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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33화 (134/224)

133장. 박명보 씨?

단골 식당에 찾아와 탕과 수육을 시켜놓고 혼자 식사를 즐기던 박명보 전 대통령은 자꾸만 웃음이 흘러나왔다.

“2조가 넘는단 말이지. 2조. 히히히.”

오늘따라 수육이 잘 삶아졌는지 평소보다 더 부드럽게 씹어졌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나 싶었는데, 덕분에 십 년 묵은 체증이 단번에 내려갔어. 히히히.”

우물거리며 수육을 씹어 삼키던 박명보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자꾸만 히죽거렸다.

똑똑.

“각하.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방문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재단 사무장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밥 먹을 때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

“죄…… 죄송합니다. 워낙 급한 일이라서.”

“쯧. 하여간 예의들이 없어. 뭔데?”

“방송을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무장은 박명보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방구석에 설치된 TV를 재빨리 켰다.

“고주몽인가 하는 놈이 또 무슨 짓을 저질렀어?”

“그게…… 방송을 보시는 것이.”

사무장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며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가려 했다.

“어디가?”

“네? 식사하시는 데 방해가 될까 봐서.”

박명보는 누군가와 함께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수육을 먹을 땐 더더욱.

괜히 눈앞에 알짱거리면 뭐라도 사줘야 했기에 탕집에 와서 식사를 한 땐, 모두 밖에서 대기를 시켰고, 사무장이나 다른 이들도 이젠 그게 익숙해졌다.

박명보는 사무장의 대답에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거기 서 있어. 보아하니 귀찮은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뭐라도 지시를 받아야 할 것 아냐.”

사무장의 태도에서 미심쩍은 느낌을 받았는지 박명보는 대기 명령을 내렸다.

사무장은 머뭇머뭇하다가 ‘네……’하고는 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박명보는 수육 한 점을 입에 넣고 TV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 일이기에 텔레비를…… 응?”

수육을 우물거리던 박명보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화면 하단으로 속보 내용이 지나가는데 노안 때문인지 잘 읽히지 않았다.

“안경.”

“각하. 여기.”

사무장이 상다리 밑에서 안경을 챙겨 박명보에게 건넸다.

안경을 쓰고 다시 수육 한 점을 씹으면서 TV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속보 1 ― 박명보 전 대통령. 자원외교 횡령증거 발견! 최소 2조. 최대 3조로 예상!

속보 2 – 기업 총수들 비자금 동맹! 기업 유보금 투자 실패로 조작! 외국계 투자 펀드 설립!

단신으로 된 두 가지 속보가 무한궤도 돌아가듯 쉬지 않고 로테이션 됐다.

“…….”

박명보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안경을 벗었다.

사무장은 조심스러운 눈초리로 박명보의 반응을 살폈다.

여차하면 도망이라도 치려는 듯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심사가 꼬이면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는 인간이라 머리가 깨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안경 닦기 좀 줘봐. 알에 김이 서려서 당최 보이질 않잖아.”

박명보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탕국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네. 각하.”

사무장은 재빨리 손수건을 건넸다.

느릿느릿 안경알을 닦아낸 박명보는 다시 안경을 쓰고 TV를 노려봤다.

“이제야 보이네. 어디 보자.”

박명보는 수육 한 점을 다시 입에 밀어 넣고는 우물거렸다.

박명보 전 대통령. 자원외교 횡령증거 발견! 최소 2조. 최대 3조로 예상! / 기업 총수들 비자금 동맹! 기업 유보금 투자 실패로 조작! 외국계 투자 펀드 설립!

“푸악!”

부드럽게 씹히던 수육 조각이 입 밖으로 거칠게 튀어 나갔다.

“저…… 저게. 뭔 소리야!”

노구에도 불구하고 박명보의 목소리는 거칠고 사나웠다.

사무장은 움찔 어깨를 좁히더니 슬금슬금 방 밖으로 뒷걸음쳤다.

“이 새꺄! 내가 묻고 있잖아! 저게 어떻게 된 거냐고!”

“죄송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너 이 새끼. 사무장이 모르면 누가 알아!”

박명보는 두어 점 남은 수육을 빈 그릇에 옮겨 담더니 접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가…… 각하.”

“닥쳐 이 새꺄! 월급이 한두 푼도 아니고.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박명보 손에 들려 있던 접시는 기어이 사무장을 향해 날아왔다.

“히익!”

사무장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

수육 접시가 원반처럼 회전하며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동작이 조금만 느렸어도 이마가 날아갈 뻔했다.

