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34화 (135/224)

134장. 거긴 아직 낄 곳이 아닙니다.

“미스터 고가 우리를 지지한다고 해서 도움이 되나? 그는 한반도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말이야.”

“그가 가진 돈만 보십시오. 선거자금은 물론이고 그가 준비한 100억 달러의 투자금 역시 우리 공화당 쪽으로 끌어온다면 표 차이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선거는 돈과 흥행을 빼놓고 논할 수 없지 않습니까.”

“100억 달러라.”

트롤프 자신도 부동산 재벌이지만, 주몽이 가진 돈에 비하면 명함조차 내밀기 힘들었다.

단순히 재산이 많다는 개념을 넘어 주몽은 ‘현금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즉각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몽과 달리 대부분의 재벌은 회사에 돈이 묶여 있거나 현물 형태로 존재했다.

무엇보다 주몽이 무서운 점은 자신이 가진 현금을 복잡한 과정을 거칠 것도 없이 의지에 따라 즉시 집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CIA 국장 애니 아서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공화당에서 등 돌린 지지자(돈줄)가 늘어난 데다 민주당 후보인 존 오루크의 상승세가 무서울 정도다. 공화당 후보들은 순위에서 밀려나 아웃사이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나저나 놀랍군.”

트롤프는 아서가 가져온 고주몽 파일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쪽 분석 요원들 모두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군요. 하나 같이 감당할 수 없는 돈 때문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거라 판단했으니까요.”

대부분의 복권 당첨자들이 그랬다. 적당한 규모의 당첨금은 삶을 윤택하게 하지만, 상식을 넘어선 갑작스러운 돈은 주인을 휘두르다 못해 최악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결혼한 것도 아니고 한참 놀기 좋아할 나이인 고주몽을 생각하면 이는 이변을 넘어 충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스물일곱에 당첨자가 됐다고 했나?”

“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는데…….”

단순히 돈만 많은 고주몽이라면 이리저리 굴려 먹을 방법이 많다.

주몽 관리팀을 만들어 놓고 그를 지켜본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에 하나가 ‘위기’ 상황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겠다는 꼼수도 섞여 있었다.

여기서 위기는 당연히 복권 당첨자의 저주를 말하는 것이다.

“재계와 정계 거기다 국민의 지지까지. 부럽군. 애니.”

“네. 대통령님.”

“추진해봐. 우리 쪽과 손을 잡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민주당 놈들과 가까워지는 건 막아야지.”

* * *

“보스. 알렉스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좋은 소식이겠죠?”

“좋기도 하고 고민스럽기도 한 소식입니다.”

제이코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민스러워요?”

“네. 보스의 요구를 받아들이긴 했습니다만.”

“그쪽에서도 요구가 날아들었나 보군요.”

고개를 끄덕인 제이코가 진지한 표정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봅니까?”

“보스.”

“네. 제이코.”

“미국 대선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습니까?”

미국 대선이라는 말에 주몽은 눈을 껌뻑였다.

“대선이요? 그것도 미국?”

“네.”

“당연히 없죠. 국내 정치도 이제야 알아가는 중인데. 그런데 대선 관련이라면 선거자금이라도 주라고 합니까?”

“보스. 미국에서 선거자금을 지원한다는 말은 그 당과 후보를 지지한다는 선언과 동의업니다.”

“아…….”

제이코가 고민스럽다는 표현을 왜 사용했는지 이해가 됐다.

“트롤프 대통령이 공화당을 지지해 달라고 한 겁니까?”

“알렉스 보고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흠.”

나는 선뜻 답을 주지 못했다.

“대선이 얼마나 남은 거죠?”

“선거는 12월이지만, 대선 레이스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한국과는 선거 방식이 많이 다르다고 하던데.”

“한국은 직접 선거 방식이지만, 미국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형식입니다.”

한국 방식이야 이미 겪어봤으니 잘 알고 있지만, 미국식 선거는 솔직히 아는 바가 없다.

“선거인단.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그쪽 방식에 대해선…….”

“설명해 드릴까요?”

“아니요.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고. 내가 알아야 할 사항은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 하는 거겠죠.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면 주요 후보군은 모두 나왔다는 말이잖아요.”

제이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재 분위기만 본다면 민주당 확정입니다.”

“트롤프 쪽 공화당은요?”

“지난 8년간 트롤프 대통령이 워낙 저지른 짓이 많다 보니…….”

“공화당 지지도가 많이 떨어졌나 보군요.”

“7대 3입니다.”

