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장. 궁금하잖아요.
[짧고 굵게 원인을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재벌 2세와 고주몽 사이에 여자들을 두고 싸움이 붙은 겁니다.]
▶ 이젠 클리셰냐? 공장장! 상상력을 더 발휘하라고.
▷ 요즘 웹 소설도 이런 클리셰는 허접해서 안 씁니다.
▷ 공장장은 클리셰 범벅을 좋아합니다.
▷ 소문에는 클리셰 중독이 너무 심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소문도 있음.
[여러분. 이러다가 내 말이 딱 들어맞으면 민망해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 인터넷 중독이라서 댓글 끊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일단 들어보고 말을 해. 아니 댓글을 써.]
▶ 와. 불통 대마왕 공장장이 우리 댓글 읽었다!
▷ 웬일이래. 댓글에 반응을 다 해주고.
▷ 댓글 개무시 전략 아니었어?
▶ 애들 다 불러와. 공장장이 댓글 본다!
▷ 공장장 추리 소설 쓴다고 알려! 오늘 댓글로 화력전 한번 해 보자!
[재벌 2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고 고 대표로선 쥐뿔도 없는 것들이. 아아, 고 대표 입장에선 대기업 회장도 서민이잖아. 쥐뿔이고 뭐고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내 말이 틀려? 서민이나 재벌이나. 고 대표에겐 그냥 양민. 이건 팩트라고.]
와. 공장장 말하는 것 봐라.
재벌이랑 서민이랑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데, 그걸 하향 평준화시켜버리네.
공장장의 황당한 외침에 이걸 웃어야 하는지 아니면 어이없어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 워워워. 갑자기 팩트로 뼈 때리는 소리 하고 있네.
▷ 그걸 꼭 그렇게 확인 사살을 해야만 했냐! (코 평수 넓힘)
▷ 틀린 말은 아니지. 재벌이나 우리나 고주몽 앞에선 그냥 양민 맞음.
▷ 천억이든 일조든 고주몽 보기엔 그냥 만 원으로 보임.
▶ 그 만 원 나 주면 좋겠다~~~
[고 대표 재력을 생각하면 재벌 2세가 아니라 재벌 본인이 와도 상대가 안 되지. 그냥 ‘툭’ 치면 ‘억’하고 사망인데? 재벌 2세 따위야 뭐. 아무튼, 여차여차해서 재벌 2세들이 깝죽거리기 시작했고 그걸 지켜보던 고 대표가 쓱 발라버린 겁니다.]
김준은 점차 ‘추리 또는 소설’이 아니라 확정적으로 말을 던졌다.
본인 입으론 소설이니 뭐니 하면서 ‘어디까지나. 이랬을 수도 있다’라는 전제하에 이야기하고 있지만, 당사자인 나로선 ‘오호’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세세한 부분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럴듯하게 그날 상황을 유추해냈기 때문이다.
[내 말이 맞을 겁니다. 고주몽 대표가 그 시간에 왜 클럽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뭔가 있어요.]
▶ 고주몽 휠체어.jpg
▷ 고주몽 칼자국.jpg
▷ 고주몽 병원 짤.gif
▶ 공장장. 댓글 보면서 떠들어라!
[그래서 모셨습니다. 요즘 국회를 씹어 먹는 분이죠. 의석수 267석! 완전히 국회 깡패야. 이 의석수면 쓰레기 같은 법도 만들기만 하면 다 통과시킬 수 있다고.]
▶ 헐. 국회 깡패…… 썩. 어울리는 표현이로군.
▷ 이번엔 봐 줬다. 267석이면 깡패 맞아.
▷ 진짜 쓰레기 같은 법 통과시키면 국회 불 질러 버릴 거다!
▷ 국회에 불 지르고 감옥 가느니. 빵을 훔쳐 먹고 감옥에 가라! 쓰레기장 소각하다 감옥 가는 건 억울하잖아!
▷ 쌍! 빵 훔쳐먹었다고 감옥 가는 게 더 코미디다. 약 처먹고 강간하는 놈들은 보석으로 잘만 빠져나오잖아!