“무슨 일인지 당장 알아 와!”

박명보의 호통 소리가 식당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때 식당 밖이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누군가 안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또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알…… 알아보겠습니다.”

사무장은 엉거주춤 오리걸음을 하고 재빨리 뒷걸음쳤다.

어물쩍거리다가는 탕 그릇이 날아들 판이다. 하지만 사무장은 몇 미터 이동하기도 전에 멈춰서야 했다.

“누구…….”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

눈이 동그래졌던 사무장은 ‘어휴……’하고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박명보가 있는 방을 가리켰다.

“저쪽.”

“네?”

“각하 잡으러 온 거 맞죠?”

“네.”

“각하. 저쪽에 있다고.”

사무장은 손가락으로 박명보가 앉아있는 방을 가리켰다. 그런데 그 순간 방에서 얼굴을 쏙 내밀던 박명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사무장 너 이 새끼 지금 뭐 하는 거야!”

박명보의 외침에 사무장이 맞서 소리를 질렀다.

“아 쫌! 내가 종놈도 아니고. 그만 좀 해요! 월급도 쥐꼬리만큼 주면서 일은 한도 끝도 없이 시키잖아요!”

“뭐…… 뭐?”

사무장은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듯 씩씩대더니 검사들을 바라봤다.

“뭐합니까. 저기 있잖아요.”

“아. 네. 뭐…….”

검사는 이건 또 뭔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임무까지 망각하진 않았다.

“체포하세요.”

“네. 검사님.”

함께 온 수사관 한 명이 촤라락. 허리춤에서 수갑을 꺼내 들었다.

“내가 누군지 몰라?”

박명보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검사와 수사관들을 노려봤다.

“박명보 씨.”

“바… 박명보 씨~?”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각하’라는 호칭으로 불렸던 박명보는 신경질적으로 검사를 노려봤다.

“당신을 업무상 횡령. 불법 자금 조성. 외환거래 위반. 공문서위조. 공문서 불법 파기. 뇌물공여 및 사기, 협박…… 어우. 뭐가 이렇게 많아?”

체포영장을 읽어내리던 검사가 잠시 숨을 골랐다.

“내부거래, 금융법 위반, 주가 조작…… 에이! 그냥 기타 등등의 사유로 체포합니다.”

체포 이유에 대해 조용히 듣고 있던 박명보가 히죽 웃음을 흘렸다.

“이봐. 검사 양반.”

“네. 박명보 씨.”

“횡령이고 뭐고 간에. 13년 전 일이야. 공소시효 끝난 거 몰라?”

박명보의 말에 영장을 가져온 검사가 히죽 웃었다.

“웃어?”

“개고기만 드시지 말고 방송도 좀 보시지 그러셨습니까.”

“뭐야?”

“아, 이번에 바뀐 법이 워낙 많다 보니. 보셔도 모르셨으려나?”

“……?”

“공직자 법이 새로 개정됐습니다.”

“개정?”

박명보는 그게 뭐냐는 듯 눈을 껌뻑였다.

“공직에 있을 때 저지른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어졌어요. 그게 과거에 있었던 일이든. 오늘부터 저지른 범죄든 간에.”

“그…… 그게 말이 돼? 시효가 지난 것들은…….”

“네. 예전엔 그랬습니다. 법이 만들어져도 과거 사건에 관해선 적용이 되지 않았죠.”

“그래! 내 말이.”

“그런데 이번에 개정된 법은 성격이 좀 다릅니다. 건국 이후부터 벌어진 모든 공직 비리는 공소시효 없음이 확정되었거든요. 쉬운 말로 이야기하자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고위공직자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자기관리에 아주 철저해야 한다는 소리죠. 사고치고 은근슬쩍 넘어가던 관행은 더는 없으니 말입니다. 언론 책임법과 더불어 공직자 책임법이라고. 국민이 아주 열광하는 법 중에 하나죠.”

검사는 입꼬리를 쓱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디 그런 말도 안 되는…….”

“증거와 증인은 넘쳐나고 있고. 자원외교 외치시면서 같이 해 먹었던 공직자들도, 아 공범들도 다 잡혀 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하나 같이 똑같은 말을 해대는지.”

“똑같은…… 말?”

“네~. 아주 앵무새가 따로 없습니다.”

박명보는 눈을 껌뻑이며 검사를 바라봤다.

“각하께서! 각하의 지시 때문에! 각하가 아시는 일! 각하의 명령으로!”

“…….”