“민주당이 7이라는 말이죠?”

“네.”

“2를 끌어 올려도 겨우 본전이네요.”

“숫자상으로 본다면 2지만, 7대 3이라는 비율을 놓고 본다면 민주당 초강세라고 봐야겠죠.”

역대 대통령 성향을 본다면 민주당은 ‘유’한 편이고 공화당은 ‘거친’ 편이다. 물론 겉모습과 속 모습이 같다고는 볼 수 없지만 말이다.

미국이 전쟁하거나 상대국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대부분 공화당이 집권할 때였기에 그렇게 인식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The winning side is our side.”

내 대답에 제이코가 코끝을 실룩였다.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말이죠? 우리에게 적대적이지만 않으면.”

“네. 이긴 편이 우리 편이 되게 해 보죠.”

“음…….”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최고지만, 문제는 이긴 편이 우리를 같은 편으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에요.”

“네. 보스.”

“당연히 질 거로 생각한 후보가 이겨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

제이코는 곧바로 답을 하지 않고 주몽을 지긋이 바라봤다.

“왜요?”

“미국에서도 분탕질을 치시려는 건 아니겠죠?”

제이코가 그건 절대 안 된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에? 분탕질이요? 내가 언제요?”

“보스!”

“에헤이. 내가 먼저 나서서 사고 친 적은 없잖아요.”

나는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보스…… 미국에선 안됩니다.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에요.”

“내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질문이잖아요. 질문. 궁금한 걸 물어보지도 못합니까.”

제이코는 정말 그게 다냐는 듯 나를 바라봤다.

“정말입니다. 나도 미국 무서운 거 잘 알고 있거든요.”

“한국에선 칼이었지만, 미국에선 총알이 날아들 수도 있습니다.”

“…….”

“분탕질이 됐든 뭐가 됐든. 사고를 치시려면 미국 내에서도 힘을 가져야 합니다. 당장 한국 대통령만 해도 그렇습니다. 여기선 최고의 자리라 치켜세우지만, 미국에 가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까.”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우리나라만 그런가요. 옆 나라 일본도 그렇고. 미국과 경쟁 중인 중국도 눈치를 보긴 마찬가진데.”

“그러니까요.”

제이코는 몇 번이고 다짐을 받은 끝에 내 궁금증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후보의 대선 승리는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제이코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늘어놓더니 조곤조곤 설명을 시작했다.

“유력 후보는 탄탄한 지지층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주당 골수 지지자, 또는…….”

“공화당 골수 지지자겠죠.”

“네. 그래서 유력 후보라고 부르는 거죠. 하지만 선거는 골수 지지층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중간자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군요.”

“부동층은 지지당이 똥을 싸질러도 지지합니다. 하지만 유동층은…….”

“이슈에 민감하겠군요.”

“보스. 설명 좀 들으시죠.”

제이코가 입술을 실룩거렸다.

“하하. 네. 조용히 들을게요.”

제이코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현재 민주당 유력 후보인 존 오루크는 반(反) 트롤프 세력의 선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롤프가 싸지른 똥을 깨끗이 치우고 건강한 미국으로 만들겠다는 슬로건을 내 건지 오래됐습니다.”

“대선 전부터 그랬다는 말이죠?”

“대선 전부터 유동층 확보에 노력을 많이 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게 지금 잘 먹히고 있죠.”

“공화당 쪽 슬로건은 뭡니까?”

“재미있는 것은 공화당도 트롤프 대통령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는 겁니다.”

“내부자 저격인가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트롤프 대통령은 당선 전이나 지금이나 공화당 내에서도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정권 차원에서 대놓고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이죠.”

제이코는 미국 정계 사정을 하나씩 늘어놓으며 현재 흘러가는 대선 분위기를 이야기해줬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 인지도 약한 후보가 유력한 위치에 올라서고 대권까지 손에 넣는다면.”

“그렇다면요?”

“제2의 트롤프가 탄생할 겁니다.”

“인지도 약한 후보라는 말은 공화당 내에서도 영향력이 약하다는 말일 테고 그건 정치적 지지세력이 부실하다는 뜻이로군요.”

제이코는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트롤프에게 지칠 대로 지친 미국입니다. 그런데 제2의 트롤프 탄생을 반길 리 만무하죠. 만약 누군가 그런 기미를 보이기라도 하는 날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절대 지켜만 보지 않을 겁니다.”

“공공의 적입니까?”