▶ 그거 막겠다고 신당에서 법 만든다잖아. 천만 촛불 가즈아~!
▷ 신당이나 구당이나. 그놈이 그놈임.
[그런데 그러면 되겠어? 당연히 안 되지. 그런 짓을 했다가는 고주몽 대표가 소송한다잖아. 킬킬킬킬.]
김준은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더니 스튜디오에 들어온 출연자를 소개했다.
[요즘 징벌적 법안으로 아주 핫한 분이죠? 신당 김덕영 대표님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신당 대표 김덕영입니다.]
[네. 초선인 주제에 당 대표까지 하고 계시는 김덕영 의원님. 뉴스 공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김준은 특유의 깐족거리는 말투로 김덕영을 재차 소개했다.
▶ 대체나. 초선 주제에 당 대표다. 그것도 의석수 씹어 먹은 깡패당 대표. 존나 무서움.
▷ 너도 무섭냐? 나도 무섭다.
▷ 나 떨고 있냐?
▷ 공장장 믿고 떠들어 보자. 고소해도 공장장이 먼저 당하겠지.
[의원님.]
[네. 공장장님.]
[댓글 같은 거 신경 쓰지 마세요. 정신 건강에 해롭습니다.]
[하하. 그래도 법을 만드는 입장에서 국민과 소통…….]
[오늘 모신 것은 법 잘 만들어지나 아니나 그런 거 물어보려고 모신 게 아니니까. 소통 따위는 집어치우시고.]
[…….]
[두 번 안 물어봅니다. 딱 한 번만 물어볼 겁니다.]
▶ 공장장 야무지다. 신당 대표 까는 거 봐라.
▷ 여기 나와서 안 까이는 게 더 신기한 거다.
▶ 조용들 해봐. 뭘 물어보려고 저러는지 일단 지켜보자.
[크흠. 뭘 물어보려고 그러시는지 모르겠지만, 부담스럽네요.]
[부담은 무슨. 그런데 의원님도 그거 쓰셨죠?]
[그거라면…….]
[정치인고용계약서 말입니다. 으하하.]
[하하. 네. 썼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신당 의원님들은 모두 다 쓰셨죠.]
[그러니까. 거짓말하면 알죠? 고주몽 대표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의원 배지 달고 구라치면 계약 위반 아닙니까. 그러니까 솔직히 답하셔야 합니다.]
▶ 신당이 국회 깡패는 맞는데, 고주몽 앞에선 역시 양민이구만.
▷ 서민이든 재벌이든 국회의원이든 고주몽 앞에선 평등해짐.
▷ 고주몽 덕분에 재벌도 국회의원도 나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느끼게 됨. 마음의 강 같은 평화~~
▷ 이상한 데서 만족감 찾지 말자.
▷ 어쩌냐. 나도 느끼는 중인데.
▷ 나도 느낌.
▷ 이 새뀌들. 어디 댓글에 오르가질이야!
▷ 오르가질이 뭔가요?
▶ 애들은 가라.
김준은 계약서까지 들먹이면서 질문을 했다.
[내 말이 맞죠?]
[대뜸 그렇게 물어보시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에이. 맞잖아. 클럽 헤드라인. 이거 고 대표 작품이잖아요.]
▶ 공장장. 아무말 대잔치 시작했다. 일단 우기고 보는 못된 버릇 또 나왔어.
▷ 하루 이틀이냐. 오늘은 어디까지 우기나 보자.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고주몽 대표는 습격 사건으로 몸이 좋지 못합니다. 클럽 같은 곳에 갈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에이. 몰라. 휠체어 탔다고 클럽 가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김준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냥 한 가지만 이야기해 줘요. 이번 사건 고 대표 맞죠?]
[어허. 이것 참. 법안 이야기하자고 불러놓고는…….]
김덕영의 난감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만 알고 있을게. 그러니까. 의원님은 눈만 깜빡이시면 됩니다. 내 말이 맞으면 깜빡. 아니면 깜빡깜빡.]
