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31화 (132/224)

131장. 숭어와 망둥이와 꼴뚜기

폭풍 체포 작전이 벌어지고 3일째.

첫날보다는 잦아들었지만, 대국민 시위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정치권은 달궈진 불판에 올라선 것처럼 널뛰기를 반복했다.

청와대 주차장과 영빈관을 전세 내다시피 점령하고 진행된 작전이었기에 외부의 공격이나 접근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작전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룹 총수와 지휘부가 괴멸한 기업들을 집어삼키기 위해 주몽과 Go 컴퍼니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엄청난 규모의 외화가 빠져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파상공세를 펼쳤고 주가 역시 미친년 널뛰듯 등락을 반복했다.

대왕과 진영, 선진 그룹의 지배권을 손에 넣을 때는 시장을 공략한 것이 아니라 그룹 지배구조를 바꾸는 과정에 은밀히 자금을 투입한 형태였기에 지금처럼 혼란스럽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적대적 M&A를 표방한 상태였고 전처럼 내부자 협조를 얻어 주식을 얻는 방식도 아니기에 별의별 사건이 다 벌어졌다.

외국계 자금은 물론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모 펀드까지 달려들어 아귀다툼을 벌였기 때문이다.

숭어를 잡는데 눈치 없이 망둥이와 꼴뚜기가 설치는 모양새다.

장이 마감되고 저녁 식사를 마친 주몽은 이명환 대통령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티타임을 가졌다.

“정신없으시죠?”

이명환 대통령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3일 전에 비하면 천국에 있는 것 같습니다.”

손발 다 묶여 ‘허수아비’처럼 자리만 지키고 있던 때와 달리 지금은 대통령의 한 마디가 진짜 ‘대통령’의 지시가 됐다.

“고 회장님은 어떠십니까?”

“몇 가지 귀찮은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잘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휴식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제이코가 찾아왔다.

“식사는 하셨어요?”

“네. 간단히 먹었습니다.”

“종일 힘들었을 텐데 좀 쉬시지. 무슨 일로 또 찾아온 겁니까?”

“로버트가 보고를 드릴 내용이 있다는군요.”

“로버트가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이코는 대통령을 힐끔 바라보더니 이곳에서 보고를 받을지 아니면 지휘 차량으로 이동을 할지 결정해 달라고 했다.

“급한 겁니까?”

“급하다기보다는…… 주식시장에 뛰어든 자금 관련입니다.”

“아.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의심된다는 그 자금 말이군요.”

“네. 보스.”

“저는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편히 이야기 나누시죠.”

이명한 대통령이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려고 했다.

“대통령님. 함께 들으시죠.”

“크흠. 같이 말입니까?”

“대통령님도 궁금하시잖아요. 그리고 이 조사 우리 쪽에서만 진행한 게 아닙니다. 비서실장님이 금감원과 국정원을 연결해 주셨거든요.”

“하하. 뭐 그렇다면야.”

굳이 내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따로 비서실장에게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굳이 내외할 필요가 없다.

나는 제이코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곳에서 듣도록 하죠.”

“네. 이쪽으로 오라고 하겠습니다.”

“혹시, 금감원이나 국정원 사람도 같이 있나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잠시 뒤, 로버트와 대통령 비서실장. 금감원장과 국정원 1차장이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로버트가 파일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보고드리겠습니다.”

비서실장이 1차장에게 눈짓을 하자, 임시 통역으로 나섰다.

금감원과 국정원. 로버트의 정보팀과 미국의 알렉스 라인을 통해 작성된 보고서엔 예상치 못한 내용이 등장했다.

“그룹 총수들의 비자금은 예상된 부분입니다만, 전직 대통령 비자금이요?”

“네. 검은 머리 한국인으로 의심된 자금 일부가 전직 대통령과 관련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로버트의 대답에 나는 ‘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함께 보고를 듣고 있던 제이코도 예상치 못한 전주(錢主) 등장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제이코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질문을 했다.

“전직 대통령이 재벌이었습니까? 지금 움직인 자금만 해도 한화 2조에 가깝습니다. 자산으로 따져도 천문학적인 금액인데 이거 다 현금 아닙니까.”

