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장. 똥으로 만들어진 늪지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두 사람을 멀거니 지켜보는데, 두 사람은 그걸 ‘군알못’이라 판단했는지 점차 발언 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국방부 장관이 ‘사병’은 절대 알지 못하는 윗분들의 사정을 늘어놓는다면, 경제부총리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면 또는 방면’이 필요하다는 등의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이 인간들이 어디까지 떠드나 싶어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서 유통기한이 지난 물품은 폐기에 들어가야 하고…….”
“소모했던 폐기를 했던 보급창은 다시 채워야 하고…….”
물품 유통기한이 얼마나 되기에 몇 달 되지도 않아서 폐기를 시키실까.
“사병이야 어떻게든 돌린다고 하지만, 장교들은 군의 중요 자산이다 보니 챙겨주지 않을 수가 없고…….”
“그러다 보면 누군 챙기고 누군 안 챙기고 할 수가 없어서…….”
군대가 품앗이 하는 계모임도 아니고. 이건 또 뭔 소리야.
“기존 납품 업자들도 일반인이라기보다는 군 출신들이 많고…….”
“군의 사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으니…….”
오호. 슬슬 본론이 나오는구나.
“봉사하다시피 기업을 운영해 왔는데…….”
“이러다 군납 업체가 문을 닫기라도 하면 그땐 더욱 심각한 일이…….”
봉사하다시피 운영을 해 왔다고? 군납 업체가? 이건 더 못 들어주겠다.
“잠시만.”
“네. 회장님.”
“방금 봉사하다시피 기업을 운영했다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네.”
“군납 업체가 봉사단체도 아니고 그게 말이 됩니까?”
“제가 알기로 직원 월급 주는 정도의 수익만…….”
“잠깐만요. 내 이야기 좀 더 들어보시죠.”
“네. 회장님.”
“그 업체가 어딥니까? 봉사 정신으로 자선사업가처럼 일했다는 업체 말입니다.”
내가 업체명을 묻자, 두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두 분 말처럼 정말 그렇게 운영한 업체가 있다면, 내가 지원을 하겠습니다.”
“아! 회장님이 지원해 주시다면야.”
“HH 산업입니다.”
어라? 곧바로 튀어나오네. 진짜 그런 기업이 있다는 건가?
“좋습니다. 두 분 말씀처럼 정말 군을 위해서 봉사한 기업이라면 특별 조치를 내려서라도 기업은 물론이고 관련자들도 제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일어나시죠.”
“네. 회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HH 산업 말고도 그런 기업이 여럿입니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자리를 떠나면서도 연신 고개를 숙이며 ‘선처’를 입에 담았다.
“표정이 너무 진지한데. 정말 그런 기업이 있는 건가?”
군납 문제를 들고나오기에 납품 비리와 관련 있는 일인가 싶었는데, 그건 그저 핑계에 불과했고 최종적으로 이들이 원한 것은 모범 기업을 살려달라는 거였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말처럼. 모든 기업이 악당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건전한 정신과 운영을 통해 모범이 되는 기업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만기 전역 병장을 눈앞에 두고 군알못 취급을 해대기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러나 싶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청탁이나 부탁에 끼지도 못할 일이다.
파도가 치면 해변에 거품이 일고 해일이 휩쓸고 지나가면 감춰져 있던 온갖 쓰레기가 튀어나온다.
어찌 보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작위로 쓸고 지나가다 보니 말 그대로 황당한 일을 당하는 기업이 생겨났을 수도 있다.
만약 두 사람이 이야기한 HH 산업이 그런 곳이라면 당연히 지원하고 밀어줘야 할 것이다. 덧붙여 관련자들도 본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협조를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박 부장님.”
“네. 대표님. HH 산업.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양 과장과 로버트에게도 이야기해 놓으세요. 크로스 체크 한번 해 보죠.”
“네. 대표님.”
“그리고 HH 산업처럼 이번 사태에 휩쓸린 기업이 있는지 그것도 조사 좀 부탁합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HH 산업 조사는 양 과장과 로버트 양쪽에 전달이 됐고 박산호는 피해 기업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련 자료가 내 책상 위에 올려졌다.
박산호는 곧바로 프레젠테이션에 들어갔다.
