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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벼락부자, 역대급 깽판을 치다-122화 (123/224)

122장. 국민 사기극에 대통령을 섭외하다. - 2

“이것 보세요!”

“그렇잖아요. 국민의 선택이니 뭐니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래서 국민과 한 약속은 지키셨습니까? 아니면 브로커에게 놀아나서 도장만 찍고 있었습니까. 설마 그런 행위가 거짓 없는 진실한 정치 행위였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

“새삼스럽게 도덕군자처럼 말씀하시니 제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푸핫! 푸하하하하.”

이명환 대통령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어이가 없어서 웃는 것인지 아니면 창피한 마음에 그걸 감추고 싶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집무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무슨 사기를 치자는 겁니까?”

“사회정화. 정의구현. 대한민국을 좀 먹던 기생충들의 박멸!”

“?”

대국민 사기와 그게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걸 위해서 대통령님은 3년간 쓸개를 씹으며 버텨오신 겁니다.”

“내가요?”

“네. 대통령님이 그러셨습니다.”

“잘 못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

“국민 모두가 그간 대통령님을 오해하고 잘못 알고 있었으니 그걸 바로 잡자는 겁니다.”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이명환은 언제 웃음을 터트렸냐는 듯 이번엔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청와대는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지 오랩니다. 무슨 말을 해도 그저 변명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겁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힘주어 말을 이었다.

“대기업 사주들의 부패를 척결하고 사심 가득한 언론을 정화했으며 그들과 엮여 있는 로비스트, 이익단체, 기득권층을 단숨에 물리치셨죠. 그것뿐입니까. 안보를 책임져야 할 정보부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셨고 급기야 국정원과 검찰까지 개혁을 진행 중이십니다.”

내 말에 이명환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언제 그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나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허수아비처럼 자리만 지키고 있었죠. 나를 놀리는 거라면 이쯤에서 그만뒀으면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셨을 테니까.”

“그걸 잘 아는 분이…….”

“말했지 않습니까. 대통령님은 와신상담 때를 기다리셨다고.”

이명환은 내가 주장한 ‘대국민 사기극’이 뭘 이야기하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 나에게 명분과 힘을 주겠다고 하는 겁니까?”

“대통령님이 허락하신다면요.”

이명환은 잠시 고민스러운 표정이 됐다.

“공짜 점심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 회장님이 얻으려는 건 뭡니까?”

“돈 터치.”

“건드리지 마라? 언터처블이라도 되겠다는 말인가요?”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저는 이미 언터처블입니다. 저를 건드렸던 이들은 그게 누구든 간에 다 몰락했으니까요. 사실 그 과정에서 최대 수혜자는 바로 대통령님 아니겠습니까.”

이명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몽과 얽혔던 이들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운신이 자유로워진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민심을 잃어버렸고 청와대는 더는 신뢰 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청와대가 비리와 범죄의 온상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하야하라는 말은 애교고 당장이라도 탄핵해서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말도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중이다.

국민에게 외면받는 청와대라니.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끔찍했다.

“원하는 걸 말씀해 보시오.”

“솔직히 내가 뭔가를 원한다고 해서 대통령님이 해 주실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저 스스로 원하는 걸 가져오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하죠.”

“…….”

“그래도 뭔가 원해야 한다면 말입니다.”

나는 이명환 대통령과 눈을 마주했다.

“탈당하시죠.”

“네?”

“어차피 있으나 마나 한 당 아닙니까. 신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남은 임기를 화려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허허허.”

힘 빠진 웃음소리가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이번 총선에서 열 석도 차지를 못했다죠? 비서실장 말로는 정부·여당이 말 그대로 망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무늬만 정당이라고.”

“그래도 내가 몸담았던 당입니다.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던 당이기도 하죠. 그런 당을 배신하고…….”

“배신은 그들이 했죠. 대통령님의 대선 공약 중에 지켜진 게 도대체 뭐가 있습니까?”

“…….”

“앞서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대국민 사기극이 필요하다고.”