▶ 우엑. 남자들끼리 윙크 날리지 마!
▷ 동성애 반댈세!
▷ 여기서 동성애가 왜 나와.
▷ 그래서 깜빡인 거야. 안 깜빡인 거야?
김준은 집요할 정도로 자신의 추론을 끼워 맞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김덕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공장장님. 이거 노파심에 드리는 말입니다.]
[노파심이요?]
[재벌 2세도 스치면 사망이라고 하신 분이 그렇게 고 대표를 물고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어쩌긴요. 그냥 망해야지. 킬킬킬.]
▶ 공장장 용감한 거냐. 아니면 무모한 거냐?
▷ 소문에 따르면 공장장 빚쟁이라고 함.
▷ 고주몽이 나서지 않아도 이미 망한 지 오래됐음.
▷ 공장장 잘나가지 않냐?
▷ 오피셜에 따르면 대왕 전자 주식 넣었다가 일가 체포되면서 급하게 팔았다고 들었음.
▶ 고주몽이 대주주라고 알려지면서 떡상, 떡상하지 않았음?
▷ 응. 그런데 공장장은 반대로 사고팔다가 쫄망함.
▷ 그래서 고주몽 까고 싶어서 안달 났다는 소문도 있음.
▶ 어차피 죽을 거. 벼락부자 손에 죽고 싶다는 건가? 자살 방법도 가지가지네.
“대표님. 끌까요?”
박 부장이 보고 있기 민망했는지 고개를 돌려 슬쩍 내 눈치를 봤다.
“왜요. 재미있는데. 내가 공장장이나 네티즌들에게 소송이라도 할까 봐서 그럽니까?”
“하하. 설마 그러시기에 하겠습니까. 말 그대로 시사 운운하는 콩트 방송이지 않습니까.”
박 부장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저 아저씨는 촉이 좋은 걸까요. 아니면 진짜 따로 정보원이 있는 걸까요?”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다른 방송에 비해 사건을 분석하고 추론하는 능력이 월등했다.
방송 진행자가 아니라 경찰이나 범죄심리분석관을 했어도 성공했을 것 같다.
라디오에선 공장장 김준의 목소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투머치를 가볍게 씹어 먹는 투머치라더니 정말 입이 쉬질 않는다.
[만약 내가 고 대표라면 말입니다.]
신당 대표를 불러놓고 법안 이야기는 뒷전인 채 계속 자기 말만 늘어놓는 김준이다.
[저기 공장장님. 법안…….]
[이번 기회에 그냥! 팍! 퍽! 아뵤오오오오!]
▶ 공장장 카페인 과다 섭취했다. 또 흥분했어.
▷ 팩트 팩토리 스태프들 공장장 얼굴에 물 좀 뿌려라. 정신 차리라고.
▷ 뚱땡이 주제에 아~뵤란다. 소룡이 형이 어이없어 기절할 판.
▷ 어. 횽아 방금 기절했다.
▶ 너 같은 흉아 둔 적 없다.
김준은 네티즌이 까 든 말든 꿋꿋하게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놨다.
[아뵤…요?]
[신당이랑 손잡고 그간 미뤄뒀던 법들 싹 다 통과시켜버릴 텐데 말입니다.]
[공장장님? 고주몽 대표는 정치인이…….]
[정치가 따로 있습니까? 좋은 일 하면 그게 정치 아닙니까. 김덕영 의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하. 그렇죠. 저 역시 정치는…….]
[막말로 이야기해서. 고 대표는 돈 몇 푼 벌어보겠다고 비리 저지르고 없는 사람 쥐어짜고 그럴 이유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 공장장아. 아흔아홉 개 가진 놈이 하나 가진 놈 털어먹는단 말도 모르냐?
▷ 있는 놈이 더해. 고주몽이라고 다를 것 같냐?
▷ 내가 훔치면 빵조각이 전부고. 재벌이 훔치면 나라 세금인데. 고주몽이 훔치면 어디까지 규모를 잡아야 하냐?