1차장의 통역을 듣고 있던 이명환 대통령이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쏟아냈다.

나는 이명환 대통령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잘 알고 있다.

외교를 통해 국익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뒷주머니를 찼다고 의심받는 대통령.

대한민국에선 돈을 사랑하는 각하로 명성을 크게 얻으신 바로 그분 이야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재벌은 아니지만, 경제인 출신이기는 하죠. 그리고 지금 대통령님과 같은 당 출신이시기도 하고.”

내 대답에 이명환 대통령이 재차 한숨을 쏟았다.

“이거야 원…….”

대통령은 씁쓸한 표정으로 1차장을 바라봤다.

“자원외교와 관련된 자금입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1차장이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음모론이니 어찌하니 하면서 확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나름 자제하는 듯 보였지만, 대통령의 음성에 적잖은 분노가 섞여 있었다.

“…….”

질문을 받은 1차장은 물론이고 동석한 금감원장도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뜻이다.

로버트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보고를 이어갔다.

“자금 형성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는 더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파악된 자금 일부는 캐나다 쪽입니다.”

“캐나다요?”

“네. 알렉스가 준 자료에 의하면 에너지 관련 기업이라고 하는데, 이쪽은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좀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로버트의 말에 금감원장이 이명환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해 보세요.”

“미국 측에 정식으로 조사를 요청하면 어떻겠습니까?”

“미국이라…… 그들이 협조를 해 주겠습니까? 그걸 빌미로 꼬투리나 잡히지 않으면 다행이겠습니다.”

대통령의 말에 금감원장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 회장님이 도움을 주신다면…….”

“저기요. 금감원장님.”

“네. 회장님.”

“나랏돈 빼 먹은 사건을 왜 나에게 도와 달라고 합니까.”

“그게…….”

나는 로버트의 보고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거 조사해서 확인하는데 딱 사흘 걸렸어요. 시간으로 따지면 48시간 정도? 말하고 나니 어이가 없네. 그렇게 국민이 난리를 칠 때는 음모론이니 뭐니 하면서 딱 잡아떼더니.”

“…….”

“호주머니에 감춰둔 일, 이만 원 찾는 것도 아니고. 무려 2조입니다. 국민 돈은 천만 원만 이체돼도 혹시나 하고 들여다보시는 분들이 지금껏 이걸 몰랐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질색 섞인 불만 토로에 금감원장은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내가 무슨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왜 그 싸움을 나에게 시킵니까? 미국이 바봅니까? 내가 말 몇 마디 한다고 도와주게?”

1차장이 입을 열었다.

“고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지금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세계 각국의 시선이 집중된 상태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자금…….”

“저기요. 차장 아저씨.”

“네. 고 회장님.”

“입을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세요. 전직 대통령의 자금이 아니라 횡령금입니다. 횡령!”

“죄송합니다. 바로잡겠습니다.”

1차장은 단어 선택에 실수가 있었다며 재깍 고개를 숙였다.

“계속해 보세요. 그래서 어떻다는 거죠?”

“자금의 성격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을 잡기보다는 이용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이용? 무슨 뜻이지?”

이명환 대통령이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 보라고 했다.

“이번 사태 때문에…….”

1차장은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국내 주식시장이 혼란스럽고 환율까지 들썩이고 있습니다. 외국계 자금은 고 회장님과 전면전을 피하는 중이기에 그나마 조심스럽습니다만…….”

“본질이 내국인인 그 자금들은 오히려 기회로 생각한다는 말이군. 그들 펀드를 앞세워 우리 시장에 간섭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죠?”

대통령의 말에 금감원장이 부연 설명을 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불분명한 성격의 자금을 이번 기회에 세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이 소란스러우니 그 틈에 끼어서 이리 섞고 저리 섞으면서…….”

제이코가 한 마디 덧붙였다.

“자기들끼리 사고팔고를 흙탕물을 만들어서 자금 추적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릴 심산이군. 겸사겸사. 매집한 주식을 프리미엄을 얹어 되팔려 할 것이고.”

금감원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원외교와 관련된 횡령 자금임을 밝혀내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며칠 이내로 정리를 끝내고…….”

