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장. 소화제 챙겨야지.
국방부 장관과 경제부총리는 곧바로 대통령을 찾아갔다.
주몽이 ‘거절’ 의사를 밝혔다는 걸 보고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됐습니까?”
“군 쪽엔 관심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없는 듯 보인 겁니까. 확실히 없는 겁니까?”
“상당히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기업은 투자한 만큼 결과를 낼 수 있지만, 군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돈만 날리고 문제만 생길 거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경제부총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그래요?”
“그리고 우리가 부탁한 내용이 단순히 납품 관련이 아니라 군 개혁과 관련된 사항이라는 것도 눈치를 챈 것 같았습니다.”
“뭐, 그거야 그럴 거라고 예상했던 일이니.”
대통령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딘지 아쉽다는 눈빛을 지우지 못했다.
“어떻게 할까요? 다시 한번 찔러 볼까요?”
국방부 장관의 질문에 이명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반응을 확인한 것으로 됐습니다.”
“따로 지시하실 일이 없다면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아, 이번 일은 우리끼리만 아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괜히 이말 저말 옮겼다가는.”
“알고 있습니다. 고 회장 스타일이 건드리지 않으면 물지 않는다. 이거 아닙니까. 괜히 말 퍼져서 오해라도 샀다가는…….”
“알고 있으면 됐습니다.”
국방부 장관과 경제부총리가 나가고 얼마 뒤 이번엔 비서실장이 집무실에 들어왔다.
최정민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고 회장 쪽 일은 어떻게 됐다고 합니까?”
“군 쪽엔 관심이 없다고 하는군.”
최정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한데 묘하게 아쉽단 말이야.”
“네? 뭐가 말입니까.”
“고 회장이 적당히 선을 그어 준 것은 고마운데 이왕이면 군과 한 판 붙어줬으면 했거든. 양패구상도 나쁘지 않고, 겸사겸사 개혁이 이뤄졌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고. 솔직히 고 회장 힘이 너무 세졌잖아. 이번 기회에 힘을 좀 빼놨으면 했거든.”
최정민은 이명환의 속마음이 고주몽의 예측과 거의 맞아떨어지자 내심 놀라는 눈빛이 됐다.
외형만 봐선 그저 평범한 청년인데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명석하다.
‘하긴, 그저 돈이 많다고 해서 1년 만에 그 자리에 올라설 수는 없는 일이지. 이제 서른이라고 하던데 100세 시대를 생각하면 70년은 족히 그 자리를…… 아니, 어쩌면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지도 모르겠구나.’
“그나저나, 청와대는 언제까지 있겠다고 하던가? 아직 답을 듣지 못했는데.”
“정확한 날짜까지는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만 조만간 정리할 것 같기는 합니다.”
최정민의 대답에 이명환은 ‘쯧’ 혀를 찼다.
“젊은 사람이 눈치가 없어. 대충 일 마무리 됐으면 알아서 나갈 줄도 알아야지. 집주인이 눈치를 줄 때까지 버티고 앉아 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주몽의 존재는 이명환에게 구명줄이자 동아줄이다. 그래서 그 줄을 놓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자신의 몸에 옭아매고 스스로 제약을 두고 싶지도 않았다.
최정민은 이명환 대통령의 태도에 그 역시 혀를 찼다.
‘쯧쯧쯧. 지금 그런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가볍게 날린 잽이 거대한 어퍼컷으로 돌아오고 있단 말이죠.’
“오랜만에 같이 점심이나 먹으러 가지. 생각을 많이 했더니 그새 배가 고프네.”
“저는 잠시 부속실에 들렀다가 가겠습니다.”
점심 메뉴가 뭐가 됐든 오늘 이명환 대통령은 밥 먹다 말고 체할 게 분명했다.
줄을 갈아타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비서실장이니 소화제라도 챙겨갈 생각이다.
* * *
요즘 기자들 사이에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생겼다.
뉴스를 쫓아 곳곳을 돌아다녀야 할 기자들이 후배나 중간급 기자들을 JTB 보도국 쪽에 알박기를 시킨 것이다.
올해 대박이란 대박은 모조리 독점하고 있는 한성희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그 때문에 한성희가 가는 곳에 특종이 있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몇몇 기자들 사이에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아무리 한성희가 특종을 많이 냈기로서니 자신들도 기자인데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런 기자들의 불만에 신문사, 방송국 보도 국장들이 하나 같이 똑같은 소리를 냈다.
―한성희처럼 너희들도 특종을 가져오던지!―
고막이 나갈 정도로 고함을 질러대는 국장들 때문에 불만을 쏟아냈던 기자들은 순번까지 정해서 한성희 스토커 짓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투덜투덜 담배만 피워대고 있던 기자들 사이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뭐? 한 국장이 움직였다고!”
“어디? 대왕 호텔?”
“대왕 호텔이면…… 역시 고 회장 관련이겠지?”
“한성희가 직접 움직였어. 뻔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시동이나 걸어!”