▷ 최소 나라 하나 정도는 털어먹을 각.
[그거야 그러…….]
[그런 사람이 정치하면 어~~~~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예산이고 뭐고 그냥 팍팍 개인 돈 써가면서 하고 싶은 정책 펼치면서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개인 돈을…….]
▶ 깡패당 대표 말에 한 표. 돈 많다고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다.
▷ 경기도 오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난 일산이다!
▷ 난 앞산.
▷ 난 뒷산.
▷ 고만들 해라. 이러고들 싶냐?
[그렇게…….]
[아, 네. 거기까지.]
[아니 그래도….]
[웃고 떠들다 보니 벌써 끝날 시간 됐습니다. 오늘 방문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내가 예언하나 한다. 깡패당 대표 ‘에?’하고 쫓겨난다. 두고 봐라.
▷ 예언은 무슨. 빅데이터로 증명됐다. 게스트 마지막 멘트는 ‘에?’로 일괄처리 됐다.
▷ 5
▷ 4
▷ 3
▷ 2
▷ 1
▶ 발사!
[네?]
▶ 네도 에로 인정해 줌?
▶ 인정.
▶ 네나 에나. 거기서 거기지.
[다음에 다시 기회가 되면 그때 모시겠습니다.]
[아니. 저기…….]
[아, 고주몽 대표에게 말 좀 전해주세요.]
[네? 무슨 말을.]
[기회가 왔을 때 바꿀 수 있는 건 다 바꾸자고 말입니다. 막말로 청와대도 국회도 그동안 있으나 마나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클럽 사건처럼 시원하게 처리해 달라고 꼭 좀 전해 주십시오.]
[아니 그걸 내가 왜…….]
박산호는 공장장에 휘둘려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몇 마디 꺼내지도 못하고 쫓겨나는 김덕영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아직 멀었네. 저렇게 내공이 약해서야.”
“하하. 경험을 쌓다 보면 자연스레 정치인다워지겠죠.”
내 말에 박 부장이 아쉽다는 듯 말을 이었다.
“우리 편이지 않습니까. 이왕 방송에 나간 것 잘했으면 해서 그랬습니다.”
“청와대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요?”
“거의 다 왔습니다. 10분 정도면 정문에 도착할 겁니다.”
[팩트 팩토리 뉴스 공장. 광고 듣고 오겠습니…… 아! 지금 제 정보원에게 특급 정보가 날아들었습니다. 김 대표님. 가지 말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 특급 정도?
▶ 흘러가는 분위길 보면 고주몽 소식 같은데.
▷ 세상에서 제일 의미 없는 소식이 연예인 소식, 정치인 소식, 고주몽 소식이다.
[고주몽 대표가 호텔을 나와 이동 중인데, 그 방향이…… 청와대로 예상된다는 정보입니다.]
[아! 2차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김준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김덕영 대표님. 고주몽 대표의 청와대 방문. 알고 계셨습니까?]
[네?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김덕영은 뜨끔한 표정이 됐지만, 극구 아는 바 없다며 부인을 했다.
[이런, 그래도 고주몽 대표의 측근이라고 생각해서 초청했는데, 도움이 안 되시는군요.]
[공장장님. 이거 말이 심하…….]
[고 대표님. 혹시라도 우리 방송을 듣고 계시거나 보고 계신다면! 전화 주십시오!]
김준의 외침에 조수석은 물론 내 옆자리에 앉은 제이코까지 ‘절대 안 됩니다!’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왜요?”
“뭐하게요?”
내 말에 제이코는 질문으로 되물었다.
“안될 건 뭔데요?”
“굳이 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는 이 나라 통치권자와 만날 예정입니다. 괜히 구설수…… 보스!”
“궁금해서 그래요.”
“뭐가 말입니까?”
“전화하라잖아요.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지.”
“…….”
“에헤이.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고. 그냥 무슨 소릴 하는지 그것만 듣고 끊을게요.”
제이코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맘대로 하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 김준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어어어! 어어어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