“소액으로 쪼개서 흩어버리겠죠. 조사한다고 해도 그렇게 되면 추적이 불가능해질 테니까.”

세 사람의 설명에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를 빨래판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내 질문에 금감원장이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직설적으로 설명하자면, 네. 그렇습니다.”

“어이가 없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나랏돈을 횡령해다가 쌈짓돈 쓰듯 하는 것도 황당한데, 이젠 그 흔적마저 지우려 하고 있었다.

“대통령님.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고 회장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나와 이명환 대통령은 서로를 마주 봤다.

“나는 빨래판이 아닙니다.”

“세금을 횡령한 것도 용서 못 할 일인데, 나라의 우환을 이용해 자금 세탁까지 하다니요.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1차장의 말처럼 미국은……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명환 대통령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화는 나지만 정작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소리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잠시 생각에 빠지자, 다들 입을 다물고 조용히 지켜봤다.

“금감원장님.”

“네. 고 회장님.”

“이게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뭐든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전력을 다해 움직이겠습니다.”

2조에 가까운 돈을 회수할 수만 있다면, 알몸으로 뛰라고 해도 망설임 없이 뛸 것이다.

“미국은 못 건드려도 한국은 아니잖아요.”

“네?”

금감원장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껌뻑였다.

“놈들이 운용하는 자금 규모가 2조라고 했죠?”

“현재 시장에 풀린 정도만 2조입니다. 사모 펀드의 특성 때문에 운용 자금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저희 측 예상으론 3조를 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총수 일가의 비자금으로 예상되는 자금은 어느 정도죠?”

로버트는 재빨리 서류를 확인했다.

“총 23조 규모입니다.”

“어우. 어마어마하네요. 대한민국 재벌들 비자금 규모가 수십조라니.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인데요?”

물론 내가 가진 돈에 비하면 소소한 정도다. 하지만 한국 주식시장에서만 본다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내가 수백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돈을 한국에 밀어 넣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이 버텨 낼 수 있는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에서 움직여야만 했고 그 와중에 등장한 23조라는 적대적 자금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Go 컴퍼니와 충분히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규모다.

그들은 이미 소유하고 있는 지분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필요 지분만 더 획득하면 되기 때문이다.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나와는 출발선이 다르다.

“총수와 지휘부를 모두 묶어 두기는 했습니다만, 위기대응 매뉴얼이 작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금감원장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기대응 매뉴얼이요?”

“우리나라 재벌들은 IMF를 정통으로 맞은 경험이 있습니다.”

“자금 위기나 그에 준하는 위협이 발생했을 때 대응할 방안을 만들어 두었다는 말이군요.”

“23조는 재벌들의 개인 비자금과 그룹 유보금이 합쳐진 돈으로 보입니다.”

“그룹 유보금은 주가 방어에 사용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내 질문에 로버트가 대답했다.

“위장술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위장술?”

“네. 겉으론 그룹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지만, 본진은 외부에 두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를 이용해 그룹 총수나 사주 일가의 지분율 높이기에 들어갔다는 그런 의미군요.”

“네. 문제는 그 자금이 불법적으로 형성이 됐다는 점입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했던가요?”

“해외투자 손실입니다.”

로버트는 파일 하나를 꺼내 내 앞에 내려놨다.

“알렉스가 준 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 기업들의 해외투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러니까. 투자를 빌미로 돈을 내보내고 그걸 손실로 처리해서 본진을 구성했다는 말이군요.”

“저들의 작전이 성공한다면 적잖은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이코가 심각한 표정이 됐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예산은 700억 달러. 한화 80조가량이다.

주식시장은 물론이고 연기금에서 쥐고 있는 주식까지 끌어오기 위해 준비한 돈이다.

그런데 여기에 총수들 비자금 23조에 전직 대통령 횡령금으로 보이는 3조까지 끼어들었다.

서로 주식 매집에 나서다 보니 주가까지 반등한 상태다.

이대로 싸움이 이어진다면 목표를 달성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이 정도 자금이 비자금이란 게 발각되면 재벌 총수들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 질문에 금감원장이 재깍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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