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장. 거기까지. 시간 됐습니다.
청와대 미팅을 위해 호텔 방을 나선 나는 박산호 부장과 함께 호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로건과 경호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준비는 끝났습니까?”
“네. 보스.”
“그럼 갑시다.”
복도를 지나 주차장에 들어서자, 대기 중인 인원들이 나를 바라봤다.
미국에서 넘어온 전직 경찰 Go 컴퍼니 경호원들과 국정원에서 넘어온 양하석 과장과 요원들.
제이코의 법률팀과 비서실 직원. 로버트와 정보팀 요원들과 파견이라는 명목하에 Go 컴퍼니에 들어온 서른 명의 다국적 스파이들까지.
백이십 명 가까운 인원이 주차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움직일 사람이 많으니 준비된 차량만 해도 종류별로 스무대가 훌쩍 넘었고 인근 경찰서에서 지원을 나온 바이크에 탄 교통경찰과 순찰차, 취재 차량으로 보이는 방송국, 언론사 차량까지.
Go 컴퍼니 인원을 제외하고도 외부 차량과 인원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주차장 풍경을 확인한 박 부장이 ‘어우’ 하는 소릴 냈다.
오늘 가야 할 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청와대다.
이렇게 우르르 몰려가도 되는 건가 하는 표정이다.
오늘 타고 갈 차량이 부르르릉 소릴 내며 내 앞에 멈춰 섰다.
기존에 타고 다니던 롤스로이스는 습격 사건의 ‘빼박 증거’로 만들기 위해 폐차를 했기에 이동 중 타고 다닐 차를 최근에 새로 공수했다.
미국의 코치빌더 레즈바니(Rezbani)가 내놓은 ‘탱크 X(Tank X)’라는 놈인데 극한의 SUV라는 설명이 붙을 정도로 생긴 것부터가 우락부락 한 놈이다.
차를 가져온 로버트 설명에 따르면 악명 높은 닷지 챌린저 SRT 핼켓의 6.2리터 V8 슈퍼차저 엔진을 탑재했고 707마력에 98.2kg.m의 엄청난 토크를 보유, 넘치는 힘을 지녔단다.
열 화상 카메라와 케블라 아머, 방탄유리, 군용 등급의 런플랫 타이어 그리고 연료탱크, 라디에이터 주변에 추가 보호장치를 포함하고 있어서 옵션만 본다면 SUV가 아니라 장갑차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성에 안 차서 온갖 옵션을 추가해 미국 대통령이 타는 비스트보다 더 무식한 놈으로 커스텀 했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차알못에 밀리터리 무식자라 로버트의 설명을 태반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멀뚱한 표정으로 차를 바라보자, 로버트는 궁금한 게 없냐고 물었고 그래서 기껏 물어본다는 게 ‘찻값이 얼맙니까?’였다.
양산형 탱크 X는 기본가 3억에서 시작을 한다는데, 내가 타고 다닐 이놈은 73억에 가져왔다고 했다.
도대체 차에 무슨 짓을 해야 70억이라는 추가금액이 발생했는진 모르겠지만 내 목숨값을 생각하면 70억이 아니라 700억이라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
예전 같으면 ‘억!’ 소리를 내며 기겁했겠지만, 움직이는 돈이 ‘조’ 단위가 되다 보니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더럽게 비싸고 무식할 정도로 튼튼한 차. 내가 이해한 탱크 X의 전부다.
기존에 타고 다니던 롤스로이스도 나름 튼튼한 놈이었지만, 아쉽게도 오프로드에선 힘을 쓰기가 어려웠다.
일반 도로에선 모르겠지만, 폐촌에서처럼 길이 막혔을 때 기동성을 담보할 수 없다 보니 이번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길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움직일 수 있는 놈으로 준비를 한 것이다.
“출발합시다.”
“네. 보스!”
교통경찰이 바이크와 순찰차로 안내를 시작하자 경호 1팀과 정보팀이 먼저 출발했다.
뒤따라 탱크 X가 출발했고 그 뒤를 양하석 팀과 비서실이 따라붙었다.
경호 2팀과 다국적 스파이를 태운 버스가 출발하자 경호 3팀이 그 뒤를 호위했다.
Go 컴퍼니 차량이 모두 출발하고 잠시 뒤, 방송국 차량과 언론사 차량이 오리 새끼처럼 따라붙었다.
경호 1팀에서 방송국 차량까지 늘어선 거리만 해도 200m나 되다 보니, 경찰의 안내가 없다면 여러모로 불편했을 것이다.
“라디오라도 들으면서 갈까요?”
“네. 대표님.”
차량 운행을 맡은 경호원이 곧바로 오디오를 켰다.
마침 시간 때가 맞았는지, ‘시사 콩트’를 표방하는 라디오 방송 ‘팩트 팩토리’ 가 흘러나왔다.
한때 언더그라운드 아웃사이더 방송인으로 활동하다 정권이 바뀌면서 메이저 방송인으로 자리 잡은 김준의 시사 프로그램이다.
