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29화 (130/224)

129장. 걱정하지 마.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던 김덕영은 물론이고 청와대에서 출발한 이명환 대통령까지 국회의사당에 속속 모여들었다.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다고, 대통령 시국선언과 국민의 지지도가 하늘을 찌르는 지금. 그간 벼려왔던 법안들을 단숨에 통과시킬 생각이다.

신당은 물론이고 열 석 이하로 줄어든 소수 야당까지 모두 의사당에 출석했다. 아직 개회가 선포되지 않았기에 여기저기 친한 의원들끼리 모여 설왕설래했다.

“우리만으로 신당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안되지.”

“그럼 투표는 하나 마나 아닙니까. 이거 필리버스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필리버스터는 무슨. 나이 먹어서 전립선도 부실한데 방광 터질 일 있어?”

“그럼 어찌합니까? 이대로 보고만 있어요?”

“흐흐. 그럴 수는 없지.”

“걱정하지 마. 저놈들 뜻대로는 절대 안 될 테니까.”

야당 대표들은 음흉한 미소를 나눠 먹으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야기라도 좀 해 주십시오. 불안해서 원.”

의원 하나가 다리를 달달 떨어대며 뭐 좀 아는 게 있으면 귀띔이라도 해 달라고 했다.

“우리 쪽에 끈을 댄 자들이 그러더군. 신당에서 반대표가 무수히 쏟아질 거라고.”

“네? 신당에서요?”

“얼마나 처먹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장담을 하더군.”

“신당 놈들 마음을 돌리려면 은퇴자금보다는 더 많이 쑤셔 넣었을 텐데. 아우. 신당 놈들 얼마나 받아먹은 거야.”

“우리가 서른 장이니 저놈들은 그 이상이라고 봐야겠지.”

“그룹 총수들이 똥줄이 탔나 봅니다. 최소 반수 이상 표를 획득한다고 쳐도 150표 이상인데. 그걸 돈으로 환산하면…… 오…… 오천억?”

야당 대표 한 명이 혀를 내둘렀다.

“오천억이 문젠가. 법이 통과되면 탈탈 털리게 생겼는데. 일조를 밀어 넣어서라도 막을 수만 있다면 막아야지. 거기다. 그 돈을 혼자 쓴 것도 아니잖아. 그룹들이 공동으로 자금을 마련해서 로비에 들어간 거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마어마하군요. 고주몽 그놈이 나타난 뒤론 일이 터질 때마다 아주 역대급입니다.”

“그래서 벼락부자는 안된다는 거야. 돈 말고는 가진 게 없잖아.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똥오줌 못 가리고 나서는 것도 그렇고.”

“문제는 그 돈이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게 문제 아닙니까.”

의원 하나가 그렇게 무턱대고 무시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재벌들이 왜 정치권에 돈을 가져다 바치는지 아나?”

대한당 대표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반론을 한 의원을 바라봤다.

“그거야…….”

“자기들 입으론 그래. 정치인들은 비정규직이고 자기들은 죽을 때까지 정규직이라고. 그런데 왜 우리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돈을 내는지 정말 몰라?”

“…….”

“법.”

“법이요?”

“그래. 임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우리는 법을 건드릴 수 있는 힘이 있어. 공권력도 움직일 수가 있고. 쉬운 말로 권력이라고도 하지.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나. 그 돈을 쓸 수 없게 만들어버리면 끝이라는 걸 자기들도 아는 거지.”

“그건 서로 끝장을 보자는 말 아닙니까.”

“쯧쯧쯧. 북쪽 놈들이 왜 벼랑 끝 전술을 쓰는데. 건드리면 자폭하겠다는 거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우리도 그래. 분기마다 정치 자금도 지원해주고 우리 지역구에 투자도 해 주고. 그러면 우리는 제 놈들 사업하는 데 도움도 주고 법안도 손봐주고. 우린 공생관계야. 누가 됐든 한쪽이 무너지면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지금만 해도 그렇잖아. 우리 의석수가 줄어드니 무슨 일이 벌어졌지?”

“…….”

“그럼 그놈들이 모두 감옥에 가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래. 그 때문에 어느 한쪽도 죽어선 안 돼.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양대 산맥이라는 걸 잊지 마.”

반론을 냈던 의원이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나저나 걱정입니다. 이번 총선에 떨어졌던 동료 의원들이 속속 체포되고 있다고 하는데.”