“내가 요 며칠 ‘각하’라는 단어에 노이로제가 걸렸습니다. 각하 소리만 들어도 아주 두드러기가 납니다. 각하 알레르기가 생긴 것 같아서 퇴근하면 병원에…… 아, 이런 요즘 일이 많아서 그것도 어렵겠네. 쯧. 이거 업무상 재해로 보고하고 상해 처리를 받아야 하나.”

검사의 투덜거림에 수사관들이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았다.

당연히 박명보는 분노한 표정으로 검사를 노려봤다.

“뭐합니까? 어서 수갑 채우세요!”

“푸흣. 네. 검사님!”

수사관이 쇠고랑을 채우려고 하자, 박명보가 거칠게 반항했다.

“어딜 손대!”

여든이 넘은 나이라고 들었는데 얼마나 몸 관리를 열심히 했는지, 젊은 사람 저리가라다.

“나. 박명보야! 대한민국 대통령!”

“네네. 아쉽게도 과거형이네요. 지금은 일반인…… 아 이런 실수. 공직자 법은 물론이고 민법과 형법까지 대한민국에 있는 법은 골고루 어기신 범죄자 되시겠습니다.”

“너 아까부터 씨씨 거리는 데, 너 이름이 뭐야! 소속이 뭐냐고!”

“인천지…… 아, 실수. 중앙지검 검사 임군영입니다.”

인천 장수철 지검장 밑에 있던 임군영 검사는 얼마 전 이익현 차장 밑으로 자리 이동을 했다.

수사 인력이 달리자, 장수철 지검장에게 능력 있는 검사를 추천해 달라고 했고, 지검 에이스로 이름을 날리던 임군영이 낙점을 받았다.

“노인네가 힘도 좋네. 빨리빨리 합시다. 개천 재단도 털어야 하니까.”

“네. 검사님!”

수사관 두 명이 더 달려들고서야 겨우 수갑을 채울 수 있었고, 식당 밖에 대기 중이던 차량에 탑승시킬 수가 있었다.

사무장이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임 검사가 영장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개천 재단 사무장님?”

“네? 네.”

“우리가 수색 영장도 받아왔는데. 어떻게 협조 좀 해 주시겠습니까?”

임 검사는 먹잇감을 앞둔 맹수의 눈빛으로 사무장을 노려봤다.

만약 여기서 ‘아니요’라고 했다간 잘근잘근 씹어 먹힐 것 같은 분위기다.

“당연히 협조해 드려야죠. 그런데…… 협조해 드리면…….”

“협조 말고 적극적 협조를 해 주시면 정상 참작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재단 지하도 수색을 하시나요?”

“지하요?”

임군영은 영장을 펼쳐 확인하더니 ‘에이 또 받아와야 하네’하고 짜증을 냈다.

“지하 말고 또 있습니까? 한 번에 갑시다.”

“옥상에 엘리베이터 관리실도 있고…….”

사무장은 정상 참작을 받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장소에 대해 어쩌고저쩌고 늘어놓기 시작했다.

박명보 전 대통령이 보신탕집에서 긴급 체포가 된 그 시각. 재벌 총수들의 비자금 연합인 주가 조작단도 체포가 됐고, 이들과 동맹을 맺고 자금세탁에 열중하던 이들도 우수수 쓸려나갔다.

* * *

백악관.

말도 많고 위기도 많았지만, 결국 연임에 성공해 백악관을 사수했던 미국 대통령 도날드 트롤프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CIA 국장을 바라봤다.

“알아서 털어라?”

트롤프는 크큭 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CIA 국장 에미 아서가 트롤프를 바라봤다.

“CIA에서 보는 미스터 고의 위치는 어느 정도지?”

“잠정적 대선 후보로 보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

“네. 하지만 대선엔 나오지 않을 겁니다.”

아서의 말에 트롤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유는?”

아서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렉스. 자네가 설명을 하는 게 좋겠군.”

CIA 국장 아서가 알렉스 피트에게 바통을 넘겼다.

“미스터 고는 가문을 열겠다고 했습니다.”

“가문? 카네기나 케네디가(家)처럼?”

“비슷하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렉스의 대답에 트롤프가 ‘흠’ 하는 소리와 함께 턱을 만지작거렸다.

아서가 입을 열었다.

“미스터 고는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투표권도 있고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은 이번 선거에 우리를 지지하게 만들자는 이야긴가?”

트롤프 대통령의 말에 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주당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공화당은 끝입니다.”

아서는 이 모든 게 트롤프 당신 때문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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