“야! 보도국에 연락 넣어놔. 한성희 움직인다고.”
“네. 선배님!”
한성희와 JTB 방송 차량을 쫓아 다른 방송사 차량과 기자들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또 다른 소식이 날아들었다.
“대기업 회장들이 모이고 있다고?”
“그쪽도 대왕 호텔이야?”
“뭐! 고 회장 차량이 광화문 쪽에서 확인됐어?”
“야. 빨리 움직여. 이거 특종 냄새가 술술 난다.”
“이번에도 JTB에 다 내줬다간 모가지도 같이 내놓으란다. 빨리 움직여!”
대왕 호텔 주변이 기자들과 방송 차량으로 북적거릴 때쯤. 주몽의 새로운 애마로 알려진 탱크 X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 회장이다!”
기자들은 곧바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플래시를 터트렸다.
경호원들이 주변을 정리하고 안전을 확보하자, 탱크 X에서 주몽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주몽 회장님! 이쪽 한 번만 봐주십시오!”
“무슨 일로 호텔에 방문하셨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언론 책임법을 제안한 사람이 고 회장님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언론의 족쇄를 채우려는 의도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 마디만 답해 주시죠.”
“언론사 사주 일가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는 말이 있습니다. 회장님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호텔 안으로 이동을 하려던 주몽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방금 질문이 날아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송책임법에 따라 기자는 자신의 소속을 먼저 밝힐 의무가 있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질문하려면 신분부터 확실히 하라고 하자,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던 질문이 단숨에 반 토막이 났다.
“뉴(new) 조성의 조성주 기잡니다.”
뉴 조성? 처음 듣는 이름이라 그런 언론사도 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바로 뉴 조성이라는 언론사의 정보가 취합되고 나에게 전달이 됐다.
러시아 파견 요원 플로라가 ‘조성일보에서 쫓겨난 기자들이 만든 인터넷 언론사입니다’라고 설명을 해 줬다.
플로라가 내 귀에 대고 쫑알거리는 모습에 또다시 플래시가 파바박 터졌다.
고주몽과 관련된 사항은 작은 것 하나까지 뉴스가 되는 요즘이다.
최근 화제로 떠오른 곳이 있었으니 바로 Go 컴퍼니 조사실이다.
하나 같이 뛰어난 미모도 그렇지만, 서른 명 모두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몽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함께 했던 변호사 엘리스를 시작으로 주몽 옆에 있는 여자들은 미모는 물론이고 능력까지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땡큐. 플로라.”
다국적 미녀로 이뤄진 Go 컴퍼니 자료조사팀은 언제 어디서든 나를 유혹해도 된다는 ‘공인된 예비 여친’들이다.
서로 간에 견제와 눈치작전이 치열해서 아직은 ‘썸’타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플로라는 생긋 웃는 얼굴로 조성주 관련 자료를 태블릿에 띄웠다.
내용을 슬쩍 확인한 나는 조성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질문이 뭐라고 했죠?”
“언론 책임법이 언론사의 족쇄가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었습니다.”
“아. 언론 책임법.”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성주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조성주 기자라고 했나요?”
“네. 그렇습니다.”
“어디 보자. 전(前) 조성일보 사회부 기자셨군요. 조성일보 재직시절 작성했던 기사 일부가 명백한 거짓으로 밝혀졌는데 그 기사 때문에 자살한 사람이 한 명 있네요.”
“그…… 그게 무슨. 그거야말로 거짓 뉴스입니다.”
내가 과거 오보에 대해 꺼내 들자 조성주는 크게 당황한 모습이 됐다.
“그것뿐 아니라 조성주 기사의 잘못된 기사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이거 한두 사람 정도가 아닌데요.”
“…….”
“박 부장님.”
“네. 대표님.”
“여기 조성주 기자 때문에 피해 본 사람들 싹 다 찾아서 법률지원 해 주세요. 언론 책임법에 따르면 기사를 작성한 사람과 팩트 체크 없이 기사를 실은 언론사 모두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 주게 되어있던데. 내 말이 맞죠?”
“맞습니다. 대표님.”
“그런데 왜 저 사람이 밖을 돌아다니는 건가요? 그간 잘못 쓴 기사 정정하고 사과하고 보상하려면 정신없어야 할 것 같은데.”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조성주를 바라봤다.
“아직도 거기 있습니까?”
조성주는 ‘그…… 그게. 그러니까.’ 어쩌고저쩌고하면서 횡설수설하더니 결국엔 사람들 사이로 모습을 감춰버렸다.
“언론 책임법과 관련해 또 질문 있으신 분.”
“…….”
조성주가 찍소리도 못하고 한 방에 날아가는 걸 옆에서 지켜본 상태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 자신도 모르는 과거의 오보가 튀어나오는 날엔 곧바로 송장이 날아들 것이다.
“없으면 이만.”