“뭐가 걱정이야. 우리는 현역의원이고 불체포특권을 가지고 있어. 비정규직이지만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철갑무적이라고.”

의원 하나가 불체포특권을 운운하자 야당 대표 한 명이 말을 거들었다.

“그 때문이라도 이번 투표는 무조건 막아야 하네. 이대로 법안이 통과되면……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검사 놈들이 개떼처럼 달려들 테니까.”

“암요. 그렇고 말고요.”

대한당 대표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신당을 단단히 믿고 있을 텐데, 결과가 뒤집히는 걸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법안이 튕겨 나가면 대통령부터 갈아치우죠. 긴급조치니 뭐니 하면서 미친 소리를 해대던데.”

“우리 쪽으로 돌아선 신당 놈들도 살아남으려면 우리와 공조하는 수밖에 없을 거야. 곧바로 대통령 탄핵 절차에 들어가고 고주몽 그놈은 박살을 내 버리자고.”

“물론입니다. 어디서 망둥이 같은 놈이 튀어나와서는.”

“일이 마무리되면 우리 쪽 손을 들어준 신당 놈들이 자리를 옮길 거야.”

“우리 쪽으로 말입니까?”

“그럼 어디로 가겠어? 곧바로 여소야대가 만들어지는 거지.”

대한당 대표의 말에 의원들이 히히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뭐 한다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빨리 끝내고 개운하게 술이나 한잔했으면 좋겠는데.”

야당 의원들이 쑥덕거리며 여소야대를 꿈꾸는 사이 국회의장이 개회를 선포했다.

국회의장은 원내대표들을 불러 모았다.

“발언하실 분들 있다면 신청해 주십시오.”

신당 원내대표 함상호가 여당 원내대표들을 바라봤다.

“야당 분들 국회 발언 있으십니까?”

“이 분위기에 국회 발언은 무슨. 괜히 나섰다가 돌멩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지.”

야당 원내대표들은 하나 같이 고개를 흔들었다.

“신당은 어떻습니까? 그쪽이야 바로 투표에 들어가기를 바랄 테니…….”

“우리는 있습니다. 육성철 의원입니다.”

“육 의원이라면 외교부…….”

“네. 전 외교부 장관이셨던 육성철 의원 맞습니다.”

“뭐 그러시던가.”

대한당 원내대표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국회의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럼 그렇게 진행합시다.’라고 자리를 물렸다.

자리에 앉은 국회의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신당 육성철 의원님 발언해 주세요.”

국회의장의 말에 육성철 의원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 * *

영빈관에서 지원팀으로 활약하고 있던 Go 컴퍼니 직원 한 명이 ‘국회 방송 시작합니다.’라고 외쳤다.

영빈관 한쪽에 설치한 모니터 중 중앙에 자리 잡은 대형 모니터에 곧바로 국회방송이 띄워졌다.

“이익현 차장 쪽은?”

“의사당 문 앞에서 대기 중입니다.”

“로비스트들은 모두 잡아들였나 보군.”

“경찰 협조를 받아서 모두 수거했다고 합니다. 오리발을 내밀다가 영상 증거를 내미니 찍소리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는군요.”

국정원 소속이었다가 Go 컴퍼니로 넘어온 직원 하나가 ‘히히’ 웃음을 터트렸다.

“불법 녹취된 자료라고 문제 삼지는 않았고?”

“그거야 검찰이나 경찰에서 만든 증거가 아니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제보에 의한 외부 자료입니다. 제보자는 신변 보호를 위해 공개하지 않는 게 기본이니 건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좋군.”

“로비스트들의 증언과 돈이 오간 자료도 모두 확보했다고 합니다. 이익현 차장이 아주 좋아서 죽으려고 하더군요.”

* * *

쉬지 않고 속보를 터트리던 방송국들이 이번엔 국회의사당 쪽으로 시선들 돌렸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여러 법안이 오늘 투표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국민도 전광판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국회 방송을 지켜봤다.

“문제없이 통과되겠지?”

“신당 의석수가 몇인데. 의사당에 폭탄이라도 터트리면 모를까. 무조건 통과야.”

“재수 없게 폭탄이 뭐냐. 말이 씨 된다.”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야야. 조용히 해봐. 신당 의원 한 명이 올라왔다.”

“어? 육 장관이네.”

“아는 사람이야?”

“쯧쯧쯧. 평소 관심 좀 가지고 살아라. 너는 어떻게 우리나라 장관 얼굴도 모르냐.”

