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던 청와대가 드디어 공식 입장을 밝히는 것이기에 방송사들 역시 실시간으로 기자회견장을 송출하고 있었다.

임시로 만든 단상에 이명환 대통령이 오르자, 그 뒤로 장관들과 수석이 병풍처럼 쭉 늘어섰다.

“국민 여러분. 대통령 이명환입니다.”

이명환 대통령은 담담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제안서를 들고 있는 손은 축축하게 땀에 젖었다.

이 도박이 먹힌다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 고주몽이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 이렇게 나오는 순간 개혁은 완전히 물 건너가는 것이다.

이건 의지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고성능 스포츠카도 기름 한 방울 없이는 주차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오늘, 이 기자회견이 모든 걸 결정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민 여러분의 피와 땀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해 왔는지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연설문을 읽다 말고 잠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카메라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70년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군 조직과 운영 방식은 여태껏 변함이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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