더 할 말이 없다면 이쯤에서 마무리하자며 호텔로 이동을 하려는데, 날카로운 목소리 하나가 다시 날아들었다.
“방금 보이신 바로 그런 모습 때문에 언론 책임법이 족쇄 소리를 듣는 겁니다!”
“요즘 기자들은 아이큐가 두 자릿순가? 소속부터 이야기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미안합니다. 동양일보 방이성입니다.”
“방이성 기자.”
“네.”
“기자가 할 일이 뭡니까? 그냥 하고 싶은 말 나오는 대로 써 내리는 사람이 기잡니까?”
“말씀이 심하십니다. 기자란 직업에 사명감을 가지고…….”
“그러니까요. 그 사명감을 가지고 기사를 쓰면 되잖습니까. 대충 주워들은 말 부풀려서 소설 쓰지 말고 취재를 해서 제대로 된 기사를 쓰세요. 언론 책임법? 그게 무서워서 기사를 못 쓰겠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기자로서 결격 아닙니까?”
“하지만 그 법 때문에 쓰는 족족 소송을 당할 판입니다.”
“기사를 쓰는 족족 소송을 당해요?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회장님 말대로 소설에 가까운 기사라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취재를 거쳐 팩트 체크까지 마친 기사임에도 소송이 들어옵니다.”
방이성 기자는 답답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동양일보 법무팀은 월급 도둑입니까? 제대로 된 기사에 왜 소송이 들어왔다는 거죠?”
“기사 내용이 자신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언론 책임법을 내세워 너나 할 것 없이 소송하고 있습니다. 이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방이성 기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조성주 같은 기레기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방이성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미녀 군단은 관련 내용을 재빠르게 조사했고 플로라의 태블릿에 전송이 됐다.
“흠. 진짜네.”
언론 책임법은 유불리를 따져서 언론사와 기사를 고소하는 법이 아니다.
기사의 내용이 사실인가. 아니면 조작된 건가를 따져 묻는 것이다.
“박 부장님. 동양 법무팀이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것 같은데. 확인 좀 부탁합니다.”
“네. 대표님.”
“방 기자님. 확인해 보니 기자님 말이 일부 사실이군요. 관련 사항을 파악 중이니 법무팀에서 연락이 갈 겁니다. 방 기자님 말대로 유불리에 의한 고소가 핵심이라면 그들에게 진짜 고소가 뭔지 확실히 보여주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기사 쓰세요.”
“오!”
“화끈하네.”
“역시 고블리제!”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법이라 다들 말은 안 했지만, 기자들 대다수가 언론 책임법에 적잖게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방 기자가 말했던 것처럼 무분별하게 수시로 고소가 이뤄지자 기사를 쓰는 시간보다 변호사를 만나고 법원에 가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중립의무를 벗어나 악의적으로 작성된 기사나 페이크 뉴스는 도와드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거기 방 기자님.”
“네. 회장님.”
“오늘 취재하러 온 것 같은데. 허가는 받았습니까?”
“그게…… 솔직히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출입증도 당연히 없습니다.”
“이런, 오늘 굉장한 뉴스거리가 있는데.”
내가 아쉽다는 듯 이야기하자 기자들이 아우성쳤다.
“JTB만 예뻐하지 말고 우리도 기회 좀 주십시오. 허구한 날 한 국장 뒤꽁무니만 쫓아다녀서 죽을 맛입니다.”
방 기자도 질 수 없다는 듯 한마디 했다.
“동양일보도 회장님이 대주주라고 알고 있습니다! 동양도 좀 키워 주십시오!”
“오늘은 여러분도 함께합시다. 듣고 보니 JTB에만 특종을 몰아주는 것도 문제긴 하네요.”
내가 지시를 내리자, 경호팀이 앞으로 나섰다.
“출입증 없이 취재는 가능합니다만, 제 경호팀의 지시에 따라주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박 부장과 비서팀, 조사팀을 데리고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먼저 도착해 방송 준비를 마친 한성희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네. 벌써 한 달이나 지났네요. 그동안 청와대에서 움직이시질 않으니 얼굴 잊어버릴 뻔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연락을 드렸지 않습니까. 들어갑시다.”
한성희와 방송팀은 나와 동선을 맞춰 리셉션장으로 이동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연락을 주신 건가요?”
“곧 알게 될 겁니다.”
“작은 힌트라도 하나 주시면 안 될까요? 자료로 쓰일 그래픽 정도는 준비할 시간을 주시면 좋은데.”
하긴, 자막만 추가되는 것보단 관련 자료가 함께 띄워지면 더 효과가 좋을 것이다.
“군 개혁에 대한 지지 발언입니다.”
“네? 구…… 군 개혁이요?”
한성희는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에 눈이 큼지막해졌다.
“그런데 지지 발언이라면…… 청와대에서 군까지 건드리기로 결정을 내렸다는 말인가요?”
“나머지는 발표로 들으세요.”
나는 찡긋 윙크를 날려주고는 회장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이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