“아까부터 자꾸 사기극 운운하는데, 정확히 뭘 이야기하는 겁니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부패한 기득권층을 척결하기 위해 와신상담하신 거라고.”

“…….”

“이번 총선에 태풍처럼 등장한 신당(新黨) 역시 대통령님이 준비한 빅 픽처였던 겁니다.”

“고 회장님이 아니라 내가 신당을 만들었다? 허허허. 그걸로 사기를 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 모두가 그게 아님을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사기라는 겁니다.”

나는 제이코가 놓고 나간 서류 가방을 열었다.

“일단 보시죠.”

이명환 대통령은 서류 뭉치를 받아들었다.

“이게 뭡니까?”

“시나리옵니다.”

“시나리오?”

“사기도 손발이 맞아야 칠 것 아닙니까.”

이명환 대통령은 서류 뭉치를 내려놓더니 한 장, 한 장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이명환 대통령은 서류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맘에 드십니까?”

“정말…… 이렇게 하겠다는 겁니까?”

이명환 대통령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국민은 대통령님의 탈당과 입당을 두고 배신이니 뭐니 떠들어댈 여유조차 없을 겁니다. 그간 감춰져 있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너나 할 것 없이 촛불을 들고 대통령님의 개혁에 지지를 할 테니까요. 3년간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이날 이 순간을 위해 참아왔던 대통령님을 향해 시대의 영웅이라고 외칠 겁니다.”

“…….”

“처음 말씀드렸던 것처럼 선택은 대통령님이 하시는 겁니다. 이대로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의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지. 아니면 새 시대를 연 진짜 정치인으로 기억이 될지는.”

“허허. 이거야 원.”

“민망하십니까?”

“아니라고는 못 하겠습니다.”

“그럼 사표를 쓰시고 낙향하세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분이 자기 얼굴 민망하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직무유기고 무능의 극치니 말입니다.”

멍한 표정으로 집무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이명환이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고 회장님 말이 맞습니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시간만 보낼 수는 없죠.”

“어떻게 손발을 한 번 맞춰보시겠습니까?”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슨 준비 말입니까?”

“지금 이대로 공표를 했다간, 그들에게 대응할 시간을 벌어주게 될 겁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검찰이든 국세청이든 모두 스탠바이 중이니까요.”

이명환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검찰과 국세청이 스탠바이?”

“물론 대통령님이 이 일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소집해제로 마무리되겠죠.”

“복권에 당첨되기 전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평범하진 않았죠. 노예 비슷하게 살았으니까요.”

나는 이명환 대통령의 말을 살짝 수정해줬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아니, 그 짧은 시간에 검찰과 국세청까지 손을 뻗친 겁니까?”

“돈이 어~엄~청 많다 보니.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게 꽤 많더라고요.”

“허허허.”

“지금도 시간은 계속 흘러갑니다. 하실 거면 화끈하게 하시죠.”

“좋습니다. 하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나는 시나리오를 가리켰다.

“거기 적힌 대로 이 모든 게 대통령님의 계획이었으며 대한민국의 고름을 짜내기 위한 빅 픽처였다고 인정해 주시면 됩니다.”

나는 곧바로 전화기를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네. 회장님.

김덕영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직 방송국이죠?”

― 말씀하신 대로 대기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김준 씨에게 전하세요. 실시간으로 나와 대통령의 대화가 방송에 나가게 될 거라고.”

― 알겠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부분은 없습니까?

“당연히 있죠. 김덕영 대표님은 나와 대통령님의 대화에 눈치껏 맞장구를 쳐주시면 됩니다.”

― 하하. 그 정도야. 제가 눈치 하면 김 눈치 아니겠습니까.

“준비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네. 회장님.

나는 김덕영 대표와 통화를 끝내고 대통령에게 이 시간 이후 어떻게 판이 돌아갈지 하나씩 설명을 해줬다.

“고 회장의 작전에 내가 거부를 했다면 어쩔 생각이었습니까?”

