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장. 무지막지한 떡밥
계획에도 없던 군 개혁을 강제로 담당하게 된 청와대는 말 그대로 비상 운영 체제가 됐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어설프게 건드렸다간 군의 반발,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는 척만 했다간 곧바로 국민의 저항, 태풍을 얻어맞을 판이다.
“고주몽 회장은 아직 안 돌아왔습니까?”
이명환 대통령은 피곤함에 찌든 얼굴로 주몽을 찾았다.
“네. 아직입니다.”
“쯧. 일 끝났으면 집에 들어올 것이지.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건지.”
이명환 대통령의 말에 비서실장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 방 비워줄 거냐고 묻고 오라던 사람이 집 나간 가족 기다리듯 고주몽 귀환 소식에 목을 맸다.
그런데 이명환 대통령만 그러는 게 아니다.
청와대 스태프들(각부 장관, 수석들, 급히 초청한 전문가들까지) 역시 핏발 선 눈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흘 전 훌쩍 청와대를 나가 군 개혁 지지라는 폭탄을 던져 놓더니 사건 당사자는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하는지 깜깜무소식이다.
“개혁에 가장 큰 문제는 뭡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다들 ‘당연히 돈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돈이 문제라…….”
“군 개혁의 첫 번째 조건이 병력 감소입니다. 지금처럼 무조건 군에 집어넣고 굴리는 방식이 아니라…….”
“뭘 그리 복잡하게 이야기합니까. 징병제나 모병제냐. 이게 화두 아닙니까.”
보건복지부 장관이 시큰둥하게 입을 열었다.
“현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연 50조 정도입니다. 징병제를 적용해도 이 정도인데 모병제로 운용을 하려면…… 어우. 답도 안 나옵니다.”
“앞뒤 맞는 소리 좀 하세요. 징병제니까 50조나 드는 겁니다. 모병제로 전환하고 숫자를 절반 이하로 떨어트린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 이 말이죠.”
“당신이야말로 말이 되는 소릴 해. 25만 명 수준을 유지한다고 해 보자고. 초병 연봉을 최소로 잡아서 천만 원 정도 준다고 해도 이것만 2조 5천억이야.
그런데 25만 명이 전부 초병인가? 당연히 진급할 것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연봉도 현실화시켜야 해.
초병이야 훈련병 취급해서 천만 원으로 쥐어짠다고 해도 병장 정도만 되도 3천. 부사관은 병장보다 더 줘야 할 것이고 이것도 호봉 수에 따라 더 줘야 한다고.
그것만 있나?
장교들은 어찌할 거야?
대기업은 아니어도 최소 중소기업 수준은 맞춰줘야 형평성이 맞을 거잖아. 영관급이면 대기업 과장급인데 아무리 짜게 잡아도 5천은 줘야 한다고.
영관급이 끝인가?
장군들은…… 그 인간들은 대기업 이사급이야.
이사들 월급이 얼마인지는 알아? 최소 억이야. 억!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아주 짜게, 쥐어짜서 책정해도 이 정도야.
평균으로 따져서 4천으로 잡아 보자고. 그러면 얼마야? 월급만 10조야. 10조!”
재경부 장관이 게거품까지 물며 ‘돈, 돈’ 거렸다.
“그게 끝인 거 같아? 월급은 둘째치고 유지비는? 관리비는? 무기 구매, 유지보수는? 무엇보다 큰 문제는 군에서 다치거나 죽었을 때야.
지금이야 입대와 동시에 군 재산으로 취급해서 대충 때우고 넘어가지만 직업 군인은 다치거나 죽었을 때 합당한 보상금을 내놔야 한다고.
군대가 놀이터도 아니고 다치고 죽는 놈들이 툭하면 튀어나올 텐데.
이 돈은 또 얼마나 들어갈지 계산도 안 된다고. 군대는 돈 먹는 하마가 아니라 돈으로 만들어진 하마라고! 뭘 알고서 지껄여!”
재경부 장관은 미친놈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그만! 그만 좀 해!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도 아니고. 왜 똑같은 말만 삼 일째 반복하냐고!”
이명환 대통령은 지긋지긋하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워낙 답답한 소리만 해대서.”
“뭐 하나 물어봅시다.”
“네. 대통령님.”
“만약에 말입니다.”
“네.”
“항공모함이 생겼다고 합시다. 그거 일 년 유지하는 데는 얼마나 들 것 같습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장관들은 재빨리 자료를 뒤적거렸다.
“최소로 잡아도…… 5천억은.”
“얼마요?”
“크흠. 5천억입니다.”
“일 년에 5천억?”
“네. 대통령님.”
“허허…… 미치겠네. 항공모함은 얼마나 합니까?”
“뱃값만 따지면 5조에서 7조 정도고. 무장과 함재기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10조에 15조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항공모함 가격을 들은 청와대 스태프들은 하나 같이 ‘더럽게 비싸네’하는 반응을 보였다.
“고 회장이 했던 말 기억합니까?”
“네. 개혁이 성공한다면 항공모함을 쾌척하겠다고…….”
“공짜로 준다고 해도 고민스러울 일이군요. 유지비만 5천억이라니.”
재경부 장관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항공모함? 막말로 줘도 못 먹을 일이다.
그때 군 전문가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기……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누구?”
“아, 저는 군사전문지 월드밀리터리 편집장 국대성입니다.”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급한 대로 끌어모으다 보니 밀리터리 잡지 편집장까지 데려온 모양이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습니까?”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결국 ‘돈’ 때문에 흐지부지되는 것 같아서…….”
“그래서요?”
잠시 머뭇거리던 국 편집장은 스태프들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고주몽 회장에게 팔면 어떻겠습니까?”