겉으론 정론, 시사, 논평을 내세우고 있지만 가리지 않고 다 까대서 모두 까기 김준. 디스쟁이 김준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인선 씨.”
“네. 대표님.”
“이거 인터넷에도 방송이 되죠?”
“네.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태블릿 있으면 줘 볼래요.”
김인선은 재빨리 채널을 찾아 태블릿 PC를 건네줬다.
♩♪♬ FM 라디오~♩♪♬
[요 며칠 재벌 2세들의 입에 담기도 민망한 범죄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 팩트 팩토리~♩♪♬
[광화문에서 시작된 촛불 시위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자리를 옮긴 지 사흘이 지났습니다.]
♩♪♬ 뉴스 공~장 ♩♪♬
[징벌적 손해배상, 영향력 높은 공인 또는 지도층의 제대로 된 처벌, 법 앞에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 수호.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던 이 말들이 이번엔 지켜질 수 있을지.]
♩♪♬ 도로방송 91.3Mz 팩트 팩토리 뉴스 공장~ ♩♪♬
♩♪♬ 뉴스 공장. 금요일 3부 방송을 시작합니다. ♩♪♬
[2부에서 예고해 드렸던 대로 3부에선 강남 클럽 사건의 감춰진 이야기를 이야기해드립니다.]
팩트 팩토리 뉴스 공장 진행자인 김준의 어눌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제 정보원에 의하면 이번 클럽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린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 공장장 또 소설 쓴다.
▷ 소설을 빙자한 추리 팩트겠지.
▷ 소설이든 추리든. 공장장 예언 99.9%
▷ 뭔 소리야. 99.9%? 국보급 점쟁이냐?
▷ 됐고, 툭하면 튀어나오는 정보원이 누군지. 그것이 알고 싶다.
[하지만 증거 없는 증언만으로 팩트를 이야기하기엔 신뢰도 가지 않고 부족한 점도 많지 않겠습니까. 마음 같아선 이게 증거라고 딱! 내놓고 싶지만, 공장장 능력이 아직 그 정도는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사건 당일 클럽에 있었던 분을 어렵게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인사하시죠.]
▶ 오! 정보원 등장!
▷ 웬일이냐. 공장장이 정보원을 다 공개하고.
▷ 쯧. 정보원은 개뿔. 딱 보니까. 클럽에서 춤추다 뭐 좀 봤나 보네.
[네. 클럽을 사랑하는 클러버 박주홍이라고 합니다.]
[네. 박주홍 씨. 그날 사건이 있던 시각에 클럽에 있으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 내 말 맞지? 클럽 죽돌이 등장이요.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런데. 클럽엔 무슨 일로 가신 겁니까?]
[네? 그야 당연히 춤추러 갔죠.]
[그렇군요. 클럽엔 춤을 추러 가는 거군요. 맞습니다. 여러분. 클럽은 춤추러 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상식을 단숨에 깨부순 분들이 계십니다. 바로 재벌가의 자제분들이죠.]
▶ 대한민국 상식 파괴자. 재벌 2세!
▶ 대한민국 뉴스 파괴자. 김준 2세!
▷ 김준 노총각이다. 2세 따위는 없다.
▷ 언어유희에 민감하기는.
김준은 킬킬거리는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말을 이었다.
[잡소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박주홍 씨. 그날 보신 게 있다고 그러셨는데. 이야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그날 무슨 날이었는지 엄청난 미인들이.]
[미인이 아니라 미인들입니까?]
[네. 그것도 한국 여성이 아니라 외국 여성분들이 클럽에 왔었습니다.]
▶ 저 말 들으니 나도 기억난다. 엄청난 미녀들이 떼거리로 왔었다.
▷ 뭐냐. 너도 거기 있었냐?
▷ 뭐 본 거 있으면 말 좀 해 봐.
▷ 뭔 놈의 죽돌이들이 이렇게 많아? 이거 평일에 일어난 일이라고 들었는데. 정보원도 죽돌이. 댓글러도 죽돌이냐?
[제 예상이 맞다면 이번 사건의 피해자 또는 증인분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거야 저도 모르죠. 하지만 그 여자분들 때문에 클럽 분위기가 장난 아니게 달아올랐습니다. 완전 미스유니버스가 따로 없더라니까요.]
[저기 박주홍 씨?]
[네. 공장장님.]
[여자 이야기 말고. 사건 이야기해 주세요. 삼천포로 빠지지 말고. 시간 없어요.]
[아. 네. 아무튼, 그랬었는데, 갑자기 핸드폰도 안되고…….]
[잠시만요. 지금 전화가 안 된다고 하셨는데, 박주홍 씨 전화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에이. 그런 거면 이야기 안 하죠. 그날 클럽에 있던 사람들 전부 전화가 불통이라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 저거 전파 차단한 거네.
▷ 진지하게 묻는다. 어떤 미친놈이 클럽 가는데 전파 차단기까지 들고 다니냐?
▷ 내 말이. 그냥 통신 오류겠지.
▶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어라. 단체로 전화가 맛이 갔다잖아.
▷ 그런데 그런 기계가 있기는 함?