“HH 산업. 군납 업체가 맞습니다. 종목은 식품입니다.”
“식품이라면 레토르트인가요?”
레토르트는 간편 조리식품을 이야기한다.
외부 활동이 많은 군 특성에 맞춰 제작되는데 일명 ‘전투식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네. 전투식량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과 부총리의 말은 신뢰성이 있던가요?”
“전혀 없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다는 것도 아니란 뜻이군요.”
“일단 군납 업체의 특성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박 부장은 화면에 군 조직도를 띄웠다.
이게 뭐나 싶어 곰곰이 들여다보는데, 단순한 조직도가 아니었다.
“상납이 이뤄지는 순서도군요.”
일반 부대에서 시작해 사령부까지. 촘촘하게 이어진 선은 군대가 어떻게 횡령을 하고 물품을 빼돌리고 있는지 그 방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밑에 쪽에선 물품을 빼돌리는 정도였다면 위쪽으로 갈수록 범위와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됐다.
특히 군납 업체와 연결고리는 그야말로 시궁창 냄새가 났다.
“HH 산업도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HH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군납과 관련된 기업이라면 어디나 하는 일입니다.”
솔직히 이건 조사하고 말고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군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딱히 건드리지 않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워낙 방대하고 오래된 문제다 보니 자칫 잘못 손을 댔다간 군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군납 업체나 방산 업체의 이사들 대부분이 퇴역 장성이거나 전직 국방부 장관이다 보니 유착관계를 넘어 거의 한 몸처럼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둘을 떼어내는 수술을 하고 싶어도 자칫 군납 업체뿐 아니라 군까지 죽어버릴 위험성이 존재했다.
여기서 군이 죽어버린다는 말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다는 ‘신뢰성 훼손’을 뜻한다.
징병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휴전 국가’라는 특성에 따른 것인데, 이는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으니 전 국민이 힘을 합쳐 대비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런 군이 더는 믿을 수 없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가.
최악의 상황엔 입대 거부 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고 군 체계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새로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 예산의 10%. 대략 40조에서 50조가량이 군 유지비로 들어가는데, 이런 군을 재정비하려면 이에 몇 배의 예산이 투입될지 가늠할 수 없다.
“계속해 보세요.”
“일단 군납 업체가 되기 위해선 무조건 군 관계자 또는 고위급 인사와 연줄이 필요합니다. 이건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동일합니다.”
“뭐. 그거야 다 아는 사실이고. 그래서요?”
“HH 산업은 사장이 군 출신입니다.”
“장성 출신인가요?”
“아닙니다. 하사관 출신입니다. 중사로 예편을 했더군요.”
“호, 하사관 출신 사장이라.”
“사장 이름은 이형주. 나이 45세. 부친이 운영하던 만두 회사를 이어받아 레토르트 사업에 진출했고 시작부터 전투 식품을 염두에 두고 개발을 했다고 합니다.”
“자잘한 것은 그쯤하고. 국방부 장관이 왜 HH 산업을 입에 담았는지 그걸 이야기해 주세요.”
“말씀드린 것처럼 HH 산업도 다른 군납 업체와 비슷한 상납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식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이윤을 최저로 잡았다는 점입니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형주가 군을 나오게 된 계기가 원인으로 보입니다.”
“전투식량 때문에 군을 나왔다는 말인가요?”
“군 쪽에서 벌어진 일은 워낙 알아내기가 어려워서 조사에 애를 먹었습니다만, 확보된 증언에 의하면 부대 전체가 식중독으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급품 관리를 맡았던 이형주는…….”
“책임을 이형주에게 덮어씌운 모양이군요.”
“네. 당시 제공됐던 전투식량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만, 기업 쪽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관리 소홀로 몰아갔다고 합니다.”
“관련 기업은요?”
“지금도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네?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지금도?”
이형주가 중사로 제대를 했다고 치면 이십 대 중반 많아 봐야 후반에 군을 나왔다는 소리다.
지금 나이가 45살이라고 했으니 당시 사고를 쳤던 업체는 그 이후로도 20년 가까이 납품을 한 셈이 된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양질의 전투식량을 저렴한 가격에 납품을 하려다 보니 말 그대로 유지만 하는 형국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국방부 장관이 납품에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은…….”