“네?”
“팔아요?”
“뭘?”
“설마. 대한민국 군대를 팔자는 말입니까?”
다들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설마요. 그걸 판다고 해서 고주몽 회장이 사겠습니까. 공짜로 준다고 해도 거부할 겁니다. 생산성 제로 아닙니까.”
국대성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래서 뭘 팔자는 겁니까?’ 하는 표정들이 됐다.
“군대를 파는 게 아니라 군에서 운용하는 장비와 군 시설을 파는 겁니다.”
“…….”
국대성의 말에 다들 황당한 표정이 됐다.
고주몽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데 돈을 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막말로 그걸 사서 고주몽이 어디에다 써먹겠는가.
고주몽이 갑자기 미쳐버리는 바람에 그걸 산다고 해도 문제다.
만약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군대는 뭐로 훈련을 하고 싸운단 말인가.
버튼만 눌러도 도시 하나가 날아가는 21세기에 돌멩이 들고 돌격 앞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탱크가 됐든 전투기가 됐든 함정이 됐든 고주몽 회장에게 사가라고 하고 정부는 그걸 임대해서 매년 사용료를 내는 거죠. 그게 아니면 분할 납부 방식으로 돈을 갚아도 되고 말입니다.”
“응?”
“임대받는다고?”
“분할 납부라…….”
국대성의 말에 다들 눈을 껌뻑였다.
황당한 아이디어이긴 한데, 이게 또 전혀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란 생각이 든 것이다.
현재 정부 예산으론 개혁은커녕 항공모함을 줘도 운용비 때문에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국대성 말대로 고주몽에게 장비를 팔아치울 수 있다면 엄청난 크기의 현금이 손에 들어오게 된다.
그 돈은 지금 논의되는 많은 일을 일시에 진행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고주몽 입장에선 황당한 일이겠지만, 이걸 다시 임대해서 매년 사용료 형태로 제공을 한다고 하면 그럭저럭 설득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정부는 자금 운용에 여유가 생길 것이고 고주몽은 월세 받아가듯 비용을 회수해 가는 것이다.
이명환 대통령이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될…… 까?”
“그렇게만 된다면야…….”
“막말로 고 회장은 무기를 사도 쟁여놓을 곳도 없으니 군에 그대로 있게 될 것이고.”
“고 회장이 직접 그랬지 않습니까. 정부의 군 개혁을 적극 지지한다고. 자기도 해 놓은 말이 있는데 배 째라고는 못 하겠죠.”
“우리도 한 방 먹입시다. 기자들 불러놓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개혁은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 고 회장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할 때다. 이렇게 떠들어버리면 국민 눈치를 봐서라도 뭔가 반응이 있지 않을까요?”
생뚱맞은 아이디어지만 고주몽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국대성 편집장이라고 했습니까?”
“네. 대통령님.”
“국 편집장이 생각하기에 군 장비와 무기를 고 회장에게 넘긴다면 어느 정도나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다들 호기심 섞인 표정으로 국대성을 바라봤다.
“저도 자세한 가격은 모르겠지만, 이지스함은 1조 2천억. 독도함은 3천 5백억 정도고 잠수함 장보고 3급은 8천억에서 1조 정도. F35는 대당 천억. 수리온은 180억? 흑표 전차는 백억 정도…… 물론 이건 중고가가 아니라 신품가격입니다.”
국대성이 물건값을 이야기하자, 이명환은 보유 숫자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확인하라고 했다.
“그것 말고도 미사일도 있고…… 자주포도 있고…….”
국대성은 자신이 알고 있는 무기를 줄줄이 읊어댔다.
“부대 시설과 땅도 팔 수 있겠지?”
“고 회장이 사준다면야 뭘 못 팔겠습니까. 다 팔아버리죠. 그리고 10년 분할상환하는 겁니다. 막말로 100조라고 해봤자 정부는 일 년에 10조만 책임지면 되는 겁니다. 거기에 운영비와 유지비, 월급을 포함해도 군 예산이 지금보다 대폭 줄어들 겁니다. 모병제로 운영을 해도 30조에서 40조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재경부 장관은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청와대 스태프 한 명이 슬쩍 거들었다.
“어디까지나 우리 생각일 뿐이지만, 만약 고주몽 회장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이번 기회에 군 첨단화 관련 사업도 싹 맡겨버리면 어떻겠습니까.”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이번에 국방부 장관이랑 장성들이 해 먹으려 했던 사업 말입니다. 그것도 고 회장에게 맡기는 겁니다. 미국 시민권자니 조금이라도 싸게 사 올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것도 나쁘지 않군. 뭐가 됐든 고 회장에게 떠넘기면 10년 분할상환이 가능하니까.”
고주몽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한 적도 없는데, 10년 분할상환이 기정사실로 된 것처럼 이야기가 진행됐다.
“고주몽 회장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야…… 정부로선 그야말로 땡큐 베리머치죠.”
공짜라면 양잿물도 받아 마신다더니, 이러다가 돈 들어갈 부분은 전부 고주몽에게 맡길 판이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총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거 고 회장이 받아들이겠습니까? 강매나 마찬가지인데.”
이명환 대통령이 총리를 보며 이야기했다.
“아니면 말고. 되면 좋고. 아닌가?”
제안하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일단 뭐가 됐든 시도는 해 보자는 반응이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싹 다 뒤져봐. 고주몽에게 떠넘기면 얼마나 받아 낼 수 있는지! 팔 수 있는 건 다 뒤져!”
“네. 대통령님!”
개혁 방안이 나올 때마다 돈 이야기로 끝을 맺으며 김빠지는 분위기가 됐던 회의가 어쩌면 돈을 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급격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