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장. 국민 사기극에 대통령을 섭외하다. - 1
주몽 도착 시각에 맞춰 마중을 나갔던 비서실장은 청와대 입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수십 대의 차량을 발견했다.
“저게 무슨…….”
비서실장이 얼떨떨한 얼굴로 입구를 지켜보는데 경호실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실장님. 저거 뭡니까?”
“고주몽 회장 일행입니다.”
“네? 일행이요? 아니 청와대 방문에 무슨…….”
비서실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됐다.
일국의 대표가 방문해도 솔직히 저것보다는 숫자가 적다.
“저거 어떻게 합니까? 경호 차량에 수행 차량 거기다 방송국 차량까지 함께 왔습니다.”
“방송국이요?”
여기서 방송국이 왜 나오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할까요. 고 회장 차량만 들이고 나머지는…….”
“잠깐. 잠깐만.”
“빨리 결정을 주셔야 합니다. 계속 저렇게 세워 둘 수도 없는 일이라서.”
“알았으니까. 잠시만 기다려요. 아, 고 회장 기분 상하지 않게 이야기 잘하고.”
고주몽과 관련해선 임의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기에 대통령에게 확인해야만 했다.
“네? 아니. 제가 어떻게…….”
경호실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비서실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청와대 안으로 달려들어 갔다.
주몽을 기다리고 있던 대통령은 비서실장의 보고에 ‘뭐?’ 하는 반응을 보였다.
주몽을 조용히 만나고 싶었던 대통령으로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비서실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대통령을 바라봤다.
“후우…….”
이명환은 답답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주몽만 들어오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신의 요청에 따라줄지 아니면 이대로 차를 돌려 돌아가 버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도 대놓고 만남을 거부했던 고주몽이다.
그저 복권 당첨자 신분일 때도 마이웨이 했던 주몽인데, 지금은 대한민국 대기업과 국회까지 손에 넣은 어찌 보면 자신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권력자가 된 상태다.
“대통령님?”
“물어봅시다.”
“네?”
비서실장이 ‘뭘요?’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떼로 몰려온 이유 말입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청와대에 들여보낼지. 아니면 돌려보낼지는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안으로 들이세요.”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재빨리 달려나갔다.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경호실장이 ‘어떻게 됐습니까?’ 하는 표정으로 비서실장을 바라봤다.
“일단 안으로 들이세요. 저렇게밖에 세워두면 사람들 눈에 더 띌 것 아닙니까.”
“네. 알겠습니다.”
경호실장은 곧바로 무전을 날렸다.
“일단 안으로 들여. 주차 위치 알려주고.”
― 네. 실장님.
명령이 떨어지자, 청와대 입구에 대기 중이던 주몽 일행이 이동을 시작했다.
비서실장은 경호실장과 경호팀을 이끌고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허락이 떨어진 모양입니다.”
경호 1팀 차량이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박산호가 곧바로 보고했다.
나는 제이코에게 시선을 돌렸다.
“준비는 잘 되고 있죠?”
“물론입니다. 천 회장님과 이 차장, 지검장은 물론 추가로 섭외한 팀들까지 모두 스탠바이를 마쳤습니다. 투자팀도 모니터 앞에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계획대로 진행이 될지 그게 걱정입니다.”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죠. 일단 하는 데까지는 해 봅시다.”
“건투를 빌겠습니다.”
청와대 안으로 들어간 주몽은 주차가 완료되자 Go 컴퍼니 경호팀의 경호를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환영합니다. 비서실장 최정민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고주몽입니다.”
비서실장은 주몽과 인사를 나눈 뒤 일행을 쓱 둘러봤다.
“오늘 만남은 비공식…….”
“왜 그래야 하죠?”
“네?”
“내가 범죄자도 아니고 몰래 들어와서 비밀스럽게 대통령을 만나야 할 이유가 있냐는 말입니다.”
“그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곳은 청와대입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들어오면 경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이 좀 이상합니다. 맞습니다. 비서실장님 말대로 이곳은 청와대죠. 어찌 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볼 수 있는데 경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니.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잘 이해가 안 돼서 말입니다.”
“큼. 한두 사람도 아니고 외부인이 이렇게 많이 움직이게 되면 청와대 안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청와대 경호팀과 함께 대기 중이던 경호실장이 비서실장을 거들었다.
“지금 그 말은 나와 내 직원들이 잠정적 테러 실행자라는 뭐 그런 뜻입니까?”
“그…… 그런 의미가 아니지 않습니까.”
비서실장은 뜨악한 표정을 짓더니 경호실장을 뒤로 물렸다.
“빙빙 돌리지 말고 편하게 가죠. 문제가 있다면 그냥 말씀하세요.”
“크흠. 설마, 이 인원이 모두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님을 만나겠다는 건 아니겠죠?”
어림잡아도 백 명이 훌쩍 넘는다. 이 숫자를 맞이하려면 미팅 장소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로는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했고, 불특정 다수를 대통령과 같은 공간에 둔다는 것부터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비서실장님.”
“네. 고 회장님.”
“모르세요?”
“네? 뭘 말입니까.”