“어쩌기는요. 그냥 없었던 일로 하는 거죠.”

“없었던 일로?”

“대통령님이야 무능의 극치로 역사에 남으시겠지만, 저야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요. 기다렸다가 소집 해제당한 사람들은 맥 풀리긴 하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건 돈이 많다고 해서 해낼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더라고요.”

“왜 하필 지금입니까?”

“국민이 분노하고 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니까요. 장작은 불꽃이 타오를 때 넣어야 더 잘 타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명환 대통령은 내 말에 ‘허허허’ 웃음을 흘렸다.

“방송은 데리고 왔다는 사람들 앞에서 하면 됩니까?”

“아, 그 사람들은 받아쓰는 쪽입니다.”

“받아써요?”

“네. 떠들어대는 쪽은 따로 섭외했습니다. 쓸만한 사람이 하나 있더라고요.”

“나도 아는 사람입니까?”

“아마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도로 방송의 김준이라고.”

“아아. 김준. 정부를 후벼 파는데 도가 튼 사람이죠.”

이명환 대통령은 자신도 잘 알고 있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기도 합니다만, 제가 그 사람을 섭외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

“후벼 파기도 잘하지만, 김준 그 사람 음모론과 인터넷 선동질에 일가견이 있어서 말입니다.”

“음모론이라.”

“듣고 있다 보면 소설 뺨치는 이야기가 태반이지만, 개중엔 나름 진실에 근접한 소설을 쓰기도 하더군요. 이번 클럽 사건에 대해서도 그렇고.”

내가 클럽 사건을 들먹이자, 이명환 대통령도 궁금한 표정이 됐다.

“그 부분은 나도 궁금하군요.”

“어떤 부분 말입니까?”

“고 회장은 호텔을 나설 때마다 대형 사고가 터지지 않습니까.”

“아…….”

“처음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했는데, 이게 반복이 되다 보니 이런 의심이 들더군요.”

“의심이요?”

“네. 어쩌면 우연을 가장한 계획적 사건들이 아닐까 하는.”

“아이고. 절대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재수가 없어서 그런 거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 회장님이 재수가 없다고 하니 별로 와 닿지를 않습니다.”

“일단, 일부터 하시죠. 우리 쪽 전화 기다리느라 라디오 방송국 사람들 목 빠지겠습니다.”

집무실 밖에 대기 중인 제이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보스.

“대통령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합니다.”

― 허허. 진짭니까?

“그럼 가짜겠습니까?”

― 궁지에 몰리긴 몰렸나 보군요.

“오면서 이야기했던 대로 김준을 통해 진실을 이야기할 겁니다.”

― 꾸며진 진실 말이죠?

“음모론 좋아하는 사람이니, 신나서 살을 가져다 붙일 겁니다. 다른 언론과 달리 김준 그 사람 나팔을 요란하게 불어 줄 겁니다.”

― 데려온 방송팀은 어떻게 할까요?

“라디오 방송 끝나고 대통령님께서 대국민 성명을 내놓을 겁니다. 그때 받아쓰기시키고 대기 중인 팀들은 지금 출발시키세요.”

― 준비시키겠습니다.

제이코와 통화를 끝낸 나는 곧바로 김덕영에게 연결했다.

― 네. 회장님.

“준비됐습니까?”

― 네. 스튜디오에 들어와 있습니다.

“좋아요. 시작합시다.”

나는 스피커 폰으로 바꾸고 대통령과 나 사이에 전화기를 내려놨다.

― 고 회장님? 저 김준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고주몽입니다.”

“김준 공장장. 나 대통령 이명환입니다.”

― 오!!! 청취자 여러분. 팩트 팩토리 단독! 독점 인터뷰가 지금 시작됩니다!

* * *

주몽이 청와대에서 이명환 대통령을 만나고 있는 그 시각.

신세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긴장감 섞인 표정으로 전화기만 바라봤다.

띠링.

알림음과 함께 단체 메시지 하나가 날아들었다.

[액션.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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