“네. HH 산업에서 제공하는 전투식량이 군에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보급창에 재고가 없다는 말은 HH 산업의 전투식량이 떨어졌다는 말이었군요.”
“HH 산업에서 제공하던 물량은 다른 기업에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 말은 HH 산업이…….”
“부도 직전입니다.”
“아니, 왜 그런 기업의 사장이 이번 일에 얽힌 거죠? 뭔가 앞뒤가 맞지를 않는데. HH 산업은 훈장을 줘도 모자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자신이 군에서 겪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성심껏 기업을 운영한 사람이다.
거기다 기업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영세업체나 마찬가지인 기업의 사장이 구속됐다.
뭔가 구린내가 났다.
“우리가 확보해서 넘긴 명단 말입니다.”
“저도 이상하다 싶어서 곧바로 체크를 했습니다. HH 산업은 목록에 없었습니다. 혹, 대기업 산하 관련 기업이 아닐까 조사도 해 보았습니다만, 순수하게 식품 공장을 운영하는 작은 기업이었습니다.”
“이거 아무리 봐도…….”
“경쟁 업체 또는 HH 산업을 못마땅해하는 누군가의 장난질 같습니다.”
박산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 부장님.”
“네.”
“국방부 장관과 경제부총리 정도라면 이 정도 사안은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두 사람 파워가 동네 이장급도 아니고.”
내 의문에 박 부장은 파일 하나를 꺼내 들었다.
“로버트 팀장님이 보내온 자료입니다.”
나는 곧바로 파일을 펼쳤다.
“흠. 흐음. 흐으음.”
HH 산업은 단순히 경쟁 업체 문제가 아니었다.
“군 내부 정치라.”
품질은 중요치 않았다. 누가 누구의 끈을 잡고 납품을 하고 있느냐가 이번 일의 핵심이다.
국방부 장관과 경제부총리가 굳이 찾아와서 군납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단순히 HH 산업을 살려달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대표님에게 헬프미를 외친 듯 보입니다.”
“이 양반들 웃기는 인간들이네. 그러니까 뭐야. 자기들이 건드리기엔 겁나고 무서우니 나한테 대신 깽판이라도 쳐 달라는 건가?”
“조사된 내용만 본다면 그런 생각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 놔. 군대가 장난도 아니고. 60만 명이 하루 싸지르는 똥만 해도 산을 만들 정돈데 수십 년간 싸질렀어요. 그걸 지금 나보고 치워 달라는 거잖아요.”
나는 들고 있던 파일을 한쪽으로 치워버렸다.
“이건 못해. 아니 안 해.”
내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자, 박산호 표정이 어딘지 떨떠름해 보였다.
“뭡니까. 그 표정은.”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박산호는 아직 내놓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슬그머니 들어 올렸다.
“거기서 스톱! 들고 있는 그 파일 내밀 생각 추호도 하지 마세요.”
“그래도 열심히 준비한 건데…….”
“이게 내가 나선다고 될 일입니까? 내가 대한민국 개혁일꾼도 아니고. 적당히 좀 합시다. 적당히!”
“그래도…… 한번 읽어나 주시면.”
“훠이~ 그거 들고 나가세요. 그리고 국방부 장관이나 부총리 찾아오면 방문 사절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
“박 부장님이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진 충분히 알겠는데, 꼭 저울에 올려봐야 견적이 나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거 건드리는 순간 60만 명을 통으로 떠안아야 합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아차 하는 순간 망조 들 수 있어요. 역대 정부가 몰라서 구경만 했겠습니까? 이건 건드리는 순간 자폭하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못 본 척 그냥 놔두는 겁니다. 개인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라고요.”
“그게…….”
“이 이야기는 없었던 거로 합시다. 그게 좋겠습니다. HH 산업은 안타깝지만, 그거 완전히 수렁입니다. 발 들이는 순간, 쑥 빨려 들어가는.”
“이미 두 분이 대기하고 있어서.”
“에?”
“국방부 장관님이랑 부총리…….”
“나는 이미 말했습니다. 군 문제는 손대지 않겠다고. 그만 나가 보세요.”
“네…… 대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