“청와대 안보수석이라는 사람이 미팅을 요청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청와대 안보수석입니다. 시정잡배도 아니고 대통령이 임명한 안보수석.”
“네…….”
“그런데 약속 장소에 가보니 회칼만 수십 자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곳은 청와대입니다.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장소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하. 네.”
“그런데 안보수석은 왜 그랬답니까?”
“…….”
비서실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고 회장님. 말씀이 심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네. 고 회장님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르진 않습니다만, 넘지 말아야 할 선도 존재하는 법입니다. 이쯤 하시죠.”
비서실장은 잔뜩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수행원을 지정하시면 안내를…….”
“로버트. 차 돌립시다. 오늘은 만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네. 보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로버트가 경호팀을 향해 손짓했다.
“철수한다.”
로버트의 한 마디에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찍이 자리를 잡고 있던 방송팀과 언론팀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냈다.
청와대와 Go 컴퍼니 사이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주몽의 까칠한 반응도 문제였지만, 방송과 언론이 이 사실을 보도했다간 또다시 우환거리가 생겨날 것이다.
“회…… 회장님. 지금 뭐하시는.”
비서실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말입니다. 내 사람들 아니면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
“대통령이 임명한 안보수석이 그런 사고를 치고 해외로 도주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그에 대한 대처를 내놨다거나 나에게 사과 한마디 한 적 있습니까?”
“그건…….”
비서실장은 난감한 표정이 됐다.
자신들이라고 문제를 몰라서 이러고 있겠는가 말이다.
안태완을 잡아서 고주몽 앞에 가져다 바치든 그게 아니면 피해 보상이 될 수 있는 뭔가를 내놓든지 해야 할 텐데, 지금 청와대로선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청와대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진 모르겠지만, 안보수석 같은 자가 또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
로버트가 뒷좌석 문을 열고 나를 바라봤다.
“보스. 타시죠.”
내가 탱크 X에 오르려 하자, 비서실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차 문을 잡고 비서실장을 돌아봤다.
“인원이라도 알려주십시오. 회장님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우리 쪽에서 맞춰보겠습니다.”
비서실장이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럴까요?”
“일단 안으로 드시죠. 대통령님께 바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비서실장은 경호실장과 청와대 경호팀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더니 후다닥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제이코와 함께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 집무실로 향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영빈관에 머물렀다.
비서실장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에 들어선 나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대통령 이명환을 발견했다.
“대통령님. 고주몽 회장님을 모셔왔습니다.”
등을 돌리고 있던 이명환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대통령 이명환입니다.”
“Go 컴퍼니 고주몽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와 이명환은 가볍게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요란하게 방문을 하셨더군요.”
“제가 겁이 좀 많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거나 신경 쓰였다면 용서해 달라는 등의 말은 전혀 꺼내질 않았다.
이명환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는 한동안 침묵이 맴돌았다.
“대통령님.”
“네. 고 회장님.”
“독대를 부탁드립니다.”
대통령 뒤에 서 있는 비서실장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최 실장. 잠시 나가 있게.”
“대통령님!”
“그렇게 하게.”
이명환이 재차 이야기하자, 비서실장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제이코. 비서실장이랑 담소라도 나누고 있어요.”
“네. 보스.”
제이코는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건네주고는 비서실장을 따라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자, 이제 둘만 남았습니다.”
이명환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이야기해 보라는 듯 주몽을 바라봤다.
“돌려서 이야기할까요. 아니면 직설적으로 이야기할까요.”
“편하게 이야기합시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혹, 제가 실례되는 말씀을 드려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겁부터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명환은 씁쓸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고생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하하하.”
대뜸 고생했다는 말이 튀어나오자 이명환은 웃음을 터트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무리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설명이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알고 대통령님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대통령님을 옥죄던 가시 울타리. 제가 치워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흠.”
“브로커 역할을 하던 언론사 사주들은 물론이고 낙하산으로 들어와 있던 장관들까지. 아닙니까?”
이명환 대통령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그래서 이번엔 그들을 대신해서 고 회장이 브로커 일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그간 제 성향에 대해선 나름 보고를 받으셨을 텐데요. 그리고 내가 뭐하러 브로커 짓을 합니까. 귀찮게 시리.”
이명환은 잠시간 말이 없어졌다.
“대통령님도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 자리까지 오셨을 것 아닙니까.”
“그랬었죠. 하지만 이제 와선 내가 뭘 하려고 아득바득 이 자리에 앉았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군요.”
이명환 대통령은 지친 표정으로 주몽을 바라봤다.
“내게 원하는 게 뭡니까?”
“저랑 방송 한 번 하시죠.”
“방송이요?”
이명환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고개를 갸웃했다.
“선택은 대통령님 몫입니다만…… 대국민 사기극 한번 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사기극이요? 국민을 상대로?”
이명환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거짓말에도 선의의 거짓말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그걸 한 번 하시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내 비록 허수아비처럼 빌빌대곤 있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아 이 자리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라는 겁니까?”
이명환 대통령의 목소리가 살짝 거칠어졌다.
“이상하네요.”
“뭐가 말입니까?”
“정치인들 하는 것 보면 하루도 쉬지 않던데. 굳이 오늘이 아니더라도 계속 사기 치고 있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