▷ 대통령 뜨면 스마트 폰 벽돌 됨. 듣기론 스마트 폰이나 휴대폰을 무선 폭발 장치로 사용할 수 있어서 테러 방지용으로 사용한다고 들었음.
▶ 뭔 미친 소리야. 클럽에 대통령이 왔다는 소리냐?
▷ 나야 모르지. 대통령이라고 클럽 가지 말라는 법 있냐?
[오, 이건 완전히 새로운 정보인데요. 그래서요?]
[외국인들이 막 들어와서 룸 쪽으로 달려가더라고요.]
[외국인이요? 아까 여자분들도 외국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여기서 말한 외국인은 남자들…….]
[네. 알겠습니다. 거기까지. 시간이 됐습니다.]
▶ 저저저. 공장장. 저거 저러다 언제고 큰코다칠 날 있다. 사람 불러놓고 툭하면 끝났대.
▷ 오늘도 희생자 한 명 추가요.
▷ 거기까지 끝입니다. 요것 때문에 섭외가 안 된다고 PD가 난리라던데.
▷ 그래서 말입니다. 이런거나 밀 것이지. 거기까지! 이제 가보세요. 이건 좀…….
▷ 죽돌이 당황스럽게 ‘에?’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에 한 표.
▷ 나도 한 표.
[에?]
[방송 시간이 빡빡해서 그럽니다. 조심히 가시고…….]
김준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통신두절’ 사건과 ‘외국인 남자’들에 주목했다.
[여러분. 지금 나만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을 나만 떠올리고 있어요?]
▶ 뜬금없이 뭔 소리야. 힌트라도 주면서 물어!
▷ 공장장 또 시작했다.
▷ 아닌데. 누구 말하는지 알겠는데.
▷ 공장장 짝퉁이냐? 알면 그냥 이야기해!
▶ 이거…… 혹시. 고주몽 말하는 거 아냐?
▷ 잉? 고주몽이 여기서 왜 나와?
김준은 나도 알고 당신들도 아는 그 사람이 이 사건과 연관이 있지 않겠냐며 썰을 풀기 시작했다.
[외국인 경호원을 떼로 데리고 다니는 사람. 통신 부분은 전문가를 따로 모셔서 확인해야겠지만, 아무튼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딱 한 명 있습니다.]
▶ 아니 그러니까. 고주몽이 왜 여기서 나오냐고.
▷ 고주몽도 클럽 갈 수 있는 거지. 뭐가 문젠데?
▷ 바보냐? 고주몽 칼 존나게 맞고 휠체어 타고 있는 거 몰라?
▷ 아…… 방송 봤는데 안 죽고 살아난 게 용할 정도더라.
▷ 내 말이. 고주몽은 거취불명이라고. 클럽은 무슨.
김준은 네티즌이 떠들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냈다.
[Go 컴퍼니 대표! 고주몽! 내 생각이 맞다면 이번 사건에 재벌 2세들 뿐 아니라, Go 컴퍼니 대표 고주몽도 연관이 있다. 이겁니다.]
김준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자신의 ‘추론 또는 추리’에 가까운 의견을 제시했다.
▶ 팩트 팩토리도 끝물인갑다.
▷ 응. 니 의견에 한 표.
▷ 과대망상도 이 정도면 병이다.
▶ 공장장아. 고주몽 휠체어 타고 다닌다고!
▷ 아 쫌. 최소한 납득이 갈만한 추론을 내놔.
[둘 중에 하납니다. 재벌 2세들의 난잡한 생활을 전해 들은 고주몽이 사회정화를 위해 한 손 거들었다는… 좀 현실성이 없죠? 솔직히 재벌들보다 더 바쁘다고 알려진, 고 대표가 클럽 룸까지 들여다보며 정의구현을 하고 다닐 것 같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흠. 공장장 말처럼 내가 정의구현 때문에 뛰어다니진 않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그럴 것 같지 않다고 할 것은 없잖아.
[그래서 생각한 건데, 아까 박주홍 씨가 이야기했던 다국적 미인들 있지 않습니까. 분위길 보니 눈 돌아갈 정도의 미인들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분들을 재벌 2세들께서 내버려 뒀을 리 없잖아.]
▶ 야, 공장장 흥분했다. 반말 존댓말 오가기 시작했다.
▷ 하루 이틀이냐. 그러려니 해줘라.
[어라? 그런데 하필이면 거기에 고 대표도 있었네? 고 대표도 남자다 보니 다른 남자들처럼 눈도 좀 돌아가고 그랬다고 치자고. 돌아갔다는 게 아니라 돌아갔다고 치자고 했으니까. 이거 가지고 나중에 뭐라 하지 말자고.]
▶ 이 와중에도 명예훼손은 피해 가는 것 봐라.
▷ 그래. 어차피 소설인데. 끝까지 가보자. 그래서 뭐?
사건 터지기 전까진 그런 여자들이 있는지도 몰랐다.
남자 셋이서 냄새만 풍기다가 끝났으니까. 눈 돌아가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고.
나는 살짝 억울한 표정으로 태블릿을 바라봤다.
직접 전화해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으니 답답하네.