“지랄. 그러는 너는 장관들 얼굴이나 이름을 다 알고 있냐?”

“아니. 나도 잘 몰라.”

“조용들 해봐.”

시위 현장에서 스마트폰 스피커로 방송을 듣다 보니, 조금만 소음이 올라가도 청취가 힘들었다.

한 친구가 입고 있던 잠바를 벗더니 천막 치듯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

“뭐해? 안 들어오고.”

“진짜 별짓 다 하네. 그냥 네 걸로 봐.”

“에이. 이런 건 같이 봐야 재밌지. 어서.”

스마트폰 주인과 친구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잠바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 * *

단상에 올라온 육성철 의원은 장내를 둘러보더니 인사말을 꺼냈다.

“존경하는 동료, 의원 여러분. 그리고 방송을 보고 계신 전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신당 초선의원 육성철입니다.”

신당 의원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야당 의원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삐딱하게 허리를 비틀었다.

육성철 의원은 이번 법안의 당위성과 필요성 그리고 역사의 흐름에 대해 담담한 목소리로 늘어놨다.

야당 의원 하나가 짜증 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다 아는 이야기 반복하지 말고 투표나 합시다.”

“옳소. 뻔한 소리 그만하고 내려와요.”

“투표합시다. 투표!”

야당 의원들의 불만 섞인 소리에 의장이 자제를 요청했다.

“야당 의원님들이 빨리 투표를 하자고 하시네요.”

육성철은 웃는 얼굴로 야당 쪽을 바라봤다.

국회 구석에 조그맣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의원들을 바라보며 ‘혹시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며 말을 꺼냈다.

“알기는 뭘 알아. 빨리 내려와.”

“초선이 진짜 말 많네.”

육성철은 살짝 톤을 높여 이야기했다.

“이명환 대통령님께서!”

“……?”

투덜거리던 대한당 의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이명환이 왜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조금 전 대한당을 탈당하셨다고 합니다.”

“뭐?”

“대통령이 탈당을?”

* * *

욕성철 의원의 발언에 TV 화면 밑으로 굵은 자막이 새겨졌다.

[특보! 이명환 대통령 대한당 탈당!]

육성철 의원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우리 신당에 입당서를 제출하셨습니다. 그냥 아시나 해서 말씀드렸습니다.

[특보!!! 이명환 대통령 신당 입당!!!!]

멍한 표정으로 육성철을 바라보는 야당 의원들에게 육성철이 쐐기를 박았다.

― 참고로 우리 당에 들어오려면 뭘 작성해야 하는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대통령님도 그걸 쓰셨다는걸.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잠바를 뒤집어쓰고 방송을 보고 있던 녀석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외쳤다.

“오예~ 정치인고용계약서~~!!”

* * *

이명환 대통령이 대한당을 탈당하고 신당으로 당적을 옮겼다는 발언이 나오자 신당 의원들이 연달아 손뼉을 쳤다. 이명환 대통령의 입당을 환영한다는 의미다.

육성철 의원은 씩― 웃음을 흘리더니 또다시 폭탄 발언을 내 던졌다.

“그리고 지금 의사당 밖에 검찰분들이 와 계십니다.”

육성철 의원의 말에 야당 의원들 표정이 굳어졌다.

“검찰? 검사들이 와 있다는 말인가?”

“아니. 검사들이 여길 왜?”

“다들 조용히. 검사 할애비가 와도 회기 중인 국회의원은 못 건드려. 현직 의원은 불체포특권이 있다는 걸 잊지 마.”

대한당 대표가 술렁이는 의원들을 다독였다.

육성철은 대한당 대표와 야당 의원들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검찰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꼭 잡아가야 할 분들이 이 안에 있는 데 협조를 부탁한다고 말입니다.”

“뭔 소리야! 여기가 어디라고 검찰이 들어와!”

“말도 안 되는 소리!”

야당 의원들이 발끈해서 소리를 쳤다.

“네. 맞습니다. 신성한 국회에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따졌습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이 아닌 이상 불체포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그런데도 막무가내이네요.”

“…….”

야당 의원들 표정이 점차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현행범이 아닌 이상 불가하다는 말에도 막무가내로 나왔다는 것은……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해 국회를 찾아왔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유라도 알자고 했더니, 저에게 이런 자료를 하나 전해주더군요. 동료 의원님들은 물론이고 방송을 보고 계신 국민도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육성철이 진행 위쪽으로 눈짓을 하자 의사당 대형 스크린에 영상 하나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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