“그럴 수밖에요. 트롤프는 전통적으로 이어온 정당 정치를 파괴하고 대통령 우선주의로 정계를 꼬아버린 원흉입니다. 컨트롤할 수 없는 지도자는 누구도 원치 않죠.”

“컨트롤할 수 없는 지도자라. 그 말은 다른 대통령들은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이코가 웃음을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컨트롤은 가이드 라인을 넘지 않는 걸 의미합니다. 대놓고 그런 짓을 했다가는 아무리 대단한 가문이라고 해도 단숨에 박살이 날 겁니다. 미국 대통령의 힘은 상상을 넘어서니까요.”

“상상을 넘어선 힘이라.”

“정확히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미국의 거대 기관들 힘이라고 하겠습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거대 기관. 한국에도 그런 기관이 있기는 하다.

검찰 권력이 그랬고 정보 권력도 그래왔으니까.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만 해도 행정부를 온전히 손에 넣은 이명환 대통령의 힘은 장난이 아니니 말이다.

“만약에 말입니다.”

“보스. 이번 일에서 만약은 빼버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냥 아이디어 차원에서 말하는 겁니다.”

“…….”

“진짜!”

“뭐, 들어보는 것 정도야 못 하겠습니까마는. 저는 절대 반대입니다.”

“알았으니까 한 번 들어나 봐요.”

“네. 들어는 보죠.”

“일단, 공화당 쪽 후보 좀 자세히 알아봐 주세요.”

“대선 쪽은 선거자금 지원 정도로 끝내시는 게 좋다니까요.”

“그러니까요. 자금 지원을 하려면 누구에게 할지. 그것부터 선정해야죠.”

“뭐하러 그럽니까.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이미 주자는 결정이 됐다니까요.”

제이코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내리쳤다.

“아 쫌.”

내가 조르다시피 부탁을 하자, 제이코는 일단 알았으니 다음 이야기나 들어보자고 했다.

“그냥 어디까지나 아이디어입니다. 민감하게 받거나 그러기 없습니다.”

“네. 한쪽 귀로 듣고 반대쪽 귀로 흘려버릴 생각입니다.”

“미국에도 대단한 가문들이 많잖아요.”

“그런데요?”

“그들도 각각 지지하는 당이 있겠죠?”

“그렇겠죠.”

“만약 그들에게 당이 아니라 특정 인물을 지지하자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런 제안에 응할 리도 없지만, 보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순간, 미국에 존재하는 가문들을 적으로 만들게 될 겁니다.”

“네?”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 적이 된다는 말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보스.”

“네.”

“만약. 미국에 있는 가문들이 한국에 와서 그런 제안을 했다고 칩시다.”

“한국이라면 한국 대선을 이야기하는 거겠죠?”

“당연히 한국 선거입니다.”

“계속해 보세요.”

“보스는 그들과 파이를 쪼개 먹을 겁니까?”

“…….”

“굳이 그들이 아니더라도 사우스 코리아는 보스 것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협조를 구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뜻이죠.”

“…….”

“가만히 둬도 잘 굴러가는 판을 누군가 끼어들어서 불협화음을 낸다? 보스가 나서기도 전에 제가 쳐 내버릴 겁니다.”

“그 말은 미국 유력 가문의 대표를 만나기도 전에…….”

“네. 어느 가문이나 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보다 더 대단하고 대를 이어서 충성하는.”

제이코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면서 말을 이었다.

“그들끼리 나눠 먹기도 부족해서 아웅다웅 싸우고 있는데, 거기에 Go 컴퍼니, 정정하죠. 고 패밀리가 불쑥 손을 내미는 겁니다. 나도 같이 먹게 해 달라고. 보스가 그들 입장이라면 보스를 환영하겠습니까. 아니면 더 크기 전에 밟아버리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보스. 미국에 자리를 잡으려면 말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접근하세요. 치기 어린 생각으로 달려들었다간 털도 뽑지 않고 잡아 먹힐 겁니다. 이건 돈이 많고 적고의 싸움이 아닙니다.”

절대, 네버, 어떤 일이 있어도 대선에 끼어들지 말라는 제이코의 말은 생각보다 복잡한 이유를 담고 있었다.

“보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번에 얻은 영지를 탄탄하게 다지는 겁니다.”

“네. 제이코.”

미국 대선을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은 같은 입장일 것이다.

“보스. 이쪽 세상은 말입니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이쪽 관련으로 공부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제이코.”

내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코가 한 마디 덧붙였다.

“혹시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요. 이건 기분 나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죠. 제이코가 없었다면 멋모르고 끼어들었다가 된통 깨질 뻔했는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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